사무실에서나 가정에서나 금고는 그 존재로만으로도 큰 의미를 갖습니다. 금고 안에는 귀중품이 들어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금고속에는 귀금속이나 금전, 채권 등이 들어있으므로 금고라 하는 것입니다. 사무실 금고에는 중요한 계약서나 소중한 자료 등이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팔탄면사무소에 근무하면서 회계담당을 하게 되었는데 아주 오래된 금고가 하나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궁금하였는데 어느 날 총무계장님께서 수첩 안쪽에 글씨를 보시면서 금고를 열어서 서류를 꺼내십니다. 그리고 두달 정도 지나자 회계담당인 저에게도 그 금고 다이얼 번호를 알려주시면서 서류를 꺼내라 하시고 다시 넣으라 하십니다. 어느 토요일 오후에 시간이 나기에 금고속을 상세히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문을 열고 서류와 내용물을 살펴보니 오늘날 이해하는 비밀문서, 을지연습 문서 등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오래전 폐기된 직인함, 기타 고무인 등이 있습니다. 내용물 확인이 끝나고 나서 금고의 내부시설을 살펴보았습니다. 사람이 만든 것이니 인간의 머리로 이해될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일본제 금고인 것 같습니다. 우선 다이얼이나 손잡이가 금색입니다. 바닥과 외벽에는 많이 녹슨 부분이 있지만
제복, 유니폼을 입은 군인이나 경찰을 만난 국민들은 이분들의 얼굴을 보기전에 계급장에 먼저 눈길이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유니폼은 계급으로 위계를 정하고 스포츠 유니폼은 동질감을 강화합니다. 조기축구 경기에서도 노랑조끼와 빨강조끼를 입도록 해서 상대방과 우리편을 구분하도록 합니다. 패스의 상대방을 빨리 찾아내도록 돕기위해 색상이 다른 조끼를 입도록 하는 것입니다. 공직사회 행정파트에서도 경찰관이나 소방관처름 어깨에 계급장을 달고 근무하면 어떠하겠는가 하는 농담을 한적이 있습니다. 공직자중 제복을 입는 분야에서는 내부의 위계가 있고 대외적으로 국민을 상대하면서도 어느정도 제복이 주는 권위로 압도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행정에 익숙한 주민들이 어느날 사무관 동장님이 무궁화 3개를 어깨에 달고 들이닥치면 말문이 턱하고 막힐 것입니다. 그러니 현행대로 군인은 별, 무궁화, 하사관, 병장의 계급장을 달도록 하고 소방관과 경찰관 역시 무궁화꽃 뭉치 8개든 5개, 4개, 3개를 달고 일하도록 해야합니다. 주무관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통합된 계급장을 달고 무궁화꽃을 피울 날을 기대하여야 할 것입니다. 소방이나 경찰의 경우 굳이 7급이하를 구분하는 것이 불편해서
1977년에 공직에 들어와 비봉면사무소에 근무했습니다. 당시에는 지방행정의 중심에는 새마을운동이 있었습니다. 면사무소 총무계의 고참 7급직원이 새마을운동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당시에 모친께서 동네 부녀회장을 하셨는데 면 새마을담당 선배님의 추천으로 전국 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하셨습니다. 1박2일 행사이고 당시 박정희대통령이 참석하여 축사를 하던 시기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당시 축사를 보니 격세지감이 있습니다. 1978년 행사의 축사내용중에는 '지난 8년동안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1천만건 이상의 새마을사업을 위하여 정부는 무려 9천700억원 이상을 투입했으며, 3천600만 우리국민 모두가 적어도 스물네번이상 사업장에 나가서 일한 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국에 투자한 새마을사업 1년 예산이 1조원이 되지 않는데 무려 큰 예산을 투입하였다고 연설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연설문중 비교가 될법한 말씀은 '호당 농가소득은 80년대초의 목표 140만원을 이미 작년에 넘어섰고, 금년에는 178만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는 대목입니다. 기억하기로 1977년 9급 공원 월급이 5만원이었으니 연봉은 60만원. 4인가족이 140만원이니 대략 계산이 맞아가는 상황입니다.
화성시옴부즈만 우수사례 년전 근저당권설정- 유관부서 추적조사 적극행정의 성공사례로 평가 화성시시민옴부즈만은 대출을 받지 못해 애태우는 농민의 애로사항을 적극행정으로 해결했다고 밝혔다. 화성시에 따르면 민원인 A씨는 은행대출을 위해 서류를 준비하던 중 자신의 농지에 10년전 화성시장 명의의 근저당권설정이 남아있어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거부당했다. 하지만 민원인은 근저당권설정의 경위를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관계서류도 보관되지 않아서 해결방법이 막막했다. 이에 A씨는 화성시민옴부즈만을 방문하여 해결방안을 문의했고, 옴부즈만과의 상담결과를 바탕으로 화성시 감사관 소속의 전승훈 옴부즈만팀장은 그간의 행정경험을 살려 민원인의 농지에 근저당권을 설정할 가능성이 높은 화성시청내 7개부서에 사실조회를 요청하였고 이중 C과의 공무원이 부서의 문서목록을 검색하여 관련자료 목록을 찾아냈다. 관련과의 주무관은 검색결과를 바탕으로 사실을 파악한 결과 근저당권설정의 원인이 해소된 것을 확인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등기 정리 촉탁문서를 등기소에 발송하여 민원을 해소했다. 등기부를 정리하고 준비했던 대출을 받은 A씨는 “처음에는 황당하여 어디부터 문제를 풀어야 할지 몰랐는데, 화성시 옴부
1985년에 8급 4년차, 공무원 8년차로 근무했습니다. 왕성하게 먹고 마시던 27세의 청년시절이니 설탕커피, 요즘의 믹스커피를 많이 마셨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면 구내식당에 가서 100원짜리 커피를 주문했습니다. 식당 테이블에는 커피를 위한 설탕과 베트남산 야자수열매 가루로 만든 프림이 상비약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구수한 커피맛에 익숙해지고 당시 평범한 말로 인이 박혀서 하루에도 여러잔의 커피를 걱정없이 부담없이 마셨습니다. 세월이 흘러 고희를 향해 달리는 나이에 이르고보니 음식에 攝生(섭생)을 합니다. 커피는 여전히 마시고 싶은데 '건강걱정증'으로 인해 마셔야하나 그만 먹어야 하는가에 대한 기로에 찬 고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래도 수십년간 익숙해진 커피를 한잔 더 마시고 싶은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있고, 그래도 오늘의 '커피총량'을 넘기는 경우가 많은 듯 생각이 듭니다. 500년 조선사에서 초기의 이성계, 이방원, 세종대왕의 식생활은 이후 영조, 정조대왕으로 이어지면서 큰 변화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조선시대 초기와 후기의 공통점을 들어보면 전기가 없었고 그래서 냉장고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커피도 조선에 들어오기 전입니다. 그렇게 긴 세
알기쉬운 행정용어집 발간 편집 – 권두현 회장이 기획, 편집 총괄 고운말 수록집 -동우회원, 공직자에 배부 경기도행정동우회(회장 : 권두현 전 경기도행정부지사)가 알기쉬운 행정용어, 바른말 고운말 수록집 800부를 발간하여 동우회원과 경기도의회, 도 공직자에게 배부했다. 동우회가 국립어학원의 자료등을 활용하여 제작한 자료집은 알기쉬운 행정용어, 바른말 고운말, 부록으로 편집되었다. 알기쉬운행정용어 파트에는 가건물을 임시건물로 순화해야 한다는 표현을 시작으로 히읗에서는 힐링을 치유로 표현하는 단어 등 총 1,000단어를 수록했다. 그리고 일상에서 자주쓰는 영어단어 75개를 우리말로 설명하고 바른말 고운말로 다음은 단어 6,387개를 수록했다. 부록편에는 모두 7가지 자료가 편집되었는데 대한민국헌법, 훈민정음해례본 원문, 3·1독립선언서(한글판, 한문원문), 국민교육헌장, 새마을운동 구상(박정희대통령 친필), 나이에 따른 호칭 및 생일명칭, 24절기 구성 및 설명을 실어서 회원과 공무원이 적극 활용하도록 배려했다. 자료집 발간을 기획하고 편집한 권두현 회장은 자료집 발간 인사말을 통해 “일상에서 흔히 접하기 쉬운 행정용어를 알기쉽게 설명하고 언론매체를 통해 알려
유명 게그우먼의 조크중에 본인은 “체끼라는 것을 모른다”는 대목에 눈길이 간다. 평소 맛있는 음식을 한상 차리고 동료들과 먹기를 좋아하는 모습을 방송에서 자주 보았던 바이다. 음식을 많이 먹어도 소화가 잘 된다는 의미와 함께 음식에 호불호가 없으며 모든 음식을 좋아한다는 의미로 들리기도 한다. 살면서 과식하여 체한 느낌을 받지 않고 산다면 이는 행복한 일 중의 하나로 꼽을 만하겠다. 그래서 스스로 반성하며 생각해보니 살면서 '봉사의 행복'을 얼마나 느끼는가 반문하고 반성하게 되었다. 솔직히 남을 위한 봉사활동을 자발적으로 한 일은 없어서 하는 말이다. 좀 더 젊은 시절에 남을 위한 봉사에 나섰으면 얼마나 풍요로운 삶이 되었을까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 게그우먼이 체끼를 느끼지 못하듯이 봉사의 행복을 알지 못하는 삶을 살고있음을 자인하는 바이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공직생활중 1년 장기교육에서 몇번의 봉사활동에 강제로 참여한 것이 고마운 일이라 생각된다. 연수프로그램으로 최일도 목사님이 주관하시는 '밥퍼' 현장에 투입되어 전문가 선생님들과 채소를 다듬고 배식하는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점심을 위해 9시부터 채소를 손질하고 양파를 썰고 국을 끓이는데 힘을 보탰다.
1981년 8월10일에 경기도청 사업소인 농민교육원에 전입 발령을 받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젊어서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반복해서 쓸 이야기입니다. 공직의 전환점이 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전에는 아니고 이후에는 그러하다는 말은 아니고 공직 39년8개월은 1977년 5월 시작에서 2017년 1월까지 전 과정이 소중하고 귀중하다는 말씀을 미리 드리고 시작하고자 합니다. 1958년생이면 1981년에 23세 청년입니다. 어린 나이에 고향 비봉면의 인근에 소재한 팔탄면으로 발령을 받아 근무했습니다. 6km를 걸어서, 자전거타고, 버스타고 3번 환승하면서 다녔습니다. 당시에는 신용카드가 없었고 버스 환승할인제도도 없었고 교통노선도 지금처럼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출퇴근이 어렵고 힘들었으며 출퇴근 비용도 적잖았습니다. 걸어서 한밤중에 집으로 오는 길 고개마루에서 여우 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전설의 고향, 전설따라 삼천리 마을입니다. 그리하여 버스를 3번 갈아타고 가서 일주일 근무하고 토요일 오후에 집에 왔다가 다시 짐 챙겨 버스타고 일주일 근무하는 초임 공무원 생활이 어려워질 즈음에 도청 전입의 기회가 왔습니다. 그냥 모르고 지나갈 일인데 그
기제사는 집에서 부모, 조부모, 고조, 증조할아버지 할머니 조상님께 올리는 제례이고 시제는 가을에 날을 정해 5대 이상의 윗대의 조상님 묘역에서 올리는 제사이다. 제사절차는 전문가라야 이해하고 절차대로 진행할 수 있다. 다른 절차보다 제사상을 차리는데 신경을 쓰게된다. 동네마을의 여러성씨의 대표들이 모여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제사에서는 문중간, 집안간에 제례절차로 논쟁을 벌이다가 정작 가장 중요한 신주는 개가 물어가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제사는 절차와 의식에 엄중함이 있다는 말로 읽힌다. 신기하게도 포털사이트에 화성시 매송면 야목리 당제사에 대한 설명이 상세하게 나온다. 이 제사는 새마을운동때 미신을 타파한다고 해서 없어졌으나, 그 후 마을에서 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쌍초상까지 나는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 일때문에 무당에게 문의를 했고, 당제사를 안지냈기 때문이라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 이후 당제사를 다시 지내는 것이 좋겠다는 동네사람들의 여론으로 1985년부터 다시 부활시키게 되었고 그 후부터는 동네가 편안하고 풍파도 없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기제사, 시제, 당제사 등 모든 제례에 올리는 과일을 살펴본다.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
언제부턴가 영화배우, 연극의 희극인들의 통칭이 '탤런트'로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칭찬할때 그사람에게는 '탤런트가 있다'고 말 합니다. 탤런트(talent)란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연기자를 말하고 top talent는 대중으로부터 연기력이나 스타성을 인정받아 그 인기가 정상을 달리고 있는 탤런트이며, 멀티 탤런트(multi talent)란 여러 방면에 재주가 있는 사람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어린시절에는 TV에 나오는 배우만을 탤런트라 부른다 생각했는데 맞는 말이지만 방송분야 아닌 타 분야에서도 탤런트를 발휘하는 이가 많습니다. 하지만 방송에 출연하는 배우를 탤런트로 표현하게 되고 방송이 우리사회와 사람들의 삶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높아졌으므로 통상의 이해로는 방송에 나와서 연기를 하는 분들은 탤런트라 하고 희극쪽에서 활약하는 젊은 층은 개그맨, 개그우먼으로 부릅니다. 방송뉴스에서 탤런트나 개그맨이 나오는 경우 매니저나 주변사람들은 모자이크로 처리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는 이들 탤런트, 개그맨, 그리고 유명배우들은 대중의 인기를 받고 대중적 지지와 인지도를 바탕으로 개인차가 있다고 합니다만 수입을 얻기에 '공인'으로 분류한다는 소극적 해석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