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경에 아랫마을 전기 방앗간 3선 동력 전선에서 110v 전기를 뽑아내서 50촉짜리 전구를 켜면 2㎞ 떨어진 윗마을에서도 주변의 건물이 환하게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문명의 상징이라 할 전기가 밝기도 하지만 어려서는 지금보다 시력이 더 좋았을 것이고 공기 중 미세먼지가 적어 청명하였기에 멀리서도 잘 보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설극장 영화가 상영된다는 방송을 들은 동네 젊은이들은 저마다 쌀 반 말을 가슴에 안고 나방이 불빛에 몰려들 듯 천막 영화관을 행해 달려간다. 가는 길 사거리 가게에서 쌀을 돈으로 사서 지전과 동전을 꼭 쥐고 뛰어간다. 쌀을 주고 돈을 받으면서 ‘쌀을 산다’고 하고 돈을 주고 쌀을 받으면서 ‘쌀을 팔아온다’는 역설적 표현은 농경문화의 자존심이라고 한다. 그러니 쌀을 사면 내 손에는 돈이 들어온다. 그 돈으로 영화표를 산다. 고모는 어린 조카를 오버코트 속에 숨겨 극장 천막 안으로 들어간다. 기도 아저씨는 알면서도 눈감아 주었다. 영화가 끝나면 추첨으로 이어지는데 내 손의 표와 같은 번호가 적인 짝표가 저 추첨함 안에 들어 있다. 늦은 시간 길가의 긴 풀잎새에 이슬이 맺힐 때까지 우리는 추첨을 기다리고 결국 바가지 1개를 탄 동네
경기테크노파크는 도내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공기관이다. 경기도와 안산시, 그리고 정부에서 투자했다. 안산시 상록구 해안로 한양대학교 캠퍼스 후문 쪽에 있으며 중소기업 제조업 본사가 입주한 10층 높이 기술고도화동을 비롯하여 6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도내 중소기업의 현장기술을 통한 기술 고도화, 즉 기술닥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도내 중소, 중견 제조 기업을 대상으로 1단계 현장 애로 기술 지원, 2단계 중기 애로기술 지원, 3단계 상용화를 지원한다. 그리고 전주기적 문제해결 지원책으로 시험분석, 설계, 시뮬레이션 등을 지원한다. 신속한 업무처리를 위해 333원칙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기업에서 기술 지원을 요청하면 3일 이내에 3명의 전문가가 3번 현장을 방문하는 것을 말한다. 간소한 신청절차, 신속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도비 35억 원을 지원받았고 시군에서 24억 원을 매칭하고 있다. 그리고 경기테크노파크는 경기도 지식재산 전담기관으로서 유망 중소기업을 3년간 집중 지원하는 IP스타기업육성, 창업기업에 대한 지식재산 역량강화를 위한 IP 창업존과 IP 디딤돌사업, 수출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글로벌히트 상품을 목표로 하는 특허·브랜
정말로 꿈을 기록할 수 있다면 참으로 재미있을 것이고 작가에게는 소재가 될 것이며 청소년들에게는 미래의 希望峯(희망봉)이 될 것이다. 초등학교 1~2학년 쯤에 동내 뒷동산 풀밭에서 깔끔하고 큼직한 하모니카를 습득하였다. 그 하모니카를 지금까지 가지고 있다면 아마도 지금쯤 전국은 아니어도 지방의 작은 음악가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공무원 39년 재직 후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음악과 인연이 조금 부족했나보다. 그날 홀로 산책을 하다가 동네 언덕 잔디밭에서 하모니카를 拾得(습득)했으므로 어린 마음에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소독을 한다고 라면 끓이듯이 물에 삶아 버린 것이다. 문제의 하모니카 외부는 철제로 만들어졌지만 그 속의 공기를 통과시켜 소리를 조율하는 다양한 크기의 셀들은 플라스틱이다.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펄펄 끓는 100도가 넘었을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플라스틱 부분이 여름날 초콜릿처럼 쭉 늘어져 밖으로 나와 버렸다. 결국 하모니카는 폐기됐고 어린 한국판 모차르트의 꿈은 녹아내린 하모니카 플라스틱 셀처럼, 여울목의 泡沫(포말)처럼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후에도 음악가로서의 길을 가지 못했고 사연을 反芻(반추) 하는 글
할아버지에게 깨진 항아리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침저녁으로 깨진 항아리와 새 항아리를 대나무 자루에 매달고 물을 길어왔다. 물을 채우는 우물에서는 두 항아리 모두에 물이 가득했지만 깨진 항아리의 물이 새는 바람에 집에 돌아오면 반항아리만 남는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늘 깨진 항아리를 길 오른쪽에, 성한 항아리는 길 중앙선 쪽으로 하여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와 물통에 물을 채웠다. 깨진 항아리는 늘 반항아리 물을 길어오는 자신이 창피하고 할아버지에게, 할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어느 날 깨진 항아리는 용기를 내어 할아버지에게 속내를 말했다. “할아버지, 제 몸이 부실하여 깨진 항아리라서 물을 반밖에는 못 길어오니 늘 죄송합니다. 저는 깨진 항아리라서 마음이 아픕니다.” 할아버지는 깊은 주름 속에 밝은 미소를 지으시며 말했다. “깨진 항아리야. 걱정하지 말아라. 네가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함께 밖으로 나가보자.” 집을 나와 매일 물을 길어오는 길가에 나가보니 길 왼쪽에 아름다운 꽃이 피어있었다. 할아버지가 찬찬히 설명해 주었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집으로 올 때 나는 늘 너를 오른쪽에 두고 걸어 왔단다. 집으로 오면서 가득 찬 네 물의 절반은
요즘 공직사회에서 퇴임식을 보기 어렵고 동시에 훈장을 전수하는 행사도 거의 열리지 않는다. 기관장은 바빠 훈장 전수식을 준비하지 못하고 부단체장은 기관장의 눈치 보느라 퇴직 간부의 훈장을 전하는 행사를 주관하지 못하는 것 같다. 더구나 명퇴하고 한두 달, 6개월이 지나면 또 다른 인사발령으로 그 부서의 서무담당, 주무팀장, 과장이 바뀌고 국장급 인사는 더 자주 발표되므로 막상 훈장을 받으러 근무한 기관이나 부서에 가기에도 쑥스럽다는 것이 퇴직 공무원 대부분의 공통적인 이야기다. 퇴직 공무원의 훈장 전수식 참석을 기피하는 것이 먼저인가, 기관에서 행사를 준비하지 않아 참석하고 싶어도 못 가는 것인가는 ‘닭이 먼저인가 계란이 먼저인가’를 논하는 것과 같다. 헌법 제80조에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훈장 기타의 영전을 수여한다’고 규정했다. 소중한 훈장은 퇴직후 6개월, 1년후 택배로 보내기도 한다니 훈장이 명예가 아니라 서무 담당자에게는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공직자로 일한 분들이 헌법정신대로 예우를 다하는 가운데 자랑스럽게 훈장을 받도록 몇 가지 해야 할 일의 순서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행정안전부 담당 부서에서는 퇴
동경(東京) 동경(憧憬) 동경(銅鏡) / 2017-12-18 일본에 東京(동경)이 있다. 일본을 憧憬(동경)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애 처음으로 일본에 가보니 그동안 듣고 읽은 일본을 조금은 이해하고 동감하는 기회가 된다. 우선은 일본 동경시내 건물과 시설과 사람과 차량의 질서다. 상대를 배려하는 사람들, 경적을 울리지 않는 차량이다. 동경시내를 조망해 보면 높이 올라간 것의 으뜸은 도쿄타워이고 도심 한가운데를 넓게 차지한 거목의 숲은 신궁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메이지 신궁은 1912년 제122대 왕인 무쓰히토(메이지)가 사망하고 1914년 왕비 쇼켄이 사망한 후 두 사람을 기리기 위해 1915년 건설을 시작하여 1920년 11월1일 창건하였으며 신궁(神宮)은 역대 일본 왕을 기리는 신사로, 다른 신사보다 높게 친다고 한다. 동경타워는 1958년에 건립됐다. 프랑스 파리에 1889년 프랑스혁명 100주년 기념 파리 만국 박람회 때 세워진 324m의 에펠탑을 모델로 하여 철강 4천t으로 333m 높이로 건설했다. 9천700t의 철강이 들어간 에펠탑보다 7m 높다. 70년의 시차와 기술의 향상으로 철강을 절반 이하로 쓰면서 더 높게 건설한 것이다. 1975년에 세워
[천자춘추] 해관 (2017-11-23) 지난해 말 39년 8개월 공직을 마감하게 되었을 때 마음속 흔들림과 당혹함이 적지 않았는데 어느 날 새벽 1시에 잠에서 깨어나 손에 잡은 책이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牧民心書(목민심서)’로 흔들림을 잡은 바 있습니다. 제도의 개혁 원리를 말하는 經世遺表(경세유표), 형법서 흠흠신서(欽欽新書), 그리고 목민관, 즉 현대의 공직자가 지켜야 할 지침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저서인 목민심서를 ‘1표2서’라 하며 1762~1836년 74세 일생동안 심혈을 다하신 508권 茶山(다산) 선생님의 저서 중 壓卷(압권)입니다. 목민심서를 잡고 이리저리 방황을 하다가 만난 활자는 바로 ‘解官(해관)’이었습니다. ‘관직이 교체되어도 놀라지 마라. 수령직은 교체됨이 있는 것이니 교체되어도 놀라지 않고 관직을 잃어도 연연하지 않으면 백성이 그를 존경할 것이다. 평소에 문서와 장부를 정리해 두어서 청렴하고 명백하게 하여 후환이 없도록 해야 한다.’ 지방행정 기관의 공무원에 대한 인사는 여건상 단기간에 진행됨이 현실이니 현재 공직에 몸담은 1962년생쯤 나이에서 다산 선생님의 ‘해관’을 생각하고 그 글을 읽으면서 공감해 봄 직하다 하
방송국에 가면 드라마 이산(정조대왕)의 사진이 걸려 있고 효의 도시 수원에는 화성이 있습니다. 그 화성의 4대문은 장안문, 팔달문, 화서문, 창룡문이고 그 중심 행궁안에 함께한 화령전에는 정조대왕의 어진이 모셔져 있습니다. 화령전은 1801년에 건립되었고 왕의 親祭(친제)가 17번 열렸는데 순조 10번, 헌종 2번, 철종 3번, 고종 2번입니다. 2017년 10월 28일 14:00에 華寧殿(화령전)에서 제265돌 정조대왕 탄신茶禮(다례)가 열렸습니다. 다례는 ‘차를 끓여 신이나 영혼 또는 사람에게 예를 갖추어 대접하는 법식’으로 순조는 선대왕의 탄신일에 39번 다례를 올린 최고기록을 보유한 임금이십니다. (㈔수원화성禮茶교육원 강성금 원장의 자료 참고) 정조대왕 탄신 다례에서 강성금 원장은 조선시대 이래 끊겼던 의례를 문헌을 바탕으로 재구성하여 탄신다례를 올린 것은 매의 의미가 크다고 말했고 정조의 효사상을 실천하는 우리의 독창적인 祭禮(제례) 문화라고 평가했습니다. 탄신다례는 참신례, 초헌례, 독축, 아헌례, 종헌례, 헌다례 등으로 이어졌으며 문화계, 학계, 시민단체 대표와 시민들이 참석했습니다. ㈔수원화성예다교육원 주관으로 열린 행사로 경기문화재단, 수원문
[기고] 자화자찬(自畫自讚) (2017-05-24) 지난 5월16일은 공무원 초임 9급 서기보시보 발령을 받은 지 꼭 40년이 되는 날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보람된 날이어서 초임 발령장 사진과 함께 소감문을 페이스북에 올리니 동기 한 분이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습니다. 40년 전 19살 까까머리에 면바지, T-셔츠를 입고 발령받으러 가서 복장불량으로 화성군청 행정계장님의 면박을 받고 웃옷을 빌려입고 군수님 발령장을 받아 시작한 公職(공직)의 시작은 硬直(경직)의 출발이었습니다. 그리고 40년 동안 발령장 43장을 받으면서 한 번도 긴장을 푼 일이 없습니다. 발령대상자 인원에 관계없이 줄을 세우고 늦게 오면 야단맞고 일찍 온 공무원 모두에게도 숨이 멈출 것 같은 긴장감을 조성하는 ‘인사계 군기’는 어느 기관에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10초 안에 끝나는 발령장 받기 의전을 위해 30분, 50분을 긴장한 채 대기하였으므로 결재판처럼 뻣뻣한 발령장을 들고 회의실을 나서면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습니다. 1990년경까지는 오전에 발령받고 오후까지 이 과(課) 저 부서(部署)를 돌면서 인사를 하고 선배 공무원들은 인사 오는 것이 당연한 듯 여기시면서 늘 반갑게 발령장을
[기고] 공직에서 사무실과 자리 (2015-04-21) 직장동료와 회식을 가면 서로 마주 보며 머뭇거린다. 자리를 잡는데 1분 이상이 걸린다. 내 자리가 어디쯤이면 적정할까 빠른 속도로 CD를 돌려 선곡을 하듯이 자리를 스캔하고 참석자를 분석한 후 자신의 서열을 4∼5번쯤으로 정한 후 그 자리를 잡는다. 이어서 오늘의 좌장이 들어오면 모두 일어나서 서로서로 상석을 권하며 한 자리씩 물러났다가 다시 빈자리가 생기면 우두머리의 측근 자리로 한 발짝씩 다가선다. 그리하여 과장이 자리하고 앞에는 주무계장, 좌우에 2, 3번 계장이 착석하고 그 언저리는 차석의 차지이니 말석은 문 앞이나 방구석 끝자리다. 하지만, 이 경우는 대단히 불합리한 좌석배치다. 더구나 삼겹살을 먹는 경우 2번 계장은 연신 고기를 굽고 가위로 잘라가며 후배들의 소주잔을 받고 다시 권하다 보면 1시간이 금방 지나가고 오늘 모임의 취지가 무엇인지 조차 모른 채 술에 취하고 만다. 그렇다고 과장과 주무계장 자리에 서무담당을 배치하기도 어렵다. 이른바 급별로 배치되는 경우 대화의 내용은 4그룹 4색이다. 각기 서로 다른 주제를 가지고 열변을 토하고 있다. 그래서 자리배치 추첨표를 만들었다. 오늘 참석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