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은 공보실 근무의 최고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공직에서 이만한 성취와 보람의 시대는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처음 가는 길이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다른 사례를 빌려다가 우리의 업무에 접목하고 창의적으로 일감을 찾아내어 우리 방식으로 추진했습니다. 도정홍보를 위해 젊은이들의 도정홍보 광고문안 콘테스트를 열었습니다. 도정에 홍보가 되는 것이라면 선거법에 위방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다양한 일을 추진했습니다. 홍보컨설팅을 받아보니 전문가가 따로 있습니다. 글 한줄, 이미지 하나가 독자와 도민의 마음에 큐피트의 화살처럼 꽃힌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동안 고정관념으로 일방적 홍보를 해왔던 우리의 방식에 큰 수술이 필요했습니다. 변화는 계속되었고 공보기능에서 홍보기능이 강화되었고 공보형의 신문게시에서 광고성 홍보문구를 신문에 실었습니다. 도지사님 인터뷰를 물량으로 밀고 나갔습니다. 지역지에서 지방지, 중앙지, 월간지, 주간지, 특수지 등 모든 매체에 도전하였고 방송도 뉴스는 물론 교양프로그램에 경기도정을 끼워넣은 전략을 고민했습니다. 영화촬영지가 시민들에게 큰 관심을 갖게 하는 점을 착안하여 이벤트성 공간을 마련하는 방안도 추진했습니다. 공무원이나 공기관의 모
2003년3월3일 오후 15시에 홍보기획팀장에서 언론담당으로 발령되었습니다. 언론담당은 도정홍보자료를 언론에 제공하고 언론인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운용하는 담당 사무관입니다. 홍보기획팀에서 4년간 근무하면서 3명 언론담당 사무관이 일하시는 모습을 잘 보았으므로 크게 참고가 되었습니다. 수륙양용이라는 군사용어가 있습니다. 육지를 달리다가 강이나 호수를 배처럼 건너가는 탱크를 말합니다. 공직에서도 주야겸용이 있습니다. 낮에는 언론인과 도정홍보를 추진하고 저녁에는 식사를 하고 소주도 한잔 합니다. 폭탄주는 술을 덜 먹기 위한 전략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장군이 주재하는 술자리에서 장교들이 장군에게 잔을 집중하므로 장군이 일괄 폭탄주를 만들어 나누고 함께 마시면 동등하다는 계산입니다. 사실 폭탄주는 소주 한잔에 맥주 반잔이므로 알소주 3잔을 마시는 것보다 가볍습니다. 그리고 상호간에 친목과 소통을 다지는 계기가 됩니다. 하지만 늦게까지 이어지면 여러가지 부담이 생기므로 늘 저녁 식사장에서 그날의 이야기를 마치고 다음날 아침 출근을 생각해야 합니다. 언론인 중에는 술에 강하거나 약해서 아침에 늦게 출근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공무원은 아침 7시50분에는 사무실에 들어가야 뻘
밀레니엄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2000년에 모든 컴퓨터가 1900년과 2000년을 구분하지 못하여 인터넷 대란이 일어난다고 걱정을 했지만 큰 문제없이 2001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2002년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986년에 아시안게임, 1988년 88올림픽, 그리고 제70회 전국체전 준비 등 행정은 늘 준비를 합니다. 준비하는 내용도 꽃길, 가로청소, 환경정비 등 실제 체육행사는 아니고 주변적인 업무입니다. 각종 체육행사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출전하는 종목과 경쟁 상대선수, 그리고 경기장이 대부분 들어차있을 것입니다. 경기장 주변에 코스모스가 피었는지, 사루비아가 붉게 피었는가는 큰 관심사항이 아닐 것입니다. 경기장이 준비되고 선수와 관객이 타고 오는 버스와 승용차의 통행에 차질이 없으면 될 것이라 생각하는데 우리는 본경기보다 주변의 환경정비에 돈을 투자하고 공을 들였습니다. 물론 외국의 마라톤 경기 중계를 보면 가끔 하늘에서 내려다 보이는 환경불량 구간이 보이기는 합니다만 중요한 것은 1등으로 들어온 선수가 2시간 몇분대에 들어왔는지, 인간의 한계가 1시간 59분59초에 가능한 것인가 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중앙
공보실 2년차 배움의 시기입니다. 우선은 신문이 중요합니다. 신문에 기사가 나면 방송이 받아갑니다. 방송이 특종으로 도정을 보도하는 경우는 연중 몇번일 것입니다. 그래서 신문에 부정적 보다가 나가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언론은 비판하는 기능으로 존재하고 도정은 홍보하는 입장으로 가다보니 늘 힘이 들었고 지금도 모든 공무원들이 힘들어 합니다. 오늘은 가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중앙지 가판이란 가두판매가 아니라 조간으로 나갈 신문을 전날 저녁에 미리 일부층에 판매하는 신문을 말합니다. 형태는 신문으로 나오고 서울 동아일보사 인근의 길에서 중요 고객에게 팔려 나갑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신문이 최종으로 인쇄되어 나갈 때에는 가판기사가 일부 부드럽게 조정되어 가정에 배달됩니다. 부드럽다는 말은 기사편집 내용과 아침 보도기사의 제목일부나 내용의 수정이 있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가판에서 "경기도 행정 식물인간"이라는 제목이 다음날 아침 "경기도 행정 일부 차질"정도로 완화된다는 말입니다. 이를 위해 밤늦게까지 전화가 오가고 그 시각에 윗선에 보고되기도 합니다. 신문활자 2자를 놓고 공보관과 중앙지 데스크가 2시간 이상을 전화를 걸고 받으며 싸우는(
지방혁신인력개발원에서 1년간의 장기교육을 마치고 경기도의회사무처 공보담당관실에 배치되었습니다. 집행부에서 근무하다가 처음으로 의회사무처에 근무하였지만 공보담당관실은 역시 언론과의 업무이니 집행부 근무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본격적인 업무 책임자, 부서의 장으로서 마음가는대로 일을 하면 그것이 먹혀 들었습니다. 그래서 언론담당때의 경험과 그당시 다하지 못한 행정에서의 액션을 시작했습니다. 우선은 노인학대예방조례, 경기도헌혈조례의 공포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열었습니다. 당시 경기도의회 의장단에서도 적극 참여하여 노인학대 예방조례를 널리 알리기 위한 퍼포먼스로서 효도를 다하지 못하면 경기도의회 의사봉이 징벌을 내린다는 상황극을 연출하였고 신문은 물론 방송에서 크게 다루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경기도청 기자실보다 더 많은 카메라가 의회 로비와 1층 사무실에 집결하였습니다. 불효자를 징벌하는 의사봉은 플라스틱 바구니에 못자리 비닐롤 속에 박힌 지름 10cm 종이대롱을 연결한 후 초콜릿 페인트를 뿌려서 완성했습니다. 공보실 동료들이 스스로 불효자 역을 자청하였고 행사장에 두 손 들고 벌을 서는 불효자를 의장, 부의장, 위원장, 조례를 발의하신 의원과 경기도노인
세상의 아름다움은 더 많은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후 그 자리에 남아있는 흔적의 일부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기가 예쁜 이유는 모태로 생명수, 영양을 받은 탯줄이 있었음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이어가는 아름다운 흔적을 인간 모두가 간직하고 있으므로 인간은 성선설로 선하고 이 세상의 인간사회가 아름다운 것입니다. 아름답지만 그 속에서 발생하는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종교인들이 살신성인, 나를 버리고 중생을 위해 평생을 바치고 흰 연기가 되어 산 언저리에 머무는 것입니다. 해안가에 외롭게 서있는 저 바위가 처음 이 세상에 나왔을때는 수천의 돌기둥이 함께 했었지만 바람과 파도와 세월의 흐름속에 바닥으로 내려와 자갈이 되고 모래가 되고 물고기의 비늘이 되어 바다를 떠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 바위는 매년 찾아오는 가족들이 고래의 지느러미, 또는 작은 물고기의 비늘이 되어 있음을 알기에 바위아래 따스한 작은 동굴속으로 고기들을 품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 하루를 행복하게 살기 위해 100년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계산하는 詩"라는 제목으로 한수 읊어 보겠습니다. 하루를 행복하기 위해 100년을 버리는 인생, 하루를 즐겁기 위해 10년을 모아가는 세상,
경기도청 최초의 아웃소싱 공무원으로 말하자면 잠사계장과 잠업특장과장입니다. 수원시 문화원장, 민선 수원시장, 국회의원을 역임하신 심재덕 전 수원시장님을 경기도의 원조 계약직 공무원이라 할 것입니다. 1960년대 우리나라가 비단을 생산하는 누에고치를 수출하여 외화를 벌어 산업경제의 기반에 도움을 주었는데 이를 적극 추진하기 위해 당시 고등학교 교사인 심재덕 시장을 특채하여 파격적으로 사무관에 임명하고 이후에는 과장에 승진보직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웃소싱의 원조가 되셨습니다. 이후 심 시장님은 특히 세계 화장실협회 초대회장을 하셨으며 수원시는 물론 우리나라 화장실 문화의 선진화에 크게 기여하셧습니다. 이후 경기도청에 외부 전문가가 자리한 직위는 비서실장, 여성국장, 공보관이었으며 1999년 홍보기획팀장으로 발령받았고 J공보관을 만난 다음 날 기존의 업무가 바뀌면서 새로운 홍보기획이라는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그 자리는 언론인과 접촉하는 자리로서 발령소식에 동료들이 술 많이 먹게 될 것이라는 걱정을 해 주었지만 정작 근무 내용은 서면접촉을 할뿐 언론인을 직접 만나지는 않았습니다. 술을 마실 기회도 없습니다. 부서의 역할을 바꾸신 J공보관은 부임 초부
2006년에도 도정홍보를 위한 언론담당의 임무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연초에 근평자료 확인작업을 하기 위해 1매씩 나누어 주었는데, 동료가 하는 말이 전문교육에 2점정도가 남았다는 말입니다. 확인해보니 직무교육은 받아서 점수를 환산하여 근평점수에 올라갔는데 전문교육을 받은 것이 부족하여 점수를 올릴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 방법을 알아보니 수원권 어느 국가교육기관에서 일주일 강의를 들어면 2점이 올라간다는 말입니다. 2점을 받으면 근평석차가 0.2단계이니 10등을 올릴 수 있다는 말도 해 주었습니다. 인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서 사무관이 되어서 인재개발원, 동두천시 생연4동장, 소방본부 상황담당, 홍보기획팀장을 거쳐 언론담당으로 일하면서 이곳 공보실에서 7년 내리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무관 근무 10년이 넘었으니 승진에도 신경을 쓰라는 충고를 해줍니다. 그래서 불쑥 승진에 관신을 갖기로 했습니다. 우선 건설공무원교육원에 가서 엑셀반 교육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반에 사무실에 출근해서 기본적인 상황을 체크하고 8시반에 가서 오후 5시까지 강의를 듣고 사무실에 와서 업무를 했습니다. 교육을 간 것인지 사무실에 있는것인지 애매하였습니다.
2008년과 2009년 상반기까지 1년6개월동안 의회사무처 공보담당관실에서 일했습니다. 정말로 부서장이 마음만 먹으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노인학대 예방조례, 헌혈조례 이벤트, 퍼포먼스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였습니다. 특히 노인학대예방조례를 홍보하기 위해 ‘별이 다섯 개’컨셉으로 나서서 커다른 의사봉을 만들어 본회의장에서 이벤트를 펼쳤습니다. 의회사무처에 근무하면서 공직+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중차대한 상황을 만나게 되었고 부족하지만 슬기롭게 대처하였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는 한마디로 상황악화를 막고 모두가 공감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에 적은 글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미스 매칭 독도 방문] 2008년 8월에 경기도의회 부의장, 당대표, 상임위원장, 재선이상 의원 40여명을 모시고 공무원 8명이 묵호항을 거쳐 울릉도와 독도를 방문하였습니다. 일본의 중등교과서 해설서에 독도를 일본 땅이라 주장한 것을 규탄하는 '독도수호 결의대회'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2016년에도 일본 교과서 70%가 같은 주장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도일정 방문에 있어서 이른바 '미스매칭'이 발생하였습니다. 도의회
지방행정연수원(혁신인력개발원)에 다시 들어왔습니다. 동두천시청에 7개월 근무한 후에 장기교육 대상자를 선발하는데 적임자로 평가되어 1년간 교육파견되어 연수생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보람찬 기간이었습니다. 일단은 신세계에 들어선 것이고 그 내용이 참으로 소중한 교육과정이었습니다. 사실은 입교전에 열심히 배워보자면서 등산과 헬스등 운동을 하였습니다. 체중조절이 되고 피부관리가 잘 되었습니다. 늘어나는 체중을 콘트롤하기 위해 식사량을 줄였습니다. 2007년 고급리더반 1년 연수때 금연을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당시 금연은 어려웠지만 단칼에 해냈습니다. 그당시에는 흡연자가 많아서 더더욱 힘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기교육은 10개월간인데 참으로 다양한 교과과정이 편성됩니다. 그래서 평생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현장에 가서 체험하고 느끼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영화, 연극, 건강체험, 해외여행, 지방여행 등 다양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교육기간중에 지방 나들이를 많이 하였습니다. 그 결과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에 인물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경기도 출신 인물이 없을까요? 경기도는 왕의 땅이고 충청도부터는 경상도 전라도는 백성이 터전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