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상반기에는 체육과장을 하였고 하반기에는 대외협력담당관으로 일했습니다. 사실 도청 과장은 6개월이나 1년이 임기아닌 근무기간입니다. 자주 바뀌어도 업무추진은 사무관들이 자리잡고 있으므로 과장은 부서의 책임자로서 팀원들이 일하는 분위기를 잡아주는 역할만으로도 그 기능을 다한다고 생각합니다. 과장이 챙기면 복잡해 집니다. 국장님이 업무에 신경을 많이 쓰시니 과장이라도 사무관, 차석편이 되어야 합니다. 과장이 신경을 써도 팀장, 계장들은 힘들어 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계장과 저녁에 술한잔을 하면서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비판도 하고 최근에 진행된 업무스트레스를 풀어내기도 합니다. 술은 그 알콜성분이 머리속의 잡다한 생각들을 집어내어 녹여버립니다. 나쁜 것만 잡아내는 백혈구 기능도 하고 좋은 것을 키워내는 적혈고 역할도 합니다. 백혈구와 적혈구에 대한 의학적 상식은 전혀 없으니 참고하여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체육과장을 하면서 2010년 2월에 캐나다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기간에 숏트랙 경기와 김연아 선수 금메달 경기를 보았습니다. 입장권을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올림픽 경기를 캐나다에 가서 직접 본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경기장 먼곳에
2011년은 공직에 있어 격동의 시기입니다. 연초에 전격적으로 언론담당관이 됩니다. 공직에서 공보부서 11년6개월을 채워가는 6개월을 근무하였습니다. 당시에 신문사 유가부수를 측정하는 ABC제도를 바탕으로 상위랭크 언론사만 같이 가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는데 절대 안된다고 반대했고 그 바탕으로 지금의 경기도청 기자실이 운영되는 줄 압니다. 어찌하는 것이 정답인가는 알수 없고 알아도 무의미한 역사속의 한 페이지가 되겠습니다만 저의 다짐은 모든 언론이 우리의, 행정의 벗이고 친구이고 후원자이며 응원단이라는 생각입니다. 즉 언론은 多多益善입니다. 언론은 홍익인간의 정신을 구현합니다. 공무원이나 공기관 근무자들이 언론을 어려워하거나 불편해 하는 이유는 단하나 자신의 업무를 비판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공무원, 공기관 임직원, 대기업 홍보실은 늘 독점적 위치에 있다는 점을 대오각성(大悟覺醒)해야 합니다. 我執(자기중심의 좁은 생각에 집착하여 자신만을 내세워 버팀)과 獨善(자기 혼자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의 자세가 아닐런지 근신하고 염려해야 합니다. 좋은 표현으로 경기도가 행하면 표준이 된다고 합니다. 정말로 그런 사례가 많습니다만 당시에는 칭찬을 받았지만 훗날
지방행정연수원 교육을 마치고 발령을 기다리는데 아마도 평택시에 소재한 황해경제자유구역청의 본부장으로 갈듯 합니다. 황해경제자유구역청장은 경기와 충남이 교대로 1급 공무원을 보임하다가 몇년전에 충남도 쪽 사업이 종료되면서 경기도 중심으로 구성되어 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파견 근무하시는 간부가 복귀하면서 후임으로 내정되었다는 복도통신 연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발령 10여분 전에 다시 수도권교통본부로 변경되었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그리하여 발령장을 받고 내일 출근을 준비하는데 사무실이 서울 남대문 인근에 소재한 고층 건물 중간층에 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서둘러 전철을 타고 명동에 내려 우체국 앞으로 돌고 돌아 남산 기슭에 자리한 사무실에 도착하였습니다. 수도권교통본부는 60명 정도 근무하는데 모두가 경기, 서울, 인천에서 파견나온 공무원들입니다. 발령장에 파견근무 명령하는 내용만 들어있어서 본부장으로 발령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사무실에 가보니 행정실장은 인천에서, 기술실장은 서울에서 파견나온 공무원이 이미 차지하고 있습니다. 빈방 하나가 교통본부장이 근무하는 곳이므로 들어가 짐을 풀고 업무파악을 시작했습니다. 최근에 수도권교통
수도권교통본부 1년 근무를 마치고 오산시청으로 전보되었습니다. 오산시는 과거 화성군 오산읍이었고 군청이 오산읍에 있을때 5급을류(9급) 공직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추억이 있는 오산시청에 근무하게 되어 고향에 돌아온 심정이었고 실제로 고향마을이었습니다. 오산시청에 근무하면서 소소한 개선, 개혁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산시는 청렴도시입니다. 오산시청 공무원과 시민들 덕분으로 청렴을 주제로 하는 강연도 다녔습니다. 우선 발령 초부터 동료 공무원과의 소통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써보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부서방문입니다. 출근길에 또는 근무시간에 각 부서 사무실에 들어가 인사를 하고 녹차를 타서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처음에는 불편해 하였지만 시간이 가면서 어느 부서 방문한 스토리가 소문이 나면서 우리 과는 언제 오나 기대하는 눈치입니다. 다음으로 저녁식사시간에 자리배치 ‘사다리 타기’를 통해서 마음을 열었습니다. 일단 미리 준비해간 사다리타기 용지에 한 두 줄 더 그어서 공정성에 대한 시비를 타단하고 일단 정해진 사다리를 타면서 “다라라라라라~”로 소통의 길을 열었습니다. 사다리 결과가 어찌 나오든 부시장은 중앙에 안도록 합니다. 구석에 자리 했어도
지난해 말에 교육국으로 전출된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후임자 조정과정에서 잘 맞지 아니하므로 오산시청에서 계속 근무를 이어갔습니다. 2014년 1월 3일에 근무를 시작하였고 2015년 1월 5일에 경기도 인사가 있어 다수의 공무원들이 자리를 이동하였습니다만 오늘도 오산시청에 신바람나게 출근하여 근무하고 퇴근하여 가족과 대화하고 새벽에 일어나 글을 써봅니다. 오산시에서의 2년차를 시작합니다. 운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시에서 오랜기간 근무할 운명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사 막바지에 변수가 발생하고 그 내용을 조율하면서 이동 대상에서 머무는 자리로 결정이 난 것입니다. 누구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바꾼다고 합니다만 살아보면 내가 바꾸는 운명보다 다른 분이 정해주시는 운명이 더 많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번 신호를 지나고 안 지나고는 버스 기사님의 스타일입니다. 배차시간이 촉박하면 신호등을 지나는 것이고 시간이 여유로운 경우에는 일부러 신호앞에서 멈추어 조정시간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운전자가 빨리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지만 그 속에는 앞차와 뒷 차와의 거리, 시간을 보면서 시간을 관리하는 분이 있었던 것입니다. 노선버스는 시간을 지키는 이에 열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이어서 2002년 월드컵 개최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전세계에 확실하게 전달한 의미있는 스포츠 행사이며 평창 동계올림픽, 대구육상경기 개최를 보태서 스포츠 세계대회 글랜드슬램을 달성한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개최한 이후 2002년 축구 월드컵,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그리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개최함으로써 세계 4대 대회를 개최하는 흔하지 않은 스포츠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이분야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였던 것입니다. 1958년생으로 나이 30에 맞이한 88올림픽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88올림픽 이후 우리는 세계화와 함께 민주화를 통한 혁신적인 변혁을 겪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의 4강 진출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되어 사회 각 분야에서 변화를 넘어선 혁신이 번지기 시작하였고 2018년 현재의 예상못한 엄청난 변화와 혁신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크고 작은 갈들의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최근 뉴스에서 접하는 정치적 변화, 경제적 혁신과 어려움을 보면서 1988년 전후에는 생각에도 들지 않았던 일들이 현실에 보여지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습니다. 경제개발과 국가발전이라는 스피드 정치,
어려서 회갑연에 가면 큰 상에 음식을 한가득 차려 놓고 아들딸 며느리 사위가 술잔을 올리고 절을 합니다. 주인공 노 부부가 올해 회갑, 환갑을 맞이하신 것입니다. 주름진 할아버지와 쪽을 지신 흰머리 할머니가 쪼그리고 앉아서 측은한 표정으로 술잔을 받아 한모금 마시고 다시 내려놓고 다시 두모금 후 술잔을 내려 놓으시기를 반복합니다. 사위는 이미 취해서 한복바지가 반쯤 흘러내리고 아들은 반취에 더이상 취하면 안된다는 사명감 가득한 손짓으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손자손녀들은 좋아라 하고 뛰어다니고 딸은 울며 웃으며 술잔을 드리고 며느리는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외국 대통령 그냥 지나가는 행사에 강제 동원된 중학생 태극기 흔들듯이 이리저리 밀려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네에서 술 한잔 하는 40대 아저씨는 괜시리 소리치며 술이 없네, 안주가 부족하네 하면서 분위기를 돋우고 있습니다. 이런 잔치가 좀 사는 집에서는 3일을 이어갑니다. 첫날은 일가친척과 동네사람, 둘째날은 근동 원동의 아는 선비들, 마지막 날에는 동네 사람 중 수고하신 분들을 초청합니다. 회갑잔치가 시작되면 아이들은 아예 빈 도시락을 들고 와서 아침상을 차려먹고 도시락에 밥과 반찬을 담아들고 학교
역사는 기록을 통해 이어진다는 생각을 합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후대에 전해지지 않습니다. 기록이 없으니 전설이라고 합니다. 구전으로 전해온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수천의 입으로 전해진 역사보다 그 근거가 되는 비석, 금석문, 묘지, 성곽이 얼마나 확실한 역사입니까.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참으로 좋은 생각을 머리가득 담았다 해도 기록해 두지 않으면 상상과 생각은 잠시 머물뿐 남아있지 않으니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사그라지는 연기같은 것입니다. 기록하지 않은 생각은 혼자만의 상상의 그림이었던 것입니다. 남아있지 않으니 후대의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과학자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두었을 것이고 그중에 아주 일부가 현실에 나타나고 인류를 위해 쓰이고 있습니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을 보존하고 보호하는 일에도 인간의 생각이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생각을 즉시 바로 기록으로 남기고 전에 있었던 일들은 자료로 관리해서 후대에 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행위중 중요한 일이 책을 쓰는 일입니다. 과거에는 종이가 귀해서 한두권에 적어서 자자손손 전했지만 요즘에는 인쇄술이 발달하고 종이의 질이 좋아
매일매일 내일의 희망을 보듯이 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쓰기가 어렵겠다는 걱정을 하였지만 막상 3년후의 미래를 생각해보니 오히려 더 많은 가능성이 다양한 경우의 수처럼 나타나기에 어느정도 미래이야기로 이 코너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즉, 현재의 상황을 벗어나 더 넓게 미래의 여러가지 가능성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2021년에 복권 1등에 당첨되어서 돈을 많이 받았을 경우를 가정해 보면 무한한 스토리의 전개가 가능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혁신을 말할때 현재 주어진 여건을 바탕으로 변화를 도모하기 보다는 더 획기적인 가능성을 기반으로 해서 출발하자는 것입니다. 지금 어려운 여건이 아니라 큰 변화를 겪은 이후의 나의 삶의 모습을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물론 롯또 복권에 당첨되기 전에는 평범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복권금 수령 이후에 가정이 망가지고 본인도 사업을 하다 실패하거나 사기를 당하고 오히려 복권 당첨 이전의 상황보다 더 험악한 생활로 매몰되었더라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래서 차라리 복권에 맞지 않았다면, 복권을 사지 않았으면 참으로 더 좋았을 것이라는 가정을
요즘 저는 삼천갑자 동방삭 만큼이나 긴 세월을 살아갑니다. 아침에 1년을 살고 저녁에 12달을 보냅니다. 제가 시간과 세월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정말로 이 코너에서는 하루에 1~2년이 지나갑니다. 오늘은 108배 2,024번째이니 서기 2024을 살고 있습니다. 새벽 108배는 기본이고 화운사나 봉녕사, 법륜사에 가면 대웅전이나 삼성각에서 절을 하기에 하루에 2년을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20년정도 살면 삼천갑자 동방삭의 후예라도 될 것 같습니다. 동방삭은 3년 고개에서 60,000번을 굴러서 18만년을 살았습니다. 저승사자가 수차례 동방삭을 데릴러 왔지만 찾아내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저승사자중 고참 선수가 특별명령을 받고 내려왔습니다. 흰 수염의 노인으로 변장한 저승사자는 남양주 탄천에서 검은 숯을 숯돌에 갈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그 연유를 물으니 흑탄을 물에 씻고 갈아내어 백탄, 흰 숯으로 만들고 있다는 답입니다. 주민들은 정신이상자일 것이라고 생각 했답니다. 이 소문이 널리 퍼져나갔고 동방삭의 귀에도 들어왔습니다. 이에 궁금증을 참지 못한 동방삭이 탄천에 찾아옵니다. 나이가 180,000세로 아는 것도 많고 자존심이 높아지신 동박삭은 노인에게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