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집필중
인생은 수많은 선택과 결정의 과정이라는 말을 합니다. 인생이 걸어온 길은 그 선택의 결과로 사거리에서 직진하기도 하고 삼거리에서 우회전 또는 좌회전하고 고속도로에 진입하고 다시 넓은 길을 나와서 좁은 길, 비포장길, 자갈길을 서행하다가 또다시 넓은 길을 만나서 창문을 열고 시원하게 질주하기도 합니다. 인생을 돌이켜보면 신명나게 달린 구간도 있고 덜덜거리며 불편한 먼짓길을 불편하게 운행한 시절도 있습니다. 대구에서 젊은시절을 보낸 지인이 최근에 고향을 다녀왔는데 40년전보다 도로가 넓어지고 구간도 늘어나서 첨단의 네비게이션을 이용하여 목적지를 가기위해 운전을 하니 이처럼 다양한 경로가 생겨났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인생도 참으로 많은 선택과 결정을 해야하고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인가 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차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하다보면 한두번 실수로 고속도로 출구를 지나치거나 조금 일찍 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갑자기 남은 거리가 80km에서 120으로 늘어나는 순간에 화들짝 놀라게 됩니다만 잠시후에는 스스로 마음을 평온하게 잡아보기도 합니다. 그 이유와 핑계는 신의 뜻이라 가정합니다. 아마도 지금 이 순간에 가는 길
대통령 시절에는 조간이나 석간신문에 국무총리, 감사원장, 국무위원, 장관의 사진이 말그대로 대문짝, 신문짝만하게 나면 그것이 개각이었습니다. 조각수준의 개각도 여러번 보았습니다. 국무위원 21명중 10명정도를 바꾸면 '개각수준'이라 했던 것입니다. 특히 국무총리가 바뀌면 신문에 네모사진이 등장합니다. 부총리, 감사원장, 대통령비서실장 사진도 네모입니다. 장관급 국무위원 사진은 동그라미였습니다. 그러니까 네모사진과 동그라미 사진이 신문에 올라오면 조각급 개각이고 동그리마 4명이 나타나면 부분개각입니다. 개각은 장기근속자를 교체하는 경우가 있고 국정의 특정분야에서 미진한 부분을 일신우일신한다는 분위기쇄신용 개각도 있었습니다. 국민과 독자들은 새로운 인물이 나타난데 관심을 가졌고 2년동안 장관으로 일하고 떠난 이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안 일인데 일부 장관은 퇴직후에 정부 공공기관에서 장관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는 CEO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장관자리에서 내려온 것을 크게 아쉬워했을 것입니다. 그정도 위치에서 일하는 분이 한달 근무하고 15일, 20일, 25일에 받는 급여통장을 찍어보고 즐거워하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그리 추정합니다. 반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이든 타산지석이든 어렵다는 한자에 의지해볼까 합니다. 오래도 아닌 조선시대에 양반으로 신분을 가르고 일부 기득권층은 한문을 익히고 다른 신분의 사람들에게는 글을 가르치지 않음으로서 권력을 이용하여 지배계층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제사의 축문이나 제문을 어렵다는 한자로 써놓고는 저들끼리 읽으면서 하인들은 모르지 했다고 합니다. 어느 집안의 며느리들이 영어로만 이야기를 하므로 늦게 합류한 동서가 열심히 영어공부를 해서 히어링은 되는 정도에 이르러 명절모임에 갔는데 이번에는 그 동서들이 모두 프랑스어로 밀담을 나누더라는 조크도 있습니다. 그래서인가 프랑스어 건배사로는 '마셔불어'라는 조크조차 있는가 봅니다. 그러자 바로옆 동료가 독일어 건배사는 '마시랑께'라고 하자 다른 친구가 러시아 건배는 '먀서브러스키'라고 받았다는 농담도 들어본바 입니다. 혹시 요즘 정치권이 그런 건배사를 하는 모습일까 상상해 봅니다. 우리의 정치는 국민 모두를 정치학과에 입학시켰고 모든 방송이 정치강의를 하는 듯 보입니다. 종편은 정치이야기로 프로그램을 채우고 이제는 김밥할머니 평생재산을 장학금으로 내놓았다는 뉴스조차 만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헌혈 100회를 달성
1977년에 공직에 들어와 면사무소에 출근을 하면 가장 먼저 해야하는 일이 출근부 싸인입니다. 자신의 이름 석자를 영어 필기체처럼 연결해서 서명을 하기도 하고 당시 총무계장님은 한자 李(이)를 쓰고 동그라미를 그렸는데 40년 가까이 써오신 자신의 싸인이어서 그 필체가 일정, 균일하여 마치 팽이 여러 개가 종이위에서 돌고있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1981년에 경기도청 사업소에 근무할 때에도 어김없이 출근하면 싸인을 했습니다. A4용지를 가로로 길게 잘라 만든 크기의 두꺼운 캔트지에 깔끔하게 인쇄된 출근부는 1년에 4번 분기별로 만나는 아침 인사 妖精(요정)과도 같았습니다. 공무로 2박3일 출장을 가면 2일과 3일차 난에는 ‘출장’이라는 고무인을 찍었습니다. 아침마다 복무담당 공무원은 각 부서의 출근카드가 담긴 나무상자를 아침 7시반경에 복도 창가에 비치한 후 지키고 있다가 정각 9시가 되면 즉각 회수해 사무실로 가져갔습니다. 출근부를 회수할 시각에 헐레벌떡 도착한 직원과의 밀당도 벌어집니다. 9시전에 왔으니 싸인을 하겠다는 입장과 늦었으니 지각이라는 주장이 격렬합니다. 결국 그날의 출근부에는 ‘지참’이라는 朱印(주인)이 찍히고 지각한 사유를 써내야 했습
민원을 상담하다보면 공무원의 기본적 자세의 중요성을 안타깝게 논의하곤 합니다. 말한마디로 천냥의 빚을 갚은 사례가 있을까요. 아마도 있을 것입니다. 일부가 무너져 피해를 입은 편의점 앞에 눈치우기 장비인 굴착기를 세우고 들어온 기사님이 라면을 주문하였습니다. 폭설로 퇴근하지 못하고 있던 종업원이 한쪽을 정리하여 라면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고 식사를 마친 굴착기 기사님이 편의점 앞의 눈을 말끔히 치웠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말한마디로 10만원 상당의 눈치우기 수혜를 입은 것입니다. 아마도 시청과 계약을 한 업체에서 나온 기사님의 눈치우는 장비일 것입니다. 이분들의 임무는 넓은도로, 사거리, 골목길 입구 등 폭설로 인한 교통소통 취약지의 눈을 우선 치우도록 메뉴얼이나 작업명령를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편의점 직원의 친절한 배려에 감동하여 편의점 앞의 눈을 치웠다는 것이 기사가 된 것입니다. 직원도 크게 감동하여 언론에 제보하였던 것이지요. 요즘에는 민원 온라인이 활성화되어서 주민등록등초본, 인감, 호적, 졸업증명서 등을 주소지가 아닌 다른 관공서에서 발급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만 그래도 토지, 건축, 위생, 환경 등 여러 분야의 업무는 주소지나 토지건
화성특례시 시민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2025년은 쌀팔년도 1955년생이 어려운 시기에 태어나 고희를 맞는 해입니다. 인생칠십고래희.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고희란 쉽지 않은 드믄 나이라 했습니다. 당나라의 시성 두보의 곡강시에 나옵니다. 조정에서 돌아와 하루하루 춘의를 잡혀[朝回日日典春衣], 매일 강두에서 취하여 돌아오네[每日江頭盡醉歸]. 빚이야 가는 곳마다 흔히 있지만[酒債尋常行處有], 인생 칠십은 고래로 드물도다[人生七十古來稀]. 하지만 2025년 오늘에 70세는 청년입니다. 그래서 쌍팔년도 어르신들 모두가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쌍팔년도는 1988년도 있지만 단기 4288년이랍니다. 서기로는 1955년입니다. 2333+2025를 더하면 올해 을사년은 단기는 4358년입니다. 그러니까 6.25전쟁이 휴전을 하고 2~3년차 혼돈기를 말합니다. 그래서인가 1955년생이 많습니다. 전후에 출생하고 호적을 늦게 만든 분이 많았서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1950년대 국민학생들은 3~4년은 맞장구를 쳤습니다. 삼촌과 조카가 동창입니다. 친구간에 나이를 따지는 것은 별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복잡하고 어렵게 살았던 분들의 시대이니 최근까지도 지난날의 이야기를 꺼내면
공직에서는 8급이 서무나 총무를 담당하고 7급이 예산회계를 보았습니다만 퇴직후 사회로 나와보니 회장과 총무도 회원과 동격이고 돌아가면서 담당하게 됩니다. 성의 가나다순으로 하니 강씨는 제일 먼저이고 홍씨는 맨나중입니다. 우리는 왜 언제부터 가나다순일까요.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이후에 가나다 순번제가 형성되었을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전에는 갑을병인듯 보입니다. 9인회가 있습니다. 공무원, 언론인, 변호사, 방송인 등 다양한 멤버들이 매달 한번 모여서 순대국, 해장국을 먹으며 세상을 이야기하고 삶을 토론합니다. 다양한 멤버구성인지라 정치이야기는 금기시합니다. A당도 있고 B당소속의 인물도 있으며 정치적인 활동을 했거나 진행형인 분도 함께하므로 정치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대화가 잠시 멈춘 후 곧바로 다른 소재로 넘어가곤 합니다. 대화라는 것이 어느 모임이나 단체에서도 그러하겠지만은 진행자가 따로 없습니다. 방송중 유명했던 100분 토론에도 사회자가 있고 종편방송을 보면 정치이야기를 할때 진행자가 있으며 정치이야기를 강력하게 진행하는 어느 방송의 경우에는 진행자의 강력한 공격형 진행으로 난상토론이 벌어지고 그래서 시청율이 올라가는 듯 보입니다. 이 모임도 역시 난상토론
1970년대 동네 이장을 뽑는 토론에서 갑 후보를 응원하는 찬조연설자는 을후보의 장점을 함께 설파하면서 그중에 이런 면에서 갑 후보가 우위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을 후보를 추천, 천거한 인사도 갑후보의 마을을 위한 그간의 노력은 인정하지만 앞으로는 을 후보가 좀더 발전적으로 우리 부락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 덕담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1988년 전후해서 젊은이들의 표현부터 어색한 말이 첨가되기 시작하더니 좀더 시간이 흐르니 이제는 단언적인 표현들이 늘어났습니다. 우선 초창기에는 "동쪽하늘에서 아침에 해가 뜰 것 같다요."라며 확정적 사실에 대해서도 애매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아름다운 것 같아요. 제가 고생을 한 것 같아요. 이런 표현이 많습니다.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데도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는 듯 들립니다. 나중에 책임을 면하기 위한 틈새를 남기기 위한 표현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안돼요?'라는 표현이 생겨났습니다. 식당에서 '공기밥 하나 주면 안돼요?'라고 말하는데 이는 '공기밥 한그릇 더 주세요'가 맞습니다. 물을 달라하는데 말른 물을 주면 안돼요입니다. 마트에 라면을 사러 와서는 '라면 안팔아요'라고 질문을 합니다. 라면이 어느 코너에
맛집이라고도 하고 미식가라는 말도 듣습니다. 조크로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맛있는 식당을 잘 알면 아저씨이고 멋진 식당을 꿰하고 있으면 오빠라는 칭찬을 듣는답니다. 아저씨들은 맛집으로 승부를 걸고 오빠들은 멋집에 빠집니다. 혁대라 말하면 아저씨이고 벨트라 하면 오빠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맛집과 멋집만이 식당과 메뉴의 선택기준으로 필요충분조건인가에는 이견이 있습니다. 마이카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거의 모든 가정에 차가 있어서 가족을 태우고 외식을 하는 경우 식당을 정하는 체크리스트에 주차의 편리함이 추가되었습니다. 출중한 맛집이라도 식당과 함께 주차장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가까운 거리에 주차가 어려운 선택에서 밀립니다. 식당에 주차하고 곧바로 식탁으로 이동하고 식사후에는 바로 차를 타고 귀가할 수 있는 주차정 여건이 좋아야 만객운집입니다. 경기도 광주시의 남한산성 맛집에 갔습니다. 폭설이 내려서 길이 많이 불편했습니다. 검색한 맛집앞에 아내를 내려주고 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식당은 달랑 3면의 주차장이 있을뿐인데 이미 다른 차량이 어렵고 버겁게 주차한 상황입니다. 그래도 인근에 이른바 공영주차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폐쇄되었습니다. 폭설을 치우지 못하고 막
짧은 결혼식 주례사 이제 3번째 주례로 나서는 날 아침입니다. 두달전에 주례 요청을 받고 그리하겠다 약속을 하면서 꽤 먼 날의 일정이라 생각해 두었는데 그 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주례는 단지 이정도의 마음으로 2개월을 보냈습니다만 자녀의 부모님, 당사자, 주변의 일가친척, 지인들은 마음씀이 다양했을 것입니다. 우선 당사자 신랑과 신부의 바쁜 준비와 골똘한 생각이 얼마나 많은 신경씀이 축적되었을까 생각합니다. 서로가 마음이 통하여 사귀고 결혼에 이른 사이인데 정작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서로 다른 생각에 갈등과 충돌이 일어난다는 말을 주변에서 더러가금 듣는 바가 있으므로 오늘의 행복한 신부와 신랑에게는 그런 작은 파장이 없었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입니다. 다음으로 딸을 시집보내는 엄마의 마음씀이 클 것이고 자당엄친이라지만 딸 출가는 준비하는 아버지의 배려와 사려깊음도 아주 크다 할 것입니다. 아버지는 돈걱정이 가장 큰가 모르겠습니다만 이보다도 결혼해서 행복하게 낳아 키운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마음도 우리가 살펴 드려야 할 부의 정이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들은 경험적으로는 아들을 결혼시키는 아버지 어머니는 상대적으로 부담스러움이 적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요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