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집필중
1974년에 수성고등학교에 입학하였으니 2024년에는 대략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20회 동문회 총무와 회장, 그리고 간부들이 봄부터 가을소풍을 준비하더니 수차례 문자와 전화를 해서는 반드시 참석하자는 격려와 독려를 받은 바이므로 동창회 밴드에 참석신청을 하고 당일 아침에 서둘러 수원시청 정문으로 향했습니다. 새로 이사온 바이니 걸어서 수원시청까지 가본 경험이 없는 터라 서둘러 달려가니 한시간이 남습니다. 그래서 88올림픽공원을 돌고 편의점에서 우유하나를 사서 마시고 다시 시청 건물을 구경하고 아침 모임시각 07:30분에 임박하여 버스정류장에 다가서니 낮익은 동창들 7명이 서있었고 반갑게 인사를 건넵니다. 10대 중반에 만난 친구이니 평생가는 친구이고 자랑스러운 수성고등학교 20회 동창입니다. 우주선을 발사하는 일도 아닌데 우리의 버스는 경기76아3489번을 달고 시청앞 정문에 다다르고 우리는 마지막번으로 버스에 올라 반가운 친구들과 악수를 했습니다. 차량번호를 적어대는 이유는 이분 관광버스 기사님은 지난 7년여의 행사에 늘 우리 20회 동문을 태우고 둥기둥둥 신명나게 안내하는 기사님이랍니다. 성격도 둥글해서 늘 긍정의 마인드로 친구들을 태워주었답니다. 세
시제란 음력 2월, 5월, 8월, 11월에 사당에서 지내는 제사와 음력 10월에 5대 이상의 조상 산소에서 지내는 제사를 의미한다고 사전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년시절부터 할아버지, 아버지를 따라가서 산소에 벌초를 하고 3일후쯤에 조금 마른 풀을 갈퀴로 긁어모아서 집으로 가져와 아궁이에 불태운 기억이 있습니다. 시제, 시향날에는 과일과 떡, 적과 전을 준비하여 선산으로 올라가서 조상님께 올리고 절하고 축문을 읽으시는 80세 전후의 어르신의 모습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한때는 직계 5대까지의 조상님 벌초하는 일이 큰 부담이었습니다. 시골 읍내에서 버스를 내려 비포장길 5KM를 터벅터벅 걸어가서 산 중턱의 여러곳을 오르내려며 산소의 풀을 깍는 일이 중노동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고조, 증조할아버지 산소를 우선 벌초하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산소에서 작업을 하도록 진행해 주셨습니다. 어떤해에는 도시락을 가져갔지만 차라리 일찍 마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조상님을 모시는 벌초나 시제가 축제의 분위기가 아니라 부담스러운 업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해에 5대 문중이 의논
제복, 유니폼을 입은 군인이나 경찰을 만난 국민들은 이분들의 얼굴을 보기전에 계급장에 먼저 눈길이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유니폼은 계급으로 위계를 정하고 스포츠 유니폼은 동질감을 강화합니다. 조기축구 경기에서도 노랑조끼와 빨강조끼를 입도록 해서 상대방과 우리편을 구분하도록 합니다. 패스의 상대방을 빨리 찾아내도록 돕기위해 색상이 다른 조끼를 입도록 하는 것입니다. 공직사회 행정파트에서도 경찰관이나 소방관처름 어깨에 계급장을 달고 근무하면 어떠하겠는가 하는 농담을 한적이 있습니다. 공직자중 제복을 입는 분야에서는 내부의 위계가 있고 대외적으로 국민을 상대하면서도 어느정도 제복이 주는 권위로 압도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행정에 익숙한 주민들이 어느날 사무관 동장님이 무궁화 3개를 어깨에 달고 들이닥치면 말문이 턱하고 막힐 것입니다. 그러니 현행대로 군인은 별, 무궁화, 하사관, 병장의 계급장을 달도록 하고 소방관과 경찰관 역시 무궁화꽃 뭉치 8개든 5개, 4개, 3개를 달고 일하도록 해야합니다. 주무관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통합된 계급장을 달고 무궁화꽃을 피울 날을 기대하여야 할 것입니다. 소방이나 경찰의 경우 굳이 7급이하를 구분하는 것이 불편해서
1977년에 공직에 들어와 비봉면사무소에 근무했습니다. 당시에는 지방행정의 중심에는 새마을운동이 있었습니다. 면사무소 총무계의 고참 7급직원이 새마을운동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당시에 모친께서 동네 부녀회장을 하셨는데 면 새마을담당 선배님의 추천으로 전국 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하셨습니다. 1박2일 행사이고 당시 박정희대통령이 참석하여 축사를 하던 시기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당시 축사를 보니 격세지감이 있습니다. 1978년 행사의 축사내용중에는 '지난 8년동안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1천만건 이상의 새마을사업을 위하여 정부는 무려 9천700억원 이상을 투입했으며, 3천600만 우리국민 모두가 적어도 스물네번이상 사업장에 나가서 일한 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국에 투자한 새마을사업 1년 예산이 1조원이 되지 않는데 무려 큰 예산을 투입하였다고 연설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연설문중 비교가 될법한 말씀은 '호당 농가소득은 80년대초의 목표 140만원을 이미 작년에 넘어섰고, 금년에는 178만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는 대목입니다. 기억하기로 1977년 9급 공원 월급이 5만원이었으니 연봉은 60만원. 4인가족이 140만원이니 대략 계산이 맞아가는 상황입니다.
1985년에 8급 4년차, 공무원 8년차로 근무했습니다. 왕성하게 먹고 마시던 27세의 청년시절이니 설탕커피, 요즘의 믹스커피를 많이 마셨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면 구내식당에 가서 100원짜리 커피를 주문했습니다. 식당 테이블에는 커피를 위한 설탕과 베트남산 야자수열매 가루로 만든 프림이 상비약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구수한 커피맛에 익숙해지고 당시 평범한 말로 인이 박혀서 하루에도 여러잔의 커피를 걱정없이 부담없이 마셨습니다. 세월이 흘러 고희를 향해 달리는 나이에 이르고보니 음식에 攝生(섭생)을 합니다. 커피는 여전히 마시고 싶은데 '건강걱정증'으로 인해 마셔야하나 그만 먹어야 하는가에 대한 기로에 찬 고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래도 수십년간 익숙해진 커피를 한잔 더 마시고 싶은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있고, 그래도 오늘의 '커피총량'을 넘기는 경우가 많은 듯 생각이 듭니다. 500년 조선사에서 초기의 이성계, 이방원, 세종대왕의 식생활은 이후 영조, 정조대왕으로 이어지면서 큰 변화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조선시대 초기와 후기의 공통점을 들어보면 전기가 없었고 그래서 냉장고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커피도 조선에 들어오기 전입니다. 그렇게 긴 세
유명 게그우먼의 조크중에 본인은 “체끼라는 것을 모른다”는 대목에 눈길이 간다. 평소 맛있는 음식을 한상 차리고 동료들과 먹기를 좋아하는 모습을 방송에서 자주 보았던 바이다. 음식을 많이 먹어도 소화가 잘 된다는 의미와 함께 음식에 호불호가 없으며 모든 음식을 좋아한다는 의미로 들리기도 한다. 살면서 과식하여 체한 느낌을 받지 않고 산다면 이는 행복한 일 중의 하나로 꼽을 만하겠다. 그래서 스스로 반성하며 생각해보니 살면서 '봉사의 행복'을 얼마나 느끼는가 반문하고 반성하게 되었다. 솔직히 남을 위한 봉사활동을 자발적으로 한 일은 없어서 하는 말이다. 좀 더 젊은 시절에 남을 위한 봉사에 나섰으면 얼마나 풍요로운 삶이 되었을까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 게그우먼이 체끼를 느끼지 못하듯이 봉사의 행복을 알지 못하는 삶을 살고있음을 자인하는 바이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공직생활중 1년 장기교육에서 몇번의 봉사활동에 강제로 참여한 것이 고마운 일이라 생각된다. 연수프로그램으로 최일도 목사님이 주관하시는 '밥퍼' 현장에 투입되어 전문가 선생님들과 채소를 다듬고 배식하는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점심을 위해 9시부터 채소를 손질하고 양파를 썰고 국을 끓이는데 힘을 보탰다.
기제사는 집에서 부모, 조부모, 고조, 증조할아버지 할머니 조상님께 올리는 제례이고 시제는 가을에 날을 정해 5대 이상의 윗대의 조상님 묘역에서 올리는 제사이다. 제사절차는 전문가라야 이해하고 절차대로 진행할 수 있다. 다른 절차보다 제사상을 차리는데 신경을 쓰게된다. 동네마을의 여러성씨의 대표들이 모여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제사에서는 문중간, 집안간에 제례절차로 논쟁을 벌이다가 정작 가장 중요한 신주는 개가 물어가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제사는 절차와 의식에 엄중함이 있다는 말로 읽힌다. 신기하게도 포털사이트에 화성시 매송면 야목리 당제사에 대한 설명이 상세하게 나온다. 이 제사는 새마을운동때 미신을 타파한다고 해서 없어졌으나, 그 후 마을에서 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쌍초상까지 나는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 일때문에 무당에게 문의를 했고, 당제사를 안지냈기 때문이라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 이후 당제사를 다시 지내는 것이 좋겠다는 동네사람들의 여론으로 1985년부터 다시 부활시키게 되었고 그 후부터는 동네가 편안하고 풍파도 없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기제사, 시제, 당제사 등 모든 제례에 올리는 과일을 살펴본다.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
언제부턴가 영화배우, 연극의 희극인들의 통칭이 '탤런트'로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칭찬할때 그사람에게는 '탤런트가 있다'고 말 합니다. 탤런트(talent)란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연기자를 말하고 top talent는 대중으로부터 연기력이나 스타성을 인정받아 그 인기가 정상을 달리고 있는 탤런트이며, 멀티 탤런트(multi talent)란 여러 방면에 재주가 있는 사람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어린시절에는 TV에 나오는 배우만을 탤런트라 부른다 생각했는데 맞는 말이지만 방송분야 아닌 타 분야에서도 탤런트를 발휘하는 이가 많습니다. 하지만 방송에 출연하는 배우를 탤런트로 표현하게 되고 방송이 우리사회와 사람들의 삶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높아졌으므로 통상의 이해로는 방송에 나와서 연기를 하는 분들은 탤런트라 하고 희극쪽에서 활약하는 젊은 층은 개그맨, 개그우먼으로 부릅니다. 방송뉴스에서 탤런트나 개그맨이 나오는 경우 매니저나 주변사람들은 모자이크로 처리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는 이들 탤런트, 개그맨, 그리고 유명배우들은 대중의 인기를 받고 대중적 지지와 인지도를 바탕으로 개인차가 있다고 합니다만 수입을 얻기에 '공인'으로 분류한다는 소극적 해석도
감히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일상과 노벨위원회 발표이후 적막스러운 여유에 깊은 공감과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여야가 2:2로 무승부를 기록했다는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후보가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마주하는 바와 같은 모습을 보였다면 유권자들은 후보자의 건강을 걱정하게 될 거입니다. 하지만 한강작가의 무게감있는 여유로움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론이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작가의 작품에 경의를 표하게 되고 수상작가의 작품을 다 읽지못한데 대한 송구한 마음마져 드는 바입니다. 오히려 주변의 평론가나 언론에서 전해주는 작가의 삶이나 작품, 노벨문학상을 받는데 주인공이 될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경외심과 함께 그런 방식의 문학활동을 전개해야 하겠다는 포부를 꿈꾸게도 됩니다. 평소에는 글로 표현하지 못하였고 듣지못했던 작가의 세밀한 표현을 보면서 크게 공감하고 동경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간에 스스로 써온 글에 대한 반성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작은 글 하나를 쓰는 과정에서 좀더 고민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고 글을 쓴 후에도 돌아와서 다시 살피고 문맥을 조정하고 단어를 고민하는 새로운 글쓰기의 자세를 정립하고자 합니다.
노벨상은 스웨덴의 발명가 노벨이 1895년 작성한 유언을 기려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관련 기관들이 "매년 인류를 위해 크게 헌신한 사람"에게 시상하는, 세계적으로 크게 권위있는 상입니다. 1901년에 처음 시상되었으며,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문학상, 평화상의 5가지 상에 더하여 1968년 제정된 노벨 경제학상으로 이루어집니다. 다른 상들은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수여되는 반면, 노벨 평화상은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수여됩니다. 각 상은 모두 그 분야에서 매우 권위있게 여겨집니다. 대한민국의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습니다. 원작자의 품격과 높은 수준의 저작을 평가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겠습니다만 여기에 보태어 작품을 번역한 작가에 대한 평가도 높은 줄 압니다. 수준높은 작품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일이 노벨문학상을 받게하는 초석이 되었을 것입니다. 나아가서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한글의 우수성을 확실하게 인정받은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문화, 영화, 음식, 한복 등 여러분야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전세계에 알리고 있고 이번에 문학분야에서 최고봉에 이르는 쾌거에 온국민이 기뻐하고 있습니다. 국회 상임위 기간중에 발표되어 위원회별로 수상을 축하하는 화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