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청과 경기도의회의 언론담당관, 그리고 남양주시청, 오산시청, 동두천시청에서 부시장으로 근무한 이강석 전 경기테크노파크원장이 언론 기고문 중 100개를 모아 편집한 본인의 세 번째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2020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경기도에서 42년간 재직한 공직자로 공보부서에서 11년 6개월간 근무하면서 언론과 인연을 맺었고 도청 균형발전기획실장,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근무하면서 꾸준히 언론에 기고했다.
또한 경기도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공직을 마감하면서 ‘언론사의 도움을 받은 바 크다’면서 신문사에 퇴임 인사를 다녀간 친 언론공무원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임인사는 많이 오지만 퇴직자가 언론사를 방문한 예는 드물기 때문이다.
뉴스폼에 게재하는 '이강석의 세상만사'는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토대로 스마트 시대를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스토리텔링을 통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코너다.
1946년 제1대 구자옥 도지사부터 31대 손학규 도지사까지 31명의 도지사들은 취임하면서 도정의 방향을 제시하는 “도정방침”을 발표했다. 지난 50년 행정의 슬로건인 도정방침을 살펴보면 행정이 지향하는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아 경기도 역대 도지사의 도정방침을 살펴보고자 한다. 1946년 2월부터 1950년 7월까지의 구자옥 도지사의 도정방침은 애국애족, 질서확립, 민주행정, 보건향상이다. 해방후 지방행정의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이어서 전쟁중인 1950년 10월부터 1952년9월까지 이해익 도지사는 기강확립, 부흥건설, 대민행정, 치산치수였고 1952년 9월부터 1953년 11월까지의 김영기 도지사는 행정의 민주화, 도의앙양, 생산의 극대화, 성실봉공으로 약간 세련되고 있다. 1953년 11월부터 1956년 5월까지 재임한 이익흥 도지사는 정신무장, 산업증강, 서정쇄신, 사회계발, 전재부흥으로 이전까지의 도정방침이 4개분야이었는데 처음으로 5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이어서 1956년 5월부터 1960년 4월까지의 최헌길 도지사는 기강확립, 행정쇄신, 민심수습, 치안확보를, 1960년 최윤경 도지사는 국가관 확립, 지방재정확립, 행정 능률화, 생산증
7시 출발해서 경부고속도로를 달려서 안성휴게소에서 무국밥을 시원하게 먹고 마시고 다시 달려서 경상북도 영천시에 소재한 은해사에 도착했습니다. 당초 계획은 07시 출발~아침~은해사~치산폭포~점심(숲속 안골 집 054- 332- 2377) ~萬佛寺~임고서원~영천湖~옥간정을 방문하는 코스입니다. 그런데 256km 장거리를 달리다보니 일정 2개를 생략하고 다음장소를 향해 달리고 달려서 차분하고 여유롭게 관광을 하고 밤 11시경에 무사귀환, 귀가하였습니다. 우선 경상북도 영천시가 넓고 편온한 도시라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영천사과와 포도가 유명하고 영천한우도 명품으로서 경기도청 간부의 자제분이 ‘영천식당’을 운영하는데 이곳 영천시 현지에서 고기 등 식재료를 보내온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설명문] 은해사는 조선 31본산, 경북 5대 본산,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의 자리를 지키는 경북지방의 대표적 사찰이다. 불, 보살, 나한 등이 중중무진으로 계신 것처럼 웅장한 모습이 마치 은빛 바다가 춤추는 극락정토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은해사이다. 또 은해사 주변에 안개가 끼고 구름이 피어 날 때면 그 광경이 은빛 바다가 물결치는 듯 하다고 해서 은해사라고도 한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고, 대학교, 직장인으로 살면서 써둔 글을 하나둘 모아서 평균 280쪽 분량으로 편집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편집이나 글의 유형 등에 대한 고민은 조금 반영하고 써둔 글이 인터넷속에서 잠자고 있거나 한글 파일이나 외장하드, USB에서 어느정도 버티다가 그냥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면서 책자로 저장시키자는 마음을 먹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글의 수준이나 책 편집의 고급화보다는 물량으로 써둔 글을 책이라는 인정받는 자료집에 실어주겠다는 생각입니다. 누구나 자신이 쓴 글을 아낌니다. 책을 편집하면서 원고가 넘치므로 100편중에 20편을 내려야 하는 것조차도 마음 아파하는 작가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쓰기보다 버리기가 더 어렵다는 말씀도 하십니다. 그래서 일단은 저장장치에 눌려있는 파일을 꺼내어 까페에 펼쳐널고 다시 모아내려서 책이라는 무대위에 올려 자리잡게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이 행복을 줍니다. 이문세의 목소리를 크게 틀어놓고 넓은 사무실에서 나홀로 글을 적어낸다는 것도 새로운 맛이 있습니다. 이 공간에 나홀로 있다는 사실에 글이 잘 써지는 것일까 생각합니다. 아마도 글이라는 것은 독백입니다. 누군가와 대화한 내
단골식당 안성휴게소에서 안성국밥, 소고기무국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출발하여 동화사에 도착하였습니다. [소개] 팔공총림 동화사는 1,5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불교의 대표 총림으로서, 조계종 종정예하이신 진제 법원 대종사께서 주석하시며 선원, 율원, 강원에 100여 명의 대중이 상주하며 여법히 정진하는 청정 수행도량입니다. 세계최대의 석불인 약사여래대불을 비롯한 수많은 보물과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동화사는 동아시아 10대 관광명소로 지정되어 연중 내내 수백만 명의 내외국인들이 참배하는 동양의 대표 성지입니다. 또한 국내 유일의 선(禪) 체험관인 불교문화관에는 오색영롱한 부처님 진신사리 7과가 모셔져 있으며, 법화경 7만자를 석각과 판각의 황금경판으로 조성하는 대작불사가 진행중입니다. 약사여래대불 24시간 개방으로 365일 꺼지지 않는 수행기도 도량으로 거듭나고 있는 동화사는 대구시민들의 정신적인 쉼터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집입로조차 아름다운 곳에 자리한 동호사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많이 행복했습니다. 역사를 자랑하는 참 좋은 산기슭에 자리한 사찰에서 시간을 보낸 수 있는 것은 역시 부처님의 가피라는 생각을 하였기에 더욱 즐거운 시간이었
최근에 공원 산책을 나섭니다.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현직에서는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먹고 출근하는 것으로 바빴지만 퇴직이후에는 출근할 일이 없으니 시간이 충분합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아침식사 후에는 공원산책을 나갑니다. 집에서 공원까지 250m이고 육교를 지나서 공원에 진입하여 걷다보면 공원관리소, 자유총연맹 울타리를 지나갑니다. 휴전선이나 DMZ를 지나는 느낌으로 자유총연맹 건물 뒷편을 지나고 나면 중국정부에서 경기도에 기증한 공원 '월화원'이 나옵니다. 월요일, 화요일은 물론 수요일에도 문을 열지만 정자에 '월화원'이라 간판을 달았습니다. 필리핀이나 베트남에서 야자수 열매를 수입해와서 그 속에 든 실을 뽑아서 엮은 가마니 같은 바닥 깔개는 시에서 시민에게 베포는 최상의 행정 서비스입니다. 시민은 걷기에 편해서 좋아합니다. 약간의 쿠션이 있기에 걸을 때마다 시청에 세금을 낸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자연친화적인 소재이므로 닳아버리면 자연스럽게 흙이 된다 하여서 시에서도 선호하는 사업이라 들었습니다. 다시 부실한 갈비탕으로 인해 나쁜 추억의 앙금이 아직도 조금은 남아있는 식당가를 지나서 넓은 도로에 다다릅니다.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합니다. 신호등을 기다
책을 많이 읽으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말에 서서히 공감하기 시작합니다. 책에서 본 이야기를 마음속으로 녹인 후 흡수해서 간직했다가 어느 순간에 나의 글 소재로 활용하는 비법이 독서였습니다. 그런데 많이 부족하므로 이제 다시 책 읽기에 도전해야 합니다. 소재 빈곤이니 글쓸 이야기 꺼리를 얻기 위해서는 새로운 독서가 필요합니다. 과거에 읽은 책으로는 새로운 글을 꾸며내지 못하므로 최근에 젊은 작가들이 쓴 책을 보면서 젊은 시대를 호흡하고 긴 호흡과 짧은 들숨, 날숨을 활용해서 다시 글을 쓰고 모아서 책으로 완성하는 과정을 거치고자 합니다. 그런 과정이 창작, 창조의 프로세스라 평가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전까지는 사실을 서술하는 글로 나갔는데 이제 약간의 상상과 혼란스러운 겹침의 멋을 추가하려 합니다. 큰 글씨로 작성한 글을 읽어보고 교정, 교열한 후에 다시 적정한 크기의 폰트로 조정하는 것도 나이든 사람들이 글 쓰는 요령 중 하나입니다. 젊은이들이야 8포인트로 글을 쓰면서 문장의 싸이즈를 조절할 수 있지만 나이 든 경우에는 20포인트로 써서 읽어본 후에 최종적으로 10포인트로 조정해서 보는 이들에게 작가가 조금 젊은 것으로 기대하고 인식하도록 하는 고도
어려서 젊어서 써둔 글을 다 파먹었습니다. 그동안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는 글을 모아서 출간을 하였습니다. 어미살을 먹고 큰다는 물고기가 있습니다만 그동안 다음까페에 올려놓은 글을 꺼내서 원고정리하여 출간하였습니다. 26권을 발간하였으므로 글이 겹치는 경우가 여러 번 있습니다. 특히 황인각 선생님은 이책 저 페이지에 나오십니다. 이제부터는 새롭게 쓴 글로 채워나가야 하는 고난의 길을 시작합니다. 올올이 손가락으로 머리속의 생각을 전달받아서 까페에 올리고 나중에 한글로 내려받아서 교정을 보고 페이지를 맞춰서 출간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아마도 3,000배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글쓰기에 도전을 시작합니다. 冬安居(동안거), 夏安居(하안거) 100일을 준비하는 자세로 오늘부터 그렇게 새로운 글쓰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우선은 살아오는 동안의 생각과 주변의 일들을 정리해볼 생각입니다. 요즘 중앙정치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오히려 지방선거가 더 진솔하고 책임감이 크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론의 기사에 대한 반응도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국민들이 신문에 났으니 공무원말을 신뢰할 수 없다던 시절의 그 언론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언론에 대한 생각은 중앙과
1978년 봄. 자그마한 체구의 손재식 도지사. 그 유명한 민방위복을 곱게 다려입는 손재식 도지사가 한해대책 현장 점검에 나섰습니다. 군청과 면사무소에는 비상이 걸렸다. 일단은 양수기로 물을 퍼 올리는 장면을 보여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전에는 양수작업을 중단했습니다. 하천의 모래를 파내고 건수가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도지사님이 오시면 힘차게 퍼 올리겠다는 계획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고생을 동원해 양동이로 물을 날라 모자리에 뿌린다. 당시에는 논농사는 곧 ‘안보적 차원’에서 추진하는 총성없는 전쟁이었습니다. 도지사가 통과할 예정시간이 임박해지자 공무원들이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도청에서 도지사 차가 출발하면 오산에 있는 화성군청으로 알려주고 군청에서는 면사무소로 연락하게 됩니다. 그러면 면사무소 공무원이 부락당 1대뿐인 이장집 교환전화를 통해 도지사 출발소식을 듣고 이장집에서 오도바이로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와 도지사의 도착 예상시간을 알리는 작전이었습니다. 임진왜란때 ‘M1소총’ 1정만 있어도 7년전쟁을 일주일 전쟁으로 쉽게 이겼을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당시 삐삐 1개만 있어도 이런 번거로움은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
인생을 살다가 80세 90세에 떠납니다. 더 일찍 떠나는 분들도 많습니다만 아마도 사후에는 후회만 남을 것 같습니다. 인생은 그냥 지나가는 것 같지만 한번 떠나간 그 날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미래의 날들은 수없이 많은 것 같지만 우리에게 주어지는 미래의 나날은 제한적입니다. 돌아가신 분들은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사실까지 망각하고 떠나가십니다. 100년이 지나만 이분을 기억하던 사람도 떠나가고 그들의 눈에 보이는 분들만 기억합니다. 五里霧中(오리무중)이라고 합니다. 五里(오리)안의 모든 것이 안개로 보이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앞이 보이고 뒤도 보입니다. 앞으로 가면 그만큼만 보이고 그만큼은 보이지 않습니다. 인생도 삶도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함께하는 3대, 4대의 조손지간만 보이는 것입니다. 나와 부모, 부모와 지식, 그리고 할아버지와 손자손녀가 보일뿐 18대손 효령대군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향후 7대후손이 누가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어쩌면 재산보다는 인문학적으로 7대후손 200년 이후의 자손들이 할어버지 할머니를 기억할 것입니다. 혹시 1990년부터 2070년까지 살았던 어느 대의 할머니가 자녀들의 육아일기를 열정적으로 쓰시고 그 대에는 평생동안 일
아마도 인간의 삶의 이전이나 이후에 있어서 세월과 시간이 존재할까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그러니까 단군할아버지의 4,200년전 시간이나 2000년에 영면하신 분의 시간이나 앞으로 영구히 함께 흘러갈 것이지만 그 내용이 바뀌거나 변화하지 않는다는 엄연한 진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역사적인 인물의 존재가 역사속에 회자된다 해도 그분의 시간도 멈춘 것이고 흑수저로 태어나 필부필녀로 살다가 80세 언저리에서 삶은 마감한 분의 시간도 그렇게 마쳐진 날부터는 정지한채로 남아있을 것이다. 물론 행운스러운 분의 경우 30년 정도 후손들이 기억하고 추억할 것이지만 이 또한 이승의 삶의 시간이 마감되고 나면 저승에서는 누구에게나 시간은 생을 떠난 날부터 멈춰지고 모래처럼 무궁무진한 세상속으로 나갈 것이다. 말 없는 모래는 春夏秋冬(춘하추동)을 함께 지내고 더위와 추위를 만나도 전혀 변화가 없을 것이다. 다만 시간이 그렇게 흘러서 우주를 정복하고 IT가 발전해서 죽은 세포속의 과거를 둘추어낸다 해도 모래알이 된 그 육체의 잔가루는 그렇게 사막의 한 부분을 차지할 뿐 되돌아오지 못하는 생명체의 추억인 것이다. 하지만 혹시 함께 출발한 정자와 난자를 80년만에 다시 만나는 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