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청과 경기도의회의 언론담당관, 그리고 남양주시청, 오산시청, 동두천시청에서 부시장으로 근무한 이강석 전 경기테크노파크원장이 언론 기고문 중 100개를 모아 편집한 본인의 세 번째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2020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경기도에서 42년간 재직한 공직자로 공보부서에서 11년 6개월간 근무하면서 언론과 인연을 맺었고 도청 균형발전기획실장,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근무하면서 꾸준히 언론에 기고했다.
또한 경기도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공직을 마감하면서 ‘언론사의 도움을 받은 바 크다’면서 신문사에 퇴임 인사를 다녀간 친 언론공무원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임인사는 많이 오지만 퇴직자가 언론사를 방문한 예는 드물기 때문이다.
뉴스폼에 게재하는 '이강석의 세상만사'는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토대로 스마트 시대를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스토리텔링을 통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코너다.
동두천시와의 인연은 우연이거나 인사부서 직원의 배치에 의한 지극히 단순한 일로 출발하였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공직과 퇴직 이후까지 면면히 이어지는 운명적인 관계가 정립되었습니다. 1997년에 경기도청에서 동두천시청으로 전출되어 생연4동장으로 근무하면서 보람찬 일들을 마주했고 수해로 인한 어려움 속에서도 공직자로서, 인간적으로 큰 연관성을 찾아내고 관계성을 유지하면서 퇴직 이후에도 그런 연결고리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동장으로 일한 경험과 경력이 훗날 2011년에는 시정의 중요한 책임역할을 하는 자리에서 일하게 되면서 인생과 운명은 많은 관계와 관심으로 이어지는 동아줄 같은 끈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 것입니다. 함께한 나날을 회고하면서 동장으로 일한 추억, 동장이 지녀야 할 생각에 대한 작은 소견을 모아서 적었습니다. 2021년 10월 20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이강석의 방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습니다. 주머니는 욕심을 의미할 수도 있는데 저승가는 길에 가져갈 것이 없으니 주머니가 필요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새로운 세계에 가서는 또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기에 힘들었던 이승의 그 어느 것도 가져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일 것입니다. 이승을 떠나는 것은 참으로 홀가분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이별을 고하는 수의를 입을 때 옷고름에 나비고름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새롭게 발견되었습니다. 한번 염습을 하면 다시 풀어볼 일이 없기에 세 번 네 번 꽁꽁 매어 드린다고 합니다. 여러 겹의 옷을 입혀 드리고 힘차게 매어 드려야 좋아하신다고 시골 아저씨가 말씀하셨습니다. 이 아저씨(할아버지) 몸을 모아드려야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매장으로 모셔도 수의는 흙이 되어 함께 할 것이고 화장을 해도 수의 옷고름은 연기가 되어 나비처럼 창공을 훨훨 날아갈 것이므로 미리 나비넥타이 매듭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국장에서 조총을 발사하는 것은 그 영혼이 새가 되어 하늘 높이 날아가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나비가 되고 새가 되어 훨훨 날아가는 영혼은 참으로 편안해 보입니다. 최근 건축물 리모델링 중에 수십억원어치 금괴가 발견되었고
광교산은 넓은 가슴으로 우리 모두를 기다린다. 아침 버스를 타고 상광교에 도착하여 주변을 살필 것도없이 걸음을 재촉한다. 가파른 산행으로 가슴이 뻐근해지고 이내 등줄기에 온기가 불면서 등산의 즐거움이 시작된다. 지난주 눈이 많이 내린 후 일요일 산행을 거슬러 내려온 길을 다시 올라가는 것은 또다른 묘미가 있다. 우선 절터를 올라 약수터에서 사람들은 만나는 것이 행복하다. 모두 같은 마음일 것 같은 중년층 남녀들의 다채로운 등산복을 보는 것도 즐겁고 서로 양보하며 줄서있는 그들만의 질서가 흐믓하다. 패트병 8개에 약수를 받아가는 이가 있어도 기다림이 편안하다. 많은 양의 물을 받기 위해 함께 보내는 휴식시간이 줄을 선 모든 이에게 제공되기 때문이다. 좀 늦어면 어쩔 것인가. 빨리 간다고 해서 감독관이 체크하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광교산이 좋고 산행이 즐겁고 등산이 필요해서 온 사람들 아닌가. 그러는 중에도 줄 뒤에 선 ‘작은 병 들고온 청년’에게 패트병 2개짜리가 순서를 양보해 주고 시청에서 준비해 둔 현대식 표주박(스텐레스)에 물을 떠서 처음 본 나에게 주는 내 또래의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이 행복 아니겠는가. 심장의 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올 즈음 다시 산행은
경기도의회로 가는 길은 3가지 방법이 있다. 지역구 출마, 비례대표의원, 그리고 의회사무처 공무원으로 발령을 받으면 의회로 갈 수 있다. 하지만 또 다른 방법도 있다. 수원역에서 내려 도청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언덕을 300m터 오르면 도의회와 도청 건물이 보인다.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의 화서문을 지나 화서파출소를 우축으로 놓고 좌측길을 통해 병무청을 지나면서 좌회전하면 의회와 도청의 후문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전철 성대역에서 수원역 방면으로 오다가 수원역사가 보일즈음 좌회전 하여 1㎞정도 달리면 마치 프랑스 몽마르트언덕만큼의 위치에 서있는 회색으로 빛나는 의회건물을 만나게 된다. 과거 방위협의회가 자주 열리던 시절에는 육군의 별들이 헬기를 타고 곧장 도청운동장에 내려 회의장으로 가는 모습을 본 기억도 있다. 승용차나 버스를 타고 도의회와 도청으로 들어오는 3개의 문을 지날 때 누구나 2개의 간판을 보게 된다. 경기도청이라고 굵직한 체의 간판과 경기도의회라고 도청간판보다 가는체의 간판을 보게 된다. 경기도청 간판은‘새마을 정신의 생활화’라는 글씨체와 같아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임을 짐작할 수 있다. 경기도청은 1967년 6월
따사로운 날씨다. 1950년 6월에도 더웠을 것이다. 그리고 1950년, 1951년, 1952년. 국군 용사들은 인제에서, 백마에서, 수원에서, 철원에서 붉고 뜨거운 피를 이 산하 계곡에 뿌리면서 뜨거운 하늘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어머니 얼굴을 떠올리며 가족을 생각하면서 떠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60년 세월이 흐른 지금 작은 상자만한 크기의 기단부와 어린이 키 정도의 비석에 이름 석자, 격전지,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 흘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날짜를 적어놓고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있다. 국립현충원 직원이 트럭에 싣고와 배부한 플라스틱 조화 한줌을 옆에 세운 채 오랜 세월을 지내온 용사들. 오늘의 주인공은 황해도 연백에 사시다가 18세이던 1950년에 입대하여 1951. 4. 27 강원도 인제에서 전사하신 분이다. 전후좌우 모두 같은 크기의 비석인데 전사지, 전사날은 각기 다르다. 아마도 뒤엉킨 전사자들을 수습한 후 신원이 확인되는 대로 현충원에 모시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이곳 현충원에 근무하시는 분들은 모두가 좋은 분들이겠다. 정문 근무하시는 분들의 표정도 인자해 보이고 간간히 작업을 하시는 인부들의 표정에도 욕심이 없어 보인다. 항시 망자들을 모시고 사
1986년에 세정과 세외수입계에서 수입증지를 담당하였습니다. 수입증지란 지방자치단체의 수수료를 받아 들이는 우표처럼 생긴 증표인데 당시 50원, 150원, 300원, 500원 등 몇가지 유형의 수수료에 맞춰 액면가를 정해 조달청 인쇄창에서 받아온 것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8시반경에 새마을금고 직원이 1일 대력 150만원어치를 받아갔습니다. 그런데 수입증지 수불부상에 5원짜리 증지 30,000원어치, 대략 6,000장이 이월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수년간 이월된 것으로 추측되었습니다. 이미 50원이상으로 수수료가 인상된 1986년에 5원짜리가 남아있으니까요. 전임, 전전임 담당자들이 지속적으로 이월시켜온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일은행 금고에 확인한바 철제금고 바닥에 5원짜리 증지가 남아있다는 확인을 해 주었습니다. 요즘에는 엑셀이나 전자프로그램으로 장부를 정리한다고 하지만 당시만해도 수작업이므로 매일아침 5원짜리 증지 6,000장 30,000원어치를 정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으므로 이를 정리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방법은 다 사버리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음날 3만원어치를 수불하고 새마을금고를 통해 개인 돈으로 구매했습니다. 그리고 바인더북에 잘 보
1985년 이야기 입니다. 새마을지도과 서무담당으로 근무할 당시에 부산에서 새마을지도자대회가 열렸습니다. 달반 이상의 준비과정을 거쳐 드디어 내일아침 부산으로 출발하는 그날이 다가왔습니다. 사무실 뒷편에 부길식당에 저녁마다 부대찌게 15인분을 주문하여 일하시는 선배들 식사를 추진하였습니다. 별도의 말씀이 없으시면 그냥 부대찌게를 주문하면 되는 일입니다. 요즘에도 많은 분들이 부대찌게에 밥 비며 먹다가 나중에 라면 넣고 육수추가하고 그러시지요. 저녁마다 시군과 통화를 하면서 참석자 명단, 승차계획, 숙박계획, 고속도로 차량 이동계획 등 참으로 많은 행정적인 일을 하였습니다. VIP행사 이므로 당시 공직 선배들은 작은 실수도 용서되지 않는다는 심정으로 일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1985년이면 좀 지난 세월이기는 하지요. 그리하여 D-Day 1일전날이 왔고 각 시군의 새마을 지도자들은 수원 북문 인근 숙소에 집결하였습니다. 당시 행정력이 얼마나 강했던지 안성에서 평택에서도 수원으로 올라와 숙소를 잡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날 저녁 시군 본부방을 돌면서 물품을 전하고 중요 사항을 알려드리고 피곤한 몸으로 어느 방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평소 일찍 기상하는 편이지만 그날
아침 7시30분 수원역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출근합니다. 집앞에서 버스를 타고 25분을 달리면 수원역에 도착하고 상행선 출구로 가서 기다리면 열차는 힘찬 쇳소리를 내며 다가옵니다. 오늘이 시작됩니다. 일단 열차에 오르면 계단을 찾게 됩니다. 정기권 패스에는 지정된 좌석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오른쪽 출입구는 안양, 영등포를 거치는 동안 열리지 않습니다. 서울역에 도착해서도 왼쪽 문으로 내립니다. 그래서 편안한 의자가 오른쪽에 있는 것입니다. 이 계단이 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등산용 방석이 필요합니다. 가끔은 추위를 피해 객차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그러면 늘 항상 인간의 삶과 인생의 여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파노라마가 펼쳐집니다. 앉아있는 손님은 대부분 눈을 감고 있거나 표정으로 보아 아예 깊은 잠에 빠진 분들도 많습니다. 젊은 손님들은 왜 자면서 인상을 쓰는 것일까요? 입석 손님이 의자 등받이를 잡아서 불편하신가요. 150명 정도의 승객이 앉거나 서거나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객차 1량 속에서 우리는 인생의 전 과정을 볼 수도 있고 삶의 단계를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손님은 부산에서부터 앉아옵니다. 수원역에 7시30분에 당도하여 서울로
하나의 마침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말에 공직을 마치고 민간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길다 할 수 있는 39년 8개월의 경험중 주사에서 사무관에 승진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사무관이 되어서 팀장, 동장, 계장, 담당으로 일하면서 느낀 바를 적어 책으로 엮어내면 후임 동료들에게 작은 참고가 될 수 있겠다는 구상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전에 적어둔 몇 가지 글을 합하여 300쪽 정도의 소책자를 만들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자료집에 금강산 다녀온 이야기, 백령도에서 국토 체험한 스토리, 백두산에서 역사를 만났던 감동을 합해 보았습니다. 쌍둥이 아이 낳고 3년동은 바쁘고 힘들고 기쁘게 키웠던 이야기를 글로 적으니 원고지 20매가 되었고 23세 청년의 무모한 도전으로 강원도 한계령을 걸어서 1박2일만에 넘어간 전체 3박4일 이야기를 써둔 바 있어 이를 함께 모아본 것입니다. 작은 조크는 모든 사무실 동료들에게 활력의 에너지가 된다는 생각으로 노트에 적고 늘 활용해 왔는데 이를 몇개 골라서 추가하였고, 오산시에서 시작된 청렴강의가 지방행정연수원, 양평군, 원주시를 거쳐 이곳 안산시의 추천을 받아 5월말에 간부회의에서 다시한번
중세에 유리 장인이 깨어지지 않는 유리를 발명하여 그 기술을 왕에게 바쳤습니다. 그런데 왕은 그 기술을 활용하지 않고 오히려 그 유리 장인을 죽이라 명하였습니다. 그래서 깨어지지 않는 유리를 만드는 기술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투명하면서 비바람을 막아주는 유리는 그 쓰임새가 참으로 많습니다만 현재에 와서도 창문이나 식탁을 장식하는 유리는 깨어진다는 부담감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왕이 깨어지지 않는 유리를 만든 장인을 죽인 이유는 무었일까요. 깨어지지 않는 유리가 나온다면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금과 은, 보석 등의 가치가 하락할 것을 걱정하여 유리장인을 죽인 것이라 합니다. 이와 유사한 일들이 역사속에 얼마나 많이 스쳐 지나갔을까요. 행정에서도 참좋은 제안제도가 있습니다. 추진중인 행정방식을 개선하거나 새로운 일처리 방법을 제시하는 취지가 아주 좋은 혁신창구 입니다. 하지만 어렵게 제출된 제안내용이 담당부서 심사과정에서 왜곡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고 합니다. 어떤 공무원은 평생 단 한 번 제안제도에 출품했다가 혹평을 당하고나서 다시는 제출하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또 한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제안을 내고 날짜가 잡혀서 설명하러 회의실에 올라갔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