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한라산#관음사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2022. 11. 8~11. 10 

o 출발준비

부부는 1985년 11월 9일(토) 13:30분에 결혼했습니다. 당시 공무원은 토요일 오후 1시까지 근무했습니다. 오전에 사무실에서 서무담당자 임무를 다하고 12시에 이발소에 가서 '오늘 결혼합니다'하니 처음으로 머리에 뽀마드를 발라서 살짝 넘겨줍니다.

그리고는 더 이상 결혼식 진행에 바쁘다 보니 머리에 손을 대지 않아서 머리카락이 앞으로 늘어진 채 시골 아재처럼 결혼사진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예쁘고 화장을 하고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습니다. 예쁘고 아름다운 신부를 맞이한 신랑은 행복합니다. 그래서 결혼은 신부의 축제이고 신랑은 조금 거드는 '들러리'인가 생각합니다.

이날 결혼한 신혼부부는 신혼여행을 다녀와 도청 인근에서 신혼집을 차렸고 서둔동의 아파트를 거쳐서 1988년에는 인계주공아파트를 매입하여 집주인이 되었습니다.

1996년부터 아파트에 살면서 쌍둥이 남매를 키우고 학교 보내고 직장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2022년 10월 중순에 11월9일 전후를 잡아서 결혼기념 제주 부부여행을 준비하였습니다.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숙소를 정하고 랜터카를 알아보았습니다. 비용이 들어도 조금 편하기 위해 김포공항에 차를 가져가서 발렛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장기주차보다 발렛이 조금 저렴하다는 사실을 이번에 확인했습니다. 아마도 발렛회사가 김포공항 주차장보다 요금을 낮추는 전략으로 손님을 끌어드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薄利多賣(박리다매).

'빌리카'는 차량을 빌려주는 회사입니다. 2일차와 3일차를 연이어서 자가운전하는 조건입니다. 많이 바싸지 않습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6천원 택시를 타고 가면서 여쭈어보니 하루 택시관광은 25만원이고 일찍 마감하면 20만원선입니다.

이틀이면 40~50만원입니다만 마음 급한 독자를 위해 미리 말씀드리면 이틀 풀타임 자가운전으로 임대료 42,000원, 연료비 50,000원이니 차량을 빌려서 2일 제주여행은 10만원 이내로 가능합니다.

아내는 여행을 계획하면 한달전에 가방을 싸놓고 그 안에서 드라이기를 꺼내 쓰고 다시 넣고 화장품을 넣었다 꺼내기를 반복하면서 여행을 미리미리 즐깁니다.

기분좋은 여행에 대한 희망적 메시지를 스스로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남편은 평점을 줍니다. 집이 호텔이고 집이 식당이며 아파트 주변은 관광지입니다.

그래서 아내는 아침에 아파트를 호텔로 생각하고 시장에 장보러 가고 장을 본 식재료는 백화점에서 옷을 사온 기분으로 식탁을 호텔의 거실로 삼아 이리저리 진열합니다.

혹성탈출이라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자유의 여신상이 바닷가 모래밭에 옆으로 45도 누워있는 장면이 기억납니다. 우주인들은 우주선이 우주에서 길을 잃고 어느 惑星(혹성, 태양이나 다른 별들 주위의 궤도를 따라 공전하며, 스스로 에너지를 생성하지 못하고 태양빛을 반사하여 빛나는 별)에 도착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우주선은 얼마 가지 못하고 다시 지구로 떨어졌고 지구에 원숭이만 사는 동네를 거치는 동안에 파란만장한 사건사고를 겪게 됩니다.

그리고 문명의 세계를 발견하고 혹성의 어느 인간마을에 도착한줄 생각했지만 그곳은 미국 뉴욕이었고 자유의 여신상이 핵전쟁의 후유증으로 쓰러졌던 것으로 영화관람자인 저는 추정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긴 여행에서 돌아와도 여행의 시간이 흘렀고 이내 무겁고 투박해진 가방을 끌고 돌아오는 곳은 자신의 집입니다. 그러니 여행전에 느끼고 여행하는 동안에 즐기고 여행을 다녀와서 회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행에도 새마을사업처럼 전중후의 사진을 찍어두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은 바로 전중후의 후에 해당할 것입니다.

김포~제주 가는 길은 아시아나, 제주~김포 오는 길은 대한항공입니다. 그동안 쌓아둔 포인트를 모두 긁어모은 딸아이의 노력 덕분에 상상 이상의 저가항공보다 더 저렴한 항공료를 지불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짠내투어' 방송을 흉내 냈습니다. 저렴하지 않은 것은 접속하지 않았습니다. 숙소에서도 저가 항공 이상으로 싸게 예약했습니다.

비행기를 대한항공, 아시아나로 한 것은 그동안의 포인트를 쓰기위한 것이고 부부가 말한 대로 한달후에 이 코스를 다시간다면 우리는 저가항공을 예약할 것입니다. 새벽 5시 출발, 밤 11시 도착을 하더라도 저가로 갈 것입니다. 그리하려면 집에서는 2시에 일어나 준비해서 3시반에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달전에 미리 잡으면 몇만원에도 김포~제주를 잡을 수 있고 수원에서 청주로 가서 청주~제주를 예매하면 더욱 더 저렴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는 부산가서 배로 제주에 입도할 수도 있습니다.

인천에 가서 배를 타고 서해안을 거쳐서 제주에 이르는 배편이 있다고 합니다. 배안에서 이틀, 제주에서 이틀이면 5박6일도 지루하지 않을 것입니다.

 

o 주차대행

김포공항에 '다모임 주차대행'이 있습니다. 2박3일에 34,000원입니다. 공항 6번출구앞에서 주차대행 담담자를 만나면 됩니다. 신나게 차를 몰아 김포공항에 도착하면서 부부 여행은 곤경에` 처합니다.

얼음위로 맷돌 갈아만든 스톤을 밀어 내듯이 차가 진입하였지만 6번출구는 보이지 않습니다. 2층에는 4번출구까지 큰 글씨로 써있습니다.

설명드리면 1층에 5번~9번까지인가 출구가 있는데 출구가 아니라 입출구입니다. 이곳으로 승객들이 들어가고 나옵니다. 들어가는 문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 그냥 입출, 출입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2층의 큰 간판을 보고나서 1층에 같은 모습의 6번출구는 없었고 작은 숫자 6이 보입니다.

안내문을 상세하게 읽은 것이 화근입니다. 안내문에 버스 타는 6번이 아니라 6번 출구에서 주차대행 직원을 만나서 차를 넘기라고 했습니다. 주차한 차량이 빼곡한 그곳을 두번 돌고 다시 진입하여도 큰 글씨 6번출구는 없었습니다.

마음 급한 아내가 중간에 내려서 택시기사님에게 6번 출구에 대해 질문하니 이곳이 그 문제의 6번출구가 맞다고 합니다.

황당한 일은 늘 있습니다. 그냥 6번을 보고 드리대면 될 일인데 생각이 많아서 그 앞으로 두번이나 그쳐 지나가고 3번째로 주차를 하고 짐을 내리고 정신없이 공항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제 1시가 지났으니 점심을 먹어야 합니다. 기계앞에 서서 음식을 선택하고 신용카드로 결재를 합니다.

잠시후에 맛있는 음식이 나왔다고 벨이 울립니다. 결혼기념일을 기념하는 여행이니 아내에서 배달하고 수저 셋팅하고 신랑의 것은 스스로 가져옵니다. 결혼에서 신부가 주인공이고 신랑이 들러리인 이유를 온몸으로 설명하는 중입니다.

젊은 나이의 아들은 다른 코너에 가서 신메뉴를 받아왔습니다. 처음보는 음식인데 맛이 있다고 합니다. 부부는 돼지고기찌게, 순두부 등 매콤하고 시원한 메뉴입니다만 아들은 치즈와 면발이 보이는 새로운 뉴 메뉴입니다.

여행자에게 한말씀 드리면 여행중에, 공항에서는 절대로 서두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공항이라는 곳은 급한듯 한데 표받으면 기다리고 짐검사에 정신이 혼미해지다가 공항 안으로 들어가면 하염없이 기다려야 합니다.

참, 아들이 와서 비행기 타는 수속을 도왔습니다. 정맥인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분증을 스캔하고 손바닥을 내보이니 등록이 되고 다시 손만 들이대자 화면에 사진과 이름이 나옵니다.

지문인식이 있는줄 알지만 손바닥과 정맥의 펄스로 특정인의 이름과 사진을 저장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나중에 제주에서 비행기를 탈때에는 정맥인식으로 신분증을 대신했습니다.

눈동자로 문을 여는 것을 동체인식이라 하지요. 스마트폰을 지문으로 열고 손가락 지문만으로 그 사람의 신분이 확인되는 시대입니다. 지문이야 그림이 다르다고 하지만 정맥의 펄스의 차이를 기계가 어떻게 구분해서 기록, 기억하는가 궁금해 집니다.

 

o 1일차 오후에 제주도착

여행 첫날은 오후이니 '빌리카'를 예약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후 비행기가 50분 연착됩니다. 전에도 비행기 청소가 늦어서 늦은 사례까 있었고 공무원 장기연수중에는 승무원 한명이 모자라서 1시간 가까이 지연된 일도 기억이 납니다. 외국에서의 일이니 사과를 했는가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아시아나 비행기는 하늘 높이 날아서 제주도 상공으로 올라갔습니다. 마지막 항적을 보니 제주 오른쪽으로 가서 좌회전을 한 후 공항 활주로에 내립니다.

언덕에 올라가서 비행장을 바라보니 한대 내리면 다른 비행기가 이륙합니다. 활주로가 복선이 아니고 단선인가 봅니다.

국제공항이라는데 활주로 한줄을 놓고 한대 내리고 연이어 이륙하고 다시 내리기를 반복합니다. 승용차 신호대기 하듯이 비행기가 내리는 그 옆에서 이륙을 준비하는 비행기가 움찍거립니다.

관제탑에서 착륙과 이륙을 지휘한다고 들었습니다. 다음이 자신의 비행기가 이륙한 순서임을 잘 알기에 마음이 성격급한 조종사의 손놀림이 빨라지는가 봅니다.

제주공항은 인산인해입니다. 사람이 산과 같고 인파가 바다처럼 일렁인다는 말일 것입니다. 정말로 사람이 많습니다. 어디에서 이 사람들이 몰려온 것일까. 제주도민 100만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다른 지역의 국민들이 절반을 채워서 100만이 넘을 것 같습니다.

우선은 내일아침에 차량을 받을 '빌리카'를 알아보았습니다. 5번출구를 지나서 빌리카셔틀센터를 확인했습니다. 여기에는 대략 15개 차량대여회사가 버스, 승합차를 대기해놓고 예약자를 태웁니다. 셔틀을 타고 15~20분정도 본사로 가야합니다. 그곳에 수십대의 차량을 대기시켜놓고 있습니다.

첫날에는 아직 차를 받은 것이 아니니 부부는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짐을 두고 나와서 저녁을 먹자 했습니다. 택시는 좁은 골목을 다른 차량과 교행하고 양보하고 양보 받으면서 어렵고 힘들게 숙소로 갑니다. 저가항공처럼 저가호텔이니 좁은 골목길에 있나 봅니다.

20만원 이상하는 숙소는 넓은 현관과 휘황찬란한 전등불을 자랑하겠지만 눈 꼭 감고 잠들면 30평 숙소나 10평 모텔이나 키 177cm 남자가 잠자는 것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비바람을 피하고 짐을 편하게 늘어놓고 필요한 것을 쓸 수 있는 자그마한 공간이면 충분합니다.

드넓은 왕릉을 차지한 분이나 한두평 땅속의 더 작은 관속에 누운 분이나 매한가지 상황인가 생각합니다. 그 위에 쌓인 돌과 상석의 무게가 오히려 선왕들을 힘들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匹夫(필부)의 작은 묘역은 봄부터 꽃이 피고 여름에는 새가 울고 가을에는 포근한 단풍으로 장식될 것이지만, 왕릉은 늘 위엄과 격식과 뭔지 모를 불편함이 상존할 것 같습니다.

짐을 넣고 밖으로 나와서 갈치조림 집으로 갔습니다. 주인혼자 하는 식당인데 반찬도 가정식이고 갈치구이는 백색의 속살과 가끔 입안을 자극하는 왕소금의 존재감으로 식감을 키워줍니다. 역시 제주갈치입니다. 포근한 맛이 제주갈치입니다. 주인께 물어보니 급속냉동이라서 갈치살이 부드럽다 합니다.

생태탕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맛에 갈치 특유의 식감에 왕소금이 예고없이 놀람을 줍니다. 여러번 왕소금 공격을 받고나니 갈치살의 맛이 그 풍미를 더합니다. 짠맛을 잡아주는 갈치살의 풍미를 느끼면서 저녁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 맛을 돋우는 원천은 한라산입니다. 21도 한라산 소주가 큰 행복을 줍니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아내에게 처음 주고 받고 쨍한 술잔마져 빼앗아 마셨으니 온전하게 한병을 다 마신 바입니다. 소주잔을 쨍하는 이유를 여기서 언급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오감을 느낍니다.

시각, 촉각, 후각, 미각입니다만 술을 마시는 경우 청각은 주인님이 술을 드시는가를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청각이는 풍문에 주인님이 술을 마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청각이의 의사진행을 통해서 5감 친구들이 긴급회동을 한 바 청각을 위한 묘책을 만들어냈습니다. 우리가 술을 마시게 되면 손으로 잡고 코앞으로 가져온 후 입으로 마시고 내려놓습니다.

시각, 촉각, 후각, 미각까지는 술 마시는 것을 즐긴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청각을 위해서 술잔을 쨍하고 부딪쳐서 소리를 내주는 것으로 청각이의 불만을 해소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종이컵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유리잔이나 청동, 스텐레스 잔이 아닌 경우에는 청각이가 양보를 해야 합니다. 그래도 청각이에게 미안하면 유리병이나 쇠젓가락으로 쨍 소리를 내주면 좋을 것입니다.

청각이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상가에서는 절대로 건배를 하지 않습니다. 상중에 무엇을 위해 건배를 하겠습니까.

제주갈치의 맛과 한라산 소주의 향에 취해 아내와 손을 잡고 잡은 아내의 손결에 취해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뉴스는 제주도에서도 정치이야기를 합니다. 가끔은 제주방송 자체제작분이 나오니 새로운 인물을 보게되고 분위기가 다른 예능방송을 시청했습니다.

정치가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어야 하는데 아직도 정쟁으로 국민을 힘들게 하고 국민들이 정치를 걱정하는 세태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작은 시의회, 큰 시의회, 더큰 광역시도의 의회에서도 그러하거니와 수준이 높다고 보이는 국회에서조차 광역과 기초의 흉내를 내는 것인가, 아니면 국회의 행태를 기초와 광역이 벤치마킹하는 것인가 아리까리, 한라산 3병을 마신 기분이 듭니다.

 

o 둘째날입니다

둘째날 아침입니다. 숙소 주변에 문을 연 식당이 없습니다. 반대편으로 짐을 끌고 내려가서 택시를 기다렸습니다. 횡단보도앞에 젊은이가 서 있었는데 그냥 건너갈 분으로 생각하고 우리는 달려오는 택시를 잡았습니다.

우리 부부앞에 정차하여 아내를 승차시키고 트렁크에 짐을 넣었는데 그 청년이 다가와서 자신이 먼저 택시를 잡았다고 말합니다.

우리보다 먼저 그 곳에 서있었음을 아는 바이니 아내에게 내리라 하고 짐을 내리고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다시 같은 코스로 택시가 오는데 건너편에서 다른 택시가 우리쪽으로 턴하면서 탑승을 권합니다.

손사래를 쳤습니다. 조금전 직진방향으로 오는 택시를 타겠다고 싸인을 한바 입니다. 그런데 좌회전으로 달려오는 택시가 가깝다고 타는 것은 예의가 아닌줄 생각했습니다. 현장상황을 보면서 오신 기사님에게 앞에 온 택시를 보내고 우리 사장님 택시를 탄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렇게 말문이 트이자 할 이야기 많았습니다. 신혼부부를 태우면 하루 같이 관광하면서 20만원 쉽게 벌었다 하십니다. 신혼부부일수록 조금 일찍 관광이 끝나서 추가영업도 가능한 경우에는 일석이조, 기분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많이 어려워졌다 하십니다.

인생에서 잘나가는 타이밍의 순간을 우리는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생에서 오늘이 가장 행복한날일까 생각합니다.

제주공항에 내려서 아침을 먹고 8시가 조금 지나서 빌리카 셔틀장으로 가서 1-9번 저쪽 끝에 가서 버스에 올랐습니다. 앞에도 9번이 있지만 이는 9-9의 9번입니다. 우리 번호가 아닙니다. 여기에서 숫자는 참고적 사항입니다. 9든 6이든 참고하시라는 의미입니다.

셔틀버스를 타고 빌리카 사무실에 도착하니 어마어마한 시설입니다. 중소기업입니다. 중기업입니다. 100대에 가까운 승용차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카톡에 공지한 대로 그 자리에 도착하니 예약된 차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재미있고 희한한 일의 연속입니다. 여행의 묘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트렁크에 2개의 봇짐을 싣고 승차하여 앞으로 나가자 담당자가 몇가지 체크를 합니다. 연료는 7.6로 본다 합니다. 풀에서 조금 내려온 정도입니다. 나중에 가득 채워서 가니 4,500원 정도를 거슬러 준다고 합니다. 2주안에 입금된다 했습니다. 연료량이 출발 때보다 모자라면 그만큼 징수를 합니다.

아마도 더 채운 연료는 저렴하게, 덜 채운 연료를 고액으로 받는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해 보았습니다만 선하게 생긴 청년이 이정도 휘발유에서 이문 남겨먹을 일을 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차 안에 선그라스를 두고 왔는데 화장실까지 찾아와 전해주었습니다. 차에 물건을 두고 내린 잘못을 아직까지 아내에게 말하지 않은 비밀이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면 아내의 모성 본능이 커져서 신랑, 남편을 감싸안고 다니려 할 것이니 이런 큰(!) 실수는 절대로 말하지 않기로 합니다.

이 글을 읽으면 또 한 번 바가지를 박박 긁으려 하겠지만 이제 바가지도 익숙하고 천연의 재배한 흰박인지 플라스틱 주황색 바가지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동안 우리 부부에게는 수많은 감초같은 바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차를 몰아 달리는 중에 국립제주박물관 안내판을 만났습니다. 그래도, 아무리 놀러 왔어도 이곳의 박물관은 가야합니다. 문화시민으로서의 기본은 박물관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있는 곳이 박물관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노인이 한 분 돌아가시면 도서관이 한 동 불타는 일이라 합니다.

정말로 한 부족이 멸하면 박물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인가 생각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늘 박물관을 관심있게 보고 살펴야 합니다. 역사의 전중후를 볼 수 있는 곳이 박물관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박물관은 그런 곳입니다.

아울러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실력있는 척척박사님 같은 박물관을 만나야 하고 그 속에서 우리의 존재감을 크게 느껴야 합니다.

그렇게도 힘들게 만난 문명의 흔적이 박물관에 아주 미량으로 남아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여행은 삶의 공간에서 좀더 미래지향적으로 벤치마킹을 하는 과정으로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o 만장굴

첨단과학에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말을 합니다. 여행의 필수품인 네비가 더러는 인문학적으로 표현합니다. 만장굴을 검색하여 달려갔는데 공사장 중간에서 좌표를 찍고는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전에 이 언저리에 '만장굴 식당(!!!)'이 있었을 것이라고 가정해 보았습니다.

전주에가면 전주비빔밥을 팔지만 수원이나 서울에도 전주비빔밥 식당은 있습니다. 그리고 전주비빔밥은 먹지 못하고 이번주 오늘 비빔밥을 먹어야 합니다.

전주라는 단어에는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밭주인, 지난주, 전봇대, 전주시, 음악의 시작(전주)도 있습니다.

그러니 첨단의 네비게이션에 감성을 담아서 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빌린차 빌리카가 만장굴을 검색하면 식당이 아니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만장굴 현장임을 알아차리는 AI의 지혜를 심어주시기 바랍니다.

[만장굴] 제주시 구좌읍 만장굴길 182 / 064-710-7903/ http://www.visitjeju.net

1962년 12월 3일 김녕사굴과 함께 천연기념물 제98호로 지정되었다. 총길이 8,928m, 폭 2~23m, 천정높이 2~30m이다. 1977∼1986년까지 한·일합동조사가 실시되었다.

 

 

제주에는 화산 용암의 침하운동으로 생성된 천연동굴이 많은데, 만장굴도 그 중의 하나로 석주(石柱)·종유석(鍾乳石) 등이 장관을 이루어 동굴 내부의 규모는 세계적이다. 오래 전부터 주민들 사이에 ‘만쟁이굴’이라는 속칭으로 알려졌으나, 세상에 널리 공개된 것은 1958년 이후였다.

동굴이 같은 방향으로 2중·3중으로 발달한 것도 만장굴의 지형적 특징이다. 박쥐를 비롯하여 땅지네 ·농발거미·굴꼬마거미·진드기·가재벌레 등의 동굴 생물이 서식하고, 남조류(藍藻類) 및 녹조류의 식물도 찾아볼 수 있다. 내부의 지형이 험해서 탐사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주 넓은 입구입니다. 국회의사당 정문에 들어서는 기분입니다. 바닷가 자갈길을 가는 것 같습니다. 평지인데 비포장입니다.

울퉁불퉁한 길에 더 깊이 패인 곳에는 동그랗게 깎은 흰 돌을 배치했습니다. 발이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고 방향도 알려주는 두가지 이상의 기능을 합니다.

아마도 동굴을 보호하기 위해 전기불 조도를 낮췄나봅니다. 길이 보이지 않으니 반딧불처럼 생겼지만 그 자리에 멈춰있는 전등으로 방향을 잡고 발목을 부드럽게 한 후 차분하게 걸어야 합니다.

부부, 남녀, 연인은 무조건 손을 잡아야 합니다. 초중생들은 라이트를 비추며 걷고 있습니다.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돌길이 이어지다가 나무계단이 나오고 철계단도 있습니다. 평평하게 꾸준히 걸어갑니다. 1km거리입니다. 왕복하는데 40분이 소요된다고 안내합니다. 보통 4km를 걸으면 1시간, 60분이 소요되는데 만장굴 안의 길이 거칠어서 조금은 지체됩니다.

관광객이 많아서 우리만 빨리 갈 수 없으며 서두르면 오히려 낭패를 볼 것입니다. 발목에 부상을 당할 수 있으니 편안한 운동화를 권합니다. 어두워서 키가 큰가 작은가 알 수 없으니 하이힐은 신지 마세요.

잠시 낮은 지역의 공기로 호흡해 보시고 키높이 구두가 키만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 조금 높은 곳의 맑고 신선한 공기로 숨쉬게 해준다는 고마움을 느끼는 기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총길이 8,928m중 관람이 가능한 1km 구간 종착점에 다다르니 커다란 탑모양의 바위가 우리에게 인사를 합니다. 이곳은 조도를 조금 높게 했습니다. 몇 장 사진을 찍었습니다. 먹는것이 남는 것이고 여행에서 남는 것은 사진과 영수증뿐입니다.

제주도 섬이 생겨나기 아주 오래전에 독도가 생성되고 그 옆에 울릉도가 자리했다고 합니다. 울릉도와 독도는 형제자매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전문가의 판단은 크게 다릅니다. 그래서 자료를 정리하여 하나의 표로 만들어서 활용하고 있습니다.

2012년 지방행정연수원 1년간 장기연수기간중에 여행다닌 할아버지 독도, 아버지 울릉도, 손자 제주도를 생각한 글입니다. 흔히 울릉도→독도라 순서대로 말하고 이어서 제주도를 언급하겠습니다만 이 글에서는 태어난 순서로 제목을 정했습니다.

 

[독도#울릉도#제주도]

웅장한 파도가 모인곳에

460만년전 어느 날에

아주 큰 성인이 나타나 말했다

'바다가 갈라진 후에

큰 바위가 그 속을 채우고 나면

다시 잔잔한 바다가 되리라'

검은 바위섬 독도

제주보다 넓은 주추돌위에

독도의 몸을 세우고

백록담보다 작은 모습만

그 얼굴로 보여준다

동해바다 물결보다 겹 많은 파도는

밤과 낮, 겨울부터 다음 겨울까지

변하지 않는 독도의 얼굴을 향해

달려들고 때리고 부서진다

몸이 부서져야 다시 태어나는 파도

몸이 가루가 되어 자신을 지키는 바위

파도와 바위가 만들어낸 섬

태양을 만나는 검은섬

그 검은 바위 위로

사람만큼 많은 갈매기 가족이 모여

성인의 말씀을 듣는다

다시 210만년을 기다려 만든 제단

성인봉이 서쪽에서 보인다

지금도 바다다

130만년이 지난 어느날

한반도 남쪽바다에

폭음이 일고

며칠후 큰 땅이 나타났다

성인은 말했다 '탐라’

 

이렇게 시를 한 수 지었답니다. 시는 상상일 수 있지만 사실은 현장의 설명일 수도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서 시를 착안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전문가 시인이거나 시심이 깊거나 시적 표현에 능통한 작가들만 가능합니다.

시인의 시를 보면 어떤 현상을 글로 이처럼 아름답게 표현하는구나 공감이 가곤 합니다. 난해한 시는 작가의 마음속에 다양한 생각이 겹치는구나 생각해 봅니다.

시인의 시를 보면서 수필이나 기행문 같은 글을 짓기는 조금 쉬워 보이는데, 보이지 않는 것을 대상으로 시어를 찾아내고 발굴하고 예쁘게 꾸미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인가 누군가가 편지에 '이강석 시인'이라고 보내오면 가슴이 콩쾅거립니다. 무슨 시인이라고. 수필가도 어려운 표현인데 이름 앞뒤에 '시인'이라는 말을 쓸 수가 없겠다 생각합니다.

그래도 어느날 아침에 창밖을 보면 그 틀과 나무와 바람과 구름을 짧은 글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아직도 짧으면 시이고 조금 쓰면 수필, 다녀와서 기록하면 기행문이라 자평합니다.

o 비자림 숲

다음에 도착한 곳이 비자림입니다. 원시림이 자리한 곳입니다. 마침 어제 올린 페이스북을 보고 경기일보 김창학 국장이 전화를 했습니다. 이들 부부도 어제 제주도 회의에 와서 참석하고 연가를 낸 오늘과 내일을 제주도에서 보낸다 했습니다.

안내판과 간판조차 아름답고 자연스럽습니다. 꾸미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원시림이 잘 정돈된 신발장같이 차곡차곡 쌓여있습니다. 아마도 육지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섬마을의 비경이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은 큰 행운입니다.

[인터넷 검색찬스] 제주 제주시 구좌읍 비자숲길 55/ 064-710-7912 / http://www.visitjeju.net

1993년 8월 19일 천연기념물 제374호로 지정되었다. 문화재청에서 소유하고 있다. 구좌읍 평대리에서 서남쪽으로 6km 되는 지점에 448,165㎡ 면적에 500∼800년생 비자나무 2,570그루가 밀집하여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단순림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이다. 나무의 높이는 7∼14m, 지름은 50∼110cm, 수관폭은 10∼15m에 이른다.

이곳에 비자나무 숲이 이루어진 유래는 마을의 무제(巫祭)에 쓰이던 비자 종자가 사방으로 흩어져 자라 식물상을 이룬 것으로 추정된다. 예로부터 섬의 진상품으로 바쳤던 비자나무의 열매인 비자는 구충제로 많이 쓰였고, 음식이나 제사상에 오르기도 하였다. 지방분이 있어 비자유를 짜기도 하는데, 기관지 천식이나 장 기능에 효험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무는 재질이 좋아 고급 가구나 바둑판을 만드는 데 사용되어왔다.

숲 가운데에는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최고령목이라고 하는 800년 이상 된 비자나무가 있는데, 높이 25m, 둘레 6m로 비자나무의 조상목이라고도 한다. 나도풍란, 콩짜개난, 흑난초, 비자란 등 희귀한 난과식물도 자생하며, 이외에도 천선과나무, 자귀나무, 아왜나무, 머귀나무, 후박나무 등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있다. 1992년 이곳에 산책로를 만들었다.

부부가 손을 잡고 걸었습니다. 아내의 손이 따스합니다. 제주도 날씨가 포근하기도 하지만 조금전 1km 만장굴을 걸어서 온몸에 따스한 피가 퍼지고 있나 봅니다.

여행은 행복을 쌓아 올리는 과정입니다. 여행경비를 지출하는 만큼 여행의 과정에서 부부, 일행, 동료와 함께하면 커다란 얻음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비자림 산책로는 여러경로를 구성하므로 일정과 체력과 마음에 맞춰서 코스를 정하면 됩니다.

부부는 좀더 많은 곳을 가보고 싶어하는 스타일이니 짧은 길을 돌아 내려왔습니다. 그래도 조금전 만장굴 왕복 40분 정도만큼 비자림의 나무길, 피톤치드의 산책로를 다녀왔습니다.

나가는 길 776m, 돌담길 440m, 주차장 336m라는 표현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단순한 생각으로 만든 등산로 안내판에는 가끔 0.015km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15m라고 하면 될 일을 이렇게 어렵게 말합니다.

그래서 기고문에도 등산로 담당자들은 어렵게 표현하기 보다는 척 보면 알도록 표현해 달라 부탁하였습니다.

실제로 우리에게 첨단장비랄 수 있는 네비게이션은 시내도로의 경우 150m전방을 알려줍니다. 고속도로의 경우 출구 900m부터 무지개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길을 아는 사람보다 네비게이션의 신뢰도가 높습니다. 자신은 믿지 못하고 있으며 네비게이션을 따라가는 것이 유리하다는 점은 알고 있습니다.

 

o 연수시절 知人(지인)

2007년 공무원으로서 장기연수를 받았습니다. 당시에 '수지침'을 배웠습니다. 힐링의 시간이었습니다. 2시간 동안 자신의 건강에만 몰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수지침 조진옥 강사님의 핸드폰은 지금도 저장되어 있고 아내가 지인을 통해서 강사님이 제주도에 거주하시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골프장내 매점을 운영하신다고 합니다. 제주 10년차 올해 71세의 사업가이십니다.

아름다운 골목길을 달렸습니다. 이쪽은 농촌, 산촌지역이라서 귤귤귤 합니다. 가가호호 귤밭 사이에 집이 있고 집이 나온 후에 다시 귤밭이 나타나서는 노랑귤을 대굴대굴 매달고 여행자에게 인사를 합니다. 귤밭이 천지입니다. 하늘과 땅이 귤밭으로 보입니다.

몇 번 차를 세우고 귤밭을 촬영했습니다. 신혼부부처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실 사진찍기를 좋아하지 않고 아내 사진 찍어주기를 좋아합니다.

요즘에도 마스크를 쓰고 사진을 찍으니 얼굴이 다 보이지 않습니다. 후대에 자손들은 왜 선대에 마스크를 쓰고 사진을 찍었는가 궁금해 할 것 같습니다. 2020~2022년말까지 코로나가 유행했고 2023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방역당국은 보고 있답니다.

지인의 골프장 매점은 오전에 근무하고 오후에는 무인으로 운영됩니다. 골프라는 것이 아침일찍 시작해서 오후에는 귀가하는 시스템이니 오후손님은 적다 합니다.

그래서 무인으로 가격표를 써두고 셀프로 계산하고 통장에 송금하고, 많이 필요하면 사장님에게 전화를 하면 7분만에 올라오신다고 합니다. 셀프매점이 통하는 대한민국은 선진국입니다. 우리 국민은 선진국의 문화시민입니다.

지난날 교육시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강사님은 2007년, 15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칭찬을 하십니다.

49세 장년이 64세 장년으로 세월을 지냈는데도 변화가 없다는 말씀은 아마도 목소리는 변하지 않고 표정과 자신감이 그대로인 것을 좋게 평가하시는가 봅니다. 어떤 이는 얼굴보다 목소리로 기억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o 성산일출봉

[기다리는 마음]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않고

빨래소리 물레소리에 귀를 기울이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외로워도 외로워도 님 오지않고

빨래소리 물레소리에 눈물 지으네 (엄정행)

 

아마도 제주도가 탄생할 당시에 엄청난 분화구가 하늘을 향해 내달린 곳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제주도의 한쪽을 담당하는 에너지의 현장으로 보입니다. 일출봉 정상은 다음번 여행의 일정에 넣기로 하고 우리가 검색한 식당에 주차를 했습니다만 오늘 휴일입니다.

1시가 지났으므로 다시 자리를 옮겨서 새로 지은 건물의 식당에 자리를 잡고 5만원짜리 통갈치를 주문했습니다. 잠시 후에 사장님이 오셔서 7만원짜리에 들어가는 갈치라고 보충설명을 합니다.

5만원 갈치가 없어서 큰 놈으로 구웠다며 왕소금 서글거리는 갈치를 아내의 숫가락을 빌려서 스르르륵 긁어내는 시범을 보입니다.

흰 살이 불쑥 튀어나오는 순간입니다. 제주에서만 가능한 갈치 쑈입니다. 돌문어도 맛있고 함께 나온 김치조차 입맞에 맞습니다. 여행의 맛입니다. 서비스로 사이다를 한캔 주셔서 시원하게 마셨습니다.

새벽부터 영업을 시작하신 사장님은 점심 1시가 지나면 셔터를 내립니다. 오후 장사는 없습니다. 멋지게 사시는 분이라 봅니다.

이제 성산일출봉 인근에 도착했습니다. 정상까지는 거리가 있으므로 쉽게 도전하지 못합니다. 만장굴 왕복운동으로 이미 1만보가 넘었으니 체력을 비축하기로 하고 사진찍기에 몰두합니다.

아이스크림이 특별하다 해서 맛을 보았습니다. 땅콩가루가 듬북 들어갔습니다. 가격은 쎈편입니다. 아이스크림 1개에 4,000원입니다.

 

o 천지연 폭포

[인터넷] 제주 서귀포시 천지동 667-7

길이 22m, 너비 12m(물이 많을 때), 못의 깊이 20m. 조면질(粗面質) 안산암으로 이루어진 기암 절벽에서 세찬 옥수가 떨어지는 경승지이다.

 

폭포 일대는 뛰어난 계곡미로도 제주에서 손꼽히는 곳인데, 이 계곡에는 아열대성·난대성의 각종 상록수와 양치식물 등이 밀생하는 울창한 숲을 이룬다. 특히 이곳에 자생하는 아열대성 상록수인 담팔수(膽八樹) 몇 그루는, 이곳이 담팔수의 북한계지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희귀시되어 천연기념물 제163호로 지정되어 있고, 그 밖에도 가시딸기·송엽란(松葉蘭) 같은 희귀식물들이 분포하고 있어 계곡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379호로 보호되고 있다.

식물뿐만 아니라, 폭포 아래 물속 깊은 곳에는 열대어의 일종인 무태장어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열대어의 북한계지가 또한 이곳이라는 사실이 중요시되어 천지연폭포는 ‘제주도 무태장어 서식지’라는 명칭으로 천연기념물 제27호로 지정되어 있다.

두 줄기 폭포입니다. 비가 많이 내리면 줄기는 늘어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침 폭포수 쪽으로 다가가는 돌이 놓여있습니다. 논개바위 의암처럼 약간 돌출되어 있습니다.

그리스 파르테논신전 입구의 대리석이 인파의 발길에 닳아 움푹 패인 것을 보았습니다만 이곳 천지연 폭포를 바라보는 바위돌 역시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취가 담겼습니다.

바위가 숫자를 다 안다면 대략 10억명이 다녀갔을 것입니다. 1년에 100만명이 왔다면 지난 100년간의 세월을 지내야 10억명 관광객을 기록할 수 있을 것이군요. 어둠이 깔리는 시간임에도 관광버스 여러대가 주차해있고 승용차도 빼곡합니다.

올라가는 길이 대략 900m가 넘을 것인데 바닥은 검은색 평평한 돌판을 깔아서 걷기에 편안하고 제주도지사님과 서귀포시장님으로부터 대우를 받는 기분이 듭니다.

서귀포시장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이처럼 편안하고 깔끔한 입장로를 만들었을까요. 물론 공무원들이 고생을 했고 이런 좋은 기획을 했다고 칭찬하는 것은 일종의 직업적 선택일 것입니다.

쉼없이 달려오는 폭포의 풍광을 배경으로 여러장 사진을 찍었습니다. 신혼부부가 된 듯한 기분으로 촬영하고 찍히고 다시 찍었습니다. 내려올 때는 오른쪽 길을 택했습니다.

여행이란 여러곳을 다니는 것이니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가기 보다는 가급적 다른 길을 택하고자 노력합니다.

어둠이 깔리자 시청 공무원이 준비한 다양한 사진촬영 명소가 야간용으로 변모하면서 초저녁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또 다시 나이든 '신혼부부'는 여러장 사진을 찍었습니다.

천지연 폭포를 내려오는 길은 마치 조금전에 떨어진 폭포수를 데리고 다음 여정으로 가는 느낌이 듭니다.

어느 시인의 시에 보니 함께 놀던 영희와 철수가 늦은 밤 휘영청 뜬 달을 바라보며 집으로 갑니다. 영희는 달데리고 집으로 가고 철수도 달과 함께 귀가하는 모습을 시로 그렸습니다.

정말로 우주는 자신이 중심입니다. 나를 중심으로 우주가 돌고 있습니다. 그러니 달조차 영희와 철수를 따라갑니다.

1960년대 교과서에 나오던 영희와 철수는 이제 80세가 넘은 노인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학생들이 영희와 철수를 배우고 '바둑아 놀자'를 읽은 후에 60세가 넘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은 물처럼 바람처럼 흘러가는 것이니 옛 노래를 인정할 수도 있겠습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은 못 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얼시구 절시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화란춘성 만화방창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차차차 차차차

 

이런 가사와 저런 노래를 부르는 것에 대해 젊어서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아마도 이처럼 부정적인 느낌을 갖게 된 것은 새마을운동 때문인가요.

노는 사람 없는 마을, 노는땅 없는 마을, 노름꾼 없는 마을을 만들겠다는 새마을운동에서 젊은이가 노는 것은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폭넓게 생각해보면 일하다 휴식을 하고 힐링도 하면서 열심히 일하자는 부분적인 표현을 하는 노래로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오늘이 미래의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니까요.

스스로 걸어서 한라산에 오르고 성산일출봉 정상에서 호연지가, 야호를 외칠 수 있을때 여행을 하고 등산을 하고 부부가 손잡고 내달리자 말하는 것이라 봅니다.

낮에 여러가지 음료와 음식을 배불리 먹었으므로 저녁식사는 생략하기로 하였습니다. 골프장 지인께서 주신 맛있는 강정을 3개 먹고 물마시고 그렇게 저녁을 맞이했습니다.

어제저녁에는 갈치에 소주 한 병을 마셨지만 또다시 장거리 운전을 해야하니 오늘은 음주를 생략하기로 합니다.

숙소가 있는 건물의 지하 차고에는 경차자리만 하나 남았습니다. 우리 빌리카는 경차와 중형차의 중간입니다. 어렵게 여러번 움직여서 주차를 하고 내일아침 승차시에는 절대로 조수석 문을 열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문옆 기둥에 긁힐 수도 있음을 스스로 마인드 콘트롤 했습니다.

숙소는 넓지 않아도 아늑하고 뜨거운 물이 펑펑, 펄펄 나오니 고마운 일입니다. 2달전부터 준비하고 마련해온 여행 짐을 모두 펼치고 다시 정리합니다.

아내는 내일 아침에 입을 옷을 내어놓고 이미 입은 것들은 봉투에 담아서 가방 아래쪽으로 배치합니다. 여행의 기본수칙입니다. 필요한 물건은 다른 가방에 담아서 등에 메거나 허리에 착용합니다.

이제 내일 아침부터 한라산을 구경하고 다시 제주공항으로 가서 저녁을 먹고 비행기를 타면 김포공항에 도착할 것입니다. 2박3일이 적당합니다.

1박2일은 오며가며 바쁘기만 하고 3박으로 가면 지루할 수 있습니다. 적당한 길이와 거리를 다니는 2박3일 여행의 2박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o 3일차 아침

인터넷 검색으로 맛집을 찾았는데 막상 걸어가서 골목을 누비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겨 차에 싣고 네비양의 길안내를 받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해장국집을 찾아서 주차를 하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메뉴판을 보니 조금전까지 우리가 찾은 집의 바로 옆 식당에 들어와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찾아낸 식당의 주메뉴는 돼지고기 감자탕 계통인데 우리가 자리잡은 식당은 소고기 해장국입니다. 일단 이집 식당앞에 주차를 하였고 들어와 자리를 잡았으니 다시 나갈 수도 없는 일입니다.

평생 매일 3번을 먹고 1년 1,000끼니 정도 중에서 30끼니 정도는 사먹는 인생입니다. 그러니 더이상 메뉴, 식단 결정에 망설임이 필요하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지금도 '자장면#짬뽕'의 틈새 골목에서 고민, 갈등, 번뇌를 합니다. 고민해서 선택한 자신의 메뉴이지만 막상 음식이 나오면 상대편의 그릇이 멋지고 음식이 먹음직해 보입니다. 내 앞에 놓은 그릇과 그위에 담긴 음식은 초라해 보이곤 합니다.

그러니 마음먹은 식당이 아니어도, 원하는 메뉴가 아니어도 한끼를 먹게 된 것에 감사하고 부처님께 감사드리고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신 자연과 농어민과 유통상가의 종업원, 사장님께도 감사해야 합니다. 아마도 유통상인에게 음식을 먹게 해준 것을 감사표현한 것은 희귀사례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행복한 밥상을 먹은 부부는 3일차 계획대로 사계해안으로 달렸습니다. 해안선 끝까지 달려간 해안에는 큰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역시 제주도에 온건 맞습니다.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강력합니다. 옷이 펄럭이고 아내의 머리카락이 얼굴을 감싸며 흘러갑니다. 사진 몇장을 찍었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페이스북 친구 천현우 군을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서귀포시청 안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고 10분 지연되어 도착하였습니다.

차를 주문하고 과자 하나를 먹었습니다. 천 군은 페이스북 친구이고 경기도청 현직 사무관, 수원시 의원, 사회단체 활동가와도 소통하는 인물입니다.

 

[천현우님의 글입니다.]

오늘은 11월 10일 목요일에 아주 특별한 만남을 가졌는데 바로 경기도 수원에서 오신 이강석 대표님을 부인과 함께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렇게 최남단 제주도 아름다운 서귀포시 시청내 카페에서 차 한 잔 하면서 인사드리고 기념사진 촬영하였습니다.

따뜻한 말씀을 해주신 대표님 시간 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음 기회가 주어진다면 제주도 오셨을때 식사나 차 한 잔 같이하겠습니다. 수고 많이하셨습니다.

진실하고 멋진 청년을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SNS는 사용자 간의 자유로운 의사 소통과 정보 공유, 그리고 인맥 확대 등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생성하고 강화시켜주는 온라인 서비스를 의미합니다. 영어로는 ‘Social Network Service’입니다.

좋은 점은 다양한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빠르게 정보를 나눌 수 있는 것이고 나쁜 점은 개인 정보가 범죄에 이용될 수 있고, 거짓 정보나 근거 없는 소문이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전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주목 官衙(관아)에서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오래전에 관리들이 근무했던 건물이라는데 정말로 이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을까 회고해 보았습니다. 김천시청 청렴강의 때 그 사례를 설명한 바 있습니다.

김천시의 청백리 이약동 선생님은 여러 벼슬을 하셨는데 1470년에 2년10개월간 제주 牧使로 일하셨습니다. 제주도에 부임하니 관리들이 곡식과 소금을 축냈으므로 그 연유를 물으니, 쥐가 먹어서 없어졌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에 그들의 입안에 소금안 한웅큼씩 먹여서 벌을 내렸습니다.

白鹿潭(백록담) 산신제를 지내기 위해 백성들이 제물을 지고 정상까지 올라가다가 다치거나 사망사고가 발생하므로 백성의 안전이 우선이라 생각하고 산천단을 한라산 중턱 아라동 현 위치로 옮기도록 하는 선정, 민본행정을 베풀었습니다.

牧使(목사)로서 소임을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체의 이임 선물을 받지 않고 의복을 포함하여 모든 기물을 반납하고 말을 타고 성을 나와서 항구로 가던 중에 손에 든 말채찍을 발견하고, 다시 돌아가 성루에 걸어둡니다.

이를 백성들은 掛鞭岩(괘편암)이라고 훗날에는 돌에 새겼습니다. 후에 오는 관리들이 이약동 목사님의 청렴함을 배우라는 취지였을 것입니다.

말도 반납하고 배를 타고 나왔을 때 광풍이 불어서 배가 빙빙 돌기만하고 앞으로 나가지 못하니 이약동 선생은 “나는 사리사욕을 취하지 않았는데 우리 중에 누군가가 부정을 저지른 것 같다.”고 말합니다.

이에 관원이 백성으로부터 목사님께 드리는 금 갑옷을 받았다며 미리 아뢰면 받지 않으실 것 같아 배에 실었다 하니 이약동 목사는 ‘백성의 정성은 알았으니 금갑옷을 바다에 던지라!!!’하여 그대로 행하니 파도가 잠잠해지고 배가 앞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후대에 백성들은 이곳 바다를 投甲淵(투갑연)이라 부릅니다. 목사님의 청렴함을 후대에 기리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선생은 76세에 낙향하니 비가 새는 초가집 한 채, 아내에게는 쪽빡 하나와 질그릇 하나, 아들에게는 시 한 수를 지어 遺産(유산)으로 주었다합니다.

세상에, 밀리온 셀러 앨범, 소설 저작권도 아니고 음원도 아닌 시 한 수를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이처럼 훌륭한 목사님이 이곳 관아에서 근무하였으니 이처럼 단아한 정원에 잘익은 귤이 실하게 매달려있고 관광객조차 귤을 따는 이가 없는 것은 이약동 선생의 청렴함을 후대에 자자손손 면면히 이어가는 것인가 생각해 봅니다.

 

o 관음사#이상한 변호사#우영우

이렇게 서귀포 일정을 마친 부부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영상을 통해 만난 바 있는 관음사로 향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23교구본사입니다.

반드시 오늘 이 시각에 만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뜻으로 그 시각에 우리는 이곳에 와 있습니다.

 

[관음사 홈페이지]

한라산 650m 기슭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23교구 본사 관음사는 제주의 30여 사찰을 관장하는 제주불교의 중심이다. 그 힘의 근원은 제주의 불교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제주의 여러 신화, 전설, 민담에 관음사를 괴남절(제주 방언으로 관음사), 개남절, 동괴남절, 은중절이라고 민간에 유포되어 전해온다. 고려성종때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등람』에 관음사의 기록이 남아있으며, 조선시대에도 존재했던 사찰이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러다 유교를 국가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의 지배자들이 1702년 이형상 목사에 의해 제주 지역 사찰이 전부 훼철되면서 관음사도 사라지게 되었다.

200년의 명맥불교를 유지하다, 지난 1909년 안봉려관 스님에 의해 창건되었다. 스님은 지역의 반대에 부딛치는 어려움 속에서도 해월굴에서 3년간 관음기도를 드리며 법당과 요사를 완공하기에 이른다. 뒤이어 통영 영화사 등지에서 불상과 탱화를 모셔와 여법한 사찰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관음사 미륵불 앞에서 오늘의 108배를 올렸습니다. 짧은 요가 방석 2개를 겹치니 발바닥은 중심잡기에 편리하고 두 겹이 된 부분에 무릎이 닿으니 폭신함에 연골을 보호받는 느낌입니다. 땀이 날 정도의 속도로 절하기를 마친 후 주변을 돌아보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관음사 입구에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의 중요장면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주지스님과의 대화, 스님들이 경내를 청소하는 모습 등이 담겨있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한번 가서 보고 싶다 마음 먹었는데 그 소원이 오늘 이뤄지고 있습니다.

 

 

대웅전에서 9배를 하고 나한전에 올라가서 이러저리 살펴보았습니다. 수많은 얼굴의 표정이나 느낌이 같은 듯 다른 것은 마음이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인가 봅니다. 그리고 석공들의 작업 시점 심성이나 상태, 그리고 조금은 달리 조각을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석공 작업수칙이 있다고도 합니다.

마침 젊은이 2명이 정성을 다해 3배를 올리기에 참으로 착한 아들이구나 생각했는데 대화를 들어보니 중국어인듯 느껴집니다. 외국어는 못해도 일본어와 중국어, 영어와 프랑스어, 스페인어와 독일어는 구분합니다. 중국이나 일본의 젊은이들은 진정으로 부처님께 절하고 소원을 비는 것 같습니다.

일정상 가파도에 가고 싶었지만 시간을 내지 못했습니다. 0.874㎢, 126호에 227명이 사시는 제주의 섬 중 하나입니다.

대략 1시간 간격으로 배가 드나드는 관광지이고 식당도 여러곳에 있습니다. 계획, 일정상으로는 가파도 용궁정식을 찜했습니다. 5만원에 2인이 맛있게 먹는다고 광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부는 供養(공양)을 합니다. 관음사 경내에서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저만치 한켠에 자리한 공양간에 앉았습니다. 밥과 국, 반찬, 과일을 주십니다. 차분히 천천히 깔끔히 먹고 신랑이 설거지하였습니다. 밖에 나오면 남편이 잘하는 척 하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입니다.

관음사를 나올 때 폭포길에서 그랬던 것 처럼 오른쪽 길을 택했습니다. 부도탑이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관음사를 중건하고 지켜오신 고승의 사리를 모신 곳인 듯 보입니다.

여기에서 긴 세월의 흔적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위에도 이끼가 끼고 흰 바위가 검게 변하는 세월이 이곳 부도탑 주변에서도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이제 도깨비도로를 만나러 가야 합니다. 한라산 중턱으로 넘어가는 길이 이어집니다. 아, 11월입니다. 제주도에서 가을이 왔습니다. 아름다운 단풍길을 달리고 달렸습니다.

바쁜 듯 뒷차가 달겨들면 여유로운 길에서 선행하라 양보를 하면서 단풍과 만화방창, 경치를 즐겼습니다.

말 그대로 드라이브 코스입니다. 연속되는 S코스길을 운전 연습하듯이 돌리고 돌려서 도깨비도로에서 잠시 빌리카의 기어도 빼보고 다시 달려서 이런저런 관광명소를 돌았습니다. 청년들이 벽화를 그려서 유명세를 탓던 골목길은 이제 시청예산이 삭감되었는지 흔적이 별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다시 달리고 달려서 제주도의 해안가에서 주차하고 바다를 바라봅니다. 저멀리 어선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아파트 10개동보다 큼직해 보이는 크르주선이 우뚝하니 바다를 누르고 있습니다.

海不讓水(해불양수, 바다는 어떠한 물도 사양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포용해야 함을 이르는 말라는 말)는 바다가 물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봅니다.

역시 바다는 크루즈 선도 받아들여서 품어내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아파트 10개 동보다 커 보이는 배를 바닷물 한 줌처럼 안아들고 있는 바다가 존경스럽고 경외스럽습니다. 엄청난 무게와 에너지를 견디는 바다는 오랜 세월동안 바람과 파도를 통해 단련된 힘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용두암에서 자연의 신비를 보았습니다. 아마도 짧은 지식으로 보건데 땅속의 용암이 분출하면서 용머리 형상의 바위를 형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꽃처럼 피어오른 용머리 형상의 암석입니다. 용두암입니다. 사진을 찍어야만 하는 풍광입니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야 건너편 해안에 자리한 용두암을 친견할 수 있습니다.

이틀 동안 돌아다닌 거리를 환산해 보아야 합니다. 빌리카의 계기판을 첫날에는 촬영했는데 반납하면서 사진찍기를 놓치는 바람에 이틀간 빌리카의 거리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빌리카에서 빌린날 잔량과 만탱크 차이를 제하면 주유비 50,000원이니 거리를 계산해 보겠습니다.

50,000÷1720원=30리터, 1리터에 12km계산하면 360km를 주행하였습니다. 제주공항에서 성산일출봉으로 달려갔다가 서귀포시에서 숙박하고 다음날 사계해안을 거쳐서 다시 서귀포를 지나서 관음사를 지나 제주공항으로 돌아온 거리입니다.

 

[전문가 조언]

여행의 백미는 일주이다. 일주는 영화의 예고편과 같아서 섬에 대한 전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고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언제든 멈춰서 원하는 만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제주도 일주는 많이 사람들이 꼽는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다. 무엇보다 도전 난이도가 별 1개로 매우 낮아서 누구나 시도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섬이지만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총길이가 부담될 정도로 길지 않아서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일주가 가능하다.

제주도 한 바퀴 거리는 얼마나 될까? – 제주도 해안도로 길이는 220km이다. 따라서 차를 타면 2시간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어 당일치기가 가능하다.

단, 일주도로는 176km로 훨씬 짧다. 반면에 자전거길은 260km로 한 바퀴 도는데 16시간 이상 소요되어 1박 2일 일정으로 무난하다. 걷는 코스도 유명하지만 안전상의 문제가 있어 가급적 혼자 걷는 것은 피해야 한다. 따라서 편안하게 바다를 구경하며 한 바퀴 도는 것은 차로 해안도로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다.

제주도 면적은 서울보다 더 클까? – 제주도는 서울의 약 3배로 훨씬 크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 홍콩, 괌, 사이판, 몰디브보다 더 큰 섬이 제주도이다. 반면에 인구는 70만 명으로 면적에 비해 적은 편이다.

제주도 한 바퀴가 220km이니 이리저리 140km를 더 돌아다녔습니다. 차량을 반납하는 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차가 빌리카에 진입하자 센서에 차 번호가 뜨고 사무실에서 젊은 담당자가 나와서 차량을 받아줍니다. 쓰레기는 그냥 두라하는데 우리가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짐을 챙겨서 버스에 오르니 금방 떠나서 17분 후에 제주공항에 내려줍니다. 어제아침에 승차한 그 장소에 내리니 5번출구로 제주공항에 들어갑니다. 보딩타임이 많이 남았기에 창구에 가서 앞시간으로 당겨달라 청했습니다.

부부 자리를 떼어놓습니다. 3일간 붙어다닌 부부이니 잠시 冷却(냉각), 冷淡(냉담)의 시간을 가지라는 의미인가요. 신분 확인은 그제 김포공항에서 정맥인식을 하였으므로 주민등록증을 꺼내지 않고 손바닥을 기계에 대는 것으로 대체했습니다. 재미있습니다.

기계는 어렵지만 알면 쉬워지고 친숙해 집니다. 신용카드가 새로 나왔을때는 어려웠지만 이제는 카드 한 장이면 대한민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문제 없습니다.

매월 카드 막는 것이 힘들어서 불편함(?)이 있을 뿐 평소의 카드쓰기처럼 행복한 일도 흔하지 않습니다.

 

o 김포공항 귀가

우리의 비행기는 50분을 날라#올라서 김포공항에 안착했습니다. 이제 긴 여정의 다양한 여행 일정 중 마지막 임무는 우리 차를 다모임 주차장 사장님으로부터 받아내는 일입니다.

첫날 공항을 빙빙 돌면서 어렵게 아이 어린이집 보내듯이 맡긴 차를 10시에 받겠다고 하였지만 제주에서 일정을 줄이고 17:05에 보딩하여 17:40분경 이륙하여 김포에 내렸습니다.

우선 푸드코트에 가서 아내는 김치찌개, 신랑은 순두부찌개를 매콤하게 먹었습니다. 낮에 관음사 공양을 하였으니 조금은 심심하였던 음식이었고, 이제 공항에서 주방장이 맘대로 양념을 넣은 속세의 음식을 마주하니 기분이 업되는 느낌입니다.

당초 계획대로 10시에 김포공항에 내렸다면 아들을 만나서 함께 숙소에 가서 선물도 주고 사는 모습도 살피고 살림을 챙길 예정이었는데 일찍 김포공항에 내리니 서로 시간이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저녁만 먹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아들을 만나서 아들집에 가서 이것저것 챙겨주려 했지만 그날을 다음으로 미뤘습니다.

저녁 식사중 차량을 받기 20분전에 전화를 하니 6번 게이트 앞에 있는 매점을 조금 지난 자리가 좋겠다고 합니다. 짐을 끌고 나가서 기다리니 다시 전화가 와서 차를 받을 수 있는가 확인합니다. 주차단속을 하는 곳이라서 미리미리 체크를 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차는 부천, 인천방면으로 밤길을 달려서 서해안고속도로를 발견하고 이내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동수원으로 들어서서 집에 안착했습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보람찬 부부여행, 결혼기념일 제주도 여행을 마쳤습니다.

이름을 알 수없는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집에서 출발하여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식사하고 비행기타고 제주공항에 내려서 식사하고 택시타고 숙박하였습니다.

평온하게 잠을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나 이리저리 차를 몰아서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다시 숙소에서 쉬고 또 달리고 주유하고 한라산 단풍과 절경을 감상했습니다.

부부의 결혼기념 여행을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가까운 시일에 저가항공을 타고 제주도를 다시 방문할 것입니다. 이번 여행처럼 이러저리 시간과 느낌이 흐르는 대로 가서 관광하고 즐기고 힐링하는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감사드리고 여행내내 목적지 검색하고 지도 찾아내고 방향을 잡으면서 미소 띤 얼굴로 함께한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년 결혼기념일 6개월 이전에 또 여행갑시다.

여행은 행복의 길을 여는 공간이고 장소입니다. 부부가 사랑을 확인하고 신뢰를 키우는 기회입니다.

여행은 사랑이고 행복입니다. 감사합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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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오산#남양주 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