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수성고등학교는 이후 야생초 문예반, 경기도청 동문회, 화성시청 동문, 오산시청 동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 힘을 발휘합니다. 야생초를 통해 터특한 개성있고 독선적인 문학활동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름 시를 쓰고 수필을 정리해서 출간을 하고 있으니 수성고등학교에 무리하게 도전한 일이 참으로 대단하다 기억합니다.
그렇게 수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기 중앙대학교 국어국문과에 도전하였지만 낙방하였습니다. 영문과에 도전한 친구와 수학문제를 복기했는데 마지막에 풀이에서 2의 3승이 나왔고 둘은 그냥 2의3승으로 두어도 맞는 풀이인데 굳이 2*3을 하는 바람에 8이 아닌 6이라고 써냈습니다.
대략 20점을 배점한 문제였는데 풀이는 맞았지만 최종 답을 틀리게 적은 것이니 반을 주었거나 아예 0점 처리했을 것입니다.
둘 다 전기대를 낙방하고 다시 후기대를 준비했습니다. 동국대학교 국어국문과에 도전하였지만 낙방하였고 친구는 다른 후기대를 거쳐서 고려대에 편입하여 강서여중 영어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친구 정성명 군은 강서여중 교사가 되었고 결혼식에 온다 했지만 사정이 있어 오지 못한 이후 만나지 못했습니다.
학창시절 5번 반을 바꾼 바이지만 늘 같은 반이었고 키도 비슷해서 앞뒤 번호를 유지한 친구였습니다. 형님 정성광 선배도 수성 1학년때 3학년이었고 대학을 나와서 직장을 다니신다 들었습니다.
서글서글한 성품에 친절한 선배였고 같은 학교 선배 형을 둔 정성명은 학사일정이나 대학생활에 대해 많은 것을 아는 실력자였습니다.
재미있는 유머도 알려주고 대학이라는 곳의 모습도 간접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만 결국 방송대학교, 경기대학교 야간학부를 다닌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공무원 시험을 보았습니다. 도전한 것은 아니고 그냥 시험을 본 것입니다.
전기대와 후기대 사이에서 치뤄진 5급을류 공무원, 오늘날의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였고 3월부터 서울 광화문학원에서 재수생이 되어 학원을 재미있고 흥미롭게 다니던 중 5월16일에 화성군청으로부터, 화성군수님의 비봉면 공무원으로 발령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신체검사를 통해 군 복무대상자가 되었고 해안가라는 지역특성을 살려서 방위병으로 징집되었습니다.
지역특성이란 유포리에 해안선이 있으므로 무장공비나 간첩이 바다를 통해 침투할 수 있으니 지역에 거주한 장정을 방위병으로 징집해서 1075, 1076 무기고에서 근무시켜서 지역주민과 외부인사를 구분해서 그중에 간첩과 무장공비를 색출하라는 무시무시한 보초업무를 부여했던 것입니다.
농담으로 김일성이 또다시 남침을 하지 못한 이유는 전국 각지에 '왕대포'라는 선술집이 있었는데 이를 엄청 성능이 뛰어난 대포, 포부대로 알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의 이유는 대학생 가방을 든 방위병들이 낮과 밤으로 들락거리는데 그 가방속에 든 서류가 궁금해서, 정보가 부족해서 남침결정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알고 있지만 누군가 방위병이 그 문제의 대학생가방을 구매하여 도시락을 들고 출퇴근하였고 그런 위장술로 우리 국토를 수호했다는 것입니다.
김일성과 그의 군 간부들은 대학생 가방속에 문서가 아니라 도시락과 반찬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지금이라도 다시 땅속에서 꿈속에서 뛰어나올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당대의 방위들은 나름의 근무수칙이 있었습니다.
1. 나의 임무는 북괴군 격멸에 있다.
2. 나는 초전에 적을 박살 내겠다.
3. 나는 공격전에 선봉이 되겠다.
4. 나는 끝까지 진지를 사수 하겠다.
5. 나는 야간 전투의 승리자가 되겠다.
6. 나는 단 한발의 탄약도 아끼겠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