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현실의 거리감(3)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육군본부 훈령 제1호로 1976년 1월5일에 발령된 전투수칙이 있었지만 실제 근무자들이 생각하는 전투수칙은 조금 달랐습니다.

1980년 방위들은 나름의 철학적이고 구체적인 나름의 필승전략, 전투수칙을 외우고 다녔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전쟁 전중후를 구분하여 구체적인 역할을 정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전쟁 초기에는 뒷동산에 올라가서 도시락 뚜껑을 이용하여 북측의 군사레이더를 교란시킨다고 했습니다.

 

 

도시락 뚜껑을 들고 일제히 북쪽으로 향하면 레이더 전파를 흔들어서 우리측 정보를 파악하지 못할 것이라는 나름 과학적인 근거를 대고 있습니다. 레이더는 금속성 철판을 만나면 굴절할 것이고 그런 파장이 겹치면 정확한 정보의 분석이 어려울 것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 전쟁중에는 적 진지에 깊숙하게 침투하여 전차 바퀴에 불법 주차 스티커를 발부해서 꼼짝 못하게 한다는 전략입니다.

당시에 행정기관에 근무하는 방위들은 불법주정차 단속, 스티커 발행 등 다양한 업무에 종사하였으므로, 전쟁중에 적군의 탱크, 전차, 트럭등은 불법주정차를 할 것이므로 평소의 업무역할을 전시에도 그대로 반영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던 것입니다.

적군의 전차를 그자리에 세워둘 수 있다면 방위병 한명이 탱크를 이기는 것이니 이 전략이야말로 1당백, 1당천입니다. 실제로 적전차를 멈춰서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당대의 방위들은 호연지기,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동원예비군 훈련통지서, 이른바 징집 영장을 전달하는 자세로 적 전차의 발과 바퀴를 묶어둔다는 전략입니다.

다음으로 마지막 전략은 무겁습니다. 전쟁 후반기에는 적의 포로가 되어서 적군의 군량미를 축내는 전략입니다. 6.25전쟁이나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전처럼 전쟁은 후반부에 지루한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때에 방위들은 일부러 적군의 포로가 되어서 군량미를 축내자는 것입니다.

국제협약이나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포로에게도 군량미를 지급하는 것이니 포로가 많으면 그만큼 군량미가 우리측으로 넘어오는 상황이 될 것이로 이로 인해 적군의 군량미가 부족하면 전쟁을 계속할 추진력을 잃게되는 것입니다.

고도의 전략입니다. 2022년 최근에도 우리나라 실탄이 미국으로 가고 미국에서 혹시 우방국에 전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사를 봅니다.

계약조건에는 미군만이 쓰는 것으로 적었다 합니다만 실제로 우리가 수출한 탄약을 미군이 반드시 써야한다는 조건을 감독할 기구가 있을까 의구심이 듭니다. 말 그대로 전쟁통에 계약조건을 이행한다는 말이 성립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결국 전쟁은 군량미 싸움이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당대의 방위들은 국가수호를 위해 큰 전략, 멋진 그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 당시의 방위들은 전역이 아닌 소집해제가 되어 나이 60을 넘기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과정을 거쳐서 1981년 8월 10일부터 농민교육원에서 근무하였고 8급 승진 후 1984년 9월18일까지 장장 3년 8일간을 사업소에서 열정으로 일한 후에 1984년 9월19일에 대망의 경기도청 새마을지도과 서무담당이 됩니다.

바로 이 무렵의 무대에서 오늘 새벽의 꿈이 펼쳐졌습니다. 당시 8급 공무원으로서 구매, 급여, 서무를 담당했습니다. 논바닥 중앙에 자리한 사무실에서 5km를 달려 수원 매교동 소재 경기은행에 업무차 다니고 영동시장을 누비면서 구매업무를 했습니다.

통상 구매업무라하면 대기업에서 물품을 출납하는 권한있는 자리라는 느낌이 들겠지만 농민교육원 서무계 구매담당은 못, 철사, 망치, 깔판 등 생활용품, 신변잡기를 처리하는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영국제 랜드로바 짚차 15대 정도가 유니스프를 통해 농촌진흥청으로 배정되었고 이를 다시 전국의 농민교육원에 전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for every child, UNICEF] 유니세프는 1946년 ‘차별 없는 구호’의 정신으로 전 세계 어린이를 돕기 위해 설립된 유엔기구입니다. 유니세프는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직접 명시된 유일한 아동권리 증진 기관이며 1965년에는 노벨 평화상도 수상했습니다. 75년이 넘은 현장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적은 돈으로 더 많은 어린이의 생명을 살립니다. 각 나라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해 보다 효과적으로 폭넓게 어린이의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합니다. 약 190개 나라 및 영토 등 전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재난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긴급구호 사업을 펼칩니다. 재난 전에도, 재난 중에도, 재난 후에도 한결같이 어린이 곁을 지킵니다. 단 한 명의 어린이도 빠짐없이, 모든 어린이가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도록, 보건·영양·식수와 위생·교육·긴급구호 사업을 펼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유니세프는 전 세계 어린이를 지킵니다.

 

이 차량을 1982년에 만났습니다. 당시에 농민교육원에는 5680 랜드로바, 5829 포니 승용차, 2020 버스, 그리고 나중에 추가로 구매한 밴 등 4대가 있었지만 운전기사는 3명이었습니다. 그래서 농기계교관 중 시간이 되는 분에게 랜드로바를 운전해서 수원시내 업무를 보러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교관들은 자부심도 있고 강의시간도 있으므로 시내출장을 도와주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일주일 7일중에 6일을 출장해야 하는 상황에서 운전기사 수급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했습니다. 운전면허증이 있으면 저 랜드로바를 운전할 수 있습니까?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비로 운전면허에 도전하였고 용인, 안산, 의정부에 면허시험장이 건립되기 이전인 1982년에 인천 면허시험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면허시험 학원이 제공하는 봉고차를 타고 차안에서 김밥을 먹으며 새벽을 달려서 필기시험을 어렵게 통과하고 본시험인 주행에 들어갔습니다.

1톤 타이탄으로 시험을 보는데 코스는 1종보통이니 3가지입니다. S코스, T코스, 크랭크코스입니다. T코스는 공식대로 움직이면 되는 일인데 S코스는 정답이 없습니다.

 

운행 내내 선을 지켜야 하는데 말 그대로 S코스이니 이리 구불 저리구불을 지켜내기가 어려워서 많은 수험생이 '삑'소리와 함께 차에서 내려야 했습니다.

다음으로 주행은 2단출발, 4단 가속, 돌발, 비탈면 정차후 오르기 등이 있었고 이때에는 경찰관이 수작업으로 체크를 했습니다. 요즘에는 전자감응장치가 있답니다.

속도, 흐름, 돌발시 브레이크 잡기 등을 전자기기로 체크하니 공정하기는 하겠습니다만 과거의 수작업과는 거리감이 있는 기계음이라는 점에서 삭막함이 보입니다.

 

그런데 주행에서 실수로 4단 출발을 했습니다. 오른발로 주행페달을 밟고 왼발의 클러치를 예민하게 관리하니 시동이 꺼지지 않고 출발은 하였습니다. 4단 출발 후에 다시 2단, 3단, 4단으로 기어변속을 하였습니다.

"이 양반, 운전을 마음대로 하시네"

선탑 경찰관이 농담을 합니다. 하지만 시동은 꺼지지 않았고 가속구간, 급제동 구간, 그리고 비탈면 정차후 재출발을 거쳐서 신호대기, 마지막 구간 정차까지 시간내에 이동하였습니다.

초조한 기다림 후에 게시판에 이름이 올랐습니다. 종이에 쓴 게시인지 전자인가는 지금 기억이 없습니다만 여하튼 번호가 떠오른 것입니다.

 

일주일 후에 등기로 면허증을 받을 주소를 적어내고 신나게 신진자동차학원 봉고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고 일주일 후 받은 면허증을 여기저기에 자랑했습니다.

지금 그 면허증을 가지고 있다면 가보, 보물일 것인데 청년시절에는 그런 자료를 관리하는데 익숙하지 못했습니다. 방위소집 해제증도 어렵게 받은 보물 가치가 있는 신분증인데 분실했습니다.

 

그래도 공무원 관련해서는 공무원 응시원서를 빼고는 대부분 99%를 보관하였고 원본을 경기도청 행정자료로 기증하고 그 사본을 작은 소책자로 인쇄하여 관리하는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오늘 종이 한장인 이 자료는 100년 후에 나라의 보물이 될 수 있습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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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오산#남양주 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