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키보드로 글을 작성하고 계량을 하면 원고지 몇 매의 분량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쉽고 편하게 원고를 늘리고 글을 써서 세상에 자랑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오로지 출간을 통해서, 책에 의해서 독자에게 전파되었지만 오늘 날에는 책의 출간은 물론이거니와 SNS를 통해서 자신의 글을 훨훨 새가 날아 창공을 뚫고 나가듯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할 수 있다는 점도 대단히 유리한 강점인 것 입니다.
공직을 마치고 공기관에 근무하게 되면서 지난 40년 공직과 그 이전의 인생을 합해서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긴 세월동안 학교에 다니고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해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보낸 인생은 한마디로 차마고도였습니다.
차마고도는 중국의 교역로입니다. 차와 소금 등 소중한 물품을 말과 당나귀의 등에 싣고 보름, 한 달 동안 위험한 길을 걷고 산 정상을 지나서 새로운 나라에 가서 교역하고 그 곳에서 곡물, 직물 등 필요한 물건을 사 오는 과정을 차마고도의 여정이라 합니다.
그 길을 가다보면 봄도 있고 가을도 다가오며 비가 내리고 얼음과 그 위에 쌓인 눈길을 지나야 합니다. 특히 벼랑위 바위를 깎아 만든 협로에서 말과 나귀, 사람이 발을 잘못 디디면 200m이상의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됩니다.
아마도 물에 익사하기 보다는 떨어지면서 바위에 머리와 몸이 충돌하여 이미 사망한 후에 물에 빠질 것이라 봅니다. 그러니 인생도 그러하지만 공직의 길은 한발 엇디디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사라지는 ‘차마고도의 길’이라 제목을 정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책속에서 차마고도와 같은 어려움을 다 적어내지는 못하였지만 주변에서 어려움을 겪고 중도에 다른 길로 걸어간 선배, 동료, 후배들의 뒷모습을 많이 보아왔기에 책이름은 잘 지었다 자평합니다.
두번째 책은 기자#공무원#밀고#당기는#홍보이야기라는 별스러운 제목의 수필집입니다. 1988년 7급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경인일보 독점의 시대에서 경기일보, 기호일보, 인천일보가 함께 하는 지방지 4사의 시대를 담당자로 맞이한 해입니다.
1981년경 군부독재 시절의 허문도 비서관 등의 조치로 언론통폐합 이후 노태우 대통령 취임을 계기로 언론통제가 풀린 것으로 기억합니다.
인천에 본사를 둔 2개 신문사인 기호일보, 인천일보가 먼저 창간되고 경기일보는 1988년 8월8일 창간되었습니다.
기존의 경인일보는 경기일보와 경쟁관계가 되었고 그래서 송광석#고영권 언론보도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두번째 책인 두번째 책은 기자#공무원#밀고#당기는#홍보이야기를 검색해보니 제목 정도만 언급하고 있으므로 여기에 그 전말을 상세하게 언급해 두고자 합니다.
[천자춘추] 30년 ‘경기일보’ 1988~2018
1980년대 지방언론사는 이른바 ‘1도1사’였다. 하나의 道에는 1개 신문사만 둔다는 언론방침이었다. 그리고 1988년에 언론통제가 풀리면서 경기도와 인천지역에 인천일보(7월15일), 기호일보(7월20일), 그리고 경기일보(8월8일)가 창간되었다.
1973년 기존의 3개 언론사를 통합하여 경기신문으로 창간되고 1982년에 경기인천을 커버하는 신문사로 개칭한 경인일보와 함께 4개 지방 신문사는 지방언론 경쟁시대를 맞이하였다. 86아시안게임에 이은 88올림픽은 지방언론을 활성화하는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1988년 7월4일에 7급 공무원으로 문화공보담당관실(대변인실)에 발령을 받았다. 전임자는 경인일보 ‘1도1사’의 체제에서 일했고 발령 후 며칠간은 단순한 업무로 생각하고 자료를 정리하여 기자실에 전했다. 그리고 오후에 자료로 보낸 도정업무 내용과 전화로 불러준 ‘가십(gossip)’ 기사가 활자로 보도되는 것이 신기했다.
그런데 발령받고 서류 보따리를 풀기도 전인 7월에 기호일보와 인천일보, 8월에 경기일보가 창간했다. 숫자도 멋지게 1988년 8월8일에 창간된 경기일보 출입기자 두 분을 맞았다. 기존의 경인일보와 함께 지방언론 4개사의 ‘전성시대’가 시작된다.
특히 경인일보 S차장과 경기일보 G기자가 연출한 기사경쟁(지방과장 테이블 유리 파손사건)은 공직사회의 수범사례가 되었다. 당시 우리들(공무원)은 치열한 언론사 간 競爭(경쟁)과 特種(특종)과 낙종의 외나무다리를 오가는 언론 생태계 기자생활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언론의 중요성에 대한 생각은 깊어갔다.
그리고 30년이 흐른 2018년 7월2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재난상황실 취임식’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한반도 평화시대의 중심’을 주제로 임진각 평화누리에 준비한 취임식은 비가 내릴 경우 참석 도민의 불편을 염려하여 경기도북부청사로 변경했다.
그리고 태풍과 폭우 등으로 재난 우려가 깊어지자 7월1일 일요일 근무를 시작했다. 윤화섭 안산시장 취임식은 ‘시민과의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이름으로 준비되었지만 시청행사로 간소화했다.
두 분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광역, 기초자치단체장 취임식은 축소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출발을 위한 취임식을 준비하면 곧바로 언론을 통해 도민에게 전해진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미 단체장들의 ‘의미 있는’ 취임식이 축소, 취소되었지만 지향하는 바 그 콘셉트를 알고 이해한다. 언론의 역할과 기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방과장실 테이블 유리 파손사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경인일보 1도1사에서 1도 4사의 시대를 맞습니다. 그리고 송광석 차장은 평소대로 지방과 지도계에 도민 공지사항에 대한 묻고 답하기 형식의 보도자료를 요청합니다.
마침 홍보성과를 마련해야 할 입장이던 지방과 지도계에서는 깔금하게 자료를 만들어서 송광석 차장에게 제공하였습니다. 보도자료급은 넘치고 기획기사에는 당도하기 애매한 자료입니다만 그래도 이번주 목요일 문화면에 반판정도를 편집할 요량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생 경기일보사의 고영권 기자가 청내 여러 부서를 취재하는 발이 아주 빠른 시기였습니다.
그리하여 고영권 기자가 지방과에 방문하니 지도계장님은 조금전에 경인일보에 제공한 자료를 그대로 경기일보사 고영권 기자에게 제공합니다.
이를 받은 기자는 곧바로 본사 편집에 넘겼고 수요일자에 大書特筆(대서특필)합니다.
목요일자 석간에 이 기사를 내기로 한 경인일보 송광석 차장은 지방과 지도계에 달려가 항의를 합니다.
"나에게 준 자료를 다른 신문사에 주시면 안됩니다."
"경기일보가 수요일에 나고 경인일보는 목요일에 보도하면 되는 일이지요"
天下泰平(천하태평)으로 답하는 지도계장과 지방과장실로 달려가 같은 내용으로 항의를 합니다. 지방과장님도 금방 이해되지 않습니다.
당시에 행정은 누가 먼저하는 것이 중요하기 보다는 객관적이고 타당한 처분이 중요했습니다. 행정은 독점이고 언론은 경쟁인데 이런 매카니즘을 받아들이지 못했나 봅니다.
설명을 하다하다 해도해도 안되자 송광석 차장은 과장님 테이블에 있던 신문을 주먹으로 내리쳤고 테이블 유리가 산산조각났습니다.
정호승 시인은 흙으로 빚은 인형이 산산조각이 았어도 산산조각으로 살면 된다 했지만 유리는 다시 붙일 수 없고 가루를 모아서 붙여도 상처와 흔적은 남습니다.
이쯤 상황에 이르자 과장은 송광석 차장에게 사과했고 차장은 엄청난 상황에 자신도 놀라서 사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전해 들었습니다. 그 순간에 과장이 말했습니다.
당시의 지방과장은 다음 달에라도 군수로 임명될 수 있는 높은 자리였습니다.
"내가 사과를 했으니 유리값은 보상하시오"
차장은 그 자리에서 유리값을 지불했습니다.
이 사건이 도청내 전체에 번져나갔습니다. 흔히 마른 봄날에 들불처럼 번진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경기도청 사무관이하 공무원 모두는 언론사가 치열한 경쟁, 즉 特種(특종)과 落種(낙종)사이에서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출입기자들의 경쟁은 더 강렬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이후 7급 공보실 직원 이강석은 좋은 자료를 얻으면 해당과에서 다른 어떤 출입기자에게 이 자료를 선 제공하였는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양사 언론이 경쟁하고 가끔은 인천일보, 기호일보 기자가 아는 공무원을 도와준다고 중급의 특종을 때리기도 했거든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공무원과 기자의 밀고 당기는 홍보이야기는 점점 단단해지고 부드러워졌습니다. 이후 지방지 창간이 늘어서 한때 지방지 30개사라는 말이 나왔고 인터넷언론이 활성화되어 도처에서 기사가 써지고 기사의 내용이 연기처럼 도정 전반에 퍼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요즘에는 중앙정치를 일부 열정적인 언론이 리드하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정치인이나 관계자와의 인터뷰기사가 중앙언론, 중앙방송의 취재꺼리가 되기도 하고 국회에서 언급된 이들의 기사가 메인으로 부상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일들은 우리가 잘 몰랐던 SNS가 퍼지면서 우리를 어렵게 하는가 봅니다. 연예인, 정치인중에 인터넷 기사로 인해 광고가 중단되고 방송활동이 제지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이른바 'SNS공방'을 차리고서 정치에 대한 공방을 이어가기도 합니다.
정말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SNS는 민초, 초선의 정치인의 활동무대가 되고 새로운 직종이 생겨나면서 나홀로 방송이 전국에 유명해지고 식당을 칭찬하고 정치인을 헐뜻고 연예인의 길을 막기도 합니다.
더러는 평범한 일을 가지고 연예인을 홍보하는 경우를 보는데 이같은 일련의 홍보, 광고 과정을 우리는 인터넷 낚시라고 합니다. 그럴듯한 제목이나 사진에 이끌려서 다수의 네티즌을 끌어모으는 것을 인터넷 낚시라고 하고 거기에 참여한 네티즌은 낚였다고 평가하나 봅니다.
강과 바다에서의 낚시란 새우 한마리, 지렁이 반토목으로 큰 물고기를 잡아올리는 직업이거나 스포츠입니다. 떡밥을 뭉쳐놓은 낚시를 던지면 어부라 칭하고 2개의 바늘에 새우, 지렁이, 떡밥을 매달아 고기를 잡는 자를 조사라고 합니다. 그냥 물고기를 잡는 것은 생계형이고 멋지게 고기를 낚으면 스포츠맨이 되는 것이라 봅니다.
우리는 SNS를 이용하고 도움을 받습니다. 카카오톡이 하루 멈추자 식당이 손해를 보고 젊은이들은 큰 불편을 겪었습니다. 무료로 쓰는 SNS이니 손실보상,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우리는 SNS에 익숙해졌고 어느정도 중독증세를 보이는 중입니다.
하지만 그런 문명의 기술을 잘 활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나이들었다고 과거식으로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키오스크(Kiosk) 앞에서 버튼을 누르고 카드로 결재하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키오스크(Kiosk) : 공공장소에 주로 설치된 터치스크린 정보전달 시스템을 이용한 마케팅. 키오스크란 원래 옥외에 설치된 대형 천막 등을 뜻하는 말로 간이 판매대나 소형 매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공공장소에서 무인·자동화를 통해 주변 정보 안내나 버스 시간 안내 등 일반 대중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무인 정보단말기를 지칭하기도 하는데, 그 단말기를 활용한 마케팅이다.
어느 휴게소에서는 로봇이 커피를 타주는데 그 솜씨가 뛰어납니다. 로봇팔 앞에서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그 휴게소 인근을 지날 때면 그날의 커피향이 콧속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것도 역시 중독의 일종일 것입니다만 우리의 삶속에 이미 깊숙하게 들어찬 SNS의 다양한 역할을 이해하고 편안하고 슬기롭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