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을 공개하는 명함을 상상함

행정업무 서식에 '기타'와 '비고'란이 있습니다. 참으로 편리한 서식이고 오랜 기간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행정의 형식 중 하나로 봅니다. 대부분의 자료는 분류와 정리를 해서 작성하는 데 작업을 하다 보면 100개 중 한두 개로서 딱히 분류 항목을 정하기 애매한 경우가 서너 가지 발생합니다. 이들 자료는 기타 항목에 몰아서 집계를 하는 것입니다. 문서의 서식에서도 소속, 성명, 주소,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를 작성하고 나면 조금 남는 공간이 있습니다.

 

 

이를 비고란으로 설정하고 혹시 필요한 메모를 하도록 하는 것이 통상의 서식 구성 방식입니다.

 

다음으로 명함이 있습니다. 명함은 마음대로 만들 수 있습니다만 그 크기는 통상의 예에 따라 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여러 사람의 명함을 받아서 손에 쥐어보면 튀어나오는 명함이 있는데 이 분의 명함을 다시 보면 그냥 왠지 불편한 사람이 됩니다.

 

여러 장 명함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오히려 불편을 주고 세로쓰기 명함은 수첩에 붙여 정리할 때 자리를 정하기에 애매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 명함의 크기와 인쇄 방향은 통상의 경우를 따라 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네모의 양면이든 단면이든 내용을 편집하고 인쇄를 하는 것은 본인의 권한입니다. 오직 나만의 공간이고 자신을 최대한 멋지고 아름답고 훌륭하게 설명할 수 있는 홍보, 광고, 공보의 공간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만나면 자신을 소개하고 악수를 합니다. 요즘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주먹 악수를 합니다. 아예 악수를 하지 않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것이 예의에 맞는다는 생각도 합니다.

 

이어서 명함을 주고받습니다. 명함에는 이름, 주소, 직업, 경력, 전화번호, 메일, 블로그, 홈페이지 등이 표기됩니다만 평생 동안 받아본 명함에 자신의 자산을 적은 것은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공직자 자산등록이라는 제도가 생겨나서 공무원, 국회의원, 도의원, 도지사, 시장 군수, 대통령까지 재산을 공개합니다. 재산 공개 내역을 보면 당사자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그간의 이분에 대한 이미지가 살짝 변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모든 분들의 명함에 사는 집이 자가, 전세, 월세인지, 토지, 건물 등 자산 보유현황, 현금을 저금한 금융 정보를 명함에 반드시 기재하도록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를 공적인 활동을 하는 분들에게는 법으로 제도화하면 어떨까 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누군가는 자신이 이른바 졸부(猝富)라는 것이 바로 명함에 나타날 것을 우려하여 사회활동에 나서지 않으려 할 것이고 투명한 자산가는 자신감 있게 세상으로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사장은 연봉이 수십억 원인 분이 많다고 하던데 이분들의 자산을 명함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면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이웃을 위한 기부운동이 활성화될 것입니다. 자신의 재산상황이 투명하게 세상에 공개되면 아무래도 어려운 이웃을 위한 성금을 더 많이 내고자 할 것입니다. 재산 대비 성금비율의 사회적 기준점이 잡힐 것이고 늘 그 비율에 맞게 살려는 삶의 가이드라인이 설정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과거 경기도 내 신도시 개발 지역에서는 토지보상금을 받은 규모별로 모임이 형성되었다 합니다. 10억 그룹, 30억 그룹이 있었고 수억 원 수준이 모이는 기타 그룹도 있었다 했습니다. 누군가가 차를 바꾸면 모임의 졸부들이 줄이어 동종의 새 차를 구매했다 합니다.

 

재산상 격차가 많은 분들끼리 만나는 일반 모임의 구성원 간에도 명함에 재산 보유액이 기록된다면 점심값 내는 회원과 저녁에 카드를 꺼내는 회원이 대략 정해지는 즐거움이 있을 것입니다. 재산이 적은 회원은 비교적 가벼운 점심값만 내면 될 것이고 여유가 있는 회원은 공식적으로 저녁 값을 카드로 내고 박수를 받으면 될 일입니다.

 

이른바 졸부의 전성시대 1990년대에 신도시 동장을 한 동료 공무원의 회고에 의하면 저녁에 15명이 갈빗집에서 비싼 술을 먹었는데 누가 계산을 하였는지 기억이 나지도 않고 다음날 오전 내내 그 누구도 누가 식대와 주대를 지불했는가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했습니다.

 

그냥 내가 식비를 지불한 것으로 기분을 내면 그것으로 끝이라 생각하면 되는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이야기와 스토리가 극단으로 내달린 듯 느껴지기는 합니다만 한두 번은 살아가면서 엉뚱한 상상을 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기존의 제도와 질서가 정답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작가의 엉뚱하고 아름다운 상상이 소설이 되고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멋진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인 줄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오늘 문득 코로나19의 여파가 이렇게도 커가고 확대되는 것을 걱정하면서 불쑥 영화 벤허에서 큰비가 내리자 문둥병이 빗물에 쓸려 일거에 확실하게 사라지듯이 우리에게도 어느 날 큰 바람이 불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드넓은 태평양 한가운데로 몰고 가서 심연의 바닷속에 수장시키는 호쾌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시원함을 기대하게 됩니다.

 

세상사 모든 사람에게 비밀이 있고 추억을 간직하듯이 모든 것을 공개할 수 없겠지만 공인들이 재산을 공개하여 국민의 평가항목을 추가하듯이, 모든 사회인들의 재산액이 적힌 명함을 받아보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기대이기는 하지만, 재산평가에서는 하위에 머물기에 자신만만한 입장에서 혼자만의 '재산 공개 명함'을 상상을 해보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재산 공개 명함에서조차 '기타, 비고'로 분류할 수 있는 그런 상상력이 있음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가 봅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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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오산#남양주 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