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중지추(囊中之錐)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3년고개'라는 글을 읽고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다가 최근에서야 깨닫고 강의자료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3년고개'라서 3년 밖에 살지 못한다는 통념을 뛰어넘어서 3년을 산다고 생각한 며느리의 적극성에 박수를 보내게 되었고 그런 생각으로 매사에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토리는 이러합니다. 어느 날 노인이 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3년고개'에서 넘어져 3년 밖에 살지 못한다는 걱정에 머리를 싸매고 누웠습니다. 건강하시던 시아버지가 병석에 눕자 며느리가 물었습니다.

 

“아버님, 어찌하여 누워만 계십니까?”

시아버지가 대답합니다.

“내가 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다가 저 '3년고개'에서 넘어졌단다. 이제 3년 후에는 죽게 되었으므로 이렇게 누워있단다.”

시아버지의 근심 어린 답변에 며느리는 말했습니다.

“그럼 아버님, '3년고개'에 가셔서 한 번 더 넘어지시면 3년을 추가해서 더 사시겠습니다.”

시아버지가 며느리의 말을 듣자 크게 깨닫고 '3년고개'에 가서 일부러 여러 번 넘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시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삼천갑자 동방삭(東方朔)은 이 고개에서 6만 번을 넘어졌다.”

 

며느리의 재치로 노인의 걱정을 해결하였습니다. 세상사를 외골수로만 생각하지 말고 다양한 방향에서 검토 분석해 보라는 이야기인 듯 생각합니다.

 

노인이 '3년고개'에서 넘어지며 말한 대로 중국 제나라 사람인 삼천갑자 동방삭은 '3년고개'에서 60,000번을 넘어져서 180,000년을 살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대체로 3,000년을 살았다는 이야기에 무게가 실립니다.

 

인터넷 설명은 이러합니다. 본래 동방삭의 염라대왕 명부상 수명은 三十年(삼십년)이었는데 十(십)자위에 삐침 하나를 더 그어서 三千年(삼천년)으로 수명이 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명부를 몰래 고쳐서 수명을 늘린 것을 확인한 염라대왕은 진노하여 저승사자를 보내서 동방삭을 저승으로 데려오려 했지만 초보 저승사자들이 그를 쉽게 찾아내지 못하므로 이번에는 고참 저승사자를 보냅니다.

 

그리하여 어느 마을의 개천에서 숯을 씻는 노인이 있는데 그 숯을 물에 씻어서 흰색으로 만들기 위해 매일 세척 작업을 한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소문이 퍼지고 전해져서 동방삭의 귀에까지 다다랐습니다. 경험이 풍부한 에이스 저승사자가 노인으로 변장하고 숯을 물로 씻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또 다른 경험이 풍부하여 새로운 것이라면 크게 궁금해했던 동방삭이 드디어 숯을 씻고 있는 노인에게 와서 그 연유를 물었습니다. 역시나 노인은 "검은 숯을 씻어서 흰 숯으로 만들고자 한다"고 답합니다.

 

이에 동방삭은 어깨에 힘을 주고 말했습니다.

 

“내가 3,000천년을 살았어도 검은 숯을 물에 씻어서 흰색으로 만든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검은 숯을 씻던 조인은 즉석에서 저승사자로 돌변하더니 "바로 네가 명부를 수정하여 3천년을 살았다는 동방삭이구나!!!"하면서 그를 잡아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나친 자랑은 금물인 듯 보입니다. 유단자는 절대 단증을 보이지 않고 평소에는 유단자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공무원 사회에 고수가 참으로 많더라는 공직 선배의 글을 최근에 읽었습니다. 솔직히 현직에 근무할 때부터 모든 선배 공무원이 고수인 듯 보였습니다. 업무방식과 내용을 보면 깊이가 있고 품격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철들고 세상을 조금 알게 되어 돌이켜보니 1980년대 이들 선배 공직자들은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나 자신만이 도민을 위하고 국가를 위한다는 과도한 자부심, 내가 제일이라는 불필요한 자존심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 공무원들의 어깨에서 권위가 야위어가는 모습을 보면 차라리 그 당시의 공무원처럼 어깨에 힘을 주고 내가 제일이고 최선이라 자부심을 갖는 2023년의 공무원이 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골프장에서는 공무원은 물론 사장님도 주말골퍼들도 어깨의 힘, 권위주의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합니다. 골프채를 잡고 어깨에 힘을 주면 골프공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갑니다.

 

어깨의 힘을 빼고 평온하고 부드럽게 몸통으로 움직여서 좀 늦은 타임에 드라이버 헤드가 골프공에 맞아야 원하는 방향으로 안전하게 날아간다 합니다.

 

삼천년을 살았다는 동방삭이 그 오랜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103세 노 교수님처럼 어깨에 힘주지 않고 세파에 잘 적응했다면 지금도 살아서 인류를 지도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맑은 물에 검은 숯을 수세미로 문질러서 흰 숯을 만든다는 말을 지어낸 그 노인이 저승사자인 줄 모르고 고수 앞에서 “내가 삼천 년을 살았지만...”이라면서 어깨에 힘을 주는 바람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본인이 고수인데 "우리 사회에는 고수가 많다"고 말하는 이가 진정한 고수일 것입니다. 대화나 토론 중에 자신이 아는 문제가 나와서 서두르지 않는 고수가 멋집니다.

 

정당이 다른 도의원이 비난을 위한 비판을 해도 끝까지 소상하게 설명하는 고수 김문수 경기도지사님의 멋짐도 기억합니다. 진정한 고수는 어깨에 힘을 주지 않습니다.

 

주머니 속의 송곳(낭중지추 / 囊中之錐/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사람들에게 알려짐을 이르는 말)처럼 외유내강이 품격 있는 세상살이의 이치인가 생각합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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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오산#남양주 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