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사진#신문사#배달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전 경기도청 언론담당)

 

 

1988년 7월 4일에 경기도청 문화공보담당관실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공보계, 보도계, 문화재계, 문화계 등 4개 부서가 있는데 각각의 업무에 열중하는 가운데 보도계장님과 차석은 기자실을 사무실처럼 쓰시므로 사무실 자리에 앉으시는 시간은 아침, 점심 합쳐서 30분 이내입니다.

 

공람문서에 싸인하시고 회계문서에 결재하시는 시간이외에는 늘 기자실입니다. 기자실에서 그냥 눌러 살고 있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것입니다.

 

중앙지 지면에 힘들게 바위산 틈새에 작은 산도라지처럼 자리잡은 명함 크기의 기사도 잘라서 복사지에 여러장을 첨부한 후 기사보다 더 큰 신문명 고무인을 찍고 (9)면이라고 적습니다.

 

지방지는 면톱의 경우 복사지를 넘게 차지하므로 밖으로 삐져 나가는 제목의 일부를 접어야 합니다. 그래서 스크랩하기 편하게 박스처리한 기사가 참 좋습니다. 사설 2건이 행정관련이면 정말로 편리합니다. 데스크컬럼도 스크랩에 적합합니다. 공무원 간부들의 기고문도 환영입니다.

 

이런 기사가 사진과 함께 나는 과정은 쉽거나 재미있습니다. 아침에 출근하여 스크랩을 마치면 어제 현장에 다녀온 사진을 받습니다. 같은 행사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임사빈 도지사님이 촬영된 두장의 사진과 그 행사와 내용을 설명하는 메모를 들고 현관으로 나가서 택시를 기다립니다.

 

당시에는 공무원 자가용이 적어서 아침 8시 전후에 택시를 타고 오는 직원이 많으므로 쉽게 차를 타고 경인일보, 경기일보로 향합니다. 신문사 인근에서는 택시잡기가 어려웠으므로 신문사 인근에 택시를 대기시키고 헐레벌떡 뛰어갑니다. 편집국은 2층에 있습니다.

 

어느 기관이나 조직의 브레인은 2층에 있습니다. 시장군수 도지사 등 기관장 방이 2층에 있는 이유는 집단민원이 오면 1차 1층에서 막을 수 있고 뚫리면 창문으로 뛰어내려 피신할 수 있다는 농담이 있습니다.

 

임사빈 도지사께서 어느 군수님이 고추흉년에 화난 농민들에게 구금되었들때 "공무원 어느 한명이라도 2층 창을 열고 들어가 구해내야 했을 것"이라고 월례조회에서 힘있게 말씀 하신바 있습니다.

 

그 이후에 K대 학생들이 임사빈 도지사님 집무실에 난입하였고 이를 윤세달 부지사님이 강력히 막아낸 이후 울산시장으로 승진하시고 나중에는 갈등해결사로 더 큰 활약을 하신 바 있습니다.

 

당시에도 도지사실 옆 상황실을 통해 일단 후퇴한 후 난입 학생들을 붙잡아 경찰에 인계하였지요. 당시에 대학생 난입을 제압한 간부 몇명이 도지사와 장관표창을 받은 기억이 납니다.

 

이야기가 잠시 돌아갔습니다만, 신문사 2층에 올라가면 정치부가 있고 우리 출입기자님이 출근하였으면 직접 드리기도 하고 빈 책상위에 자료를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시 편집국을 내려와 다음 신문사로 대기한 택시를 타고 갑니다. 두 번째 신문사에 도착하면 택시비에 대기비를 따져서 지불하고 2층 편집국으로 향합니다.

 

친밀해진 출입기자님은 농담을 섞은 표정으로 "경인일보 먼저갔지요?"라고 물으며 수고했다는 표현을 합니다. 경기일보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이후부터는 하루는 경인일보를 먼저가고 하루는 경기일보를 향해 달렸습니다.

 

이때부터 미미하게 느낀 언론사간의 경쟁심을 시간이 흐르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고 선의의 경쟁을 만천하에 알린 '지방과 계장님 테이블 유리 파손사건'으로 모든 공무원이 언론사간에 경쟁이 있음을 파악하게 됩니다. 고인이 되신 송 사장님을 추모합니다. 가끔 만나는 고 국장님도 보고 싶습니다.

 

사무실에 돌아와 오전시간에 오늘의 보도자료를 모으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기사형태로 보도자료를 작성하여 해당부서의 컨펌((confirm)을 받습니다. 내일 아침 9시에 배포할 준비를 하면서 오후 2시를 기다립니다.

 

당시에는 석간신문이 많았기에 저녁 스크랩을 만들었는데 신문 오는 시간차가 있으므로 1-2명이 처리하였습니다. 그 저녁 신문에는 아침일찍 택시비를 들여서 전달한 도지사님 행사 사진과 기사가 어느 면에 얼마의 크기로 올랐는가 궁금해 지는 것이지요.

 

늘 섭섭하지 않게 좋은 자리 3면에 3~5단 기사로 떡하니 자리합니다. 가끔은 운좋게 1면에 도지사님 사진이 저의 택시비를 대신해주는 큰 보람이 가득한 날도 있었습니다.

 

1988년에는 신문사의 차장님이시던 분은 지방신문사 사장이시고 다른 분은 언론을 떠나 새로운 사회에서 일하십니다. 공무원 사회에서 언론을 어려워하지만 어려움 속에서 귀염받고 근무한 기억이 납니다.

 

공직 순간 순간에 격려해 주신 150명쯤 되는 경기도청 출입 언론인들을 기억하고 추억합니다.

 

 

[저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경기도민회장학회 감사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