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치는 듯 보이므로 광교산 등반을 결행하였고 열심히 한걸음 두 걸음 형제봉 정상을 향해 걸었습니다. 보통의 경기대에서 주차 후 출발하는 코스를 피해서 조금 가까운 문안골을 지나서 영동고속도로 지하도를 거쳐서 형제봉 인근의 나무계단 부근으로 직행하는 등산로를 선택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씨이고 국경일 대체휴무일인 월요일 이어서인가 시민들의 발길이 뜸해서 아주 편안한 산책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 채 길을 걸어 오르는데 잘잘한 상수리나무의 도토리가 보입니다. 깊어가는 가을이고 마침 비가 내려서 상수리 껍질이 부드러워진 터라서 하나 둘 도토리가 떨어지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등산객도 적으므로 떨어진 도토리가 쉽게 눈에 띄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도토리는 이 길가에 떨어져서 등산객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땅위에 떨어져서 깊이 박힌 후에 다람쥐 등 산짐승 천적의 공격을 기하고 차가운 겨울을 거친 후, 내년 봄에 도토리의 양분으로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그 뿌리의 힘으로 지상에 푸른 잎을 올려 보내어 태양을 만나서 광합성을 통해 또 하나의 어미나무, 아비나무를 닮은 묘목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거치고자 어미 몸에서 분리되어 땅
원효대사는 서기 617년(진평왕 39)에 출생하여 686년 (신문왕 6)에 입적하신 우리나라 역사에서 유명한 스님 중 한 분입니다. 삼국통일이 676년이니 원효대사는 통일신라시대에도 10년간 활약한 인물입니다. 불교뿐 아니라 유교와 도교, 법가사상 등에도 해박했다고 합니다. 현재는 서울의 원효로 등으로 이름을 기리고 있습니다. 원효대사는 의상대사와 함께 해로를 통하여 당나라에 유학길을 가던 중, 해골에 괸 물을 마시고 ‘진리는 결코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터득하고 의상과 헤어져서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후, 655년에서 660년 사이에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았다고 합니다. 동두천시 소재 소요산에는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연이 담긴 현장이 있습니다. 소요산 정상 봉우리 중에는 의상대가 있으니 원효와 의상은 경기도에서 많은 역사를 남겼던 것입니다. 원효대사가 의상대사와 함께 당나라에 가던 중에 해골물을 마셨다는 이른바 '오도처'가 화성시 남양면 당항성 인근에 있다는 것이 학계의 비중 있는 의견이라고 합니다. 지인을 만나서 장시간 자료를 공유하고 최근까지 학계에서 논의하고 검토한 바를 살펴보고 큰 공감을 했습니다.
길을 걷다가 금색 반짝이는 동전을 발견하고 얼른 주웠습니다. 10원짜리 동전입니다. 2016년에 발행된 다보탑이 새겨진 한국은행의 동전입니다. 이날 습득한 10원짜리 동전 디자인은 2006년 12월 18일부터 발행되었습니다. 이전의 10원짜리 동전 발행일은 1966년 8월 16일부터입니다. 이전에는 종이돈 10원짜리가 큰일을 하였습니다. 초등학생에게는 고액권이었습니다. 한국은행 홈페이지에 동전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습니다. 지름 18.0mm, 무게 1.22g, 구리 48%, 알루미늄 52%에 도안소재는 다보탑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손바닥에 동전이 들어오는 순간에 골프 경기 중 마킹이 생각났습니다. 잘 아시는 바대로 마지막 퍼팅을 하기 전에 골프공에 묻은 모래나 먼지, 물기를 닦고 퍼팅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잠시 공을 내손에 이동시키면서 그 공의 자리를 표시하는 것을 '마킹'한다고 합니다. 홀컵에 가깝게 임의로 공의 위치를 옮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룰인 줄 압니다. 신사적인 스포츠라 자부하는 골프는 스스로 스코어를 적고 경기를 마친 후에 양심껏 스코어를 적어내면 선수 기록을 바탕으로 최종 성적을 확정한다고 합니다. 골프 심판들은 선수 본인의 타수를 더 적어
경기도공무원 대부분이 근무하는 사무실, 즉 경기도청 청사는 서울 광화문에서 시작됩니다. 도청의 전신인 京畿監營(경기감영)은 서울 한성부 내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청 청사가 서울시에 있는 것은 경기도민의 자존심이 허락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1953년 4월 15일 경기도 인천시에서 먼저 ‘경기도청 유치위원회’가 발족되자 1주일 뒤 수원시에서도 ‘경기도청 수원 존치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存置(존치)란 표현을 쓰는 이유는, 조선시대에 수원에 경기도 감영이 있었고 6.25전쟁 당시에도 임시도청이 설치된 적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1962년에 수원의 지역 유지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게 도청을 수원으로 이전하자는 건의서를 제출하였는데, 1963년에 박창원 경기도지사는 청사를 시흥군 안양읍에 이전하자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이병희 수원유치위원장 (제 6, 7, 8, 9, 10, 13, 15대 국회의원)이 도의 발전과 미래를 생각하며 삭발까지 감행해 박정희 의장에게 찾아가 무릎을 꿇고 도청 이전을 요청하였던 바 1963년에 법률 제1538호가 제정되어 수원으로 결정되고 팔달산에 청사를 준공하여 1967년에 '서울도청'이 수원시에 移轉(이전)했습니다.
필자는 공직 생활 42년 중 후반기 20년 동안에 정치인의 사모님을 많이 접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장 사모님의 공식적인 활동도 현장에서 생생하게 목격하였습니다. 더러는 사모님과 업무의 일부가 연결되기도 했습니다. 행사장에서 여러 단체장 사모님을 만나서 함께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필자가 모 시청에 근무할 때입니다. 모시고 있던 시장 사모님이 공직 간부의 부인들과 정례모임에서 인사말을 하는 경우가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과거 이른바 사모님 모임에도 복잡한 룰이 있었고, 모임에서 발생하는 상황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고 언론에 보도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었습니다. 이후 여러 시·군에서 그 모임이 해체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이 모임에 가는 공직간부 부인들은 평소에 느끼지 못한 정치적 분위기에 큰 신경을 쓴다는 이야기를 많이 전해 들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기관장 사모님들은 기관장의 정치활동을 응원하는데 전심전력합니다. 어느 사모님은 짧은 치마를 입고 청사 광장의 아스팔트 바닥에 무릎을 꿇어가며 큰 절을 올리는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랐던 바가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남편의 도지사 당선에 감사인사를 드리며 앞으로 더 큰 성원을 바란다는 취지의 인사말을 했습
심장을 이식받은 이가 심장을 기증한 사람의 성격 일부를 닮아 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심장이식을 받은 이가 평소 관심이 적었던 분야에 대해 새로운 취미나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어떤 분야에 대한 기능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기증받은 분의 심장에서 어떤 능력이나 취미, 지식, 전문성을 전해 받았다고 가정해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의 몸은 그냥 뇌의 명령에 순응하는 기계적인 근육과 뼈와 관절이라는 생각을 바꿔야 하는가 봅니다. 그간 우리의 생각은 오로지 머리의 명령으로만 몸이 움직인다고 생각해 왔는데 뇌가 아닌 심장이식을 받은 이후 새로운 생각이나 취미가 느껴진다고 하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근육이나 허리 관절 등에서 지금 많이 불편하니 몸을 움직이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고 그래서 근육이 움직이고 관절을 굴신하여 조금 편안한 자세를 취하도록 하는 일은 종합적으로 뇌가 판단하여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조직에서 위임받은 범위 내에서 움직임을 알아서 정한다고 가정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일상에서 뇌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는 동작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한 번도 심장에게 '박동하라
옴부즈만(Ombudsman)이란, 스웨덴어로 '대리자, 후견인, 대표자'란 뜻이며 행정기관의 위법, 부당한 행위로 제기된 민원을 조사하고 해결해 주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1809년 스웨덴 의회에서 최초로 도입되어 우리나라의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에서 이 제도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기관의 공식자료에 ‘옴부즈맨’이라는 표기가 나옵니다만 화성시의회가 의결한 조례에서는 ‘화성시옴부즈만’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옴부즈만 제도는 현대 행정국가에서 행정부의 권한이 강화되는 행정 국가화 현상이 일어나자 국민 권리의 보호와 행정통제를 위해 일반화되었으며 주로 의회에 의해 신분이 보장되며 행정, 사법부에 대한 감시기능을 하였다고 합니다. 옴부즈만의 권한은 보통 시정 권고의 임무를 수행합니다. 옴부즈만은 일반적으로 직무상 독립성이 보장되며, 신청에 의한 조사가 일반적이지만 직권조사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화성시 시민옴부즈만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조례는 목적에서 '부패 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 위임된 사항과 그 시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직무는 제6조에서 정하고 있는데 주민들의 권익 보호, 규제와 관련된 사항과 민원을 조사 처
현직 공무원으로 일할 때 더 열심히 일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남의 바둑판을 보고 훈수하는 것이 쉽다는 말처럼 퇴직해서 보니 할 말이 많아졌습니다. 실천하지 못한 일들이 많습니다. 정부, 지자체의 행사에서 사회자는 국민의례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 후에 ‘이하 의식은 생략한다’라고 말합니다. 국민의례는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에 대한 묵념 등이 있습니다만 길게 잡아도 10분 이내입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중요한 내용이지만 사회자는 시간 관계상의 이유를 들어 국민으로서 당연한 의식을 건너뛰고 급한 듯 행사를 진행합니다만 이후 참석자 소개에서는 10~20분을 소비하게 됩니다. 그래서 몇 가지 제안을 해 봅니다. 먼저 ‘이하 의식은 생략한다’라는 사회자의 멘트를 ‘생략’하자는 제안입니다. 송구한 마음으로 이하 중요한 국민으로서의 의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으로서의 의전을 갖추지 못함을 애석하게 여기는 마음은 다 같을 것입니다. 그러니 ‘국기에 대하여 경례!!!’를 한 것으로 의식을 다한 것이라 생각하기로 하자는 제안을 하는 것입니
빌딩이나 백화점 등 대형건물을 들어서는 경우 이용자가 많으므로 늘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에티켓이 필요합니다. 스프링이 작동하는 문은 내가 밀고 들어가면 다음 사람이 따라올 수 있으므로 문의 반동이 최소화되도록 하면서 다음 사람이 편안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살짝 잡아주는 것이 참으로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그토록 유명한 영국신사까지는 아니어도 사회생활에서 문을 출입하는 모습만으로도 그 사람의 교양을 파악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합니다. 정치인이나 기관장의 경우에도 수행원들의 과도한 문시중이 언론평가의 도마에 오르기도 하고 어느 정치인은 전용 엘리베이터를 쓴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한 경우도 보았습니다. 부부가 백화점이나 식당에 가는 경우에도 남편이 문을 열어 아내를 들여보내고 따라 들어가면서 다음 사람을 위해 작은 배려를 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에 좋습니다. 앞사람의 배려를 받고 인사를 하고 그 감사의 뜻을 다음 사람에게 베푸는 것은 우리사회에서 반드시 실천해야 할 에티켓이라 봅니다. 그리고 회전문의 경우에는 차분히 들어가서 나갈 때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명이 줄넘기를 할 때 뛰어들어가고 나오기를 반복하는 경우도 있는데 회전문이 바로 그 타이밍을
회장님댁 사모님을 모시는 운전직원이 2~3시간 백화점 주변을 빙빙 돌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가용 유류비는 회사 법인카드로 처리하면 되는데 주차비는 별도로 지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운전직원은 차량을 주차장에 주차하지 않고 쇼핑시간 내내 시내를 천천히 돌다가 여유로운 곳에 잠시 주정차합니다. 교통경찰이 나타나면 다시 출발하여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사모님 쇼핑이 끝나서 전화로 부르면 백화점 현관에서 모시고 집으로 갔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모님은 주차비를 아끼려다가 수배에 달하는 유류비가 낭비되고 환경도 오염도 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모님과 운전직원은 회사 차이든 개인승용 차이든 그 차량의 내구연수가 짧아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은 전혀 없는 듯 보입니다. 小貪大失(소탐대실)이라고도 하고 비약하면 矯角殺牛(교각살우)일 수도 있겠습니다. 주차비를 피하려다가 보이지 않는 유류비의 엄청난 낭비를 초래하였고 대기오염에도 영향을 주었으니 하는 말입니다. 이 같은 사례는 사모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과거 땡초 회장님 중에도 기사에게 자장면 한 그릇 사주는 것조차 인색한 분이 있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자린고비입니다. 자린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