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사가 거사 직전에 수류탄을 들고 찍은 사진에 나오는 가슴의 결의문은 지금 나라의 보물이 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젊은 윤봉길 의사의 결연한 의지가 보입니다. 종이에 쓰인 글이 보물입니다. 종이가 보물이 아니라 글이 寶物(보물)인 것입니다. 이렇게 농민교육원에서의 근무는 혁신과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인가 세월이 많이 흐른 요즘에도 꿈속의 무대가 되곤 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꿈은 바로 물품구매입니다. 사무실에서 작물을 재배하면서 인부 여러 명을 동원하여 묶어주는 작업을 하는데 끈이 모자라니 더 사달라는 주문을 받은 것입니다. 며칠전에 딸 현아가 학교 옥상에서 키워낸 배추를 저려서 김장을 했습니다. 아내가 총괄하고 아빠는 무채를 썰었고 마지막 단계인 배추에 소를 채우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 배추를 키우면서 가을이 깊어지는 어느 날에 집에서 끈을 준비하여 배추속이 잘 배이도록 묶어주기 작업을 도왔습니다. 학교 특성상 가지 못하고 집에서 두 번에 걸쳐서 배추 묶기용 끈을 마련해 준 것입니다. 이것이 단초가 되어서 김장을 마친 후에 꿈의 소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전 9시에 구매를 위해 출발하였는데 어찌된 일인가, 꿈속이니 가능하겠지만 고향마을
육군본부 훈령 제1호로 1976년 1월5일에 발령된 전투수칙이 있었지만 실제 근무자들이 생각하는 전투수칙은 조금 달랐습니다. 1980년 방위들은 나름의 철학적이고 구체적인 나름의 필승전략, 전투수칙을 외우고 다녔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전쟁 전중후를 구분하여 구체적인 역할을 정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전쟁 초기에는 뒷동산에 올라가서 도시락 뚜껑을 이용하여 북측의 군사레이더를 교란시킨다고 했습니다. 도시락 뚜껑을 들고 일제히 북쪽으로 향하면 레이더 전파를 흔들어서 우리측 정보를 파악하지 못할 것이라는 나름 과학적인 근거를 대고 있습니다. 레이더는 금속성 철판을 만나면 굴절할 것이고 그런 파장이 겹치면 정확한 정보의 분석이 어려울 것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 전쟁중에는 적 진지에 깊숙하게 침투하여 전차 바퀴에 불법 주차 스티커를 발부해서 꼼짝 못하게 한다는 전략입니다. 당시에 행정기관에 근무하는 방위들은 불법주정차 단속, 스티커 발행 등 다양한 업무에 종사하였으므로, 전쟁중에 적군의 탱크, 전차, 트럭등은 불법주정차를 할 것이므로 평소의 업무역할을 전시에도 그대로 반영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던 것입니다. 적군의 전차를 그자리에 세워둘 수 있다면 방위병 한명
이 수성고등학교는 이후 야생초 문예반, 경기도청 동문회, 화성시청 동문, 오산시청 동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 힘을 발휘합니다. 야생초를 통해 터특한 개성있고 독선적인 문학활동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름 시를 쓰고 수필을 정리해서 출간을 하고 있으니 수성고등학교에 무리하게 도전한 일이 참으로 대단하다 기억합니다. 그렇게 수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기 중앙대학교 국어국문과에 도전하였지만 낙방하였습니다. 영문과에 도전한 친구와 수학문제를 복기했는데 마지막에 풀이에서 2의 3승이 나왔고 둘은 그냥 2의3승으로 두어도 맞는 풀이인데 굳이 2*3을 하는 바람에 8이 아닌 6이라고 써냈습니다. 대략 20점을 배점한 문제였는데 풀이는 맞았지만 최종 답을 틀리게 적은 것이니 반을 주었거나 아예 0점 처리했을 것입니다. 둘 다 전기대를 낙방하고 다시 후기대를 준비했습니다. 동국대학교 국어국문과에 도전하였지만 낙방하였고 친구는 다른 후기대를 거쳐서 고려대에 편입하여 강서여중 영어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친구 정성명 군은 강서여중 교사가 되었고 결혼식에 온다 했지만 사정이 있어 오지 못한 이후 만나지 못했습니다. 학창시절 5번 반을 바꾼 바이지만 늘 같은 반이었고 키도
▨ 1. 꿈과 현실의 거리감 ▨ 팔을 어깨 아래로 깔린 채로 잠에서 깨어나보니 팔이 저리고 몸이 답답한 것이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느낌입니다. 악몽까지는 아니지만 힘든 꿈을 만난 것입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꿈속의 무대는 1982년 경기도 농민교육원입니다. ‘81년 8월10일에 팔탄면사무소에서 경기도농민교육원으로 발령받았습니다. 77년 5월16일에 화성군 비봉면사무소에 9급, 당시에는 5급을류 공무원으로 발령받고 정신없이 일했습니다. 내용도 모르고 선배나 부면장님의 지휘를 받고 이리저리, 동분서주하였습니다. 오늘 한 일의 결과조차 모른 채 부화뇌동은 아니지만 匹夫匹婦(필부필부) 수준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신체검사 통지서를 받습니다. 요즘에는 범죄인의 집이나 사무실을 압수수색 할 때에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검사나 경찰이 대상자에게 제시하고 영장에 적힌 내용만 압수수색을 해서 가져간다고 합니다. 과거영화에서 보면 서재의 모든 책을 뒤지고 무엇이든 나오면 쓸어담더구만요, 갑작스레 현금 3억원이 나왔으므로 범죄관련성이 높지만 다시 사무실에 가서 영장청구를 하고 다음날 판사가 서류를 검토하여 발부한 영장을 들고 와서야 그 돈을 수사 자료로 가져온다고 합니
▤ 민화작가 선생님 ▤ 문수사/광덕사/김혜란 작가님/ 2021. 11. 27에 충남의 문수사에 가서 108배를 올렸습니다. 열정의 마음으로 절하였습니다. 사찰건물의 배치가 아기자기하니 평온합니다. 고찰의 면모를 보이는 사찰입니다. 나무기둥에서 세월의 흐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풍광 좋은 사찰에서 절을 하는 것은 불자로서는 큰 행복입니다. 광덕사에 가서 기도하였습니다. 광덕사에는 400살 정도의 호두나무가 있습니다. 700년 전인 고려 충렬왕때 영밀공 유청신 선생이 중국 원나라에서 호두나무 어린 나무와 열매를 가져왔다는 안내문을 보았습니다. 문익점 선생이 붓뚜껑에 목화씨 3개를 가져와 1개를 발아시켜서 한반도에 면화를 심게해서 백성들의 옷과 이불을 만들 수 있게 된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감자, 고구마, 고추 등도 중국과 일본에서 들여온 작물이라 들었습니다. 선각자들은 이렇게 후대를 위해 노력하고 후손들은 그 은혜를 크게 입고 삽니다. 마애여래삼존상은 우연히 안내판을 보고 찾아간 곳인데 가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국보 제48호 서산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입니다. 산 중턱의 거대한 바위 아래쪽에 삼존상을 조각한 부조입니다. 백제시대 작품입니다. 장쾌하고 넉넉
▤ 양양#속초 ▤ 수원을 출발하여 사무실에 가서 워치를 수소문하였지만 찾아내지 못하였고 20분 이상 시간을 보낸 후에 강원도로 출발하였습니다. 가는 길에 만난 내린천휴계소는 그 수준이 높았습니다. 점심을 아주 맛지게 먹었습니다. 우리의 숙소는 양양솔비치입니다. 일단은 방을 잡은 후 밖으로 나가서 저녁식당으로 향했습니다. 바닷가에 자리한 횟집입니다. 3인분에 191,000원입니다만 가격만큼이나 맛지게 많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네이버 예약으로 10,000원 할인받았음을 강조하는 바입니다. 4인이 맛나게 먹고 숙소로 돌아와서 드디어 3,000배의 초입부분을 진행하였습니다. 모녀는 허구가 지나친 드라마를 보느라 바쁘고 아빠는 헉헉거리며 절하기를 이어갑니다. 그렇게 저녁시간이 흘러갔는데 잠시 침대에 엎드려 쉰다고 했는데 깜빡 깨어 일어나보니 새벽 2시반입니다. 다시 절하기를 이어갔습니다. 어제 새벽에 드린 절하기가 있고 낮에 홍련암에서 절하고 휴휴암에서 절하였던 바를 합하는 중입니다. 108배를 30번 올리면 3,000배를 지나갑니다. 3,240배를 올리게 되는 것이니 28번에 3,024번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렇게 절하기를 이어갔습니다. 새벽에 재개한 절하기는
자신의 일상을 바탕으로 꾸준히 수필집을 발간해온 전 남양주부시장 이강석씨(66)가 59권째 수필집 '화양연화 공직42년'을 출간했다. 이씨는 이번 수필집에서는 9급 공무원에 입문하여 경기도청에 전입하여 근무한 초임시절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기술했다. 1981년 경기도청산하 사업소인 농민교육원에 발령받아 적극행정을 펼친 사례를 소상하게 소개했다. 이씨는 기숙사 사감실이 좁다는 선배 공무원들의 요청을 받고 상사의 결재를 받은 후 건물의 벽채를 헐고 모래를 실어와 시멘트공사를 한 후에 철제 2층침대와 침구를 마련해 선임들의 칭찬을 들은 일을 소개했다. 특히 당시의 기관장이 회의 석상에서 "면사무소에 근무하다 전입한 직원의 적극성을 선배들이 배워야 한다"고 지적한 사례를 소개했다. 실제로 이씨는 선배들과 힘을 합쳐 물탱크 안에 직접 들어가 청소를 하였고, 운전기사가 부족하여 업무추진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본인이 자비로 학원을 등록하여 운전면허를 받아 업무차량을 운행했다고 밝혔다. 손학규 도지사와의 일화도 소개했다. 강원도 동해시 수해복구를 지원하고 돌아오는 길이 지루할 수 있으니 소주하도 한잔씩 마시며 가라는 도지사의 덕담에 총무팀장이 고속도로에서 소주를 구매하겠다고
▤ 대마도 가족 여행 ▤ 대마도, 쓰시마, 덕혜옹주 이야기입니다. 오랜만에 가족여행을 기획하였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꾸민 일입니다. 혹시 의미를 부여하여 해외 가족여행을 잡았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부부는 금요일 아침에 수원을 출발하여 부산에 가서 관광을 하고 숙소로 돌아오면 남매가 저녁 KTX를 타고 부산역에 내려, 밤 11시경 숙소에 합류하는 가족여행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부산국제여객터미널을 출발하여 대마도에서 1박2일 해외여행을 하는 것입니다. 가장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은 여권 4매를 작은 가방에 넣고 다시 큰 가방에 넣은 후에 어깨에 둘러 메는 일입니다. 이번 여행의 장소와 일정 등은 아내와 딸이 기획하고 예약하고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니 가장으로서 짐을 들고 지고 끌면서 여권을 잘 관리하면 되는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실무자, 담당자에서 결재권자, 공람하는 역할이 주어지더니 명퇴한 후에는 이렇다 할 결정권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금 서럽기도 합니다만 앞으로는 더더욱 더 많은 서럽고 억울한 일 앞에 당도할 것이라고 선배들이 조언합니다. 매탄권선역으로 갑니다. 07:40분에 기차를 타고 수원역에 내려서 수많은 계단을 오
▤ 회갑여행 ▤ 퇴직 후의 행복한 가족여행으로 회갑여행을 결정했습니다. 토요일에 4식구가 출발했습니다. 처음에는 강원도 북쪽으로 가려했지만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강릉으로 변경했습니다. 아이들은 일단 수영장 당첨된 표가 있으므로 오후 3시까지 신나게 놀고 다시 만나기로 했고, 부부는 인근 38km지점의 월정사와 상원사에 가기로 했습니다. 아이들과 여주를 지나던 중 고속도로 길을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30분정도 지체했습니다만 달리고 달리면 우리나라 고속도로와 국도는 모든 곳으로 연결됩니다. 아이들을 수영장 앞에 내려주고 월정사로 갔습니다. 산 초입에 자리한 월정사는 고찰스럽게 자리하고 오는 이들을 평온하게 반겨줍니다. 우선 산신각에 들어서 소원을 말하고 108배를 올렸습니다. 사찰에 오면 우선 108배를 올리는 것은 참 좋은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경내를 둘러보고 사진을 찍은 후에 다시 차를 몰아 산길을 달렸습니다. 봄이거나 여름이면 참으로 멋질 것 같은 눈길을 조심스레 가느라 주변 경치를 관상할 여유가 없습니다만 그래도 마음속으로 상상의 그림을 그려보았습니다. 이윽고 도착한 상원사 주차장에서 가파른 길을 걸어 올라가니 산 중턱에 상원사 간판이 보입니다. 올라
▤ 신륵사 ▤ 2018. 10. 27 / 토요일 부부 신륵사 여행 여주에 소재한 신륵사는 고려 말 우왕 5년(1379) 각신(覺信)·각주(覺珠) 스님에 의해 중창되었고, 세종 22년(1440)에 중수했다고 하는데,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8호로 지정된 지금의 극락보전은 정조 21년(1797)부터 3년에 걸쳐 완공한 건물이라고 한다. 2018년 10월 27일 토요일에 이강석 최경화 부부가 두 손을 잡고 이곳 신륵사를 찾았습니다. 오전 11:55분 집을 출발하여 영동 고속도로에 진입하였는데 강원도로 향하는 차량이 가득하고 용인에서 고속도로를 하차하여 광주, 이천을 거쳐서 우회하여 여주에 이르러 세종대왕께 우선 인사를 드리리고자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얼핏 보이는 '세종대왕릉역'을 왕릉으로 착각하고 갔다가 다시 네비게이션을 고쳐서 12km를 달려 세종대왕릉 관리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박물관급은 아니지만 세종대왕 관련 자료 전시관을 둘러보면서 양녕대군, 효령대군, 그리고 세종대왕이신 충령대군에 대한 설명문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종대왕릉은 보수작업을 한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1시간30분 걸리는 왕복 도보 관람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지난해 병우회 모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