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공직사회에서 갑질이라는 문제가 더 크게 부상하고 있는 듯합니다. 갑질로 인한 피해는 당장 필드에서 갑질로 어려움을 겪은 이들의 고통이 있었고 이를 지적하는 감사부서의 조사와 징계위원회의 논의, 그리고 당사자가 조직으로부터 징계조치를 받은 이후의 긴 시간을 징계의 굴레를 쓰고 감내해야 하는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갑질은 시대적으로 그 느낌이 다르다고 봅니다. 1980년대 공직사회라면 평범한 일상이었을 일이 오늘날에는 갑질이 되고 더러는 큰 잘못으로 확정이 됩니다. 과거 군대에서 밤 12시까지 몽둥이 구타를 당하지 않은 날은 더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 했다지요. 사실 과거 도청의 공직사회 모든 사무실에는 한두 명 잔소리, 험담을 해대는 사무관 계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공무원들은 이들이 잔소리를 시작하면 ‘저 양반 또 시작이군’ 하면서 귀를 닫았습니다. 내용을 들어보면 그렇게 큰 잘못이 아닌데 게딱지 후벼 파듯이 소속 공무원의 업무행태를 비판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엄청난 갑질을 한 그 당시의 간부들은 평온하게 승진하여 서기관에 이르고 더러 몇 명은 국장급 3급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업무에서 갑질을 하고 문서를 내던
군수님 집무실을 그때에는 官房(관방)이라 불렀습니다. 관방을 “벼슬아치가 일을 보거나 숙직하던 방”이라 사전에서 풀어줍니다만 1960년대 군수실을 관방이라 불렀고 방 주인은 ‘군수영감’이라 칭했습니다. 令監(영감) 이라는 호칭은 지금도 공식, 비공식적으로 쓰이는 줄 압니다. 그 관방의 부속실 벽에는 관청의 모든 부서 사무실을 밝히는 작은 5촉짜리 등불을 켜고 끄는 스위치가 있었습니다. 부속실 스위치에 연결된 5촉 전구는 각 과 사무실의 천정 구석에 붙어있어서 아침 8시반에 군수 출근시각에 켜지고 저녁 6시반 퇴근시에 꺼졌습니다. 주로 낮을 밝히는 전구입니다. 비서실에 스위치는 있는데 비서실에서는 불빛이 보이지 조명장치이고 각 사무실 입장에서는 스위치가 없는데 알아서 켜지고 꺼지는 '공무원들의 출퇴근을 지휘하는 등대 같은 등불'이라 할 것입니다. 오래된 청사의 천정에는 지금도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전구(사진)의 숫자는 12가 아니고 1과 2 입니다. 1은 군수실 비서가 스위치를 내리면 꺼지는 등불이고 2는 부군수실 비서가 전원을 OFF되는 전등입니다. 저녁 6시20분부터 많은 공무원들이 저 숫자 1, 2 또는 12를 바라보면서 1번이 꺼지기를 기다렸고
1988년 이후 2000년까지 언론인의 취재방법은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자료를 요청하여 내용을 검토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다른 이해당사자의 주장을 첨가하여 기사를 완성합니다. 방송기자의 경우는 화면이 중요하므로 은밀하게 화면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즉 몰래카메라가 있습니다. 평소 친밀한 관계에 있는 기자가 정색을 하고 목소리를 고추 세워 업무에 대해 묻는다면 녹음일 수 있습니다. 방송기자가 사무실에 왔는데 테이블에 올린 카메라의 센서 바늘이 툭툭 튀고 있다면 지금 녹취되고 있는 것이고 카메라 렌즈가 무엇인가를 촬영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몰래카메라에 의한 보도내용을 보면 신발, 구두, 빈 의자 등이 주인공이 됩니다. 두유업계를 뒤흔든 오산 잔다리(細橋)마을 두유 홍보에서도 서울의 초등학교 급식 심의위원이라며 시설을 둘러보고 갔는데 다음날 전화로 취재동의를 요청해 왔습니다. 방송 나가는데 동의하겠으니 당장 찍으러 오시라 했습니다. 하지만 어제 안경에 장착된 카메라로 다 찍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론인을 만날 때 결정적인 단어를 쓰지 말아야 합니다. 아주 정확한 발음으로 원론적인 이야기를 이성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감정을 담지 말고 사정하지도 말고 부탁하지도
언론인은 지속적으로 중앙 지향적입니다. 경기도내 지방 언론인으로 들어와 중앙 방송국의 간부가 된 경우가 있고 중앙신문사 부장급이 된 사례도 많습니다. 중앙사에서 퇴직하면 지방사 국장타이틀로 출입처를 담당하기도 합니다. 같은 지방지 간에도 많은 언론인들이 오고가고 신문기자가 방송으로 가고 방송기자가 신문으로 통신으로 인터넷신문으로 자리를 이동한다. 경쟁사 기자로 건너가서 승승장구하는 케이스도 더러 있습니다. 잘 아는 K기자는 지방지에서 장기근속 후 경제지에 있다가 다른 지방사에서 다시 최초 근무하였던 회사에 복귀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룹 이동의 경우도 있는데 이는 아마도 끈끈한 선후배의 정으로 뭉쳐진 독수리 5형제의 경우로 보아야 한다. 우리는 함께 간다는 말이입니다. 1988년에 Y사 중견급 기자 3명이 지방사 創刊(창간)간부로 갔다가 얼마 후 다시 복귀한 사례도 있습니다. 언론사 에이스로 활동하다가 퇴직한 후 다른 신문사 부국장으로 가는 코스는 마치 공무원이 정년을 앞두고 산하기관 본부장으로 가는 경우와 유사하합니다. 젊은 시절 신문사 차장 부장을 거쳐 국장을 하신 분들이므로 언론에 대한 경륜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입니다. 공무원은 내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된 수원화성은 그 차제가 아름다운 성이고 그중 白眉(백미)를 꼽으면 화홍문과 그 위편에 자리한 방화수류정이라 할 것입니다. 화홍문 인근에는 심재덕 시장님 재임 중에 자주 들렀다고 하여 유명세를 탄 소고기 식당이 하나 있는데 2002년경 어느 날 사무관 2명과 중견 언론인 몇 명이 자리를 잡고 도정의 홍보와 언론사의 미래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두 사무관은 물론 공보부서를 대표하는 당시로서는 그래도 젊은 공무원이고 언론인 역시 회사의 정치부를 대표하는 한참 잘나가는 기자였으니 할 말도 많고 빈 술병도 여러 개 양산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단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최후의 3인이 남게 되었고 따로 소주집에 갈 여력도 휘발유도 부족하지만 단거리라도 달려보고 싶은 마음이 동하였고 아주 쉽게 의견의 일치를 보았던 것입니다. 해서 언론인 간부가 인근 슈퍼에 가서 소주 몇 병을 확보하고 안주꺼리 포를 사서 화홍문 달빛거리를 지나 방화수류정 별빛마을에 도착하였던 것입니다. 화홍문을 지나는 물결의 일렁임속에는 둥근 달이 붉은 구슬이 되어 물결을 만나 너울거리며 검은 밤을 밝혀주고 방화수류정 문틈을 지나 작은 고원마을에 도착하면 하늘에서 별빛
<책소개> 우리들의 금강경 강의 김해영, 김동숙 지음 / 지성인을 위한 필독서 100년 전, 인류(人類)가 생산한 지적자산을 동일한 만큼 양적(量的)으로 생산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10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요즘은 인류가 생산한 지적자산을 동일한 만큼 양적으로 생산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불과 3시간이면 가능한 시대입니다.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에서 우리는 호흡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각에선 속도보다 방향이란 말이 회자(膾炙)되곤 하나 ‘넋 놓고 살 수 없는 시대’에 있는 것입니다. 엥겔스가 1844년 ‘산업혁명’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후, 토인비가 이를 대중화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로부터 2차와 3차를 거쳐 어느새 4차 산업혁명 시대, 즉 메타(Meta) 시대로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메타시대는 ‘인문학과 과학이 통섭하는 시대’입니다. 컴퓨터 기술 기반의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Cloud), 빅데이터(Big Data), 모바일(Mobile) 등이 신대륙인 ‘디지털 생태계로 전환’시킨 것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지식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내가 알고 있다는 느낌의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알고
요즘 숏츠라고 하는 짧은 동영상을 접할 기회가 자주 있습니다. 중국인이 나오는 이 동영상은 아마도 중국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내용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두 팔이 없는 여성이 옷을 입기위해 고분분투하는 모습을 비싼옷과 장신구를 한 여성이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고 있습니다. 같은 공간은 아닌듯 보이고 다른 곳에서 촬영한 화면을 짜집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좋게 말하면 편집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다음 동영상에서는 두팔이 없는 청년이 짧은 어깨의 근육을 이용하여 삽질을 합니다. 어깨에 삽자루를 끼우고 발로 땅을 밟으면서 땅일 일구고 있습니다. 아마도 평탄작업을 하고 모종을 심거나 씨앗을 뿌리고자 일하는 것입니다. 반년후에 수확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애청년을 바라보는 부자들의 표정이 편입됩니다. 방송에서 말하는 인서트 장면이 나옵니다. 팔목이 없는 엄마가 뭉뚝한 팔로 아기의 옷을 갈아입히느라 해쓰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아기는 정상의 두팔과 다리가 보입니다. 얼마나 귀한 아기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결혼과 출산의 과정을 상상해 봅니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서 이제 돌을 지났을 아기를 키워내는 모습에 감동을 받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홀로 결코
1988년 당시 공보실에 근무하는 선배가 구내식당에서 커피 한 잔 하자고 청합니다. 사금파리 흰 잔에 검붉은 커피 한 사발을 주는데 200원이었습니다. 5잔을 마셔도 1,000원에 해결되는 시기였습니다. 물론 연봉이 1천 만원을 넘지 못하였으니 당시 500원이면 최근 코미디에서 한동안 인기를 누린 '궁금하면 500원'보다는 더 비싼 돈이었습니다. 3명이 앉아서 3잔을 마시며 나눈 이야기는 공보실에 와서 일해보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제안에서 가장 의미 깊은 말은 고등학교 3년 동안 문예반 활동을 한 것이 1순위요 두 번째는 전임 세정과 보다는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일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사실 주사보 7급에 승진하여 세정과에 가니 매일매일 하는 일이 전자계산기 두드리기였습니다. 36개시군(현31시군)의 세외수입 보고서, 하천점용료 부담금, 그리고 본청 각 부서의 세입보고서를 집계하여 안행부에 전화로 불러주고 다음날 보고서를 제출하는 일이 전부였습니다. 7급에 대한 기대가 서서히 식어갈 즈음인데 아주 샤프한 제안을 받은 것입니다. 더구나 세정과 근무기간도 2년이 되었으니 이즈음에 부서를 이동하는 것도 자연스럽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니 청내 방송이 나
열심히 일하다가 언론에 맞으면 담당 공무원의 마음은 심히 아픕니다. 나름 고민하고 공직자로서의 기본인 창의적인 업무추진을 위해 새로운 시책을 만들어 상사를 설득하고 예산 등 관련 부서를 설득하여 어렵게 추진하는 사업에 대하여 추진실적이 70%에 머물렀다는 비판적 기사를 접하게 되면 힘이 쑥 빠지면서 더 이상의 창의력 충전은 스톱됩니다. 주변에 보면 관계규정에 의해 당연히 추진하여야 하는 업무가 있지만 예산부족, 인력부족, 기타 복지부동의 사유로 아예 업무추진을 중단한 사례가 있다면 이를 찾아내어 권장하고 미진한 부분은 지적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대부분 추진하면서 여기에 더하여 새로운 업무를 창의적으로 운영하는 부서에 대하여 실적부진이나 부작용 등을 지적하면 이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언론이 針小棒大(침소봉대)하였다거나 공정성의 길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언론의 표현이 편집부 기자들의 제목에서 크게 좌우되어 긍정기사로 올라온 기사가 부정적인 쪽으로 기우는가 하면 비판성 기사를 올렸지만 제목에서 약하게 다루면 그런대로 반타작 기사가 될 수 있는 경우는 아주 흔하다 할 것입니다. 즉 소주가 반병이나 남았다고 말하는 것은 술에
경기도청에 작은 부서중 하나가 서울사무소 입니다. 여의도 정당 사무실 인근의 50평정도 임대 건물 안에 5명이 근무합니다. 개설 초기에는 일반직 공무원이 근무하였고 지금은 계약직 소장, 계약직 협력관, 5급 사무관, 6급 주무관, 7급, 9급이 근무합니다. 두 가지 일을 하는데 하나는 국회업무이고 또 하나는 대 언론 관련한 활동입니다. 도청 직제 속에 대변인실이라는 거대 조직이 있으므로 중복되는 것을 기피하는 행정 관행상 '언론활동'이라고 표현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참은 대변인 입니다. 때로는 대외협력담당관실과 겹치게 됩니다. 대외협력담당관실은 도의회 업무와 국회업무를 담당합니다. 형식상으로는 대외협력담당관의 지휘를 받게 되어 있지만 오히려 서울사무소장의 국회 연결고리가 크고 강합니다. 도청의 대변인실과 대외협력담당관을 연결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최근 경기도 정가에서 논의되는 사회통합부지사의 지휘를 받게 될 것입니다. 사회통합부지사는 야당의 몫이니 아니러니와 모순이 겹치고 있습니다. 상대당 소속의 도지사를 홍보해야하는 임무를 부지사가 지휘하여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 언론정책도 많은 경우도 도지사를 주인공으로 추진해야 하니 말입니다. 시군청의 공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