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사로운 날씨다. 1950년 6월에도 더웠을 것이다. 그리고 1950년, 1951년, 1952년. 국군 용사들은 인제에서, 백마에서, 수원에서, 철원에서 붉고 뜨거운 피를 이 산하 계곡에 뿌리면서 뜨거운 하늘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어머니 얼굴을 떠올리며 가족을 생각하면서 떠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60년 세월이 흐른 지금 작은 상자만한 크기의 기단부와 어린이 키 정도의 비석에 이름 석자, 격전지,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 흘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날짜를 적어놓고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있다. 국립현충원 직원이 트럭에 싣고와 배부한 플라스틱 조화 한줌을 옆에 세운 채 오랜 세월을 지내온 용사들. 오늘의 주인공은 황해도 연백에 사시다가 18세이던 1950년에 입대하여 1951. 4. 27 강원도 인제에서 전사하신 분이다. 전후좌우 모두 같은 크기의 비석인데 전사지, 전사날은 각기 다르다. 아마도 뒤엉킨 전사자들을 수습한 후 신원이 확인되는 대로 현충원에 모시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이곳 현충원에 근무하시는 분들은 모두가 좋은 분들이겠다. 정문 근무하시는 분들의 표정도 인자해 보이고 간간히 작업을 하시는 인부들의 표정에도 욕심이 없어 보인다. 항시 망자들을 모시고 사
1986년에 세정과 세외수입계에서 수입증지를 담당하였습니다. 수입증지란 지방자치단체의 수수료를 받아 들이는 우표처럼 생긴 증표인데 당시 50원, 150원, 300원, 500원 등 몇가지 유형의 수수료에 맞춰 액면가를 정해 조달청 인쇄창에서 받아온 것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8시반경에 새마을금고 직원이 1일 대력 150만원어치를 받아갔습니다. 그런데 수입증지 수불부상에 5원짜리 증지 30,000원어치, 대략 6,000장이 이월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수년간 이월된 것으로 추측되었습니다. 이미 50원이상으로 수수료가 인상된 1986년에 5원짜리가 남아있으니까요. 전임, 전전임 담당자들이 지속적으로 이월시켜온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일은행 금고에 확인한바 철제금고 바닥에 5원짜리 증지가 남아있다는 확인을 해 주었습니다. 요즘에는 엑셀이나 전자프로그램으로 장부를 정리한다고 하지만 당시만해도 수작업이므로 매일아침 5원짜리 증지 6,000장 30,000원어치를 정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으므로 이를 정리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방법은 다 사버리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음날 3만원어치를 수불하고 새마을금고를 통해 개인 돈으로 구매했습니다. 그리고 바인더북에 잘 보
우리는 가정에서는 물론이고 사회와 직장에서 늘 사람과 소통하면서 살고 있는데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사회적 소통의 센서인 배려와 양보라는 씨줄과 날줄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인간사회에 품성에 의한 배려와 양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약육강식의 동물 세계와 다름없을 것이다. 1981년 공무원 9급으로 지금 지방서기관, 4급에 해당하는 도청 과장을 강사로 초빙해 승용차로 안내하게 됐다. 기사가 운전하는 차량에는 이미 사무실 선배 공무원 2명이 타고 있었다. 따라서 과장과 함께 승차하면 만원이 되는 상황이었다. 뒷자리 2석이 비어 있으므로 과장을 잘 모신다고 차 문을 열고 먼저 타도록 했다. 하지만 과장은 머뭇거린다. 다시 한번 권하자 과장은 먼저 타라 한다. 과장이 차 문을 열어주고 먼저 차에 오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으로 생각했다. 제대로 된 승차의전은 앞자리에 타고 있는 직원이 내려 뒷좌석 차 문을 열고 대기하면 가장 후임인 필자가 가운데 타고 나서 과장이 차에 오르면 정중하게 차 문을 닫고 앞좌석에 탑승 후 출발하는 것이다. 나중에 승용차 승차예절을 이해하고 그날의 해프닝을 마음에 새기고 후배 공무원들에게 주법과 함께 승차 질서에 대한 잔소
1985년 이야기 입니다. 새마을지도과 서무담당으로 근무할 당시에 부산에서 새마을지도자대회가 열렸습니다. 달반 이상의 준비과정을 거쳐 드디어 내일아침 부산으로 출발하는 그날이 다가왔습니다. 사무실 뒷편에 부길식당에 저녁마다 부대찌게 15인분을 주문하여 일하시는 선배들 식사를 추진하였습니다. 별도의 말씀이 없으시면 그냥 부대찌게를 주문하면 되는 일입니다. 요즘에도 많은 분들이 부대찌게에 밥 비며 먹다가 나중에 라면 넣고 육수추가하고 그러시지요. 저녁마다 시군과 통화를 하면서 참석자 명단, 승차계획, 숙박계획, 고속도로 차량 이동계획 등 참으로 많은 행정적인 일을 하였습니다. VIP행사 이므로 당시 공직 선배들은 작은 실수도 용서되지 않는다는 심정으로 일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1985년이면 좀 지난 세월이기는 하지요. 그리하여 D-Day 1일전날이 왔고 각 시군의 새마을 지도자들은 수원 북문 인근 숙소에 집결하였습니다. 당시 행정력이 얼마나 강했던지 안성에서 평택에서도 수원으로 올라와 숙소를 잡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날 저녁 시군 본부방을 돌면서 물품을 전하고 중요 사항을 알려드리고 피곤한 몸으로 어느 방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평소 일찍 기상하는 편이지만 그날
아침 7시30분 수원역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출근합니다. 집앞에서 버스를 타고 25분을 달리면 수원역에 도착하고 상행선 출구로 가서 기다리면 열차는 힘찬 쇳소리를 내며 다가옵니다. 오늘이 시작됩니다. 일단 열차에 오르면 계단을 찾게 됩니다. 정기권 패스에는 지정된 좌석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오른쪽 출입구는 안양, 영등포를 거치는 동안 열리지 않습니다. 서울역에 도착해서도 왼쪽 문으로 내립니다. 그래서 편안한 의자가 오른쪽에 있는 것입니다. 이 계단이 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등산용 방석이 필요합니다. 가끔은 추위를 피해 객차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그러면 늘 항상 인간의 삶과 인생의 여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파노라마가 펼쳐집니다. 앉아있는 손님은 대부분 눈을 감고 있거나 표정으로 보아 아예 깊은 잠에 빠진 분들도 많습니다. 젊은 손님들은 왜 자면서 인상을 쓰는 것일까요? 입석 손님이 의자 등받이를 잡아서 불편하신가요. 150명 정도의 승객이 앉거나 서거나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객차 1량 속에서 우리는 인생의 전 과정을 볼 수도 있고 삶의 단계를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손님은 부산에서부터 앉아옵니다. 수원역에 7시30분에 당도하여 서울로
하나의 마침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말에 공직을 마치고 민간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길다 할 수 있는 39년 8개월의 경험중 주사에서 사무관에 승진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사무관이 되어서 팀장, 동장, 계장, 담당으로 일하면서 느낀 바를 적어 책으로 엮어내면 후임 동료들에게 작은 참고가 될 수 있겠다는 구상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전에 적어둔 몇 가지 글을 합하여 300쪽 정도의 소책자를 만들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자료집에 금강산 다녀온 이야기, 백령도에서 국토 체험한 스토리, 백두산에서 역사를 만났던 감동을 합해 보았습니다. 쌍둥이 아이 낳고 3년동은 바쁘고 힘들고 기쁘게 키웠던 이야기를 글로 적으니 원고지 20매가 되었고 23세 청년의 무모한 도전으로 강원도 한계령을 걸어서 1박2일만에 넘어간 전체 3박4일 이야기를 써둔 바 있어 이를 함께 모아본 것입니다. 작은 조크는 모든 사무실 동료들에게 활력의 에너지가 된다는 생각으로 노트에 적고 늘 활용해 왔는데 이를 몇개 골라서 추가하였고, 오산시에서 시작된 청렴강의가 지방행정연수원, 양평군, 원주시를 거쳐 이곳 안산시의 추천을 받아 5월말에 간부회의에서 다시한번
중세에 유리 장인이 깨어지지 않는 유리를 발명하여 그 기술을 왕에게 바쳤습니다. 그런데 왕은 그 기술을 활용하지 않고 오히려 그 유리 장인을 죽이라 명하였습니다. 그래서 깨어지지 않는 유리를 만드는 기술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투명하면서 비바람을 막아주는 유리는 그 쓰임새가 참으로 많습니다만 현재에 와서도 창문이나 식탁을 장식하는 유리는 깨어진다는 부담감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왕이 깨어지지 않는 유리를 만든 장인을 죽인 이유는 무었일까요. 깨어지지 않는 유리가 나온다면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금과 은, 보석 등의 가치가 하락할 것을 걱정하여 유리장인을 죽인 것이라 합니다. 이와 유사한 일들이 역사속에 얼마나 많이 스쳐 지나갔을까요. 행정에서도 참좋은 제안제도가 있습니다. 추진중인 행정방식을 개선하거나 새로운 일처리 방법을 제시하는 취지가 아주 좋은 혁신창구 입니다. 하지만 어렵게 제출된 제안내용이 담당부서 심사과정에서 왜곡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고 합니다. 어떤 공무원은 평생 단 한 번 제안제도에 출품했다가 혹평을 당하고나서 다시는 제출하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또 한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제안을 내고 날짜가 잡혀서 설명하러 회의실에 올라갔더니
우리는 대략 2주일 후의 약속을 합니다. 그리고 실제 활동은 일주일 단위입니다. 달력은 12개월치를 한꺼번에 인쇄하여 매달아 줍니다만 실제로 다음달 달력에 약속을 잡는 사람은 전체의 1% 이내일 것입니다. 대략 3년치 약속을 하는 분으로 교황님, 정명훈 연주자, 성악가 조수미, 박근혜 대통령일 것입니다. 남경필 도지사님도 내년 약속을 잡지는 않는듯 느껴지고 곽상욱 시장님 일정은 3달후쯤은 잡혀가는 듯 보입니다. 1%이내 인사들의 스케줄에 대한 개인적 생각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번주 토요일까지 약속이 있습니다. 다음주 월요일에는 간부회의나 위원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하다면 인간의 평균수명이 80년이라 하고 100년후의 약속을 잡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요. 예를 들어서 자녀들에게 2080년 1월20일에 모여서 우리 조상님중 응록이라는 어르신의 일대기에 대해 평가하고 돼지 한마리 잡아서 잔치를 벌이라는 약속을 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2015년에 근무중인 오산시장님이나 경기도지사님은 임기인 4년치 일만을 하여야 하는 것일까요. 8년 후에 오시는 단체장이 하시도록 지금 장기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이를 추진하여 다음 대 기관장도, 그 다음 기관장도 이어서 추진
동료들과 함께 오리집에 갔습니다. 살아온 이야기를 재미있게 주고 받으며 훈제오리를 구워먹었고 후반부에 된장찌게를 먹고자 주문을 하였습니다. 사실은 종업원이 주방장님 퇴근시간이 임박했다며 식사를 할 것이면 지금 주문하라는 압박을 받으며 메뉴를 받아보니 공기밥+된장찌게, 누룽지, 잔치국수 등이 있습니다. 4명이 누릉지+된장찌게를 주문했습니다. 누룽지를 먹으며 된장찌게 국물을 떠먹는 맛을 알기에 말입니다. 하지만 누룽지만 나오고 된장찌게는 아직 나오지 않습니다. 아마도 일찍 퇴근하시는 존경받는(?) 주방장님이 된장찌게를 끓이시는 중이려니 하면서 기다렸지만 누룽지를 후루룩 다 마시도록 된장찌게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종업원에게 물었습니다. 된장찌게는 언제 나오는 것인가요? 종업원의 대답은 누룽지에는 된장찌게가 나오지 않고 그냥 김치하고 드시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더더욱 재미있습니다. 카운터에서 계산하는 프로그램에 공기밥+된장찌게은 가격이 있지만 된장찌게+누릉지에 대한 가격표가 없어서 나오지 않았답니다. 우리의 기대는 가격표는 공기밥+된장으로 체크하고 실제로는 누룽지+된장을 주시면 되는 일인데 말입니다. 여러명의 종업원이 각각의 코너를 담당하다보니 발생할 수
병우회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이제 퇴임한 회원, 자리를 바꾼 회원 등 삶의 행태가 다양해졌습니다. 30세 전후의 예비군들이 막걸리를 마시며 만난 것인데 이제 회갑을 앞둔 초로의 아저씨가 되었습니다. 성성하던 머리에는 흰 눈이 내리고 듬성해진 틈새로 붉은 이마가 반작이는 그런 나이에 이른 것입니다. 소주잔 가득 25도짜리 알콜을 받자마자 원샷 하고 캬~~~소리로 술을 마셨던 시절은 지나고 이제는 주정 19도에도 이르지 못하는 소주 반잔을 받으며 손이 떨리는 것을 어찌하여야 하나요. 세월을 탓할 일은 아닌 줄 알지만 본인을 책망하기도 어려우니 가는 세월 잡아주지 못한 가수 ‘서유석 형’을 원망하든가 저 푸른 초원위에 집을 짓지 못하게 된 자신의 입장을 ‘남진이 형’한테 하소연 하거나 해야 할 판인 듯 보입니다. 결국 마음만 추억에 취하고 마신 술을 향수로 날려보낸 저녁은 그렇게 마감되고 다시 돌아와 옛날 추억을 하면서 누군가가 말한대로 예비군 시절에 찍은 사진이 있는가 앨범을 뒤적거려 볼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아도 당시에 사진을 찍을 일이 없었던 듯 생각합니다. 그때나 요즘에나 예비군 훈련장에 카메라를 들고 가는 예비군 아저씨는 없을 것이고 요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