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수많은 선택과 결정의 과정이라는 말을 합니다. 인생이 걸어온 길은 그 선택의 결과로 사거리에서 직진하기도 하고 삼거리에서 우회전 또는 좌회전하고 고속도로에 진입하고 다시 넓은 길을 나와서 좁은 길, 비포장길, 자갈길을 서행하다가 또다시 넓은 길을 만나서 창문을 열고 시원하게 질주하기도 합니다. 인생을 돌이켜보면 신명나게 달린 구간도 있고 덜덜거리며 불편한 먼짓길을 불편하게 운행한 시절도 있습니다. 대구에서 젊은시절을 보낸 지인이 최근에 고향을 다녀왔는데 40년전보다 도로가 넓어지고 구간도 늘어나서 첨단의 네비게이션을 이용하여 목적지를 가기위해 운전을 하니 이처럼 다양한 경로가 생겨났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인생도 참으로 많은 선택과 결정을 해야하고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인가 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차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하다보면 한두번 실수로 고속도로 출구를 지나치거나 조금 일찍 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갑자기 남은 거리가 80km에서 120으로 늘어나는 순간에 화들짝 놀라게 됩니다만 잠시후에는 스스로 마음을 평온하게 잡아보기도 합니다. 그 이유와 핑계는 신의 뜻이라 가정합니다. 아마도 지금 이 순간에 가는 길
아내는 경기도문화의 전당 홍보요원 격입니다. 직원은 아니고 인근에 살면서 자주 공연관람을 하다보니 전당의 직원들과 친해지고, 그래서 어느 해부터 관객을 채우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몇 년전에는 담당 본부장이 관객 유치에 수고한다고 명함을 새겨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아파트에 사는 분들을 관객으로 참여시켰는데 점차 인맥이 늘어나면서 초등학교 선생님, 중고 교사, 다른 아파트 주민도 참여합니다. 일주일에 두 번정도 문화의 전당에 가서 처음오는 분들을 안내하여 입장시켜줍니다. 초보자는 문화의 전당은 반드시 돈을 내야 하는 줄 아십니다만 잘 알아보면 수준높은 무료공연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도지사, 문광국장이 방문하시는 날에는 공연 담당자들은 관객이 적을까 해서 勞心焦思(노심초사)입니다. 여하튼 행사에는 참석 시민이 많아야 하는 것처럼 문화의 전당에서도 관객이 객석의 의자를 채우고 복도에 늘어서 앉아주기를 바랍니다. 공무원에게 있어서 시장님 참석하시는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시민이 다수 참여하고 시의원이 거의 다 오시는 만석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장님, 과장님은 시장님 참석 행사가 있으면 일찌감치 현장에 가서 시민들의 동태를 살피는 것입니다. ‘문화의 전
1996년 9월1 1일 우리 가족 앞에 나타난 승용차 번호는 경기 30 라6085입니다. 크레도스(기아) 1996년식입니다. 대형은 아니고 중형으로서는 좀 크다할 1998cc 차량으로 오토메틱 기어 전륜 구동식입니다. 처음에는 경차를 마련하려 했는데 당시 6살이던 아들 현재가 우리도 외삼촌과 같은 차를 사자고 졸라서 크레도스 중형으로 결정했습니다. 지금도 당시의 상황을 가족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1996년은 경기도인재개발원에서 사무관 승진을 준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4월 3일에 교재연구담당관실에 배속되어 근무 중인데 승진교육 대상자가 넘쳐나서 교육대상자 선발 기준을 3월말로 정하는 바람에 6개월을 더 기다려 11월23일에 교육 마치고 사무관 승진 발령을 받았습니다. 6085 크레도스를 구입과 등록, 제세 납부 등에 대략 2천만원 정도를 지출했습니다. 그리고 1997년 2월13일에 동두천시 생연4동장이 되면서 만 2년 동안 크레도스는 매주 토요일에 수원으로 왔다가 월요일 새벽에 98km를 달려 동두천시청에 도착하여 방제환 시장님 주재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동두천시에 근무하던 1998년에 큰 수해가 발생했습니다. 그 날은 휴가 3일차로서 내일은 어디를 갈까
필요하면 찾게 됩니다. 화성군 팔탄면사무소에서 회계업무를 보다가 경기도농민교육원으로 전근되어 또다시 서무회계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매일매일 이런저런 구매가 있고 강사님 수당을 드리기 위해서는 경기은행에서 공금수표를 현금으로 찾아와야 합니다. 철물점도 가야하고 약국에서 구매할 것도 있습니다. 식품은 매일매일 배달차가 와서 신선한 야채와 곡식, 육류, 생선 등을 가져옵니다. 매일 오전에 한번 시장과 은행에 가야하고 가끔은 경기도청 총무과 회계과 지방과에 들러야 하는데 차량은 4대, 운전하시는 분은 3명으로서 통근버스 운전자는 승용차를 운전하는 임무를 받지 않았으니 매번 부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적극적인 자세를 가진 공무원은 이일 저일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겠지만 서무 회계와 달리 운전업무는 늘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니 우리 공직의 업무구조상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기는 참 어렵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거나 오히려 과거보다 현재에는 불필요한 책임소재로 인해 조직의 창의력을 발휘하는데 걸림돌이 더 많아 보입니다. 교관들은 운전면허가 있으므로 급할때 부탁을 하기도 하였지만 이 또한 3년 6개월을 근무한 사업소 생활 내내 가능
핸드폰 없던 시절에 사무실은 전화벨소리로 일을 하는 듯 보였습니다. 전화가 오고 전화를 통화하고 그런 소란스러움으로 행정을 무르익어갔습니다. 과장님(4급)이 출장이거나 부재중이면 차석(6급)들은 일상의 업무를 했습니다. 그런데 과장님이 재실중이시면 시군청에 전화를 해서 업무독촉을 했습니다. 당시, 1985년경 경기도청의 모든과에서는 과장님 출장일을 無頭日(무두일)이라 했습니다. 작은 5촉짜리 불을 켜는 무드등이 아니라 머리가 없는 날이니, 즉 과장님이 출타중이시니 신나게 놀 수 있는 날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사무관 계장들은 한잔하러 가고 6급 차석들도 자신들만의 대화를 위해 족발집으로 갔습니다. 그리되면 7급이하들은 쩜모임이라면서 좋아하는 식당에서 한 잔 하면서 계장, 과장을 식탁에 올려 안주로 대신했습니다. 하지만 과장이 在室(재실)중이면 6급들은 자신의 5급 승진권을 쥐고 있는 과장님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시군을 통할하는 업무를 열심히 추진한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전화를 통화했습니다. 큰 소리로 시군 공무원을 야단치는 차석이 일 잘하는 직원으로 평가되기 때문입니다. 과장님이 6급 차석 4명의 점수 순서를 매겨서 국장에게 넘기면 4개국을 총괄하시는 국
1958년 12월 15일에 이강석은 비봉면 자안리 208번지에서 태어났습니다. 1965년에 청룡초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김재엽군의 회고를 보겠습니다. [초등학교 동창 김재엽 친구의 글] 이강석 친구가 기억을 더듬어 상세하게 기술하였는데, 약간의 수정을 가하자면 1971년도에는 중학교 1학년 시절이니까 서울 여행은 1970년도 4월 하순으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비봉까지 걸어간 것이 아니고 첫날에는 대절버스로 청룡초등학교에서 이동하여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동상 앞에서 단체사진 찍고 곧바로 서울 창경궁으로 가서 식물원 구경하고 식물원 마당과 계단 등에서 싸간 도시락을 먹었었죠. 당시에 우리 어머니께서 김밥을 난생 처음으로 싸본 실력이 참으로 어이없었다고나 할까요. 쌀밥에 그냥 구운 김을 둘둘 말아서 잘게 썰지도 않고 새로 나온 나무도시락에 하나 가득 담아주셨죠. 그야말로 반찬 하나 첨부되지 않은 순수김밥을 먹으려니 참으로 싱거워서 하나도 못 먹고 있었는데 마침 지호친구가 하나 바꿔먹자고 제안해 와서 계란부침도 들어가고 시금치나물도 들어간 진짜 맛있는 김밥을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그리고 역시 맛없는 내 김밥을 억지로 먹으면서도 맛있다며 밝게 웃어준 지호
자신보다 남을 위해 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修道(수도)하는 마음으로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 저승길에서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전설처럼 전해지는 스토리입니다. 80세를 사신 노인은 평생 동안 남에게 베푼 것은 단 두 번의 해프닝이 있을 뿐입니다. 어느 날 아침 돼지죽을 주기위해 뜨거운 국물을 들고 나왔는데 새벽에 스님이 托鉢(탁발)을 합니다. 탁발(托鉢)이란 '바리때(공양 그릇)를 받쳐 들다.'라는 뜻으로 승려들이 공양과 보시로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을 가리킨다. 출가 수행자는 발우를 들고 마을로 나가서 음식을 얻는다. 이것은 단순한 구걸이 아니라 하나의 수행 방식이다. 탁발을 통해 아집(我執)과 아만(我慢)을 없애고, 무욕과 무소유를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보시를 주는 이의 공덕을 쌓게 해 주는 역할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탁발 노인은 식전 댓바람에 재수없게 탁발 동냥을 왔느냐면서 화를 내고 다른 집으로 가라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고승은 차분하게 念佛(염불)을 하면서 수도하는 자세로 기다립니다. 결국 화가 난 노인은 들고있던 돼지죽을 스님의 머리에 뿌렸습니다. 또 한 번은 어느 해에 산달을 맞이한 産母(산모)가 출산을 도
광교산에 다녀와 힘을 내서 37권째 수필집 원고를 완성하여 인터넷으로 부크크에 보냈습니다. 3일 안에 편집상태를 점검하고 간부의 결재를 받아 책으로 완성해 줄 것입니다. 지난주까지는 부크크에도 코로나가 와서 잠시 업무가 지연된 바 있습니다. 이제는 어느정도 안정을 찾았을 것으로 기대를 합니다. 출판사를 하는, 나의 책 2권을 멋지게 편집, 발간해서 출시해준 김재엽 사장에게 3권부터 지금까지 인터넷, 부크크에서 발행을 한다고 하니 책이란 정석으로 출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37권을 모두 출판사의 보통의 방식으로 저렴하게 발행한다 해도 500만원을 37번하면 1억8500만원이 필요합니다. 팔리는 책이면 몰라도 그냥 편집해서 간직하는 개인서점, 개인도서관인데 큰 돈을 들일 수 없고 마침 시대를 잘 만나서 인터넷 방식의 책을 내는 것이니 그리 이해해 달라 부탁했습니다. 퇴직해서 출판사를 거쳐 2권의 책을 냈고 공무원 연수기간중에 2권의 자료집을 낸 것으로 아나로그 인쇄는 다 한 듯 생각합니다. 이처럼 인터넷으로 출간할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난 것이 고마운 일이고 눈뜨면 머리속을 스치는 생각들을 문자로, 글로, 문장으로 저장하고 이를 갈무리해서
아침에 눈이 오면서 바닥에 녹아 흐르더니 저녁에는 아스팔트 바닥이 얼름장, 유리판이 됩니다. 내일은 더 많은 눈이 내릴 수도 있고 기온도 영하로 많이 내려간다고 예보합니다. 2022년에서 2023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冬將軍(동장군)이 잠시 그 위세를 우리에게 크게 확실히 보여주려 하는가 봅니다. 사실 지난 10년 동안에 동장군은 없고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만 보았던 기억입니다. 오늘 오전에 승용차 운전을 하는데 눈발이 정면에서 화살처럼 날아 들었습니다. 윈도우 브러시를 최근에 교환하여 유리면은 빠드득 잘 닦이지만 그렇다고 총알처럼 날아오는 눈발을 막아주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 주유를 하고 세차를 위해 4,000원을 지불하였습니다. 5만원 이상 주유하면 세차비를 할인해 줍니다. 청년들이 실내 세차를 도와주곤 했는데 날씨가 추워져서 중단된 듯 보입니다. 춥다고 집에서 출근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끈기가 약하다고 합니다. 춥다고 안 나오고 귀찮아서 결근하고 그냥 노느라 직장에 나오지 않으면 ‘소는 누가 키우나요.’ ‘세차는 누가 하나요.’ 그래서 외부만 세차하고 실내는 신발을 타고 들어온 흙을 정리하는 정도로 관리했던 바인데 오늘 새벽부터 황사
살면서 걱정을 해도 되고 안해도 된다는 말을 듣습니다. 과도한 걱정을 하는 사람에게 杞憂(기우)라고 말합니다. 콧구멍이 하늘쪽으로 난 사람이 비가오면 코속으로 빗방울이 들어갈까 걱정하였지만 인생을 살면서 콧구멍으로 물이 들어가서 불편한 일은 거의 겪지 않았다고 합니다. 중국(中國)의 기나라(杞--)에 하늘이 무너지면 몸 둘 바가 없을 것이라 걱정하여 침식(寢食)을 전폐(全閉)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 소리를 들은 어떤 사람이 이를 딱 하게 여겨 일부러 그 사람에게 가서 깨우쳐 말하되 「하늘은 기운이 가득 차서 이루어진 것이니 어찌 무너져서 떨어지리요?」 그 사람이 말하되 「하늘이 과연 기운이 쌓여 이루어졌다면 해와 달과 별은 마땅히 떨어지지 않으리요.」 일깨워 주는 사람이 말하되 「해와 달과 별도 또한 기운이 쌓여 있는 가운데 빛이 있는 것이라. 비록 떨어지더라도 또한 능히 맞아서 상(傷)하는 바가 없느니라.」 그 사람이 말하되 「어찌 땅은 무너지지 않으리요?」 일깨워 주는 사람이 말하되 「땅은 기운이 뭉쳐서 이루어진 것이니 어찌 그 무너지는 것을 근심하리요?」 그 사람이 근심을 풀고서 크게 기뻐하고 일깨워 준 사람도 걱정을 풀고서 크게 기뻐하더라. 杞憂(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