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언론인·독자에게 추천하는 글
[ 어라! 이 친구 뭐지? ]
관선기자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공보실에서 홍보를 담당하는 공직자를 두고 출입기자들이 불러주는 별칭이지요.
그러나 모두가 별칭으로 불리워지진 않습니다.
기자보다도 뛰어난 필력에 정무적인 감각이 있어야 얻어지는 별칭입니다. <중략>
9급 말단 공무원으로 시작해 1급 관리관으로 명예퇴직하는 전설로 남게 된 것도 홍보업무를 하면서 얻는 역량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연배는 아래지만 홍보업무를 함께 했던 그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존경했습니다. <중략> 그의 소중한 경험이 후배공직자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공직사회를 이해하는 길라잡이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시인 홍승표(전 용인부시장/전 경기관광공사 사장)
1988년에는 토요일자 지방신문이 나왔으므로 기자들은 금요일 오후까지 취재를 하느라 힘이 들었습니다. 이후 행정부와 기업들이 토요일을 쉬게 되었지만 신문 토요일 발행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4개 신문이 금요일 조간만 발행하였고 1개사는 수개월 넘게 토요일 발행을 고수하다가 결국 현재처럼 월화수목금 발행으로 바뀌었습니다. 언론사주는 광고수입을 위해 토요일 발행을 강행하였고 취재기자들은 타사와의 형평성을 주장했을 것입니다. 토요일과 일요일 2일간 지방지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 시간적 공간을 중앙지 토요일자와 인터넷신문에 메웠습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모바일을 통한 신문검색이 늘어나면서 종이신문의 설 자리가 줄어드는 듯했습니다만 독자 중에는 종이신문에 대한 애정이 살아있기에 매일아침 종이신문은 깔끔하게 독자들의 대문앞에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사실 종이신문은 끝까지 읽게 되고 활자속에 숨어있는 이른바 '행간의 의미'를 읽기 위해 독자들은 더더욱 집중하게 됩니다. 하지만 인터넷기사는 제목 위주, 중간에 끼어드는 광고 배너 등으로 인해 기사 전체에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수시로 업데이트 된다는 생각에 종이신문만큼의 집중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우리는 일을 하면서 이런 내용이 기사가 될까 스스로 고민하다 포기하게 됩니다만 좀더 적극적인 홍보전략을 만들고 밀어 붙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흔히 지방자치단체장 취임 100일 기사를 보게 됩니다. 취임 3개월 10일이 지난 것입니다. 사실 100일 잔치를 하는 이유는 이 아이가 태어나 (죽지 않고) 이 세상에 적응하였음을 기뻐하는 어렵던 시절의 아픈 추억에서 시작된 것이라 합니다. 마찬가지로 기관장 취임 100일은 새로운 토양에 옮겨져서 물을 머금고 활착, 뿌리를 내렸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계기성 홍보전략의 개발이 필요합니다. 그 무슨 이유를 달아서 보도자료를 내자는 것입니다. 행정기관의 기사는 1개과에서 큰 활자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한 두 명이 방송카메라를 불러들일 수 없습니다. 협업이 필요합니다. 언론인을 끌어들이는 다양한 전략을 생각해야 합니다. 큰 고기를 잡기 위해 엉뚱한 곳에 밑밥을 던지고 전혀 다른 90도 다른 방향으로 낚시를 던지는 것을 봅니다. 밑밥은 잔고기를 유인하는 것이고 큰 고기를 잡기 위해 그 자리를 포인트로 해서 큰 미끼를 매단 낚시를 던지는 것입니다. 바둑에 나오는 聲東擊西(성동격서)까지는 아니지만 늘 방학숙제로
장마비가 밤새 내렸다면 새벽 5시에 공보실 직원은 사무실에 나가야 합니다. 재난 현장에는 재난부서가 출동하였으므로 공보실 직원은 사무실에 가서 재난상황 자료를 받아 기자실에 배포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재난상황에 대처하는 메뉴얼은 중앙 통제형에 중앙 집중적이어서 지방자치단체가 재난상황을 언론에 전파하는 시각의 오차가 아주 큽니다. 장마속에 사망자가 나와도 시도 시군구 재난상황실 상황판에 1명 사망했다는 기록이 올라가려면 한나절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방송기자들은 이미 현장에서 사망사건을 취재하고 도청 상황실에서 한 번 더 확인하고자 재난상황실에 방문하였지만 상황판에는 강우량만 적혀있고 사망자에 대한 상황은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방송기자는 공보실 기자실에 옷과 짐을 두고 상황실에 가서 확인합니다. "3명 사망이지요?" "사망자 없습니다." "왜 없어요. 현장에서 확인하고 오는 길인데요." 처음 이런 말을 들었을 때는 언론인을 위해 사건사고가 발생하여야 하는 것인가 자문자답해 보았습니다. 이제는 그 기자들의 멘트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상황실에서 사망 관련 취재를 보충하지 못한 방송기자는 공보실에 와서 사망 3명을 확인받으려 합니다. 이때 공보실 공무원은
경기북부청에 근무할 당시에 경남MBC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습니다. 경상남도에 서부청이 신설되어 '서부부지사'가 직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1999년 경기도가 북부청으로 확장하여 제2부지사를 설치한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흔쾌히 인터뷰를 승락하였습니다. 인구, 면적, 행정조직 등 다양한 자료를 준비하고 사전에 읽어보았습니다만 사실 TV인터뷰는 30분동안 찍어도 10초 이내의 짧은 멘트만 남는 것이니 큰 걱정이 아닌것입니다. 그리고 방송기자가 쓰고 싶은 부분에 자신들의 논리를 보충해 주는 인터뷰 내용을 편집하여 인서트하는 것입니다. 그냥 편안하게 이런 말 저런 이야기를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전 리허설로 테이블에 앉아서 차 한잔 마시면서 할 이야기를 한 후 카메라 앞에서 그 말을 다시 반복하였습니다. 카메라를 보는 것이 아니라 취재기자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듯이 말하면 되는 것입니다. 천천히 말하면 빠르게 당길 수 있지만 빠른 말을 늘리기는 어렵다고 하니 일단 여유롭고 천천히 답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질문지를 보거나 답변자료를 참고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중요한 이야기는 이미 머릿속에 자리한 것이고 구체적인 내용은 취재기자의 리포터에
모임에서 만난 KBS소속 언론인에게 '악어와 악어새'라는 소재를 가지고 글을 쓰고 있다는 자랑을 하였더니 기자정신으로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책으로 최종 정리하기 전에 취재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 내용을 추가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요즘에는 여러가지 취재방식이나 운용방식이 다르다는 설명도 첨가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기관에서 준비한 보도자료를 복사해서 기자실에 빼곡하게 배치된 각 언론사별 책상위에 올려주는 것으로 우리의 할 바를 다했다는 생각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자만심이라 할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각 기관에 출입하는 기자가 취재의 중심축에 있는 것은 맞지만 그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취재하고 보도하는 다양한 매체가 있고 그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1970년대 경기도청 출입기자님 명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군대 차트병 출신인듯 각지게 쓴 이 자료를 보면 경기신문, 경향신문, 동아일보, 신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매일경제, 서울경제, 현대경제, 경제통신, 산업통신, 시사통신, 문화방송, 한국방송공사, 기독교방송 등 18개사 회사명, 기자 이름, 사무실 전화, 집
열심히 일하다가 언론에 지적기사가 나면 담당 공무원의 마음은 심히 아픕니다. 나름 고민하고 공직자로서의 기본인 창의적인 업무추진을 위해 새로운 시책을 만들어 상사를 설득하고 예산 등 관련 부서를 설득하여 어렵게 추진하는 사업에 대하여 추진실적이 70%에 머물렀다는 비판적 기사를 접하게 되면 힘이 쑥 빠지면서 더 이상의 창의력 충전은 스톱됩니다. 주변에 보면 관계규정에 의해 당연히 추진하여야 하는 업무가 있지만 예산부족, 인력부족, 기타 복지부동의 사유로 아예 업무추진을 중단한 사례가 있다면 이를 찾아내어 권장하고 미진한 부분은 지적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추진하면서 여기에 더하여 새로운 업무를 창의적으로 운영하는 부서에 대하여 실적부진이나 부작용 등을 지적하면 이를 얻어 맞는 공무원은 언론이 針小棒大(침소봉대)하였다거나 공정성의 길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언론의 표현이 편집부 기자들의 제목에서 크게 좌우되어 긍정기사로 올라온 기사가 부정적인 쪽으로 기우는가 하면 비판성 기사를 올렸지만 제목에서 약하게 다루면 그런대로 반타작 기사가 될 수 있는 경우는 아주 흔하다 할 것입니다. 즉, 소주가 반병이나 남았다고 말하는 것은 술에
출입처에서 제공하는 자료만으로 멋진 기사를 만들어 내는 기자가 있고 기관에서 예상하지 못한 파트에서 기사를 발굴하여 독자와 타 언론사 출입 기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기자가 있습니다. 기관의 보도자료를 제공한 후 기사가 나오는 행태를 보면 이것이 기사가 되겠다 하는 것은 작게 써지거나 무시당하고, 보도자료를 내면서도 약간 쑥스러운 생각까지 들었던 연약해 보이는 자료가 아주 큰 활자로 지면을 장식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입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모든 언론은 가까이에서 자신들을 바라보는 독자와 시청자를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경기도청 기사실에 원고지와 노트북을 보관하고 있지만 이 중앙지 기자의 '나오바리(취재구역)'는 교육청, 진흥청, 시군 등 아주 넓은 영역을 수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모든 언론사가 쓸 것으로 생각되는 자료는 작게 쓰고 혼자만 취재한 사건은 크게 내도록 데스크에 부탁하는가 봅니다. 아직은 공직생활이 一天(일천)한(한 번 숨을 쉰다는 뜻으로, 매우 짧은 시간을 이르는 말) 하룻강아지 7급 주무관의 생각이었으니 행정과 언론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소상히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변에서도 참 좋은 자료라는 평을 해주는 자료
1990년대에 언론홍보를 하면서 자료를 E-Mail로 송고한다는 소문을 들은 인근의 광역자치단체 홍보팀장이 벤치마킹을 하러 오셨으므로 상세하게 그 과정과 내용을 설명드렸습니다. E-Mail이라는 것은 당시를 시점으로 보아도 이미 10수년 전에 시작된 것이고 1996년경에 하이텔, 천리안이라는 인터넷 연결 이메일을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전산 전문가인 선배 공무원이 전화기 코드를 뽑아서 컴퓨터 뒷면에 연결하고 인터넷망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고 참으로 신기하다 생각했습니다. 소련에 업무차 가신 교수님이 소련 땅에서 E-Mail로 교안자료를 보내시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쯤 보낸다 했으므로 천리안이나 하이텔로 메일을 연결해서 교안 자료를 받아 교육교재를 편집한다 했습니다. 여기서 상황정리가 필요합니다. 소련 공산국가에 교수님이 여행을 간다는 것도 황당한 일인데 거기가서 이메일로 파일을 보내면 전선을 타고 이곳에 도착할 것이고 그 내용을 따운받아 자료로 쓰겠다는 것은 더더욱 荒唐無稽(황당무계)한 일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메일이 왔다하고 한글파일을 받아 교재를 편집해서 교육에 활용했습니다. 이렇게 만난 이메일을 언론홍보에 활용하고 있으니 다른 기관에서 찾아올 만한
언론중재법은 언론사 등의 언론보도 또는 그 매개(媒介)로 인하여 침해되는 명예 또는 권리나 그 밖의 법익(法益)에 관한 다툼이 있는 경우 이를 조정하고 중재하는 등의 실효성 있는 구제제도를 확립함으로써 언론의 자유와 공적(公的) 책임을 조화함을 목적으로 한다. 언론중재법을 보면 ① 언론의 자유와 독립은 보장된다. ② 누구든지 언론의 자유와 독립에 관하여 어떠한 규제나 간섭을 할 수 없다. ③ 언론은 정보원(情報源)에 대하여 자유로이 접근할 권리와 그 취재한 정보를 자유로이 공표할 자유를 갖는다. 자유와 권리는 헌법과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제한받지 아니한다. 그리고 언론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① 언론의 보도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하고, 국민의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보호·신장하여야 한다. ② 언론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여야 하고,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타인의 권리나 공중도덕 또는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③ 언론은 공적인 관심사에 대하여 공익을 대변하며, 취재·보도·논평 또는 그 밖의 방법으로 민주적 여론형성에 이바지함으로써 그 공적 임무를 수행한다. 또한 ① 언론, 인터넷뉴스서비스 및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은 타인의 생명, 자유,
언론인은 지속적으로 중앙 지향적입니다. 경기도내 지방 언론인으로 들어와 중앙 방송국의 간부가 된 경우가 있고 중앙신문사 부장급이 된 사례도 많습니다. 같은 지방지 간에도 많은 언론인들이 오고가고 신문기자가 방송으로 가고 방송기자가 신문으로 통신으로 인터넷신문으로 자리를 이동합니다. 경쟁사 기자로 건너가서 승승장구하는 케이스도 더러 있습니다. 잘 아는 K기자는 지방지에서 장기근속 후 경제지에 있다가 다른 지방사에서 다시 최초 근무하였던 회사에 복귀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룹 이동의 경우도 있는데 이는 아마도 끈끈한 선후배의 정으로 뭉쳐진 독수리 5형제의 경우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함께 간다 입니다. 언론사 에이스로 활동하다가 퇴직한 후 다른 신문사 부국장으로 가는 코스는 마치 공무원이 정년을 앞두고 산하기관 본부장으로 가는 경우와 유사합니다. 젊은 시절 신문사 차장 부장을 거쳐 국장을 하신 분들이므로 언론에 대한 경륜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입니다. 공무원은 내부 인사숨통을 열기 위해 정년 2년 전에 산하기관에 가서 경험을 발휘하고 퇴직하도록 하는 제도를 운영해 왔습니다. 이를 요즘에 언론에서 '관피아'라면서 비판을 합니다. 세파속에 흔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