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패#비석#명함

누구에게나 아버지는 先親(선친)이 되십니다.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를 先親(선친)이라 부릅니다. 春府丈(춘부장)은 다른 이의 아버지 존칭입니다.

 

그래서 춘부장 어르신으로 호칭합니다. 조상의 묘비를 보면 이름 앞에 諱(휘=죽은 어른의 생전 이름)자를 씁니다. 후손들은 돌아가신 조상의 墓碑(묘비)에 이름을 새깁니다. 돌에 이름을 새기는 이유는 긴 세월 동안 그 자리에 보존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집 대문에는 나무판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문패를 달아둡니다. 손님이 오시거나 우체부, 택배를 받기 위함일 것입니다. 더러는 돌이나 비슷한 재질로 이름을 새겨서 대문 앞에 자랑스럽게 걸어둡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이의 양복주머니에는 명함이 들어있고 지갑에는 약간의 현금과 신용카드가 들어있습니다. 명함은 단단한 종이에 자신의 신분과 주소, 연락 방법으로 전화번호, E-Mail, 홈페이지, 카페주소, SNS 등 다양한 수단을 적어줍니다. 명함에 주민등록번호를 적는 예는 없습니다. 감사, 인사부서 공무원들은 명함에 사무실 전화번호만 인쇄합니다.

 

공직자로서 동장이 되어서는 명함에 기본사항을 넣고 말미에는 명함 제작일을 넣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신의 명함에 제작일을 넣은 사례는 더 이상 없는 줄 압니다만 그 이유는 명함을 받는 분들이 즉석에서 받은 날짜를 기록하거나 주고받는 상황을 적어두는 것을 보고서 앞으로는 명함 제작일을 인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지금도 명함을 가지고 다니면서 처음 만난 분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수단으로 드립니다. 명함 제작일을 본 상대방이 질문을 하면 자연스럽게 답을 하면서 대화를 부드럽게 진행합니다. 상대방을 위하는 작은 배려라는 평가를 받곤 합니다.

 

요즘 아파트에는 문패가 걸리지 않습니다. 건물 외벽에서 동의 숫자를 확인하고 입구에서 호수를 확인하고 들어갑니다. 아파트 대문에 문패를 걸면 관리소장이 찾아와서 철거를 요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획일적인 아파트 문화는 개인의 존재를 막아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夫婦(부부)문패의 嚆矢(효시)는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로 압니다. 전통적으로 할아버지, 아버지 이름을 걸었던 시대에서 남녀평등, 성평등의 시대를 열고자 했던 정치인 김대중의 다짐이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조상의 묘 앞에는 碑石(비석)을 세웁니다. 조상님 묘비는 돌에 새깁니다. 나무로 세우는 경우는 돌에 새긴 묘비를 세우기 전에 현장을 표시해 두는 경우일 것입니다. 비석은 돌에 새기는 이유는 긴 세월을 견뎌주기를 바라는 후손의 마음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름은 종이 위에 쓰고 종이 위에 인쇄되어 명함으로 쓰이고 나무에 새겨서 문패가 됩니다. 시대적 큰 인물의 이름은 사당의 位牌(위패)에 새겨집니다. 위패의 재질은 나무입니다. 사당의 실내에 모시므로 나무를 택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비바람을 맞게 되는 묘지의 비석은 반드시 돌에 새깁니다. 돌비석은 영원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오래오래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기 위해 비석을 세우고 여러 가지 석물을 만들어 설치합니다.

 

이처럼 이름, 문패, 명함, 비석을 이야기하고 보니 50년이면 그 소임을 다하는 문패를 돌에 새기는 것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에 이릅니다. 대문에 문패를 걸고 사는 인생은 유한하여 100년에 이르지 못할 것이며 문패를 보고 주인을 알아보는 시간은 대략 50년을 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겸손하게 나무에 이름을 새겨 집 대문에 걸고 그 나무의 색상이 변하고 문패의 나이테 윤곽이 짙어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얼굴 주름살인 듯 여기면서 겸손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거듭 생각해보니 명함에 금칠을 한다고 자신이 금메달 수상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문패를 돌로 만들어 걸어도 수명은 100년을 넘기기 어렵겠습니다.

 

人生七十古來稀(인생칠십고래희). 두보의 곡강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당대에는 아마도 70세가 天壽(천수)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古稀(고희)를 향해가면서 뒤를 돌아보는 습관이 시작되었습니다. 아파트에 살아서 문패를 걸어보지는 못했지만 어느 날 양옥집, 단독주택에 사는 경우 문패는 반드시 나무판으로 제작하여 걸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비석이야 아들딸이 정하겠지만 이미 조성된 조상님 납골묘에 한 자리 차지할 것이니 기존의 조상님 묘비처럼 새기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비석을 세우기보다는 平葬(평장) 형식으로 하는 것이 멋스럽다 생각합니다. 문패를 나무로 하자는 소박한 생각에 연이어서 비석도 세워서 사람들 눈길에 걸리기보다는 바닥에 눕혀서 잔디 풀 몇 가닥이 포근히 감싸 안은 비문을 자손과 지인들이 서서 편안한 눈길을 내려서 바라보게 하자는 마음입니다.

 

권위는 스스로 나타내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인 것처럼 문패든 비석이든 도드라질 것이 아니라 평온하게 있을 자리에 조심스럽게 위치하는 것이 바른길이라 봅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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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오산#남양주 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