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똥구리 날다

​정겸

 

 

꾸벅 꾸벅 졸며 해 따라 가던

해바리기꽃 고개 숙여 선잠 자고 있다

꽃술 떨어진 상처 사이로 지난여름

까맣게 그을린 시간들이 응고되어 촘촘히 매달려 있다

 

제트배송차가 잠시 멈춘 사이

헐떡거리며 아파트 출입문을 향해 달린다

제 몸보다 몇 배 큰 택배박스를

굴리고 당기며 올라가는

쇠똥구리 같이 다부진 사내

한나절 지나자 벌써 지쳐있다

 

계단을 내려오는 사이

새벽에 보았던 별들이 머릿속으로 쏟아지고 있다

순간 아찔, 유성우를 피해 벽에 잠시 기대 본다

통로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이름 없는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물결 잔잔한 바다에서 신기루를 만났다

초록의 해연(海淵)을 따라 빌딩들이 즐비하고

공원마다 화려한 산호초들로 가득하다

오색찬란한 열대어들이 무리지어 다니고

은은하게 맥가이버 오프닝곡이 흘러나온다

 

딸기와 청포도 오렌지가 다문다문 박힌

크레이프 케이크에 촛불이 켜졌다

생일 축하송이 끝날 무렵

우리 아빠 최고라는 외침에

화들짝 놀라 사방을 둘러본다

땀에 젖은 배송계획서 아직 뒷주머니에 꽂혀 있다

 

날아라, 쇠똥구리야.


 

 


정겸 시인

1957년 경기 화성출생(본명 정승렬), 2003년 시사사 등단, 시집 '푸른경전', '공무원', '궁평항', 공무원문예대전 시, 시조부문 행정안전부장관상, 경기시인상 수상, 현재 칼럼니스트와 한국경기시인협회이사로 활동


 

-시작메모-

 

쇠똥구리는 쇠똥이나 말똥을 동그랗게 빚어 자기 집으로 운반해 ‘쇠똥구리’라는 이름이 붙었다.과거 우리나라 전역에서 많이 서식했으나, 축산 환경의 변화에 따라 방목하는 소와 말의 숫자가 대폭 감소되었고 가축의 질병으로 인한 항생제를 사용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사라졌으나 현재는 정부에서 복원이 진행 중에 있다. 쇠똥구리는 제 몸집의 두세배의 먹잇감을 둥글게 말아 서식지인 집까지 운반함으로써 부지런한 곤충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에서 등장하는 쇠똥구리는 늘 작업현장에서 땀을 흘리며 부지런히 일을 하는 택배노동자들을 상징화 한 시다.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허리를 굽혔다 폈다 반복하며 본인의 몇 배나 되는 배달 꾸러미를 들고 아파트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택배 노동자의 애환을 담은 것이다. 특히 이들이 엘리베이터를 옆에 두고도 힘겹게 계단을 활용 배송을 하는 이유는 전기요금이 많이 나온다는 일부의 야박한 아파트 주민과 관리소의 횡포 때문이다. 이들은 한 가정의 생계를 짊어진 가장인 동시에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이다. 이들은 맥가이버가 아님에도 노동시간 적용에서 철저히 소외를 받고 있다. 이 시에 등장하는 택배노동자는 생일에도 일터로 나왔다. 열악한 작업환경 때문에 근로기준법에 명시 된 휴식시간도 없이 배송을 하는 사이 잠시 선잠을 잔다. 그리고 꿈속에서나마 가족들이 차려준 생일상을 받는다. 이 얼마나 슬픈 노동현실인가. 우리나라의 노동환경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한다. 쇠똥구리가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와 푸른 하늘을 향해 훨훨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정겸(시인/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김영준 기자

편집기자 20년 / 경인일보 전 편집부장 / 한국편집상 2회 수상 / 이달의 편집상 6회 수상 / 대구신문 근무 / 대구일보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