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

정겸

 

고향집 헛간 속

낡은 지게 하나 거미줄을 방충망 삼아

고단하게 누워 있다

나뭇결이 사라진 몸통은

파이고 부러지고 상처로 얼룩져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비바람이

그를 몰아쳤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등태와 밀삐는 새끼줄 몇 오라기만 남아 있고

탄력을 잃고 길게 늘어진 탕개 줄에서

등짐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다

어려울 때마다 몸을 지탱해 주었던 작대기는

부러져 균형을 잃은 채 새고자리에 꽂혀 있다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화려한 패션으로

우주선 타고 달에 갔다

논두렁 밭두렁 장터 길마다

아버지가 숨겨 놓은 발자국 화석

삼십팔만 사천 km다

한평생 무거운 짐을 지게에 지고

걸어서 달나라에 갔다.

 

 


정겸 시인

경기 화성 출생(본명 정승렬) / 경희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 졸업 / 격월간 '시사사'로 등단 / 시집 『푸른경전』 『공무원』 『궁평항』 / 공무원문예대전 시부문, 시조부문 행정안전부장관상수상 / 현재 경기시인협회 이사, 칼럼니스트로 활동


 

-시작메모-

 

5월 8일은 어버이날이다. 어머니의 희생은 무어라 표현 할 수 없지만 아버지 또한 그렇다. 아버지는 한 집안의 기둥이다. 그래서 한 가정을 올바르게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대들보를 바치며 반듯하게 서 있다. 그런 아버지는 평생 지게를 지고 논두렁 밭두렁 장터 길을 걸어 다녔다. 한 생애동안 어림잡아 40만 km가 넘는 거리를 걸었다. 자구와 달과의 거리는 38만4천 km다.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1969년7월, 전 세계인들의 관심과 환영을 받으며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 여행을 갔지만 우리네 아버지들은 아무도 모르게 그늘진 곳에서 지게에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서 달나라 보다 먼 길을 걸었던 것이다. 버려진 낡은 지게와 함께 파이고 부러지고 상처로 얼룩진 굴곡의 삶이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오로지 아내와 자식을 위해 제 한 몸 불태웠던 것이다.

정겸 (시인/한국경기시인협회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