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하루

정겸

외눈박이 청솔모가 잣 한 송이 물고

전깃줄 위를 아슬아슬 건너간다

 

중간정도 갔을 때

소나기 한줄기 퍼붓는다

잣송이를 놓일세라 이 악물고 기어간다

삼분의 이 정도를 지났을까

또 한 번 몰아치는 거센 바람

잠시 주춤거리며

머리 숙여 바람 피하고 있다

순간, 한줄기 회오리바람에

툭, 잣송이 계곡으로 떨어졌다

 

전깃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청솔모

그네처럼 흔들거린다

떨어진 잣송이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온 힘을 다해 계곡으로 몸을 날린다

잣송이를 입에 문 청설모

입가에 선혈이 낭자하다

 

피 묻은 잣송이를 사이에 두고

새끼 청솔모들 정신없이 잣 알 빼먹고 있다

외눈박이 청솔모

자식들의 먹는 모습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지그시 눈을 감는다

깡마른 등줄기 따라 땅거미 몰려오고 있다.

 

 

 

-시작메모-

 

우리가 어릴 때 아버지의 존재는 어떠했는가? 비바람 몰아치고 천둥번개가 번쩍 거리며 굉음을 내도 아버지만 곁에 있으면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도 밖에 나가 돈을 벌고 자식들의 먹잇감을 위해 일 할 때는 상사의 눈치를 보며 비굴해지기도 하고 건설 공사현장에서는 목숨을 바쳐 먹잇감 사냥을 한다. 직장 상사가 뭐라 해도 실직 될까 두려워 자존심 죽여 가며 오직 처자식 생각으로 허리 구부려 굽실거린다. ​먹잇감이 있을 때는 어느 누구에게 양보 없이 사투를 걸며 쟁취 한다. 잣 한 송이  얻으려고 전깃줄 위에서 폭풍우와 싸우는 청솔모의 부정(父情). 피투성이가 된 잣 한 송이, 왜 피가 묻어 있는 줄도 모르고 형제들은 그것을 물고 뜯었다. 자식들을 위해 오로지 일만 해오던 아버지.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허기진 배 움켜잡고 낡은 지게 지고 좁은 논두렁을 밟으신 아버지, 지금은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아버지, 그때는 왜 몰랐을까. 오늘 따라 더욱 그립다.

(시인/한국경기시인협회이사 정겸)

 


정겸 시인    

출생 : 1957년 경기 화성(본명 정승렬)

경력 : 경기도청 근무

등단 : 2003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시집 : 푸른경전, 공무원, 궁평항

수상 : 2004년 공무원문예대전 시부문 행정자치부장관상

         2009년 공무원문예대전 시조부문 행정자치부장관상, 경기시인상 수상 

현재 : 칼럼니스트와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