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인간의 삶의 이전이나 이후에 있어서 세월과 시간이 존재할까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그러니까 단군할아버지의 4,200년전 시간이나 2000년에 영면하신 분의 시간이나 앞으로 영구히 함께 흘러갈 것이지만 그 내용이 바뀌거나 변화하지 않는다는 엄연한 진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역사적인 인물의 존재가 역사속에 회자된다 해도 그분의 시간도 멈춘 것이고 흑수저로 태어나 필부필녀로 살다가 80세 언저리에서 삶은 마감한 분의 시간도 그렇게 마쳐진 날부터는 정지한채로 남아있을 것이다. 물론 행운스러운 분의 경우 30년 정도 후손들이 기억하고 추억할 것이지만 이 또한 이승의 삶의 시간이 마감되고 나면 저승에서는 누구에게나 시간은 생을 떠난 날부터 멈춰지고 모래처럼 무궁무진한 세상속으로 나갈 것이다. 말 없는 모래는 春夏秋冬(춘하추동)을 함께 지내고 더위와 추위를 만나도 전혀 변화가 없을 것이다. 다만 시간이 그렇게 흘러서 우주를 정복하고 IT가 발전해서 죽은 세포속의 과거를 둘추어낸다 해도 모래알이 된 그 육체의 잔가루는 그렇게 사막의 한 부분을 차지할 뿐 되돌아오지 못하는 생명체의 추억인 것이다. 하지만 혹시 함께 출발한 정자와 난자를 80년만에 다시 만나는 드라
안녕하십니까? 접수번호 1번 이강석입니다. 저는 경기도 화성시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에 들어왔습니다. 9급 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하였고 경기도청에서 과 서무, 세정, 공보, 예산부서에 근무하고 5급 사무관이 되어서 동장, 팀장으로 일했습니다. 5급 사무관으로 근무 중 공보실에서 7년간 근무하면서 전국체전, 2002년 월드컵 등 체육분야 홍보를 지원했습니다. 4급 과장으로 의회 공보담당관실에서 1년6개월간 근무하였고 이어서 체육진흥과에서 1년간 일하면서 경기도체육회, 경기도생활체육회, 경기도장애인 체육회와 호흡을 맞추며 경기도 체육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체육과 근무 중인 2009년 12월에는 경기도 공무원 노조로부터 존경받는 간부공무원에 선정된 바 있습니다. 체육과장으로서 2010년 캐나다 벤쿠버 동계올림픽 현장에 가서 쇼트랙경기를 관람하고 피겨 김연아 선수 금메달 경기를 직관하였습니다. 경기장과 체육시설을 살펴보는 기회를 갖고 스포츠의 국제적 감각을 체감해 보았습니다. 이어서 경기도와 議會, 國會를 연결하는 대외협력담당관으로 일하였습니다. 행정은 늘 의회와의 협력을 통해 발전하고 있습니다. 2011년에는 경기도 도정홍보를 총괄하는 언론담당관으
리더쉽은 양보에서 나온다. 조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일이 리더에게 있어서 참으로 중요하고 그 힘을 더더욱 발휘하여 탁월하고 실정과 현실에 맞는 목표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좌우상하의 조력과 협조가 필요하다. 그래서 獨不將軍(독불장군)이라는 단어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구멍가게나 슈퍼 사장도 조직원을 이끄는 리더쉽이 필요하다. 그 중에서 참으로 중요한 요소중 하나는 신뢰다. 주인과 종업원 관계라 하더라도 카운터, 계산대를 맡기는 일이고 재고관리를 위임하는 일이며 은행 입금과 출금을 자주 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신뢰가 쌓이고 믿음이 두터워지면 그 슈퍼는 발전하고 성장한다. 하지만 매일 시제를 따지고 금전출납기를 점검하고 불시에 재고조사를 하는 등 신뢰가 부족한 상황이 계속 된다면 종업원들의 이직율이 높아지고 업무에 결손이 생기고 생산성이 떨어지고 심한 경우 상품이 없어지는 사태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 반면 종업원에게 주인이 하는 일을 대행 시키면 그는 행복한 마음을 갖게되고 충심으로 일하면서 자신의 평생 직장, 또는 직업의 모델로 주인을 닮아가려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회사는 발전하고 슈퍼는 슈퍼맨이 되어가는 것이다. 맑은 물에 고기가 없다고 한다
냉장고에 몇 달째 잠들어 살고 있는 울릉도 명물 호박엿이 있습니다. 본시 엿이라는 것은 녹말을 당분으로 만들어 먹는 음식으로 오래전 조상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흔히 엿 먹어라 합니다만 이는 역설법으로서 좋은 일을 하면서도 이를 감추기 위한 전략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게 합니다. 엿 먹인다는 말은 저속해 보이지만 꿀먹은 벙어리라는 말처럼 좋은 것을 먹음으로써 할 말을 잃었다가 아닐까, 아니면 뇌물을 먹었기에 할 말이 없음도 있기는 하겠습니다만요. 그런데 엿은 녹말 성분이 들어있는 쌀, 고구마, 수수 등으로 만드는데요 우선 이들 재료를 푹 삶고 쪄서 익힌 후 여기에 엿기름을 넣습니다요. 그 엿기름이라는 것이 보리삭을 길러서 그 노랑색 싹이 5~9mm 정도 자랐을 때 이를 볕에 말린 후 손으로 비벼서 싹을 버린 후 남은 보리알을 맷돌에 갈아서 가루를 낸다음 체로쳐서 가루를 냅니다. 이 성분이 녹말 성분을 당분으로 바꾸는 효소가 되는 것입니다. 마치 술을 담그는데 누룩이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누룩을 만드는 재료는 밀인데요 통밀을 대충갈아 메주처럼 만들어 쑥대와 함께 묶어 서늘한 곳에 매달아 두면 여기에 누룩곰팡이가 생겨나고 이후 이를 말려 가루를 내
오산 김주원 화백이 강원 평창에서 잡고기를 잡아왔다는 전갈이 왔으므로 곧바로 지인을 규합하여 막걸리와 소주를 사들고 갔다. 6시반 인데 이미 가마솥에서 추어탕이 끓고 있고 미나리 등 야채를 투입하는 시각입니다. 말 그대로 추어탕이고 매운탕이니 강원도 평창에서 어항 넣어 잡아 손질한 산물고기가 담백한 맛을 풀어내는 그 탕속에 푸르름 가득 품은 미나리가 중재를 하면서 그 부드럽고 깊은 맛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일단은 막걸리 반 잔을 들이키고 매운탕 국물을 안주로 하니 강원도 향기와 오산의 맛이 잘도 어우러집니다. 함께한 지인중에 술잔이 쎈 분이 있어 무슨 이야기만 꺼내면 ‘그런 의미에서 한잔!!!’하면서 권주하니 가져간 막걸리 빈 병되어 쓰러지고 이내 스페어로 준비한 소주병이 나섭니다. 그래도 취하지 않는 이유는 추어탕의 신선함과 국물의 해장기능인가 생각합니다. 본래 이날 2차 ‘까마귀’모임은 금으로 까마귀를 만들어 보자는 토론의 장이었습니다. 지난번 모임에서 대략적인 까마귀상과 그 구성, 기금의 마련방안 등에 대한 기본 골격이 나온 바 있고 이어서 좀 더 상세한 추진체계를 논의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요일 오후에 급하게 잡다보니 참여 멤버가 바뀌었고 지난
아이들을 위한 피아노 학원, 바이올린 학원이 있고 헬스클럽, 빙상장, 수영장이 있으므로 초보자들이 가서 배우고 익혀 음악가가 되고 스포츠맨이 됩니다. 하지만 공무원을 25년 해도 막상 동장이라는 자리에 가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미리 배우는 학원이 없습니다. 오로지 9급 공무원, 7급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기 위한 공장의 생산라인 같은 학원이 있을 뿐입니다. 더구나 요즘 젊은이들은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에 가도 점심상을 차려먹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어머님이 친정 나들이를 가시는 경우 아침은 김밥, 점심은 컵라면, 저녁은 피자를 주문합니다. 그나마 아침은 엄마가 준비해 줍니다만 점심부터는 슬로프드를 먹겠다고 합니다. 점심에 유부초밥을 준비한다 해도 반대입니다. MSG에 익숙한 아이들은 늘 상업용 식탁에 물들고 말았습니다. 사실 1960년대 아이들은 말 그대로 糟糠之妻(조강지처)의 아들과 딸입니다. 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어가며 고생을 같이 해온 아내가 조강지처이니 그 아이들도 '조강자식'입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후의 아이들이 밥상을 차려먹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와 누나는 밭에서 논에서 일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초등학교 3학년이면 학교에서 돌아와 오
평생에 자격증은 운전면허증 하나입니다. 타자 자격증은 전동타자기로 배운 후 시험장에 가니 아직도 4벌식 타자기이므로 시험을 포기하고 돌아와 더 이상 도전하지 못했지만 타자학원을 다니고 연마를 해서 어느 정도 독수리 타법은 면하고 9손가락이 움직이는 수준입니다. 운전면허도 24세경 자동차학원에 등록하여 면허를 받았습니다. 1982년도에 경기도에는 면허시험장이 없었고 인천직할시(광역시)에 가서 시험을 보았습니다. 지금도 기억하는데 3단으로 출발하여 2단 1단 다시 3단으로 갔지만 시동이 꺼지지는 않았습니다. T-코스, S-코스, 크랭크(ㄹ)코스에 합격하고 주행시험을 보는데 긴장한 탓에 기어를 들어서 당겨야 하는데 그냥 당기니 3단 기어가 들어간 것입니다. 시험관 경찰이 '이 양반 맘대로 기어를 넣으시네'하셨지만 합격도장을 찍어 주셨습니다. 면허를 따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차량은 3대가 있었지만 운전담당은 2명이었고 강사초빙 등으로 바쁘게 움직이므로 매일 시내에 나가서 은행업무, 행정, 구매 등을 담당하는 입장에서는 꼭 운전직이 아니어도 운행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면허에 도전한 것입니다. 이후 사감실에 습기가 차고 좁아서 불편하다는 말에 즉시 망치를 들고
저승에 가져가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많다. 육신을 이세상에 두고 가야 한다. 소중한 재능을 이 에상 후배들에게 주고 홀연히 떠나야 한다. 불글씨 명필의 손은 저승사자가 잡고가서 돌려주지 않는다. 마라토너의 강력한 심장도 멈추고만다. 싸이클선수 말근육도 사라지고 저승길을 걸어갈 뼈마디 몇개만 가져간다. 유명 쉐프의 미각도 정치인의 양심도 예술가의 감성 역시도 버리고 떠나야 한다. 다른이가 받아도 간직하지 못한다. 쉐프의 요리는 사진으로 남고 정치인의 양심은 속기록과 신문기사, 그리고 인터넷 글로 남는다. 예술가의 감성은 그림, 악보, 영상으로 존재하게 된다. 염라대왕이 저승길에 허락하는 동행은 이생에서의 희생과 봉사와 사랑이다. 남을 위해 노력한 봉사, 남을 위한 희생은 그대로, 때로는 복리로 이자를 붙여서 저세상의 특급호텔 101호에 저장해 준다. 요절한 이는 22호실에 가면 자신이 이생에서 남을 위해 베푼 품목과 그 내용과 모습을 그대로 복제하여 전해준다. 아마도 이승과 저승을 통하는 물품이동 택배수단은 팩스라는 기계를 이용하는 듯 보인다. 각자의 집에는 자신의 저승길과 통하는 택배라인은 없다. 오로지 남의 집으로 보내는 통신수단만 남는가 보다. 그리하여
음식물 잔반 봉투를 개발하라 (전)남양주시 부시장 이강석 아파트에 살면 매주 재활용의 날에 여러 가지 물건을 들고 집을 나서게 됩니다. 종이상자, 스티로폴, 유리병, 캔, 플라스틱 등 인간이 살아가는데는 참으로 많은 소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중에는 음식물 잔반도 높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아파트에 마련된 재활용 방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종이상자를 펴서 넣으라는 초대형 자루가 2개, 비닐류를 담는 더 큰 비닐망이 하나, 스치로폴을 담으라는 비닐망, 캔 등 철성 분의 각종 재활용할 철조각을 던져넣을 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오른쪽에는 폐기용 쓰레기봉투를 투입할 바퀴가 달린 대형 용기가 있고, 그 옆에는 늘 음식물 남은 것을 버리도록 준비된 통이 있어서 여기에는 반드시 개인별 카드를 찍으면 뚜껑이 열리고 음식을 배출한 후에 다시 접촉하면 닫힙니다. 처음 카드를 찍으면 동호수를 말하고 잔반을 투입하라 합니다. 카드를 또 한번 찍으면 배출된 음식물 배출량을 그램(g) 단위로 알려줍니다. 잔반이 모이면 폐기되기도 하지만 더러는 가축의 먹이로 보내진다고 합니다. 그러니 비닐봉지째 던지는 편리함에 행복해 할 일은 아닙니다. 가축의 먹이로 쓰인다면 비닐이 함
아침 운동을 나갈 시간인데 이어폰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제저녁에 통근버스를 타고 고색역에서 하차하여 지하철을 타고 수원역을 거쳐서 매교역에서 내려 10분을 걸으면 집에 도착하는 코스입니다만 잠시잠깐 깜빡하고 조는 바람에 고색역을 지난 통근버스는 수원역 직전의 지하도를 지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수원역을 조금 지난 대한통운 자리 건너편의 수원역 번화가, 청춘의 거리에 하차하였습니다. 걸어서 지하철로 환승하는데 걸리는 거리나 시간을 생각하고 매교역에서 하차하여 집까지 걸어가는 거리를 계산해보니 지금 수원역 번화가에서 구 시청을 지나 구경기은행을 거쳐서 우회전하면 집에 도착할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그래서 복중이기는 하지만 차분히 서늘한 저녁 7시20분의 바람을 맞으면서 걸었습니다. 걸어가면서 고등학생시절, 초임 공무원 시절에 들렀던 수원극장, 극장식주점 판코리아를 지나갑니다. 수원시여성회관으로 이용되는 구 시청의 청사에서 경기일보 문화부장과 논설위원을 하신 임병호 시인의 문학특강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사무실 오른편의 작은 공간에 수성고, 영복고, 수원여고 학생들을 불러모아서 문학, 시를 강의했던 멋진 임병호 회장님을 훗날 언론팀에 근무할때 도민을 위한 시화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