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령산 1박2일] 축령산은 늘 그곳에 있었다는데 정작 오늘 초행이다. 그것도 깊은 밤이다. 2008년 5월 어느 날 저녁 6시 반 출발을 준비하였지만 업무가 연관된 기다림이 있어 선발대 버스는 7시경 출발하고 잔류인원은 7인승에 넓게 앉아 저녁 8시경 천천히 시동을 걸었다. 가는 길에 자동차에 밥도 주고 일행도 도토리 묵밥과 막걸리로 빈 가슴을 조금 채우고 여유롭게 시동을 걸었다. 어둠속을 달리는 차량속의 일행은 수시로 선발대에서 걸려오는 핸드폰의 추적을 받으며 가급적 아직 멀리 있는 것으로 대답하면서 저쪽에서 벌어질 소주공격을 가급적 피하기로 하였다. 어둠속의 자동차는 그 속도감이 빠르다고 했던가. 선잠이 들기도 하고 급브레이크 흔들림에 두 손을 앞으로 내저으며 깨어보면 밖은 어둠속이고 주변의 자동차 속도를 느끼면서 아직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직은 경기 남부지역인 것 같다. 그리고 이어서 차가 힘차게 요동치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4주전에 약속한 그 축령산 휴양림을 맞이하는가 보다. 입구 관리인은 친절히 길을 안내해 주고 우리가 도착한 3층 목조건물의 테라스에서는 선발대가 손을 흔든다. 아직 소주기운은 덜 한 듯 목소리가 맑다. 선
아주 희박한 확률이라면 동전을 던져서 옆면으로 서는 것일까. 그 다음으로 힘든 가능성은 비누 방울을 던져서 볼링핀을 넘어트리는 일일까? 정말로 어려운 가능성이 나에게 일어났으니 바로 三鮮구이를 맛있게 먹고 마지막 지느러미 부근과 꼬리부분을 발라 먹다가 목 안쪽 윗벽이 갑갑한 느낌이 오고야 말았다. 어려서 어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로 밥을 쌈싸서 꾹 하고 넘기면 된다고 했었지. 그래서 통김치 하나를 대충 삼켜보아도 안되고 화장실에 가서 크게 기침을 해보아도 해결되지 않는다. 거참 힘든 일이다. 목안이 간질하여 토할 것 같기도 하고 기침을 여러 번 일부러 해보아도 해결이 안 되는 목에 걸린 생선가시다. 아침에 면도하다 베인 것이 생선가시가 목에 걸리는 것으로 액땜을 하는 것인지. 사무실에 돌아와 양치를 하고 칫솔로 몇 번 문질러 보았지만 해결되지 않는다. 거울을 통해 들여다보니 흰 생선가시가 목젖 옆 부분에 마치 수지침처럼 박혀있다. 지난해 교육 때 수지침을 배웠는데 그 침이 손바닥에 박힌 것과 어쩌면 그리 도도함이 같던지. 그리고 칫솔로 문지르니 침에 피가 나온다. 찔린 부분에서 미세한 출혈이 있나보다. 사무실에는 이 가시를 빼낼 장비가 없단 말인가. 나무젓가락
옛날에는 모든 꽃들이 자신이 원하는 시기에 편리한 계절에 꽃을 피웠습니다. 그런데 벌과 나비들이 불평불만을 하였습니다. 언제 필지 모르는 꽃을 위해 늘 날개를 다듬고 건조하게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꽃 대표인 민들레와 벌대표인 일벌이 협상을 벌였습니다. 수개월간 거듭된 회의결과 벌과 꽃 모두에게 편리한 시기와 기간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꽃들은 봄에 꽃을 피우기로 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벌들도 이때를 맞추어서 부지런히 꽃을 날아다니며 꿀을 따먹고 그 과정에서 꽃은 씨앗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꽃들이 동시에 피면 벌들이 바빠 힘들 것이므로 일부는 나중에 피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꽃은 이른 봄에 피고 중간에 피고 초여름에 피는 꽃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목련은 잎새를 먼저 내보낸 후 꽃을 피웁니다. 그리고 느긋하고 통통한 벌들이 가끔 들어서 꿀을 받아갑니다. 가을이 다되어 피는 꽃도 있습니다. 국화옆에서라는 시가 그래서 탄생한 것입니다. 겨울에는 흰 눈꽃이 피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설화라고도 합니다. 사실 꽃이 예쁘게 하늘을 향해 피는 이유는 벌들이 착륙하기 편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일부 꽃들은 땅을 향해 피는데 이
인터넷신문 [뉴스폼]에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전에 써두었던 글, BOOKK.co.kr에 편집본을 출간한 글을 다시 풀어내서 [이강석의 세상만사]에 올리고 이 글을 SNS에 링크하여 페이스북친구들이 공유하도록 하고있습니다. 이전에 쓴 글을 활용하기도 하고 공직이후 최근의 정황을 담은 이야기를 적어보기도 합니다. 가장 최근에는 아침 출근길에 인사하는 용역회사 여사님의 사례를 바탕으로 인사하기#인사받기에 대한 글을 올렸습니다. 화성시청 청사에서 하이톤으로 아침인사를 하시는 여사님은 현업직이지만 시청을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출근하는 모든 사람을 기분좋게해주는 매력이 있다는 평가를 했습니다. 동시에 경기도청 회의를 위한 방문시에 바코드를 보내주어서 손쉽게 청사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지원해준 부서에 감사인사를 겸한 글을 올렸습니다. 평가위원이나 위원회위원으로 참석하는 인사에게 사전에 바코드를 보내줍니다. 이전까지는 창구에서 용역사직원인 듯 보이는 이들에게 주민등록증을 제시하고 패스와 교환하는 고전적이고 아날로그식의 출입이었습니다. 하지만 미리 스마트폰화면에 구현한 바코드를 들이대면 어깨 들썩이며 기분좋게 청사안으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마치
그러니까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어느 날에 밥을 먹고 있는 자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업고 있는 기억도 있을 것입니다. 누가 목욕을 시켜주거나 머리를 감기거나 약을 먹이는 기억이 날 것입니다. 어려서 소화불량으로 토한 후 무엇인가를 먹여 주던 분이 어머니일 것이고 그때 입안에서 느낀 맛은 엿기름이었습니다. 엿기름이란 보리알갱이를 따스하고 습하게 해서 싹을 틔운 후 그 싹이 6mm정도 일때 볕에 말리고 싹싹 비벼낸 후 알갱이만을 맷돌에 갈아 명주망에 걸러낸 흰 가루를 말합니다. 이것이 엿기름이라는 효소인데 녹말을 당분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합니다. 칙 뿌리가 쓰겠지만 끈기 있게 어금니를 움직이면 언젠가는 달달한 맛을 느끼게 되는데 이 역할은 침샘에서 나온 프티알린 성분이 칙 뿌리의 녹말을 당분으로 바꿔주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체한 아이에게 엿기름을 먹이면 위에 남아있는 녹말을 소화시켜주는 기능을 한다는 말입니다. 그럼 당분이 되어 체력에 보충이 되는 것이고 그 전에 밀린 음식이 소화되어 차분히 장으로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어린 기억중에는 자장면집 수타장면이 있습니다. 자장면집 창문넘어로 수타장면을 구경하였는데 아버지는 말리
지금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퇴직 증후군이거나 후유증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감에 대한 고민을 해온 바 있습니다. 실제로 직장에서 또는 이 사회에서 함께 생활하던 어떤 동료들이 어느날 떠난 후 소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존재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새벽에 중국 여행지에서 심장마미로 돌아가시거나 자신의 집 목욕탕에서 혈압으로 쓰러져 절명한 분이 이후 모임에도 안 나오고 어느집 결혼식이나 상가에서 만날 수 없다는 것만으로 그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완성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혹시 어디에 존재하는데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다는 가정도 세울 수 있습니다. 중병으로 10년 넘게 투병중인 분이 있을 것인데 이 분이 존재하는 것인지 부존재인지에 대한 확신도 없다는 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집에서 직장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존재라는 것은 그 본인만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존재는 만나고 대화하고 함께 식사하고 단체로 등산을 하면서 한방향을 바라볼 때 확실해진다고 봅니다. 이것을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움직
골프에서 T샷이란 티에 올린 골프공을 잔디에 엎드려 바라본다면 그 단면이 영어의 대문자 T로 보인다 해서 그렇에 작명되었다고 합니다. 18홀 내내 T샷이나 아이언, 우드 등 여러가지 골프채를 써서 공을 날려 보내게 되는데 이때 매홀 첫번째 공을 쳐낼때 동반자들은 잠시 정숙의 에티켓을 갖춰야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다른 3명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샷을 날리는데 이때 맨탈 스포츠인 골프에서 자신만 집중하겠다면서 저들의 대화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 할 수록 그것이 그편에 신경을 쓴 결과로 힘차게 날린 공은 계곡으로 가거나 물에 빠지거나 가로수 길 건너편 남의 집으로 가버립니다. 신경쓰지 않는다는 다짐이 오히려 신경을 쓴 결과인 것입니다. 그래서 맨탈스포츠라 해서 신경쓰는 듯 안쓰는 듯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냥 늘 하던대로 무덤덤하게 퉁 치고 나가면 될 것을 이리저리 재다가 '長考(장고)끝에 악수'를 두는 바둑의 결과와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세상 사 모든 일들이 내 생각과는 다르게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언급하는 의도가 잘하자는 것이었는데 받아들이는 상대가 선택적으로 부분만 취하는 경우 당초의 의도가 곡
조간신문 독자의 시를 보면서 그 깔끔하고 인상적인 표현과 어휘에 100배 공감을 합니다만 그만한 글을 생각하지도 못하고 써보지도 못하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아직도 부족한 모습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사물을 보면서 저 시인을 이처럼 가슴 시리게 아픔을 보는데 아직도 벚꽃은 흩날리고 시냇물을 졸졸 흐를 뿐 그 이전과 이후의 모습에 대한 고민, 번민이 없는 것입니다. 인생이 108번뇌라 하는데 8개의 생각도 없이 그냥 또 하루를 살아 오늘 아침 5시에 습관적으로 배를 올리기는 합니다만 얻고자 하는 화두가 잡히지 않고 때로는 번뇌조차 깃들지 않는 날도 많습니다. 의무납세처럼 아침 25분을 공양하듯이 그냥 시간을 쓰는 것은 아닐런지 반성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반성은 합니다. 잘못을 해서 선생님으로부터 벌을 서는 고2 학생처럼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는 4층 복도의 텅빈 공허는 아니고 이 아파트 1층 어디에선가 설정된 작은 공간에서 오로지 하나의 화두를 얻기위해 한배 두배 절을 올리는 자신을 그려보기는 합니다. 우주에서 부처님이 내려다 보시면서 남양주땅 GS아파트 10**동 1**1호에서 불초 이 아무개가 아침마다 배를 올리는구나 하시면서 흐믓해 하실 것이라는 생각은 합니
최근 방송에서 김홍신 작가님이 만년필로 하루 12시간 이상 글을 쓰면서 팔목이 아프고 어깨가 마비되는 고통을 겪으시면서 저술에 몰두하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국회의원 8년간은 저술을 중단하셨고 나머지 인생에서 글쓰기에 전념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스스로 '기계치'여서 키보드를 쓰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물론 만년필로 원고지나 노트에 글을 쓰는 손맛이 있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머리속에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시상을 스피드하게 타자로 이어가신다면 더 멋진 글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베토벤의 월광곡은 마슴속으로 날아오르는 악상을 아주 짧은 순간에 담아낸 것이라고 합니다. 글도 베토벤의 악상처럼 순간적으로 번개처럼 다가서는 문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만년필에 잉크 넣어서 손가락으로 눌러쓰면서 아픈 손목에 파스를 뿌리실 것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기만 하면 글이되고 문장이 되고 만년필처럼 잉크를 찍을 일도 없이 無限軌道(무한궤도)처럼 탱크처럼 달려가는 컴퓨터 워딩의 기능을 활용해 보실 만도 합니다. 시인도 컴퓨터로 작품활동을 하는 시대인데 더구나 장문의 소설을 쓰시는 분이 지금도 손목에 힘을 주어 잉크로 원고지를 채워가신다니 조금 안타까움이 있
15라운드 60분동안 진행되던 과거 WBA, WBC 권투에서 15라운드 종료를 알리는 공이 울리고 심판이 두 선수를 갈라 놓으면 아직도 힘이 남았다고 심판에게 알리고 싶은 듯 끊임없이 허공으로 펀치를 날리고 이른바 이제부터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듯 새도벅싱을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해설자는 "이 대목에서 저렇게까지 어필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선수가 경기시간에 최선을 다해 혼신의 힘을 다했어야지 아직 힘이 남았다는 것을 과시하는 듯 저러는 것은 심판에게 별로 어필할 것 같지가 않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운동경기를 하는 경우 최선을 다하고 스포츠맨십으로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3명의 심판이 매긴 점수에 의해 판정승 하기도 하고 판정패로 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심판은 채점한 점수를 계산하느라 바쁜 시각에 링 위에서 나홀로 주먹을 날린다고 점수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니 말입니다. 수요일 점심에 서둘러 구내식당에 갔습니다. 내일 목요일 부터 임시공휴일이 포함된 4일간의 연휴이니 오늘은 금요일 같은 수요일입니다. 그런데 식당 게시판에는 메뉴판 3장이 붙어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3일치를 지난 월요일에 게시한 듯 한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