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로 살아도 서민으로 생을 마쳐도 그 삶의 가치는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얼마의 재산을 가지고 살았느냐보다는 어떤 삶을 살았는가가 더 소중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산에 올라 수원, 용인, 성남의 산기슭을 바라보면 10억짜리 아파트가 즐비합니다만 그집에 사는이들 중에서 자신의 이름 석자를 세상이 널리 알리며 사는이는 몇명이 안될 것 같습니다. 아파트와 토지의 가지가 올라간 것이야 본인의 투자와 유산, 스스로 벌어서 구매한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그 위치와 타이밍과 정부의 정책이 잘 맞아 떨어진 것이겠지요. 그래서 귀농한 분들의 삶이 더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스스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열심히 농사지으며 전원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분당, 평촌, 동탄의 새로지은 아파트에서 규격화된 삶을 사는 이보다 더 멋진 인생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대부분 자기변호이기는 합니다. 여우가 고개를 넘어가다가 잘익은 살구를 보고 먹고 싶은 마음에 몇번 폴짝 뒤어보았지만 어림없이 높은 곳에 달린 살구를 따내지 못합니다. 고개를 넘어가면서 여우는 "살구가 시게 생겼어"라는 말로 자기 합리화시켰습니다. 바둑을 두는 이들이 상대편의 말을 다 잡고 싶겠습니다만 잡지 못하고는 "살
수원화성의 4대문을 남문, 북문, 동문, 서문이라 하지만 본명은 八達門(팔달문), 長安門(장안문), 蒼龍門(창룡문), 華西門(화서문)이다. 1794~1796년에 정조, 정약용, 그리고 민초들에 의해 건설된 화성성곽은 5,743m이며 기와 53만장, 벽돌 69만장, 목재 2만6천주에 장인 1,845명이 참여했다고 화성성역의궤에 기록되었다. 6.25전쟁중에 인민군 탱크2대를 숨겼다는 첩보를 입수한 UN군의 포격으로 장안문(북문) 목조부분 절반이 부서졌다. 최근 수원시가 미국의 6.25 전사자료 중에 수원관련 내용을 고증을 거쳐 5분37초로 압축정리하여 발표한 영상을 통해 장안문을 다시 보았다. 이승만 대통령, 처치중장, 맥아더 장군이 수원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았다. 목조부분 절반이 파손된 장안문으로 탱크가 지나가는 장면에 가슴이 아팠다. 조선 22대 왕 정조는 양주 배봉산에 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산소를 화성의 화산으로 이장하고 현릉원이라 했다. 고종황제가 1899년에 장헌(사도)세자를 장조로 추존하고 현릉원도 隆陵(융릉)이라 고쳤다. 훗날 부자가 함께 모셔진 이곳을 융·건릉이라 한다. 용주사는 신라 시대에 창건된 갈양사였는데 병자호란 때 소실되었다. 正祖(정
아침일찍 자랑스럽게 태극기를 달았습니다. 게양한다고 합니다. 아파트에 살면 베란다에 태극기를 내겁니다. 한옥에 살 때에는 대문에 태극기를 걸었습니다. 태극기를 걸면서 왜 아래로 늘어지게 다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외국의 경우에는 가로막대에 국기를 달아서 바람이 불지 않아도 잘 보이도록 하고 있습니다. 깃발은 전장에서 앞으로 내달리면서 군인들에게 힘을 북돋우는 도구입니다. 지휘부가 앞으로 내달리니 병사들이여 따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러니 평소에는 깃대 아래로 내려져 있다가 전투가 시작되면 용감하게 앞으로 내달리므로 깃발의 본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제는 전쟁중이 아니라 약간의 긴장을 하는 평화의 시대이므로 태극기가 잘 보이도록 게양하는 방법으로 규정을 바꿨으면 합니다. 기관에서는 아예 벽면에 대형 태극기를 게양하므로 그 앞에 도착하면 애국심이 솟아나곤 합니다. 태극기는 해외공관의 깃대에서 펄럭일 때 국민의 가슴을 울려줍니다. 유명 관광지에서 태극기를 보면 우리 국민 중 관광객이 5위 정도로 많이 오시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낮에 소나기가 내리면 태극기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해가지면 내리고 해가 뜨면 게양했습니다. 관공서 숙직자들은 한겨울에
무슨 일이든 10,000시간동안 반복하면 성취가 가능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극정성으로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되면 결국에는 이룩함이 있다는 뜻입니다. 작은 벌레가 299번 실패하고 300번째 성공해서 그 모래성을 넘어서 다음 풀잎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수행자의 고백이 있습니다. 정말로 미물들도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생존과 목숨을 지켜낸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노력이 조금더 지속하면 그 무엇을 이룩할 수 있다는 해석으로 풀어봅니다. 주변의 많은 경우를 보면 정말로 최선을 다해서 이룩한 경우를 보게 됩니다. 손님들이 알아서 줄을 서는 식당이 있습니다. 송탄 부대찌게집인데 그 소시지의 무늬가 아름답고 먹음직해서 손님이 줄을 선다고 합니다. 두번 가서 먹었는데 오산시청앞 주차장 부근 2층의 부대찌게는 파를 많이 넣어서 국물이 우러나는 맛이 있습니다. 수원 아트센타 옆 부대찌게집은 그 색상이 멋지고 끓을때 종업원이나 사장님이 마늘 한 국자를 넣으면서 섞어 주는데서 맛이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어제 방문한 용인의 백암순대를 먹은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더 먹고 싶은데 아이들 먹으라고 다른 반찬을 더 먹었습니다. 흔히 아이들은 시중의 식용 비닐순대에
슬하의 자식은 몇명인가 묻습니다. 슬하라는 말은 무릎 아래라는 뜻으로 귀엽고 예쁜 아이들을 무릎앞에 앉히고 얼러가면서 키우는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膝下. 무릎膝 아래하下 / 「무릎 아래」라는 뜻으로, 거느리는 곁이나 품안. 주(主)로, 부모(父母)의 보호(保護) 영역(領域)을 이르는 어휘입니다. 부모의 보호영역을 슬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슬하를 떠나서 객지생활을 한지 어언 30년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108배를 하면 무릎이 상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론 108배의 효과, 효능에 대한 이야기는 더 많습니다. 그래도 걱정을 하는 것은 조금이라도 불편하거나 힘들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쏠리게 됩니다. 정말로 108배가 모든 분들에게 일반적으로 나쁜 영향을 더 많이 준다면 사찰에서 새벽 예불에 절하기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1,500년이상 한반도에서 이어지는 불교의 정신이고 매일새벽에 예불을 올리고 있습니다. 여승 두분의 산사 생활이 방송중입니다. 연잎을 따서 밥을 지어 공양을 하고 대중을 구제하는 모습입니다. 이처럼 소중한 불가의 의식중 하나인 108배를 우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인체는 힘들면 움직이지 않겠다하고 정신담당 뇌에서는 그래도 가자고
이제 30세에 가까운 쌍둥이 남매를 키운 일을 생각하면 남녀의 디자인을 구분한 제품의 소중함을 느낀다. 하지만 딸아이는 남자아이의 옷을 보고 자라다보니 지금도 핑크색 계통보다는 단색의 정장을 선호하는 것 같다. 스커트나 원피스를 예쁘게 입은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쉽다. 그래서 지금도 거리에서 백화점에서 2인용 보행기를 보면 반갑고 특히 쌍둥이 남매인 듯 보이는 아이들에게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힌 것을 보면 젊은 부모에게 차이의 필요성을 말하고 싶어진다. 과거에는 초등학교 남녀 화장실의 숫자부터 불공정하게 평등했다. 최근에서야 여성을 위한 추가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그것도 고속도로 휴게소 등 증설이 가능한 경우이고 고정된 건축물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참에 화장실을 설치하고 장애인용을 만들면서 화장실 출입문 턱을 만드는 설계를 한 분이나 검토한 공무원, 감리한 전문가, 건축주의 반성을 촉구한다. 건물이든 제품이든 디자인의 의미가 부여되어야 한다. 아이들 용품은 그 또래의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관심도가 높은 제품을 출시한다고 한다. 어른의 시각과 생각으로는 알 수 없는 디자인의 철학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무원끼리 좋은 생각이라고 내놓아도 국민과 소비자들의
불철주야 얼마나 노고가 많으실까. 어제의 일과 내일 예상되는 상황을 촌철살인의 글로 집대성하고 일갈하시는 회사의 대표기사 사설을 집필하시는 위원님들께 존경스러운 말씀을 올리고자 한다. 1988년경에 신문 사설은 2면을 차지하였다고 3면으로 이사를 왔고 이후 대부분의 언론은 사설을 후반의 오피니언과 연결해서 배치하고 있다. TV뉴스 말미에 뉴스해설이라고 신문의 사설이라 할 수 있는 논평이 나온다. 더러는 종편방송에서 앵커브리핑이라고 방송의 뉴스해설, 신문의 사설과 맥을 같이하는 멘트를 하기도 한다. 사설(社說) 신문이나 잡지에서 글쓴이의 주장이나 의견을 써내는 논설이라고 풀이된다. 신문의 사설은 무게감이 있다. 드러내놓고 꾸짖지 않아도 읽고나면 무게감이 느껴진다. 반성의 자세로 몸을 바로 세우게 한다. 그런 글을 쓰기 위해 논설위원실이 따로 있다. 숨어서 쓰는 글이 아니라 몇 시간을 고민해서 쓰는 문장이기에 긴 호흡이 필요하고 때로는 느린 맥박으로, 더러는 날뛰는 심장의 박동을 모아 글을 쓴다. 흔히 一喝(일갈)한다고 말한다. 한 번 큰 소리로 꾸짖음이나 그런 말을 의미한다. 논설위원의 글 사설은 정치를 비판하기도 하고 잘못된 세태를 바로잡는 指導鞭撻(지도편달
글을 쓰면서 신변잡기만이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써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만 아직은 자신감이 없습니다. 도대체 자신의 의견을 시원하게 제시하는 일을 해보지 못하고 조직 안에서 이 눈치 저쪽 분위기를 살피면서 적정한 중용, 중도, 중간의 입장으로 살아온 세월이기에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어렵고 칭찬하기에도 자신이 없습니다. 누군가를 칭찬하면 건너편 사람은 비판을 받는 의문의 1패를 주기도 하기에 우려스럽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런저런 걸림돌 없은 경험적 이야기만 내어놓으니 글에 힘도 없고 무게도 없다고 합니다. 촌철살인의 막말 수준의 이야기를 늘 떠벌이면서도 자신있게 언론에 얼굴을 내미는 분들을 보면 한켠으로, 한편에서는 존경스럽다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조금씩 발을 앞으로 나가서 비판하고 평가하고 칭찬하고 나무랄 수 있는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다짐을 부처님께 드리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자비와 사랑과 중용의 길을 걸으시는 부처님의 마음에 아픔을 드리면 안 될 일입니다. 삼천갑자 동방삭은 나이많은 것을 자랑하다가 노인으로 변장한 저승사자에게 옷소매를 잡혀서 180,000년의 긴 생을 마감하고
고향마을에 태어나서 세상을 보는 눈을 뜰 즈음 보이는 것은 산과 논밭, 하늘이 전부였다. 온통 초가집이다. 아랫마을 1층 건물위에 원두막 만한 건물을 올렸다 해서 구경을 갔다. 세상에 집이 2층이라니. 집은 단층이고 아궁이와 방고래와 굴뚝이 있어야 했다. 낙엽과 나무를 넣고 성냥불을 붙이면 활활 타오르기 불기운은 방고래를 덥히고 남은 연기는 윗목까지 돌고 돌아 굴뚝이 뻐근하게 빠져나와 하늘로 퍼졌다. 동산에서 놀던 아이들은 연기색이 흰색에서 옅은 회색으로 바뀔 즈음 무쇠솥의 밥이 뜸 들고 있음을 안다. 배꼽시계, 해시계, ‘연기시계’로 족했다. 가끔 오정 싸이렝을 들을 수 있다. 1975년경 시골동네는 ‘그린벨트’가 되었다. 땅 값이 오르지 않고 마을 진입로가 외통수인 것만 빼면 공기, 물, 신록, 여유, 삶의 만족도가 높다. 50년 전 동네가 그대로인데 몇 집은 개축을 해서 초가에서 기와가 되었고 더러는 2층 슬라브에 붉은 벽돌이 멋지다. 집터는 그 자리를 지킨다. 집터에 업이라는 동물이 재산과 건강을 지켜준다고 믿는다. 어려서 40대이던 어르신들이 90세다. 고향에서나 타향에서나 공평하게 50년이 흘렀다. 2020-50=1970년,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큰 바람이 가라해서 가는 것이 아니고 오라해서 온 것도 아닌 줄 알지만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해 보면 어제 태풍을 보내고 오늘아침 가을스러운 새벽의 하늘을 맞이하고 있으니 바람을 보내고 하늘을 얻은 격입니다. 그래서 아침 절하기의 자세가 더욱 더 자신감이 넘치는 것입니다. 절을 하면 아침이 오고 절을 마치면 오전이 시작됩니다. 스스로 그리 정한 것입니다. 그러니 아침에 일어나 절하지 않으면 계속 새벽인 것입니다. 세상은 천상천하유아독존입니다. 그 뜻이 아닌 줄 알지만 천상천하에서 참으로 소중한 삶을 살고 있으니 살아가는 동안은 우주와 삼라만상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입니다. 내가 없으면 우주가 없고 하늘이 보이지 않으며 낮과 밤의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존재하므로 세상이 있고 비가 내리고 구름이 오고가는 것입니다. 나에게 말을 걸기위해 구름이 날아왔다가 대화가 끝나면 비가 되어 바닥으로 내려와 초목을 적시고 그 농사로 냉장고를 채우고 팬에 볶아서, 나물을 양념해서 맛있게 먹는 것입니다. 우주 삼라만상이 모두다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내가 없으면 우주가 없으니 내가 있어서 이 우주가 여기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절하기의 화두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