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언론인·독자에게 추천하는 글
[ 어라! 이 친구 뭐지? ]
관선기자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공보실에서 홍보를 담당하는 공직자를 두고 출입기자들이 불러주는 별칭이지요.
그러나 모두가 별칭으로 불리워지진 않습니다.
기자보다도 뛰어난 필력에 정무적인 감각이 있어야 얻어지는 별칭입니다. <중략>
9급 말단 공무원으로 시작해 1급 관리관으로 명예퇴직하는 전설로 남게 된 것도 홍보업무를 하면서 얻는 역량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연배는 아래지만 홍보업무를 함께 했던 그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존경했습니다. <중략> 그의 소중한 경험이 후배공직자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공직사회를 이해하는 길라잡이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시인 홍승표(전 용인부시장/전 경기관광공사 사장)
2015. 11. 22일 일요일 00:20에 YS 김영삼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셨습니다. 새벽부터 특보기사가 나오더니 오전까지는 과거 자료화면을 바탕으로 뉴스를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오후가 되자 언제 만들어 두었는지 다큐멘터리급의 프로그램이 방영되기 시작합니다. 정치, 사회 등 다양한 분야 인사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편집한 프로그램이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방송국 편집국에서 특별한 팀이 있어서 미리미리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방송국에는 기본적으로 언론관련 자료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나면 관련 자료를 꺼내어 방송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아침에 준비한 자료화면이 아닌듯 생각됩니다. 그러면 언젠가 쓸 일이 있을 것이라며 사전에 프로그램을 준비하는가 봅니다. 이번 방송의 키워드는 높은 지지율과 IMF로 인한 낮은 대통령 지지율입니다. 금융실명제 등 굵직한 현안들을 통해 큰 정치를 펼쳤지만 마지막으로 IMF로 인해 지지율이 낮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을 보면서 방송국 프로그램 제작에서 이미 정치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마도 방송국에서는 다른 대통령이나 원로 정치인에 대한 사전 자
[강의 시나리오] 9급 공무원으로 공직을 시작하여 공직을 정년퇴직한 강사 이강석입니다. 공직 내내 갑질 문제와 공정한 공무수행을 위해 고민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새롭게 공직을 시작하시는 여러분에게 참고가 될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네이버, 다음에 검색하면 제 이름과 경력이 나옵니다. 제가 올려달라고 신청해서 포털에 나오는 것입니다. 공직은 스스로가 창출하는 아름다운 인생의 동반자라 생각합니다. 공직자는 내부 동료, 선후배는 물론 민원인이 원하시는 바를 잘 파악하고 상황에 맞게 대응하 고 업무를 처리해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이 44년전 9급 공무원으로 근무한 퇴직공무원의 이야기를 오늘의 시점에서 들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실 수 있습니다. 저도 1978년 20살, 43년전에 8주 동안 신규 공무원교육을 받을 때 50대 선배의 강의를 들으면서 이분은 우리 젊은이의 입장을 이해할까 걱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他山之石(타산지석), 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입니다. 三人行必有我師(삼인행필유아사)입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이 장황하게 들리시겠습니다만 그중에 공감가는 이야기는 취하시고 마음에 닿지 않는 이야기는 하나의 학습효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우리가 논어, 맹자,
뉴스의 다음 순서를 진행하는 앵커맨트 중에 '뒤늦게 알려졌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숨겨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는 정부나 도청, 시청 등 취재원측에서 이 사실을 언론에 숨겼다는 의미, 다른 하나는 우리의 취재가 늦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 담겨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각종 사건사고는 늦게 알려지기도 하고 당사자들이 숨겨서 나중에 밝혀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론인들은, 기자들은 늘 모든 사건사고를 발생 즉시 파악해야 하고 늘 사건 현장에 자신이 존재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는 듯 보입니다. 하루종일 기자실에서 노트북에 글을 쓰는데 다음날 신문기사로 나는 건수는 한둘이고, 인터넷 기사에도 그 기자 이름의 기사는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 盡終日(진종일) 취재하고 온종일 노트북과 씨름을 했다면 아마도 해당 기자의 이름으로 10건 이상의 기사가 올라야 하겠습니다만 실제로 독자가, 네티즌이 볼 수 있는 기사는 예상보다 적습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본사, 데스크에 동향보고, 사건보고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언론사 본사 데스크에서 모니터를 보면 대한민국이 보인다는 말입니다. 제주에서, 설악산에서 울릉도에서 기사가 올라오고 있으니
언론인 중에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성격의 소유자가 많습니다. 참으로 그 전문분야가 드넓은 직업군 중 하나입니다. 언론인은 대통령을 만나 촌철살인의 멘트를 날리기도 하고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인을 만나 1박2일을 그들과 함께하기도 합니다. 몸으로 뛴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기자는 자주 늘 돌변합니다. 그 기자를 통해 얻은 기사를 신문, 방송, 인터넷, 동영상으로 홍보하고 독자들에게 널리 알리는 이들을 통칭하여 언론인이라 합니다. 기자와 사주를 통 털어 언론인이라 합니다. 젊은 기자일수록 기사에 관심이 높고 나이든 차장, 부장은 기사보다 경영에 신경을 쓰게 됩니다. 결국 편집국장에 오르면 기사를 경영적으로 보게 됩니다. 있는 사실대로 강력하게 기사를 올리고 싶겠지만 상대와의 여러가지 복합적인 경영, 인간관계 등을 고려하게 됩니다. 과거 중앙지의 '가판'이라는 것이 경영과 언론 사이에 벌어지는 거래의 한면이었습니다. 지진으로 치면 8도정도로 기사를 가판에 올린 후에 여러가지 절차와 과정을 거쳐서 진도 4정도로 내리는 것입니다. 가판제도는 공보분야 공무원들도 힘들었지만 대기업의 홍보과 직원들의 발품을 팔게 했던 이제는 사라진 제도입니다. 언론의 힘을 보여주는 극명한 체
모든 기자에게 적용되는 말은 아니지만 정말로 사명감에 불타는 기자라면 사건사고의 현장을 경찰, 검찰보다 더 열심히 조사하고 자신의 판단을 추가하여 글로 써 올리고 화면으로 편집하여 보도국에 넘기게 됩니다. 검찰과 경찰, 소방은 담당이 정해지고 관할 구역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언론사에도 담당 파트와 출입처가 있습니다만 그것은 형식적인 구분이고 자신의 취재구역이나 영역이 확고부동하게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검경이나 일반 공무원은 관할과 사무분장을 따지는데 최선을 다하지만 기자는 경쟁적으로 사건사고 현장에 달려갈 수 있습니다. 공직사회에서는 업무분장으로 갈등이 일어납니다만 언론인들은 일단 취재한 후 편집회의에서 조율이 가능하므로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좀 더 팩트에 가깝게 접근하고자 노력합니다. 이것은 마치 119 소방서장 관할의 화재 신고시에 6~8개 파출소의 소방차가 일단 출동을 하고 현장상황을 보면서 진화 인력과 장비를 화재 정도에 맞춰가는 방식과도 같습니다. 화재상황을 종합하는 간부를 '진압대장'이라고 부른다면 언론사 부장은 이른바 데스크를 보면서 취재상황을 종합, 조절하는 야전사령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사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려고 하면 처음부터 부
잘해보자고 언론인과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타이밍은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6시에 만나서 맛있는 음식을 술 없이 먹고 7시에 헤어지는 경우와 8시 반에 모여서 11시까지 저녁식사에 술 한잔 하면서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 가능합니다. 본사에서 출입처에 오가는 기자의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6시에 만나는 이유는 오후 편집회의를 마치고 잠시 맞이하는 새참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본사 기자들은 오후 3시까지 출입처에서 취재활동을 하고 돌아와 4-5시에 기사작성과 편집을 진행합니다. 그리고 6시경에 브레이크타임을 갖습니다. 간단히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8시반까지 자리에 앉아서 컴퓨터 화면과 씨름하고 취재원과 통화를 합니다. 새로운 취재보다는 취재원측에서 해명과 설명을 하므로 이를 들어 주어야 하는 의무의 시간입니다. 취재의 기본은 양측의 입장을 들어보고 그 내용을 기사에 실어주는 것입니다. 일방의 기사만 쓰면 온당한 기사로 대접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기사 말미에 당사자와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통화를 하지 못해 설명이나 반론을 싣지 않는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8시반에 기자들을 만나는 경우는 좀 여유롭게 술 한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기자는 사건사고에 목숨을 건듯 달려갑니다. 송탄소재 미군기지에서 총성이 들렸다는 제보가 인터넷에 퍼지면서 방송기자가 출동하였습니다. 방송기자가 전화를 해서 오산공군기지를 가는데 주소를 알려달라고 합니다. 평택에 문의하라 답했습니다. 송탄에 있는 미군 기지를 오산비행장이라 부르지만 현장은 평택시 관할이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이 사건은 부대 내 훈련 상황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공보관실 근무중 토요일에 화성시 향남면 주유소 인근에 비행기가 불시착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떤 도민이 사건을 확인하고자 공보실로 전화를 하셨기에 답을 드리지 못하고 오히려 좋은 정보를 얻게 된 셈입니다. 일요일 근무 중에 도청 출입 기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많은 기자들이 그 메시지를 보고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나중에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대형사고 급 사건이었는데 이미 비행기 불시착 사건만으로도 큰 기사가 되는가 봅니다. 본사 데스크 선배는 현장의 사건사고에 대한 사전 정보보고가 없거나 늦으면 질책을 하나 봅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기자들이 노트북에 올리는 기사가 모두 기사화 된다면 신문 100면도 모자랄 것이라고 합니다. 많은 부분이 정보 보고이고 보고로 끝나고
지방지에서 스펙을 쌓은 후 중앙지로 진출하는 기자가 많습니다. 물론 중앙지에서 퇴임하신 후 지방지 기자로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앙사에서 근무하신 노하우를 지방사에서 발휘하시는 것입니다. 언론인의 취재는 발로 뛰는 경우도 많고 자료를 중심으로 분석적 보도를 하는 분야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원로 언론인들의 활동은 다양한 분석을 하게 합니다. K기자는 40대 중반의 역동적인 언론인으로서 지방사에서는 현장을 발로 뛰는 민첩한 기자로 정평을 받았고 이후 지방사 캐리어와 역량을 인정받아 중앙사 소속의 지방주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본인의 역량과 중앙사의 매체력이 상승작용을 하여 몸값이 수배 뛰어오른 경우 입니다. 이미 지방사에서 충분한 취재능력과 기사작성 역량, 사안에 대한 분석, 지방자치단체 간부들과의 '밀당'에도 역량을 발휘하고 있으니 물 만난 고기요 상승기류를 만난 독수리의 형상인 것입니다. 그냥 날개만 펴고 있어도 난기류의 에너지를 듬뿍 받아서 꼬리 깃털만 좌우로 틀어도 대세를 좌우하는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K기자를 여기에 소개하는 것은 그가 천군만마를 지휘하는 대장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 권력을 실전에서 행사하지 않고 초심을 유지한다는 사실 때
기자들의 선후배는 나이보다 학교보다 언론에 입문한 연식을 기준으로 합니다. 입직이라고 합니다. 언론인 간 선후배는 참으로 중요한 位階(위계)로서 군대의 계급 이상으로 그 위력이 강합니다. 언론인은 편집국장조차 "先輩(선배)"라고 부릅니다. 만약에 국장이나 부국장에게 '선배'하지 않고 국장님이라 부른다면 별로 존경하지 않는다고 보면 맞습니다. 특히 술을 마시면서 취기가 오르면 자신들의 내부 선배는 물론 동석한 공무원이나 다른 기관 부서장에게도 "선배, 선배"하면서 이런저런 고충을 이야기 합니다. 사실 기자만큼 고충이 큰 직업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밖에서 보면 기자는 기사를 쓰면 쓰고 말면 마는 것 같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아침, 저녁으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사건이 없다고 신문 3면이 백지로 나가는 것도 아니고 큰 사건이 많다고 해서 지면이 늘지도 않습니다. 지면이 잠시 늘어나는 경우라면 대부분 창간 기념일 일 것입니다. 신문사 편집국은 기사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면별로 기사를 채우고 기사가 부족하면 사진을 늘리고 기사가 넘치면 사진을 조금 줄일 수는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기사 몇 개를 버리면 되는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
1988년 겨울 이야기입니다. 중앙사 K기자는 100자 원고지에 살살 내려쓴 후 팩스 보내고 데스크에 전화하면 끝입니다. 그날 송고해야 할 기사를 난로가에서, 소파에서 머리속으로만 구상한 후 이제다 싶으면 자리에 앉아 플러스 펜으로 초서처럼 내려쓴 후 다시 읽어보지도 않고 팩스에 밀어 넣습니다. 잠시후 본사 지방부에 전화를 해서 도착여부만 확인하면 끝입니다. 생각 2시간 기사작성 3분, 송고 2분이면 기사는 마무리됩니다. 다른 중앙사 L기자는 원고지 200자에 오전시간을 다 쓰십니다. 아침 10시에 보도자료를 배포하면 앞으로 자신에게는 8시반에 미리 달라는 주문을 하면서 기사작성에 들어갑니다. 우선 제공된 보도자료에 검정색으로 수정 가필한 후 읽어봅니다. 다시 100자 원고지에 옮겨적고 붉은색으로 가필한 후 청색으로 고치고 검정색으로 추가합니다. 원고지 위에 교통지도, 도로망도가 그려진듯 복잡하고 글씨도 둥글둥글합니다. 그래서 늘 바쁘신 L기자님은 점심시간 맞추기도 어렵습니다. 당시에는 잘나가는 석간신문이었으므로 오후 1시경 지방판이 마감됩니다. 점심을 제때에 맞추지 못하고 늘 허덕허덕 입니다. 수차례 수정과 가필을 거듭한 끝에 또다시 정서한 원고에 수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