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언론인·독자에게 추천하는 글
[ 어라! 이 친구 뭐지? ]
관선기자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공보실에서 홍보를 담당하는 공직자를 두고 출입기자들이 불러주는 별칭이지요.
그러나 모두가 별칭으로 불리워지진 않습니다.
기자보다도 뛰어난 필력에 정무적인 감각이 있어야 얻어지는 별칭입니다. <중략>
9급 말단 공무원으로 시작해 1급 관리관으로 명예퇴직하는 전설로 남게 된 것도 홍보업무를 하면서 얻는 역량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연배는 아래지만 홍보업무를 함께 했던 그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존경했습니다. <중략> 그의 소중한 경험이 후배공직자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공직사회를 이해하는 길라잡이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시인 홍승표(전 용인부시장/전 경기관광공사 사장)
경기도청 최초의 '아웃소싱' 공무원으로 말하자면 잠사계장과 잠업특작과장을 역임하시고 퇴직 하신 후 수원시 문화원장, 민선 수원시장, 국회의원을 역임하시고 얼마 전 작고하신 심재덕 전 수원시장님을 들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우리나라가 비단을 생산하는 누에고치를 수출하여 외화를 벌어 산업경제의 기반에 보탰다고 하는데 이를 적극 추진하기 위해 당시 고등학교 교사를 공무원으로 특채하여 파격적으로 사무관에 임명하고 이후에는 과장에 승진 보임하였다고 합니다. 심 시장님은 공직 재직시절에 세계 화장실협회 초대회장을 하셨으며 수원시는 물론 우리나라 화장실 문화의 선진화에 크게 기여하셨고 외국의 화장실 발전에도 힘쓰신 분입니다. 지방자치가 시작되면서 경기도청에 외부 전문가가 자리한 직위는 비서실장, 여성국장, 공보관 등이 있습니다. 제가 1999년 홍보기획팀장으로 발령받았고 J공보관을 만난 다음 날 기존의 업무가 바뀌면서 새로운 홍보기획이라는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그 자리는 언론인과 접촉하는 자리로서 발령소식에 동료들이 술 많이 먹게 될 것이라는 걱정을 해 주었지만 정작 언론인을 직접 만나지는 않았고 인터뷰자료를 통한 간접 접촉이 대부분의 업무였습니다.
일단은 공보실이나 대변인실 등 언론을 고객으로 생각하고 도민과 시민을 설득하기 위한 업무에 전념하는 부서에 근무하는 공무원에게는 혁신과 미래에 대한 나름의 주관적 판단을 하는 전략적인 사고방식이 필요합니다. 정치인 김종필 버전으로 세상을 만나고 김대중의 설득력으로 이야기 하고 김영삼의 전략으로 사안을 조율하는 역량이 필요합니다. 이른바 '삼김' 세분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세분이 화려한 三金(삼김)시대를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삼김은 늘 뉴스메이커였고 그 뉴스를 바탕으로 정치를 이끌어갔습니다. 공보실 근무자는 옆 돌 빼서 그 다음 자리에 메우는 전통적, 또는 현대적 공무원과는 많이 크게 달라야 합니다. 늘 자신의 기준보다는 객관적인 상황을 보고 매번 만나는 사안마다 각기 다른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늘상 같은 기준으로 말하면 안됩니다. 어제와 오늘은 그 상황이 그만큼 변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의 대장님(도지사, 시장군수)의 임기가 하루 지나갔으면 그만큼 언론을 대하는 공보실 직원의 표정이 달라야 합니다. 취임 초 공보실과 임기 3년이 지나 1년 남은 상황에서의 공보실 대처방식이 千篇一律的(천편일률적)이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천 개의 글이 하나같이 비슷하다면
공직에서는 행사장에 참석하면 다음 날 아침 기사에 이름이라도 나오고 어느 행사는 사진까지 게시되니 그 존재감의 무게가 제법 나갈 수도 있습니다만 공직을 나오는 다음날부터는 아무런 일이 없습니다. 공식적인 직함이 없으니 마지막 직책으로 가지고 있던 명함도 하루아침에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처럼 폐기됩니다. 그리고 깊어가는 가을날의 은행나무 잎새처럼 길바닥 보도와 아스팔트길을 나뒹굴 뿐 어디에서도 내밀어 댈 종이쪽지가 아닙니다. 지방선거에 나가기 위해 공직을 6년 정도 미리 나간 어느 간부가 말했습니다. "공직을 나가니 명함을 만들 길이 없더라". 솔직히 공직자는 사무실에서 명함을 찍어줍니다만 별도의 멋진 명함을 자비로 인쇄해서 지니고 다니는 공무원도 만나게 됩니다. 풍족한 자부심이고 아름다운 공직자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명함을 내돈으로 만든다는 것이 공직에서는 멋진 일인데 밖으로 나와서는 힘든 일입니다. 그냥 이름 석자에 전화번호만 새기기도 쑥스러운 일반인으로서는 내 주머니 돈을 꺼내고 개인신용카드로 결재해도 좋으니 명함을 새길 일이 생겨나기를 간절히 바랄 것입니다. 그래서 내려놓기와 파고들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내려놓음은 과거 공직자일때
요즘 광역자치단체장 1급 관사와 기초자치단체장의 관사운영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광역단체장의 경우 과거의 유산인 경우도 있지만 차지하는 땅도 넓고 건물도 크며 그 안에 들어가는 각종 가구 등도 고가의 예산이 들어간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기초자치단체장의 경우 해당 시군에 거주한다는 전제가 있을 것이라는 언론의 지적이 있고 어떤 경우에는 살던 집을 전세 주고 관사로 이사하였으니 재테크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습니다. 이처럼 권한이 있는 단체장이 언론앞에 서는 경우 실무진은 늘 고민을 하게 됩니다. 물론 좋은 내용으로 인터뷰를 하는 경우라면 점수도 따고 언론에도 나오니 즐거운 일이겠습니다만, 관사문제와 같이 답변이 어려운 경우라면 담당부서는 참으로 힘이 듭니다. 그래서 언론앞에 나서는 단체장의 경우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우선은 취임식, 취임 100일, 취임 1년 등 언론에서 어떤 계기를 활용한 홍보전략을 제시하기도 하고, 발빠른 공보부서의 간부는 바둑으로 치면 선수잡고 언론에 제안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사업장을 촬영하게 되는데 우리가 촬영하면서 기대한 큰 그림이 방송에 나오지는 않습니다. 아주 많이 찍었지만 그 중에 우리가
초등학교 자연시간에 인간의 코는 후각이라는 냄새를 구분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감각기관에 비하여 쉽게 마취되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취약점이 있다고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코가 약간 작은 편이어서 식구들이 농담으로 화장실 등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곳에서는 손으로 코를 잡아 당기라 했다. 그래서 정말로 화장실에 앉아서 코를 당겨보았지만 콧등만 빨개지고 콧날은 제대로 서지 못하고 늘 그 모습 그대로이다. 또 다른 방법중 하나는 코에 밀가루 성형을 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것도 또한 농담이었는데 마음속으로 정말 콧날을 세우는 수술이 있다면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이 방법도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고등학교에 들어와 콧날이 엄청 크신 윤리선생님께서 수업중에 자신의 코를 자랑하시면서 콧날의 크기와 기후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콧구멍의 기능은 공기를 데워서 폐에 이르게 하는 것인데 아주 추운 러시아 지역에서는 찬 공기를 데워야 하므로 콧구멍 통로가 길어졌고 아프리카 흑인마을은 더운 지역이므로 긴콧구멍이 필요하지 않아 납짝코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동양계 사람들의 코는 러시아 사람의 코와 아프리카인의 들창코 중간지
아침에 출근한 기자는 무슨 일을 할까요. 우선 출근하여 부장, 차장에게 인사를 하고 커피도 마시고 복도에 나가 담배도 피웁니다. 과거 한참 시절에는 기자 책상위에 대형 유리 재떨이가 있어서 오전에 한 웅큼 채운 후 비우고 오후에 출입처에서 돌아온 3-4시부터 6시까지 한 번 더 채워준 후 오늘 밤에도 담배를 더 피울 요량이었습니다. 喫煙(끽연)자의 천국이랄 수 있는 1980년대에는 공무원 책상위에도 재떨이가 있고 기자 책상위에도 동그란 그릇이 있다는 사실이 공통점이라면 저녁 8시 이후 공무원 책상위에는 전화기만 달랑 남아있는 반면 기자님 책상 위 자료는 3년 4년 이어진다는 사실이 차이점입니다. 기자 책상위의 자료들은 정치부에서 사회부, 경제부에서 문화부로 발령이 나야 잠시 정리되었다가 후임자가 와서 1개월 쯤 지나면 본모습 그대로 자료가 쌓이게 마련입니다. 이는 출입처 기자실에도 마찬가지인데요 10년이상 출입한 기자의 책상 위 자료가 쌓인 모습을 보면, 마치 지질학자가 쌓이고 싸인 모래 퇴적층에서 고생대 중생대를 구분해 내듯이 갱지와 복사지가 연대별로 쌓이면서 태양에 숙성된 정도에 따라 그 자료 단면의 색이 초코렛 색에서 연한 홍차색으로 변하는 이른바 컴퓨
1960년대 정부조직중 경제기획원은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수립 추진한 곳으로서 남덕우 부총리님을 기억하게 됩니다. 당시에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시책들이 3-4개 경제신문 기자들에 의해서 국민들에게 알려지곤 했는데 초기단계의 정책들이 공식적인 발표 전에 기사로 보도되는 바람에 간부들이 곤혹을 치르곤 했답니다. 그래서 경제기획원 공보실에서 청사내에 '기자실'을 따로 만들어 놓고 여기서 기사를 쓰고 휴식도 하시도록 언론인들을 '배려'하였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관공서 기자실의 '嚆矢(효시 :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시작되어 나온 맨 처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비밀이 하나 있었습니다. 기자실에 취재편의 제공을 명분으로 배치된 공무원은 경제기획원에서도 실력이 있고 눈치가 빠르며 특히 시력이 좋아서 자료를 전하거나 일반적인 대화를 하면서 기자실 책상위에 놓인 다른 자료나 원고지를 스캔하여 그 내용 중 키워드를 내부 간부에게 보고하도록 하였답니다. 즉, 현재 기사실에서 무슨 내용의 기사를 쓰고 있는데 어떤 분야의 취재가 진행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일종의 '인간-CCTV'를 설치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직 나가서는 불편한, 미완의
2004년 당시의 도청 기자실은 참 복잡한 미로였습니다. 중앙지 방, 지방지 방, 지방2진 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방은 일단 문을 열면 작은 방이 있고 다시 문을 열면 본방이 나오는 구조였습니다. 언론인은 지금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중앙지와 지방사 1진방, 2진방에서 50여명이 취재를 하고 있었는데 도지사는 물론 부지사, 국장, 과장 등이 현안사항을 설명하려면 3번 동일한 설명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즉 지방1진 방, 지방2진 방, 중앙지 방을 각각 돌면서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어떤 경우는 기자회견 급인데도 3번 반복하기도 했고 여하튼 대화중에 나온 질문의 포인트가 다를 수 있으니 다음날 보도를 보면 서로 핵심과 주제가 약간 혼선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이리하여 브리핑룸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많은 언론인들이 일괄 발표하는 별도의 방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자실은 그냥 넓게 쓰면서 브리핑룸이 설치되는 것은 누구나 찬성할 일이겠지만 현재의 공간에 브리핑룸을 만들고 기자실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물론 앞에서 말한 대로 창고형태로 버려진 면적을 조상땅 찾듯이 찾아내는 것으로 일부 면적을 보충할 수는 있겠으나 최소한의
기자실은 행정기관과 언론인간의 밀고 당기는 공간 확보의 현장입니다. 기자실 확보는 출입 언론인의 자존심이고 기관의 입장에서는 민의를 대변하고 소통하는 현장이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공사를 하겠다며 잠시 기자실을 폐쇄한 후 장기간 신장개업하지 않은 사례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기관에서는 늘 아주 넓은 기자를 위한 공간을 확보하려 노력합니다. 기자실 옆에는 늘 브리핑 룸이 있어서 각종 중요 현안에 대해 언론에 설명하고 때로는 시민단체 등이 찾아와서 기자회견을 합니다. 경기도의회 기자실 브리핑룸에서는 지방선거 때마다 출마 기자회견이 줄을 이어가고 국회의원 출마선언의 장으로 활용합니다. 환경단체, 경제단체, 복지단체 등의 주장을 펼치는 장소로 도의회 브리핑 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기자단은 기자실에 출입하는 언론인들의 모임입니다. 기자단에는 간사라는 총무 겸 회장의 역할을 하는 중견 언론인이 있으며 2년씩 돌아가며 담당하기도 하고 어느 기자단 간사는 10년 넘게 이어 가기도 합니다. 안정된 기자단의 간사는 장기근속을 하게 되고 심히 유동적인 기자단의 간사는 수시로 바뀌고 합종연횡을 이어갑니다. 안정적인 기자단의 간사는 1년에 2번 정도 정기회의
글 소제목이 '악어와 악어새' 입니다. 서로 도움을 주는 관계를 말합니다. 언론이 악어인지 공무원이 악어새인지 구별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언론과 공직사이에는 여러가지 관계설정이 혼란한 듯 보이기는 합니다만 전체를 둘러보면 그래도 상호 도움을 주고받는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적 삶인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사실 1999년경 인터넷 까페에 이 코너 "언론회고록"을 만들면서 이 글을 읽은 언론인 당사자가 고맙다는 말을 해주거나 과한 지적에 대해 항의성 댓글이 올라올 것을 예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제목을 정하고 글을 쓰다보니 결정적인 상황을 쓰기에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당사자는 물론 주변의 관계자들에게도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발생할 것이라는 걱정이 문장의 진도를 막았습니다. 특정인의 이야기를 서술하다보면 주변분들의 공감이 부족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동의할 수 없다는 항의가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론인은 특히 다른 분야의 인사들에 비하여 자존심이 높습니다. 매사에 비판적인 직업입니다. 그래서 일반인이 언론인을 말하고 그분들의 사례를 적어 공개하는 것은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였습니다. 긍정적인 일들을 생각해 내고 좋은 사례를 모아서 정리했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