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 공무원의 반란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출신 이강석

화성군 비봉면사무소에 처음 발령을 받고 만난 분은 안 선배입니다. 선배는 당시 회계담당자로서 이강석과 김OO 서기보가 발령을 받고 온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군청에서 읍면에 발령대상자를 2~3일 전에 미리 공문으로 알린다는 사실을 당시에 신규공무원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군수님 발령장을 들고가서 인사하면 그제서야 발령사실을 아시는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군청 공문이 면사무소에 왔을 것이고 남자 한명과 여성공무원 한 사람이 비봉면사무소에 발령된 것을 알았고 이름도 확인되었으며, 특히 이강석은 비봉면 자안1리 출신이라는 것도 파악되었던 것입니다. 이른바 본면 직원이 대부분이던 시절이니 이번에는 어느 동네에서 공무원이 오는가 하는 것도 궁금한 일이었습니다.

 

대략 비봉면사무소에는 25명이 근무했는데 23명은 본면 출신이고 인근의 면에서 잠시 발령받고 와서 근무하는 직원은 2명이내였습니다. 얼마후에는 다른 면에서 근무하던 본면  출신 공무원이 복귀하기도 하고 근무 중에 군대를 가거나 타 기관으로 전근을 가기도 했습니다.

 

안 선배에게 인사를 하고 발령 후 사무실에 출근을 하였고, 훗날 교사로 전공을 찾아간 강 선배의 후임으로 서무담당이 되었습니다. 저는 서무담당이 문서를 취급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군청 문서사송 홍주사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나중에 면사무소 직원은 논두렁 밭두렁으로 뛰어다니느라 참으로 바쁜 직업임을 알았습니다만 처음 1개월간은 참으로 평온했습니다.

 

서무담당으로 업무를 지정받고 한달을 일하는 동안에 두번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수시보고통제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보고기한 안에 반드시 보고서를 군청에 제출해야 하는 중요한 업무입니다. 하지만 이 문서를 2주일정도 뭉개고 있었습니다.

 

총무계장님이 급하게 문서를 찾으시므로 캐비넷에 쌓아둔 문서를 뭉치째 가져다 드렸습니다. 급하게 보고하라는 두동그라미라 찍힌 문서를 찾아내시고는 급하게 공무원 인사통계를 작성해서 군청에 보고하십니다.

 

나머지 문서를 그냥 돌려주시므로 일주일을 더 가지고 있었고 드디어 산업계에서 보고가 늦어서 이른바 독촉장이 떨어졌고 당시의 부면장님의 도장을 받아서 지참보고했습니다.

 

부면장님 개인도장을 찍어서 보고서가 지연된 사유를 설명해야 했습니다. 나중에는 농촌지도소에서도 독촉장을 보내는 등 당대에 독촉장을 남발하는 모습도 기억이 납니다.

 

이 같이 역량이 부족한 19세 공무원은 외로웠습니다. 그리고 20대 후반의 이아무개 선배가 발령되자 이강석은 산업계로 보내서 축산, 양정, 상공, 수산, 잠업, 관정, 농정 등 잡다한 일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이강석은 '사표서'를 작성했습니다. 사무인계서도 만들어서 봉투에 담은 후 이를 권선배에게 맡기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사표와 사무인계인수서를 받아든 권 선배는 이서기!, 이서기!!! 를 연호하며 따라왔지만 이강석은 첫월급으로 산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줄다름질했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살짝 소나기가 내려서 눈물과 콧물에 빗물이 겹쳤습니다.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늦은 시각에 비를 맞고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께서 반기십니다.

 

반갑게 맞이하는 어머니에게 “저는 공무원들 그만두었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도 “네가 어려우면 그만두고 공부를 하라” 하십니다. 지금도 오늘도 사람의 운명이라는 것은 매일매일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표를 낸 다음 날에 민부면장님이 권 선배와 함께 49cc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오셨습니다. 집안으로 들어오시면서 어머니께 인사를 하셨습니다.

 

"어머니, 송구합니다. 귀한 자식을 데려다가 잘 근무하도록 하지 못하여 송구합니다."

 

오시자마자 사과를 하시니 할 말이 없고 오히려 쥐구명에 숨고 싶은 심정입니다. 함께 온 권 선배도 힘들겠지만 공무원이라는 사회생활이 다 그런 것이라는 취지의 위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어머니도 답하십니다.

 

"아이고, 아들이 철이 없어서 그랬겠지요. 제가 죄송합니다."

 

아마 이렇게 답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두 분은 면사무소로 되돌아가셨고 마루 기둥 옆에 내려놓은 재수생 가방은 그대로 다락장에 들어갑니다.

 

이날 서울로 출발하지 못하니 운명은 또 한번 바뀌고 말았습니다. 재수생의 길로 갔다면 또 다른 세상을 만났을 것입니다만 두분의 설득으로 다음날 아침에 면사무소로 출근했습니다.

 

출근하여 잠시 자리에 앉아 있으니 부면장님께서 면장실로 부르십니다. 당시 멋쟁이 홍 면장님의 앞에 앉으니 송구함뿐입니다. 하지만 고수 공무원이신 홍 면장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잘못 생각해서 너를 산업계로 보냈는데, 지금이라도 네 의견을 말하면 다시 배치를 할 수 있다."

 

"죄송합니다. 면장님께서 명하신대로 열심히 근무하겠습니다."

 

"네가 그러면 그렇지. 너의 할아버지 이명의 어르신으로 보나, 이기승 아버지로 보나, 너는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다~!!!"

 

연극 대사, 영화 시나리오 같습니다. 이 말씀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원래대로 배치해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이미 간파하신 바이지만 고수는 역시 원하는 바를 말하면 해주겠다 떡밥을 던지셨고 이강석은 그 떡밥속의 바늘을 피해서 '면장님께서 배치하신대로 근무하겠다' 답변함으로써 서로간의 체면을 살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산업계에서 열정으로 근무하였습니다. 면직원, 면서기가 할 일이 이런 것이었음을 2년반동안 열정으로 받아들이고 현장을 뛰었습니다. 그린벨트 단속, 통일벼, 논보리, 퇴비증산 등 다양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근무중에 한두분이 다른 기관으로 전근을 갑니다. 어느 기관에 근무하다가 임용권자가 바뀌는 전출을 가는 경우에 양 기관은 이른바 '할애요청'이라는 문서를 주고 받습니다.

 

할애요청이란 귀 기관장이 이 직원을 사랑하사 함께 근무하던 중에 그 사랑을 우리 기관에도 나누어달라는 취지의 문서를 말합니다. 아마도 행정기관의 용어중 가장 낭만스러운 표현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랑을 나눈다는 표현이니 참으로 멋지지 않습니까.

 

당시에 군청에서 면서무소에 보내는 공문서에는 조치할것, 보고할 것, 기타 지시사항은 반말투였습니다. 상급기관에서 하급기관으로 명령을 내린다는 취지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2023년 이 시대 공문서를 보면 존칭을 쓰고 있습니다.

 

민원인은 물론 기관간에서 상급기관에서 하급기관에 존칭을 쓰고 있습니다. 통보합니다. 자료를 제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불허처분 하오니 필요한 조치를 하시기 바랍니다. 신청에 대하여 승인처리하니 사업을 추진하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좋은 표현입니다. 기관에는 30명에서 수천명이 근무합니다. 기관마다 위상이 있고 모시는 국민이 있습니다. 일종의 법인격이랄 수 있는 기관간에 과거에는 할것, 보고하라, 저리하라 등 하대의 표현을 한 것은 잘못이 있습니다. 조선의 군신시대의 방식이라 핑게를 대겠지만 이런 하대하는표현이 바로 잡힌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기관간에 서로를 존중하고 존중하는 만큼 갑질도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1984년 도 본청에 처음 들어가보니 도에서 시군지역에 행하는 갑질이 많았습니다. 부서간의 갑질도 흔했습니다. 공무원을 대하는 자세에서도 갑과 을이 확연하고 민원인은 을이고 공무원이 갑인 줄 알았습니다.

 

도청공무원은 민원인에게 이렇게 소홀해도 되는가 하는 반문이 들었습니다. 회의중이라도 민원인이 오셨으면 그 민원내용을 알아보고 즉시 가능하면 처리해 드려야 합니다.

 

업무처리에 시간이 걸리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잠시 기다리시도록 하는 것이 공직자의 기본자세라 배웠는데 이곳 경기도청에서 민원인을 기다리게 하는 것은 다반사였습니다. 如反掌(여반장)입니다.

 

茶飯事(다반사)는 차를 마시는 날이 흔해서 차를 마시는 일처럼 흔하다는 말이고 여반장은 손바닥을 뒤집는 일처럼 쉽고 흔하게 행한다 해서 나온 말인 줄 압니다. 내일이 아니라고, 권력, 권한이 있다고 민원인,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이처럼 모시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어린 시절 가벼운 마음에 조직의 명에 반발했던 작은 추억을 바탕으로 민원인을 위해서, 조직을 위해서 공직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던 추억을 담아서 여기에 전합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경기도민회장학회 감사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