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꽃

홍일표

벼랑에서 꽃은 웃고 있다

절벽을 삼킨

천진난만

꽃의 가슴을 열어보라

곳곳에 유리조각처럼 꽂혀 있는 벼랑

조금만 흔들려도 우수수 쏟아져 내릴

붉은 발자국들

 

절벽을 열고 꽃이 들어간다

대롱대롱 줄에 매달려

빌딩의 얼굴을 닦고 있는 사내

오전 내내 정신지체 아들의 벼랑을 끌어안고

이쪽저쪽 문질러도

꽃피지 않는 절벽

닦고 닦아도 시도 때도 없이

질질 흘러내리는 웃음

대책 없이 아무 때나 피어나는

 

벼랑을 떼어버린 꽃을 들고 수로부인이 지나간다

꽃들이 아등바등 물고 있는 절벽

피할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벼랑을 끌어안고

웃고 있는 꽃

늙은 소가 빌딩을 등에 지고 귀가하여

긴 골목을 잠근다

더 이상 웃음이 새어나가지 않는다

 

 

 

 

 

 


홍일표 시인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매혹의 지도』, 『밀서』, 『나는 노래를 가지러 왔다』, 『중세를 적다』와 청소년시집 『우리는 어딨지?』 평설집 『홀림의 풍경들』, 산문집『사물어 사전』을 펴냄. 제16회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좋은시賞 수상.


 

-시작메모-

 

세상의 사물은 모두가 꽃이라 할 수 있다. 꽃들은 슬픔에 잠겨 울기도 하고 기쁨의 충만으로 웃기도 한다. 벼랑에서 핀 꽃이 웃고 있다. 벼랑은 우리의 삶에 있어 하나의 일터라 할 수 있다. 일반 사무실에서 평범하게 일을 하는 샐러리맨도, 높은 빌딩의 유리창을 한 줄의 밧줄에 의지하며 닦고 있는 사람들도 일상의 삶에 있어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삶의 현장은 서로가 경쟁하며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벼랑과 꽃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은 너무도 대조적이다. 그렇지만 화자는 벼랑이라는 시어를 통하여 치열한 삶의 현장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냈다. 살아가면 벼랑 같은 삶은 복병처럼 나타난다. 우리는 위험하지만 나와 가족들의 안전한 삶을 위하여 빵을 구하기 위하여 목숨을 담보로 하여 벼랑을 타고 있다. 혹자는 수로부인과 같이 절색미인의 사랑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내 해 가며 벼랑위의 철쭉꽃을 꺽어 헌화하였는지도 모른다. “벼랑을 끌어안고/웃고 있는 꽃/늙은 소가 빌딩을 등에 지고 귀가하여/긴 골목을 잠근다” - 「웃는 꽃」부문

읽으면 읽을수록 슬프고 아름다운 사유로 발전시키는 구절이다. 따라서 삶은 어쩌면 꽃이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18절에 나오는 “범사에 행복 하라” 라는 성경의 말씀이 이 시 구절구절에서 풍겨 나오는 것 같다.

(시인/한국경기시인협회이사 정겸)

 


정겸 시인    

출생 : 1957년 경기 화성(본명 정승렬)

경력 : 경기도청 근무

등단 : 2003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시집 : 푸른경전, 공무원, 궁평항

수상 : 2004년 공무원문예대전 시부문 행정자치부장관상

         2009년 공무원문예대전 시조부문 행정자치부장관상, 경기시인상 수상 

현재 : 칼럼니스트와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