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
二十里길을 걸어 열하룻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막내날 이쁜이는 대추을 안준다고 우렀다
절편같은 半달이 싸리문우에 돋고
건너편 선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나귀방울이 지꺼리는 소리가 고개를 가차워지면
이쁜이보다 찹쌀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노천명 시인
황해도 장연출생, 1912년~ 1957년(향년 45세),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 졸업, 조선중앙일보와 서울신문 기자, 부녀신문 편집차장 수필집 『산딸기』, 『나의 생활 백서』, 『여성 서간문 독본』, 『사슴과 고독의 대화』 시집 『산호림』, 『별을 쳐다보며』, 『사슴의 노래』 등
-시작메모-
올 추석은 사상 유례 없는 6일간의 긴 추석 연휴다. 이맘때쯤이면 각 매스컴에서는 추석 중후군 이라는 이색적 병명을 가지고 토론과 논제를 삼아 곱씹는 장면이 왠지 눈에 거슬린다.
이제 코로나 감염병도 풀렸으니 금번 추석은 고향을 찾는 민족 대이동이 최고조에 이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따라서 성인 남자들은 추석에 쓰일 경비 걱정이며, 모처럼 만나는 시골의 일가친척들에게 선물은 무엇으로 할까 하는 걱정, 또한 고향이 멀리 있는 분들은 고향으로 가는 교통편을 어떻게 해결해서 가족들을 편하게 모셔야 하는가. 등 여러 생각과 고민을 할 것이다. 성인 여자들 역시 제사상이며 남편 고향친구들의 술상준비, 여기저기서 찾아오는 고향 어른들의 술대접을 위한 상차림과 설거지, 많은 사람들의 방문으로 인한 집안치우기 등 중노동에 따른 걱정이 태산 같다. 이렇게 힘들게 사는 세상에서 노천명 시인의 「장날」이라는 시는 그 옛날 정겨운 모습에 어떤 노스탤지어를 느끼게 하며 우리의 지친 마음을 잠시나마 정화 시킨다. 이 시의 특징은 노천명 시인의 독특한 창작 기법으로 대체로 구두점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과 방언을 활용하는 등 시어의 정서적 가치에 구수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이 시를 보면 대추와 밤을 팔아서 돈을 만들어야 추석명절을 쇨 수 있는 당시 가난한 농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데 철없는 막내딸은 돈으로 바꿀 대추를 달라고 보채니 부모로써는 참 난감하고 가슴도 아팠을 것이다. 그 옛날 우리의 연로하신 부모님들은 우리를 그렇게 키웠다. 지금의 부모마음도 과거 세대와 똑같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노동 현장에서 가족들을 위해 피와 땀을 흘려가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명절에는 고혈(膏血)과 맞바꾼 임금에 대한 체불이 없길 바라며 정부에서는 임금체불업자를 색출 엄단해야 한다.
정겸(시인/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