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집필중
무임 교통카드 이야기입니다. 지패스, 즉 "경기도 우대용 교통카드"입니다. 이 카드로 전철을 무료로 타고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선배중에 생일이 지나서 무료교통카드를 받을 수 있는데도 발급신청을 하지 않은 분이 몇 명 있습니다. 주변사람들에게 나이 든 것을 틀켜 버릴까봐 카드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카드를 쓰면 전철 개찰구 주변에서 만나는 알지 못하는 분들이 "저분은 나이가 드셨구나!" 정도로 알아차릴 것이지만 서로 누구인가는 모르는 사이입니다. 그러니 우대용교통카드를 이용하여 전철을 타고 내려도 그분에 대하여 나이가 60대 70대초인 것을 나중에 기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어쩌다가 아는이를 만나면 다른 이야기로 교통카드 음향을 듣지 못하게 하면 될 일입니다. 이는 마치 산 정상에 올라 "야호!" 소리를 쳐도 주변의 등산객들은 이분이 누구인가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오히려 나무와 바위와 시냇물이 누구인지를 알 것입니다. 자연은 인간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지만 말하지 안고 아는 체도 하지 않으며 다른 식물이나 동물에게 그 말을 전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을 사랑합니다. 인간보다 자연을 좋아합니다. 자신에 대
모두가 잘 아는 바와 같이 기우제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인디언 추장이 있었다. 그가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리니 다른 부족에서도 기우제 제관으로 초청을 받게 됐다. 주변 사람들이 효험 있는 기우제를 지내는 비법을 추장에게 물었다. 추장의 답은 간단했다. “나는 비가 내릴 때까지 꾸준히 기우제를 지냅니다.” 그는 아마 1년 내내 기우제를 지냈거나 때로는 1년 이상 비가 내리기를 소원하는 기도만 했을 수도 있겠다. 추장이 사는 동네의 건넌마을 유행어는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우리로 말하면 복지를 말하는 것이다. 사실 일반행정은 문서 한 장을 기안한 후 여러 부 복사해 뿌리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복지는 문서 한 장에 한 사람씩 붙어 복지사무, 행정업무를 수행한다. 복지행정은 그냥 서류를 배포하면 실현되는 일이 아니라 각기 다른 복지요구에 맞게 음식과 옷을 먹이고 입히고, 편안한 잠자리에 재워야 한다. 우리나라 1970년대로 가보면 ‘마을 입구 논농사’는 온 동네 사람이 함께 짓는다는 말도 있었다. 이 말은 과거 행정력이 농촌 농사에 집중하던 ‘농정 최선의 시대’에 생겨난 요즘 청년들의
수원시 원천리천에서 버드나무 묘목을 촬영했다. 수원팔경에도 들어있는 버드나무가 어쩐 비확율적, 비현실적인 상황에 처하여 몇 년째인가의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천 중심부에 이유없이 서있는 기둥이 물위로 1.5m정도 솟아있는데 그 위에서 가냘픈 긴가지 3개와 새싹가지 2개의 '일가족 버드나무'가 애처롭게 서있으므로 급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다. 찍은 사진을 보면서 그 세월을 가늠해 보았다. 물속 말둑이니 모세관현상으로 물기가 올라왔을 것이고, 수년전 어느해 가을날에 그위 나무틈새에 씨앗이 올라가거나, 다른해 장마철에 버드나무 잔뿌리가 물살에 떠내려가다가 이 나무기둥위에 매달리고 걸쳐서 싹을 틔운 것일까 상상해보았다. 지금 나무기둥 위에는 작지만 수령 5년이상이라 불러줄만한 독자적인 모습의 버드나무가 빈곤한 나라의 아이처럼 가냘프게 그 몸매를 키우면서 올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올 겨울 추위도 이겨내고 내년봄이 되면 다시 잎새를 나풀거리겠지만 가로세로 15cm정도의 저 나무기둥 무대위에서 그 생명을 얼마를 더 버텨낼 수 있을까 걱정을 한다. 그래서 국민신문고를 통해 수원시청에 건의문을 올렸다. 저 버드나무가 애처롭게 매달려있는 나무말뚝을 잘라내어 그
1958년생으로서 65세가 되는 2023년 생일 다음날부터 지하철 무료카드를 받게 된다. 그런데 주변에서 일부 선배들은 그 카드를 '노인인정카드'라면서 거부한다는 말을 한다. 나이를 먹은 것은 본인의 잘못이 아니고 국가나 사회가 잘못한 일이 아니고 정치인이 제대로 정치하지 못해서 국민들이 나이를 먹는 것은 아니다. 철학적으로 생각해보면 지구탓이다. 지구가 태양을 돌면서 사계절을 연출하다보니 1년이 지나고 10년이 흘러서 청년들의 머리에 흰눈이 내리고 얼굴에는 사막같은 주름을 일으켜서 노년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말했다. 선배의 잘못없이 나이를 먹은 것이고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나이든 것이 불편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받아들이고 '지공선사' 신분증을 받으시라 권한다. 지공선사란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나이든 분을 줄어여 칭하는 말이다. 몇몇분들이 불편해 하시므로 지하철 공짜를 전철무료로 호칭해 본다. 청년시절, 장년시절을 거치면서 88올림픽 때 꽃길을 가꾸고 IMF때에는 금 서너돈 국가와 국민을 위해 바친 이들에 대해 지하철은 무료로 타시라고 만든 제도다. 그러니 가슴에 달고다닐 훈장까지는 아니어도 나이들어 국가에서 내려주는 지공선사 전철카드를 흔쾌히
인터넷 뉴스를 보니 전보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전보는 1885년에 서울과 인천사이에 전신시설이 최초로 개통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국제전보는 2018년에 종료되었고 이제 2023년말에는 국내전보가 마무리된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참으로 긴세월을 버틴 바이기는 하지만 전화기 보급이 활성화되고 개인전화, 핸드폰, 스마트폰이 초등생에게까지 보급되는 전화 전성기에도 잘 버텨온 바인데 드디어 선진국의 추세에 따라 우리도 폐지수순에 들어간 것입니다. 미국은 2007년에 전보가 중단되었고 독일은 2023년 1월에 전보를 중단하였다고 합니다. 전보는 우체국에서 보내면 받는이의 우체국에서 수신하여 타자를 치거나 글로 적어서 주소지로 자전거를 타고가서 전하는 첨단과 전통이 융합되는 통신수단입니다. 그래서 전보는 조부모가 별세하신 경우 도시에 사는 손자들에게 부음수단으로 많이 활용되었습니다. 한글자마다 전보요금을 계산하므로 단문으로 적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사이버공간에서 단문을 많이 쓰는 이유는 손가락 타자를 최소화하기위한 전략인 것에 비해 당시에는 요금을 아끼기위한 노력이었으니 단문의 의미에는 나름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보는 짧은 글로 요약해서 한자
세상사는 받아들이기 나름입니다. 말을 많이 하는 이에게 수다스럽다 하는가 하면 다른 각도에서는 화통하다 말합니다. 말이 적으면 답답한 사람이라 평하기도 하고 더러는 긍정의 이미지로 말하면 '참 과묵한 사람'이라는 호평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음식이 입맛에 맞아야 하듯이 어떤 상황도 상대방이나 당사자의 마음에 들어야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고객을 모신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손님의 다양한 입맛과 취향에 맞춰서 상품을 준비하고 팔아서 이익을 얻어야 하는 상인의 입장에서는 늘 손님은 높은 분, 즉 고객인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도 수많은 고객을 대하게 됩니다. 그래서 백화점 직원이 고객앞에 고개를 떨구고 무릎을 꿇기도 합니다만 이는 갑질이라 해서 언론으로부터 질책을 받습니다. 물건하나 사는 이가 그렇게 높은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 이시대의 평가인가 봅니다. 백화점 매장을 휘두르면서 사장나오라, 책임자 불러라, 내가 누군지 아느냐, 참으로 가관스러운 모습을 뉴스시간에 보게 됩니다. 그래도 인권이 있어서 모자이크 처리를 하고 험한 말은 묵음처리를 해야한답니다. 방송국 편집팀의 고생이 많습니다만 시청자들은 원문대로, 그 고객의 얼굴을 보여달
군수님 집무실을 그때에는 官房(관방)이라 불렀습니다. 관방을 “벼슬아치가 일을 보거나 숙직하던 방”이라 사전에서 풀어줍니다만 1960년대 군수실을 관방이라 불렀고 방 주인은 ‘군수영감’이라 칭했습니다. 令監(영감)이라는 호칭은 지금도 공식, 비공식적으로 쓰이는 줄 압니다. 그 관방의 부속실 벽에는 관청의 모든 부서 사무실을 밝히는 작은 5촉짜리 등불을 켜고 끄는 스위치가 있었습니다. (사진) 부속실 스위치에 연결된 5촉 전구는 각 과 사무실의 천정 구석에 붙어있어서 아침 8시반에 군수 출근시각에 켜지고 저녁 6시반 퇴근시에 꺼졌습니다. 주로 낮을 밝히는 전구입니다. 비서실에 스위치는 있는데 비서실에서는 불빛이 보이지 조명장치이고 각 사무실입장에서는 스위치가 없는데 알아서 켜지고 꺼지는 '공무원들의 출퇴근을 지휘하는 등대같은 등불'이라 할 것입니다. 오래된 청사의 천정에는 지금도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전구(사진)의 숫자는 12가 아니고 1과 2 입니다. 1은 군수실 비서가 스위치를 내리면 꺼지는 등불이고 2는 부군수실 비서가 전원을 OFF되는 전등입니다. 저녁 6시20분부터 많은 공무원들이 저 숫자 1, 2 또는 12를 바라보면서 1번이 꺼지기를 기다렸
냉장고의 냉동칸과 냉장박스에 들어가면 "모든 식품이 영구히 안전하다"는 타성에 젖은 우리는 음식을 만들어서 그릇에 담아 냉장칸에 넣고 하루, 이틀, 사흘동안 꺼내어 먹고 다시 넣고 다시 꺼내는 셔틀냉장을 이어갑니다. 어느집 냉동칸은 음식을 담은 비닐이 흰 벽을 구성하고 있기도 합니다. 식재료마다, 음식과 반찬마다에는 나름의 유효기간이 있을 것인데 우리는 그냥 냉장에 넣으면 보름은 가고 냉동에 넣으면 다시 한해가 바뀌어 그날이 다시와도 탱탱 얼어있으니 문제없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위생당국에서는 유효기간과 유통기간을 정하고 단속을 합니다만 이는 편의점 등 오픈된 장소에서는 수시로 행해지는 행정지도단속이지만 정작 식품을 만드는 큰 공장에서의 위생에 대해서 편의점만큼 알뜰하게 관리하는가에 대한 확신은 부족하다 봅니다. 대형공장에서 제조일자, 유통기한, 유효기간의 일자를 쉽게 확인하기 어려운 부위에 흐릇하게 찍어내어 마트, 편의점 등에 공급하고 소비자들은 그 날짜를 확인하면서 작은 두뇌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유통기한 만료일이 임박한 제품은 진열대 앞에 놓고 조금 여유있는 물건은 뒷편의 꺼내기 어려운 곳에 전시합니다. 이에 소비자들은 일단 구매할 제품을 정하면 앞부분의
공직 퇴직 5년차에 화성시청 옴부즈만으로 일하면서 점심시간에 구내식당을 가게 됩니다. 현직 절에는 미리 구매한 식권을 투표하듯이 식권함에 넣고 식판을 받았습니다만, 화성시청의 구내식당에서는 우선 수저를 들고 식판에 밥을 퍼 올리고 반찬을 담은 후에 돈이 충전된 카드를 찍고 마지막에 맛진 국을 받아갑니다. 구내식당 배식시간은 11시 30분과 12시 두타임이 있습니다. 민원근무 교대자, 현업직 근무자에게는 11시 30분에 배식이 됩니다만 다른 직원에게는 12시부터 식판 잡기가 허락됩니다. 특혜받은 기분으로 11시 30에 구내식당에가서 90명쯤 뒤편에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기차가 출발하듯이 구내식당의 長蛇陣(장사진)이 서서히 움직이면 드디어 차례가 옵니다. 수저를 들고 식판을 잡고 밥을 퍼 올리고 반찬을 담은 후 국을 받습니다. 그리고 잠시 적당한 자리를 찾아서 자리잡고 맛있게 식사를 합니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식판을 반납하러 가는 길에 또 다른 장사진을 발견합니다. 이들은 12시부터 배식을 받을 수 있는 직원들입니다. 대략 11시 50분경에 와서 10분 동안 기다립니다. 밥이 식고 반찬이 말라가지만 식판에 음식을 담지 못합니다. 음식으로 고문을 한다는 느낌이
민간인 신분으로 시청에 근무하니 11:30분에 점심을 먹을 수 있습니다. 구내식당 배식시간은 2가지 시간이 있는데 한조는 11:30분에 급식을 시작하고 다른 조는 12가 되어야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11:25분에 사무실을 나서서 구내식당에 도착하니 이미 50명이 두줄로 서서 배식을 기다립니다. 이미 음식은 차려졌지만 11:30분 정각이 되어야 식기를 집어들 수 있는 오랜 관행과 전통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역시 줄을 서서 3분정도 기다리니 뒷편에 또다른 무리의 직원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습니다. 잠시후 배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수저를 먼저 들도록 배치한 것은 처음으로 구내식당 식판과 장비를 만든 분의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수저를 먼저 들어야 배식이 시작되는 시스템에는 재고를 요청합니다. 마지막에 수저를 배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저를 들고 트랙을 나가보니 현미밥과 도정미 밥이 있고 닭찜과 파랑나물, 콩나물, 그리고 김치가 셋팅되어 있습니다. 발그레한 김치가 잘 숙성되어 맛있습니다. 파랑나물도 살짝 간을 해서 짜지않고 좋습니다. 콩나물은 어느 반찬, 어느식사에서나 어울리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반찬입니다. 우선 식판 사진을 찍어서 아내에게 전송했습니다. 아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