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평항 연가

정겸

 

 

파도소리와 뱃고동소리가

헝가리무곡 5번을 연주하듯

빠르게 혹은 느리게 들리는 오후

 

갈매기들은 은유의 광장에서

출렁이는 붉은 연꽃 밭을 노래한다

 

한때는 빛과 어둠사이를 오가며

노을과 도리섬 등대를 사랑했다밀물이면 밀물이어서 좋다썰물이면 썰물이어서 좋다

사랑도 그리움도 떨어진 꽃잎 되어밀물과 썰물 따라 이리 저리 흩어진다파도는 푸른 꽃대 세우며

하얀 물꽃을 여기저기 피우고 있다

 

고깃배 옹기종기 모여 있는 궁평항에서

수평선 위로 떨어지는 해를 바라 본다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세상사 모든 시름 날려 버린다

 

이제 5만 년을 달려 온 별빛을 따라

호모 사피엔스로 되돌아가는 일이다.

 

 

 

 


정겸 시인

1957년 경기 화성출생(본명 정승렬), 2003년 시사사 등단, 시집 '푸른경전', '공무원', '궁평항', 공무원문예대전 시, 시조부문 행정안전부장관상, 경기시인상 수상, 현재 칼럼니스트와 한국경기시인협회이사로 활동


 

-시작메모-

 

헝가리무곡 5번은 우리 귀에 익숙한 무곡이다. 독일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브람스가 헝가리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와 연주 여행을 하면서 1869년 헝가리의 무곡을 모아 편곡하여 발표했는데 그 중 한 곡이다. 영화 '과속 스캔들'과 '4월의 이야기' OST로 유명하며, 어린이 장난감에도 음악으로 내장되어 있어 아이들도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는 친숙한 곳이다. 이 항거리무곡 5번을 궁평항 방파제에 가면 생동감 있게 듣는다. 일정한 간격으로 방파제에 부딪히는 파도의 반복되는 마찰음, 빠르게 혹은 느리게 음계를 읽으며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 같다. 갈매기들이 춤을 추며 노래하는 은유의 광장에서의 헝가리무곡 5번을 머릿속에 상상하며 해넘이를 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무아지경이다. '궁평낙조'는 화성팔경의 하나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사랑도 그리움도, 그리고 기쁨도 슬픔도 잠시 잊게 된다. 마음속 시름도 파도 속에 묻혀버리고 상처로 얼룩진 마음도 바람에 날아가 버린다. 치유(治癒)의 항구 궁평항, 도리섬 등대의 불빛을 따라 5만 년을 달려 온 별빛이 쏟아진다. 그 별빛 속에서 우리는 태초의 참 나를 발견하고 선(善)을 찾는 것이다.

정겸(시인/한국경기시인협회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