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업'은 부자를 만들어주는 집안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친근한 동물입니다. 두꺼비, 뱀, 새, 지렁이, 거미 등 다양한 동물입니다. 이 업이 어느 정도 부자가 된 집에서 살다가 주인이나 그 아들과 딸들이 noblesse oblige(노블레스 오블리주/ 프랑스어로 '고귀한 신분(귀족)'이라는 노블레스와 '책임이 있다'는 오블리주가 합해진 것이다.)를 실천하지 않거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그 집을 나가 다른 아직은 중산층이지만 성실한 집안으로 이사를 간다고 합니다. 그 후 몇 개월이 지나면 먼저의 부잣집은 이런저런 사건사고로 인해 서서히 가세가 기울고 업이 들어온 집에는 하는 일마다 잘 풀리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가업이 성장을 합니다. 잘되던 식당 옆에 담벼락을 헐고 유사업종 식당이 들어서면서 매상이 줄어드는 것은 이 식당에 있던 업이 출가한 것입니다. 가출한 것이지요. 아이가 집을 나가면 가출이고 아들이 스님이 되기 위해 지을 나서면 출가라 합니다. 업의 역할은 부자가 되는 인자를 전해주는 것입니다. 더 이상 부자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판단을 한 업이 집을 나가 다른 집에 숨어들면 새로 자리 잡은 집의 사업이 번창합니다. 경쟁관계의
공무원의 권위주의가 하늘까지도 올라갈 것 같은 (8급 직원의 시각에서는)의 1984년 경기도청 각 부서의 오전 9시 분위기는 군부대 밤 10시 일석 점호 준비하는 병사들의 움직임과 같습니다. 일의 핵심은 업무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차석, 계장, 과장으로 이어지는 결재의 기술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결재를 잘 받는 공무원이 일도 잘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결재란 서무담당자가 주무계장님의 결재를 받는 일부터 시작해서 과내의 다른 계장님 협조를 받는 일과 부서간 협조를 말합니다. 과내에서의 결재는 그런대로 진행됩니다만 다른 부서의 협조는 조금 어렵습니다. 예산을 지출하려면 예산계장, 기획예산계장, 경리계장의 협조 서명이 필요합니다. 시군 합동작업이나 회의를 하려면 행정계장의 서명을 받아야 하고 출장을 다녀와서는 확인평가계 7급 직원의 통제 도장을 받아야 합니다. 모든 일들이 서로가 상호 견재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출근하면 출근부에 서명을 하여야 하는데 정확히 9시가 되면 서무계 직원들이 출근부를 회수해 가니, 사정으로 늦은 직원들이 통사정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분이 발의해서 출근부를 없앤 것은 혁신 중의 대 혁신입니다. 공무원에게 정시출근 정시퇴근을 강조한 일이니
열대야 수준의 더위속에 한밤을 지내면서 방안이 더워서 거실에 나와 잠을 청했습니다. 선풍기를 약풍으로 틀었습니다만 잠을 청하는 머리속에는 번뇌가 들어옵니다. 선풍기를 틀고 자다가 숨이 막히는 경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풍기 바람이 계속해서 코에 불어오면 숨이 막히고 점차 폐활량이 적어지다가 산소결핍으로 의식을 잃었다는 보도를 본 기억이 나는 것입니다. 어려서 밤중에 화장실 가려면 왜 전에 들은 무서운 이야기가 생각나는 것과도 같습니다. 머리에서 지워진 줄 알았던 일들이 그와 연결되는 상황에서는 고리를 걸고 기억속에서 현실의 무대로 나타나 피노키오처럼 판토마임을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선풍기에 대한 걱정이 커지자 살짝 방향을 바꿔보았습니다. 선풍기 풍향을 바꾸기 위해 잠시 일어났다 다시 누워 잠을 청하니 이번에는 모기가 앵하고 지나갑니다. 모기로 말씀드리면 1960년대 어린 시절에 마당 한가운데에 쑥불을 피워 모기의 접근을 막았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불편한 진실이라 할 수 있을까요. 연기가 매워 피하면 모기가 대들고 연기 안으로 들어가면 모기는 접근이 안 되지만 콧물이 나는 것을요. 배가 아프니 쑥으로 배꼽을 뜨라해서 과도하게 열을 가한바 배아픈 것은
새벽 꿈 이야기를 적어보기로 합니다. 하지만 새벽 꿈은 키보드 앞에 앉으면 기억에서 사라집니다. 靑山流水(청산유수)같이 흐르는 문장을 만나서 이를 글로 적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까지는 기억되는데 그 내용은 사라집니다. 전설따라 삼천리에 나오는 이야기중 過去(과거)에 科擧(과거)시험 시제를 시험문제를 전날 밤 여우가 인간으로 변신한 여인을 꿈속에 만나서 듣고 그 자리에서 받은 문장을 답안으로 적어냅니다. 평가위원을 담당한 대신이 임금에게 고하기를 초장 중장은 신의 글인데 종장은 사람의 문장이라는 평가를 합니다. 起承轉結(기승전결), 앞부분의 글은 기억이 나서 한시로 적어 답안을 적었지만 마지막 부분이 생각나지 아니하므로 자신의 생각으로 마무리한 때문입니다. 역시 당대 최고의 문객인 과거시험 총괄 본부장 대신께서 글을 보니 명문인데 신의 길과 인간의 도리가 교차하는 부분을 감지하는 것입니다. 안성시 칠장사에서 본 어사 박문수 합격다리도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凡人(범인)이 犯接(범접)할 수 없는 신의 영역에 잠시 다녀올 수 있는 영광은 자신을 내던지는 살신성인의 정신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구미호의 꼬임에도 넘어가지 않는 선비의 절개를 보고
세상사에 급한 일과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일이 있습니다. 호떡집에 불난 듯 하다는 말은 좁은 공간에서 발생한 화재의 경우 어찌할 바가 없다는 의미로서 불을 끄려하기 보다는 주변에 번지지 않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할 것입니다. 건물에서 추락한 환자는 급하게 일으키는 것이 급선무가 아니라 그 자세에서 氣道(기도)를 확보하고 안정을 취하는 일이 중요할 것입니다. 집에 도착한 가족을 맞이하는 것은 급한 일이 아니라 반가운 일입니다. 아파트 현관의 문의 자물쇠를 풀어주는 것으로 충분할 것인데 문을 열어주는 바람에 아들이 아빠로부터 야단을 맞는 미안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자물쇠를 풀고 기다리면 문열고 들어올 것인데 말입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문을 열어주었지만 '과공은 결례'에 해당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서두를수록 좋은 일, 반드시 서둘러야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초가집에 불이 나면 최대한 빨리 불을 꺼야 합니다. 교통사고가 나면 최우선적으로 환자를 구출하고 119를 불러야 합니다. 환자를 태운 구급차는 최대한 빠른 시간안에 병원 응급실에 가야 합니다. 뉴스에서 이른바 '모세의 기적'이라는 기사를 봅니다. 엠블런스나 경찰차가 경음을 울리며 달리자 앞선 차들이 길을
1988년에 워드프로세서를 처음 만났습니다. 무겁고 두꺼운 본체, 텔레비전 크기의 모니터, 그리고 타자기를 닮은 키보드가 왔습니다. 각각의 전원을 연결하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보이는 기계들입니다. 그 기기를 조작하면 A4용지에 검은색 글씨가 인쇄되어 나옵니다. 공무원을 하면서 11년 만(1977~1988)에 만난 첨단장비는 매일아침 만나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우선은 아침에 조간신문 스크랩을 마치면 멋지게 인쇄한 표지를 올려서 비서실에 보냈습니다. 오전12시 정각이 되면 라디오 뉴스의 핵심내용을 A4 1매로 정리하여 비서실에 보냈습니다. 사실 오늘 하루의 국정은 정오 뉴스에 압축되기 때문입니다. 오후에는 각 부서의 홍보자료를 받아 기사문 형식으로 구성하여 워딩하였습니다. 출력하여 발간한 후 내일 아침 9시경에 언론인에게 배부할 예정자료입니다. 글씨를 잘 쓰면 인사팀으로 가던 시절이었습니다만 악필로 인해 다른 부서로 발령되고 승진하여 공보실에 왔습니다. 글씨는 못 쓰지만 글짓기는 조금 했다는 고등학교 시절의 문예활동이 인생의 큰 방향을 잡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글쓰기는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파트너인 줄 나중에 알았습니다. 좀더 노력하여
1984년 공무원 8급으로 근무하면서 인사계에 갈뻔 했지만 최종 점검에서 '악필'이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인사계 차석이 "아이는 심부름 잘하게 생겼는데 글씨는 부족하다"며 다른 분을 선택하였습니다. 새마을과 서무담당으로 근무를 시작한지 3주후에 당시 인사계로 추천해 주신 고마우신 선배님으로부터 인사계 낙방사유를 듣고 정신을 차려서 타자학원에 등록했습니다. 중고 여학생들이 소나기에 우박을 보탠듯이 우르르쿵쿵 타자를 치는 치열한 삶의 현장인 타자학원을 2달 정도 다녔습니다. 타자 선생님이 손가락을 독수리의 부리처럼 세우고 하나치고 둘치고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무실의 타자기를 쓰다가 아예 개인 타자기를 구매하여 책상위에 놓고 자신의 업무는 물론 주변 선배들의 협조전이나 시군에 보내는 공문 시행문도 타자했습니다. 청타용지에 쳐서 발간실에 가져가면 당시 36시군에 보내는 공문서도 인쇄가능했습니다. 지금은 31시군에 공문을 일일이 보내는 것이 아니라 결재순간에 미리 정해진 코스를 타고 문서가 전자결재 시스템을 타고 시청으로 군청으로, 다른 관련기관으로 뛰어가서 접수를 기다립니다만 당시에는 공문 결재받는 일도 큰일이지만 공문서를 보내는
1998년 동두천시청에 근무할 당시 휴가를 받아 집에서 다음날 일정을 논의하는 저녁시간에 평소 동사무소 업무에 신경을 많이 써 주시던 관내 사장님께서 전화를 주셨지요. 비가 많이 오고 있고 피해가 발생할 염려가 되는 상황이니 동장님이 휴가중이어도 사무실에 나오는 것이 좋겠소. 시청에 수십년 출입하신 사장님이시고 공무원의 기본을 참으로 깊이있게 아시는 분이기에 지도편달의 전화를 하신 것이지요. 곧바로 차를 몰아 내달렸고 의정부를 지나 양주에 이를 즈음 정말로 비가 참으로 많이 온다 했습니다. 지금 양주시청 신청사 인근을 지날 때에는 중형 차 크레도스(20세, 1996~2016)가 움찔하고 흔들림을 느낄 정도의 황토물이 흘렀습니다. 그래도 동두천시 경계에 이르니 경찰관이 진입하지 말라고 교통 통제를 합니다. 밤 12:30인데 가지 말라면 이 폭우속에서 그냥 선채로 비를 맞으란 말씀인지요. 교통통제도 대안을 가지고 막아야 합니다. 쥐를 몰아도 도망칠 곳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전쟁에서 배수의 진을 치기도 합니다만 늘 우리는 퇴로를 생각하면서 작전을 짜는 것 아닐런지요. 그리하여 좌측 강변우회도로를 타고 동사무소로 들어갔습니다. 차를 몰아 가는 길에 번
가뭄 끝에 폭우가 내리는 아침입니다. 나에게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 한다고 합니다. 효교육 강사님 강의내용 중에 요즘 아이들은 엄마를 위해 공부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맘에 안 들면, 사달라는 핸드폰 새 모델을 사주지 않으면 "나 공부 안해"라고 버틴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엄마를 위해 공부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서, 학생이기에 누군가에게 "나 안 해, 나 싫어!!!"라고 말할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살아가면서 그 누구에게도 "나 싫어!!!:"라고 말해본 기억이 없습니다. 주변에서 모두가 일하라고 합니다. 어느 상황에서도 싫다고 말해본 기억이 없습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일을 부탁한 기억도 적고 주변의 누구에게 나는 지금 이 일이 싫다고 한 일도 별로 없을듯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東西古今으로 요구를 하고 지적을 하는 사람들이 한가득입니다. 언젠가는 한 두번이라도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을 술에 취하면 아마도 실현을 하는가 봅니다. 평소의 마음속 기대감을 술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혹시 술의 힘이거나 음주의 핑게로 어리광을 부려보는 것은 아닐런지요. 혹시 이 시대 젊은 직장인
1968년 초등학교 3학년 방학을 맞아 10살 인생중 처음으로 자동차가 달리고 전기불이 있는 수원에 왔습니다. 2층, 5층 건물이 즐비한 북수동은 성안이어서 밭이 없었고 장안문 밖 북쪽에 자리한 영화동 배추밭에서 꿀벌을 잡았습니다. 흰색 파꽃위에서 꿀을 따는 꿀벌을 고무신 안에 잡아넣고 대보름날 불 깡통 돌리듯 7바퀴 정도 휘두른 후 바닥에 팽개치면 정신을 잃은 벌이 튕겨져 나와 잠시 한쪽으로 뱅뱅 돌다가 이내 정신을 차린 후 무턱대고 어디론가 날아서 도망치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했습니다. 그 밭에 건물이 들어서고 도로가 자리를 잡아 깔끔한 도시로 변모한 요즈음 영화동 주변의 순대국집, 만두집, 삼겹살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50년전 어린 시절을 추억하곤 합니다. 지금 영화동 사무소 언저리쯤입니다. 가을날 오후에 번지는 따스하고 아련한 추억의 무대가 보이는 듯합니다. 이제 보니 영화동은 수원화성을 기준으로 성 밖입니다. 장안문을 기준으로 성안과 성밖이 구분되고 있습니다. 조선 성곽문 중 가장 크고 제일 멋진 장안문이 위용을 자랑하며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만 6.25 전쟁당시에 인민군의 소련제 탱크 2대가 장안문 안에 숨겨졌다는 정보를 입수한 UN군 지휘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