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보러 가면서 아내는 식탁 위의 소고기 삶은 것을 절대 만지지 말라 합니다. 평소에 부엌살림에 관심이 많은 남편이기 때문입니다. 이날도 소고기를 삶아내면 그 다음은 잘게 찢어서 떡국 고명으로 올리거나 미역국의 고기로 넣기 때문에 이를 설익은 과일처럼 파악한 남편이 손을 대거나 작업을 할 것으로 예상되어 미리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집에 음료수나 음식을 먹은 빈 그릇이 그대로 싱크대에 방치되지 않습니다. 일단 자신이 먹은 그릇은 물론 가족의 것조차 수시로 씻어서 정리를 하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밤 늦게 퇴근하여 저녁을 먹는 남편의 식탁에서 다 먹은 빈 그릇을 집어 갑니다. 한 개라도 다 쓴 그릇이 보이면 가져가서 개수대에서 썻어서, 설거지를 해서 정리합니다. 남편도 아내의 부지런함을 배워서 설거지를 잘 합니다. 남편은 식사를 빨리하는 편이니 자신의 것을 먼저 정리합니다. 아내가 식사 중인데 그릇이 보이면 가져갑니다. 더러는 설거지를 설쩍 미루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내가 설거지를 미루는 것은 아니고 다른 일을 하거나 다음 끼니에 먹을 것을 준비하고 있으므로 남편이 들어가서 큰 그릇을 정리합니다. 주방의 설거지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우선 큰 그릇을 정리하여
60이 넘으면서 80세는 20년 후라는 것을 계산해 내고는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구체적으로 글로 언급하기 시작했습니다. 60세 이전까지는 혼자 마음속으로 죽음을 생각하고 땅속으로 들어가거나 火葬(화장)되면 지구의 여러 곳으로 온몸이 흐트러지고 영혼은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살면서 가까이했던 가족과 멀어지고 함께했던 소품 역시 여러가지 방식으로 사라지고 나면 더 이상 지구상에 자신의 존재가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구에서 사라지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어디엔가는 존재한다는 점에 안심을 해 보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죽는다는 것은 안타깝고 억울한 듯 보이지만 사실 지구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이 그렇게 떠났고 지금도 그런 상황이 매일매일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生老病死(생노병사) 역시 공평한 우주의 원리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리고 수억의 확율게임에서 태어난 것이고 그런 행운으로 70년을 살았다면 이른바 천수를 누린 것이니 죽음을 어려워할 일이 아니라고 마음 먹기로 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영원히 사는 것도 어려운 일이겠습니다. 돌과 물과 공기처럼 지구상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있고 그 위에서 살아가는 동
2016년 시청 공식행사에서 큰 실수를 했습니다. 60대 중반의 현직 여성시의원님을 소개하면서 '할머니 시의원'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날 행사주제는 어르신들의 자부심을 키워드리는 내용이었습니다. 70세 전후의 어르신 수백명이 참석하신 행사입니다. 현역에서 은퇴하신 어르신을 위한 행사에 동년배의 여성 시의원님이 오셨으므로 상황과 분위기에 맞춰서 말한다고 고민해서 한 말이 '할머니 시의원'이었던 것입니다. 김 아무개 여성 시의원님은 여러분과 비슷한 연세로 알고 있는데 현역 시의원으로서 시정을 감독하고 시민들에게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분으로 소개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해당 시의원님과 다른 참석자들에게 '연세가 노인세대인데 현역 활동가'라는 의미로 말을 서정적으로 꾸미다보니 가장 쉽게 '할머니 시의원'으로 소개한 것입니다. 지금에와서 다시 생각해 보아도 크게 잘못된 말입니다. 실제로는 20세에 결혼하여 아들딸을 낳고 또 20년이 흐른 40세 초반에 능히 할머니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는 아들딸의 아들딸을 손자손녀라 하므로 자연스럽게 호적상, 가족법상 할머니가 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이분 할머니가 밖에 나가서 동료나 친구들에게
1981년 8월에 팔탄면사무소 근무중에 응시한 시험에 합격해서 경기도청으로 발령을 받아 농민교육원에 배정되었습니다. 농민교육원에서는 농기계교육과 새마을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새마을교육계에서 외부강사를 모시는 업무를 했습니다. 당시 교육원에서는 1기에 200명 정도 새마을지도자를 대상으로하는 교육이 진행중이었습니다. 수원역까지 기차를 타고 오신 강사님을 승용차 조수석에 동승하여 사무실까지 모셔옵니다. 강사님이 타시도록 차량 문을 열고 잘 오르신 것을 확인한 후에 문을 닫는 순간에 과한 의전을 하다보니 손가락이 차문에 끼었습니다. 깊이 끼인 것은 아니고 그냥 틈새에 잠시 눌렸다가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손가락이 아프고 잠시 살펴보니 피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손수건으로 손가락을 감고 승용차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차는 출발했고 대략 10km를 달려서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25분 정도 손가락을 부여잡고 도착해서 차문을 열어 내려드렸고, 마침 현관에서 대기중인 선임 주사님이 강사님을 안내하므로 일단 수행업무는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의무담당의 치료를 받았습니다. 큰 부상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어린 마음에 자신과 관련해서 수행원이 손가락을 다친 것을 아시면 2시간 강의에
선배를 만났는데 이른바 뇌졸증으로 큰 일을 당할 상황에서 이른바 골든타임에 병원진료를 받아서 회복했다 하십니다. 그래서 담배를 끊고 건강을 관리하는데 노력한다 하십니다. 잘 하신 일입니다. 나이들수록 건강이 소중해집니다. 재물, 재산은 내것이 아닙니다. 건강만이 자신의 것이고 자신만이 건강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장자말씀이든 법정스님이든 무소유, 가진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 지니고 있는 것은 자신일뿐 집이나 땅이나 살림살이, 가재도구는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재산이 많고 돈이 많아서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는 소설이나 이야기가 많습니다. 유명한 영화에서 산 정상부근에 추락한 현장에 오른 형제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형제는 사람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설산 정상 비행기 추락현장에 올라갔는데 동생은 사람을 구해내고 형은 사망한 사람들의 돈과 보석을 모아서 산길을 내려옵니다. 동생은 아취형태의 얼음이 만든 다리를 먼저 기어서 내려온 후 부상자를 태운 썰매를 당겨서 구해냅니다. 하지만 형은 온몸에 보석과 돈을 지닌 채 그 얼음 아취 다리를 건너다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깊은 낭떠러지로 떨어집니다. 욕심을 낸 재물과 생명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숨쉬기, 심장 뛰기, 눈 깜빡, 그리고 절하기입니다. 그렇게 인생은 매일매일 아침을 맞이하면서 시작하고 저녁에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날을 보내는 것입니다. 100년을 산다면 36,500일을 그렇게 하면 됩니다. 어려서는 못하고 나이 들어서도 못하는 일이니 대략 20,000일 정도를 그런 수행의 마음으로 살아가면 인생은 멋지게 구성되고 완성될 것입니다. 아마도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는 나이는 대략 12살로 봅니다. 그리고 노후에 5년정도 와병을 한다고 가정하고 12년을 90세에서 빼면 72년 정도를 주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인간으로서 자기 정신을 가지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어진 나날을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매일매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부모님, 조상님, 신이 내려주신 인생을 소중하고 쓰고 관리해야 합니다.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는 모든 자료를 관리하고 후대에 물려야 합니다. 그런데 시대가 많이 변해서 가족들이 사후에 이런 물품, 물건, 자료들을 잘 보관하기 어려운 2022년이고 100세인 2057년에는 더더욱 더 보존에 대한 인식이 흐려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서책들이 지금까지 서당이나 고
수개월 월급을 쪼개고 모아서 오토바이를 장만했습니다. 자전거로 시작한 공무원 생활이 동력장치로 그 장비를 업그레이드한 것이지만 추가비용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에도 젊은이들이 새 차를 사면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도 크거니와 주유, 엔진오일, 보험, 세차 등 기본적이거나 부가적인 비용이 추가됩니다. 여기에 더 큰 소비양태의 변화로 인해서 소비 수준이 높아지게 됩니다. 전에는 그냥 갈비탕을 먹었는데 차가 움직이다보니 주차장이 넓고 편안한 식당을 찾게되고 그래서 점심 식사비가 12,000원이던 것이 2만원 이상으로 올라갑니다. 설렁탕, 해장국이 뚝불고기나 갈비정식으로 바꾸는 것이고 그래서 소비를 말하는 엥겔게수가 올라간다는 말입니다. 사실 1978년도에 오토바이를 운영해도 큰 비용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 당시는 오일쇼크를 몰랐습니다. 그냥 동네 원동기 수리하는 아저씨가 비공식으로 판매하는 휘발유를 넣었습니다. 큰 소주병에 휘발유를 담아두었다가 면직원이나 농협직원이 오토바이를 타고가면 한 병, 두 병 넣어주고 얼마를 받습니다. 그리 비싼 금액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신 오토바이의 기동성은 뛰어났습니다. 부면장님은 49cc 오토바이를 타고 오로롱 거
오늘 문득 오래전에 발생한 황우석 박사님 사태를 기억해 냈습니다. 당시에 수억년 빙하속에 잠겨있던 매머드의 털이나 뼈에서 유전자를 꺼내어 다시 살아있는 매머드 후손을 태어나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면서 카리스마있게 연구화동을 진행하는 모습이 방영되어서 우리 국민은 대한민국이 세계의 과학을 이끌어갈 미래 선도국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했습니다. 대략 35년전입니다. 아이들 나이와 비슷해서 기억을 합니다. 아이들을 담당했던 산부인과 의사선생님도 '황우석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풍문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언론의 집중포화로 황박사는 무너져내렸습니다. 그리고 30여년이 흐른 후 외국에서 황우석 박사의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는 기사를 본듯 여겨지는데 기억은 확실하지 않고 국내언론에서 더이상 황박사님 이야기를 듣지 못합니다. 황우석 박사님의 근황이 궁금하여 검색을 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만났습니다. [황우석 박사 논문 조작 사건] 동물 복제와 줄기세포 연구 분야에서 인류 최초의 업적을 이루며 세계의 주목을 받음과 동시에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던 황우석 박사라는 인물이 2005년 11월 논문 조작 사건을 시작으로 연구 결과 조작, 연
1974년에 수성고등학교에 입학하였으니 2024년에는 대략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20회 동문회 총무와 회장, 그리고 간부들이 봄부터 가을소풍을 준비하더니 수차례 문자와 전화를 해서는 반드시 참석하자는 격려와 독려를 받은 바이므로 동창회 밴드에 참석신청을 하고 당일 아침에 서둘러 수원시청 정문으로 향했습니다. 새로 이사온 바이니 걸어서 수원시청까지 가본 경험이 없는 터라 서둘러 달려가니 한시간이 남습니다. 그래서 88올림픽공원을 돌고 편의점에서 우유하나를 사서 마시고 다시 시청 건물을 구경하고 아침 모임시각 07:30분에 임박하여 버스정류장에 다가서니 낮익은 동창들 7명이 서있었고 반갑게 인사를 건넵니다. 10대 중반에 만난 친구이니 평생가는 친구이고 자랑스러운 수성고등학교 20회 동창입니다. 우주선을 발사하는 일도 아닌데 우리의 버스는 경기76아3489번을 달고 시청앞 정문에 다다르고 우리는 마지막번으로 버스에 올라 반가운 친구들과 악수를 했습니다. 차량번호를 적어대는 이유는 이분 관광버스 기사님은 지난 7년여의 행사에 늘 우리 20회 동문을 태우고 둥기둥둥 신명나게 안내하는 기사님이랍니다. 성격도 둥글해서 늘 긍정의 마인드로 친구들을 태워주었답니다. 세
2008년에 중앙지급 월간지에 자료로 제출한 글입니다. 실제로 일부가 실렸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부는 이미 실현 중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도청은 수원 팔달산에 있습니다. 하지만 경기도청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청사는 보통 생각하시는 것보다 많습니다. 우선 소방공무원들은 도청직원입니다. 의정부에 경기도 제2청사가 있습니다. 제2청이 아니고 청사(廳舍)입니다. 즉 경기도청의 조직 중 가족여성정책실, 기획행정실, 경제농정국, 문화복지국, 도시환경국, 교통도로국, 제2소방재난본부 사무실이 의정부에 있는 것이지요. 팔당수질개선본부는 팔당호 주변에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입니다. 조선시대 도자기를 굽던 분원리 말입니다. 풍성한 나무가 우거진 축령산 휴양림 관리소, 물향기수목원 등 많은 기관이 도내 여러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2청 의정부 청사에 근무하는 간부들이 회의에 참석하거나 의회에 나가 도정을 설명하려 하면 아침에 사무실로 출근했다가 다시 버스를 타거나 승용차를 이용해 1청사인 수원으로 와야 합니다. 참 번거로운 일이지요. 물론 영상회의 시스템을 활용하기도 하지만 대면하는 회의가 효율적이고 의미전달이 정확한 법